윤근택 2014. 4. 12. 02:30

     몸살을 앓으며            

   

 

 윤요셉 (수필가/수필평론가)


 
무리하면 몸이 탈나기 마련이다. 어제 한나절 이른바 해머드릴, 농로(農路)의 콘크리트 바닥 일부를 깨어내었다. 개울을 가로지르는 만돌이 농원 진입 다리[橋脚]를 넓히기 위해 그리하였다. 온몸을 흔들어대던 그 기계의 진동과 용씀으로 인해 몸살이 나고 말았다. 그렇다고 하여 내 일과인 글짓기를 아니 할 수는 없고. 몸살 덕분으로 또 글감을 챙기게 되었으니, 도대체 나라는 인간은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이젠 나 자신도 모르겠다.

문득, 그 강도만치의 정리운동을 격렬하게 하면, 몸살을 이내 다스릴 수 있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사실 우리네는 어느 운동을 하든 몸풀기 운동, 본운동, 정리운동 등 3단계로 나누어 하게 된다. 언젠가 내가 알고 지내는 스포츠전문가도 정리운동이 꼭 필요하다고 일러준 적 있다. 그 이유인즉, 운동으로 말미암아 피가 근육에 집중되어 있었는데, 정리운동을 통해서 그렇게 머문 피를 심장으로, 뇌로 속히 돌려보내게 된다는 것이다. 마무리 운동은 약 10분간에 걸쳐 비교적 가볍게 하여야 한다고도 일러주었다.

내가 앓고 있는 몸살은 준비운동과 정리운동을 빠뜨린 데서 비롯되었다. 실제로 나는 여타 농사일로 몸을 끊임없이 부려왔기에, 웬만해서는 몸살을 앓지 않는 편이다. 설사 몸살기가 있어도 이튿날 다시 일을 함으로써 정리운동이 되었던 듯하다. 많은 농부들이 그러한 경험을 달리 표현한다.

동생 보게나. 나는 밤에 끙끙 앓다가도 들에 나가서 일을 하면 아픈 줄을 모른다네.

우리들한테는 색다른 정리운동이 있었다. 산후조리가 부실하여 몸이 아픈 부인한테 우리네 어머니들은 곧잘 권유했다. 어떻게? 애기 하나를 더 낳고 그때에 가서는 산후조리를 확실히 하라고. 그러면 괴병같이 낫는다고 하였다. 이는 통설(通說)이며, 위에서 밝힌 정리운동의 원리에 비춰보면 꽤 설득력이 있다.

그런가 하면, 이 정리운동은 국민학교 시절 교과서에 실렸던 삼년고개란 동화를 다시 떠올리게도 하다. 그 동화 내용을 여기 다시 소개해 보기로 한다.

 

 

옛날옛적에 어느 산골 마을엔 삼년고개라는 고개가 있었습니다. 그 고개를 넘다가 넘어지면 3년밖에 못 산다는 전설이 이어져 왔습니다. 그래서 모두들 장에 나갈 때나 나무하러 갈 때에는 조심조심 그 고개를 넘어다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 훈장어른은 장에 갔다 오다가 그만 실수로 그 고개에서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집에 당도한 훈장어른은 그 길로 앓아 눕게 되었습니다. 할머니도 걱정이 태산이었습니다. 그렇게 한 동안 시간이 흘러 훈장어른과 할머니는 시나브로 말라가게 되었습니다. 이웃에 사는 꼬맹이가 그 소식을 듣고 그 댁을 방문하였습니다. 꼬맹이는 맹랑하게 말했습니다.

훈장어르신, 그 고개에 가시어 한번 더 넘어지세요. 그러면 6년을 더 사실 게 아닙니까? 더 오래 사시려면 거듭거듭 넘어지세요.

 그 말을 들은 훈장어른은 꼬맹이가 일러주는 대로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오래오래 살았답니다.

사실 나는 그 당시 그저 재미나는 동화 정도로만 여겼다. 그러나 작가로서 육십에 가까운 지금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그 동화의 교훈을 제대로 알게 된다. 그 꼬맹이야말로 코페르니쿠스적 대전환 즉, 발상의 대전환을 할 줄 안 이다. 참으로 지혜로운 아이였다. 무지할 성싶은 꼬맹이가 훈장보다 나았으니, 우리가 흔히 욕으로 쓰는 말이 오버랩 되기까지 한다. 무슨 욕?  개 ㅈ도 모르는 기 선생이라고 .  말이 분명코 존재한다.

위 구전동화는 우리네 고유의 동화라고들 하지만, 중국과 일본에서도 유사한 이야기가 있다고 들었다. 특히, 중국의 삼천갑자동박삭(三千甲子東方 朔)이란 실존인물의 이야기는 흥미롭다. 인터넷 두산백과에서 그대로 베껴와 본다.

《漢書》의 〈東方朔傳〉에 나오는 말이다. 전한(前漢)무제(武帝:BC 156BC 87)는 인재를 구한다는 소식을 천하에 공포하였다. 이에 제()나라 사람인 동방삭은 대나무 한 짐에 글을 써서 무제에게 올렸다. 동방삭의 글은 내용이 많을 뿐만 아니라 필체도 당당하여 읽는 데 두 달이나 걸렸다. 동방삭은 해학과 변론에 뛰어났고, 속설에 서왕모(西王母)의 복숭아를 훔쳐 먹었기 때문에 죽지 않고 장수하였다 하여 ‘삼천갑자 동방삭’이라고 불렀다. 그의 해학과 재치는 언제나 무제를 즐겁게 해주어 무제의 총애를 받았으며, 때로는 무제의 사치와 부국강병책에 대해 간언하는 등 결코 단순한 익살꾼은 아니었다.
  
다음의 일화도 있다. 삼복 더위에 무제가 신하에게 고기를 하사하였는데, 이를
나누어 줄 관리가 오지 않았다. 동방삭은 기다리다 못해 칼로 고기를 베어 가지고 갔다. 이 사실을 들은 무제동방삭을 불러 물었다. 동방삭 "황제의 명을 기다리지 않고 베어간 것은 참으로 잘못입니다. 그러나 고기는 한 점밖에 베어 가지 않았으며, 또한 그 고기는 아내에게 주었으니 인정 많은 처사가 아닌지요."라고 재치있게 대답하였다. ‘삼천갑자‘3000X60=180000을 말하므로 동방삭 18만 년을 산 셈이다. 삼천갑자 동방삭은 장수한 사람을 뜻한다. 서왕모는 중국 고대의 선녀로, 호치(虎齒)·표미(豹尾)의 신인(神人)이라고도 하며, 불사약(不死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삼천갑자동방삭 [三千甲子東方朔] (두산백과, 두산백과)

내가 위 중국고사를 들어, 우리네 동화 삼년고개를 폄훼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제재로 삼은 나의 몸살과 관련하여, 이 몸 상태에서 동일한 작업인 해머드릴 사용을 지속한다면, 몸이 단련되어 더 이상 몸살이 생겨 나지 않을 거라는 걸 뒷받침해보는 것이다. 정말로 그리 될 것 같다. 그 꼬맹이가 훈장 어른께 일러준 대로 삼년고개에서 거듭 넘어지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거라고 믿게 된다.

어쨌든,나의 몸살앓이 치료는 근육이완제 투여보다도 삼년고개의 동화를 응용하면 좋을 듯하다. 나의 몸살앓이는 산후조리 요령과도 깊은 관련성이 있다. 그리고 이열치열(以熱治熱), 이한치한(以寒治寒), 이이제이(以夷制夷), 이냉치냉(以冷治冷),’이에는 이등의 원리도 적용해볼 만하다. 나아가서, 담금질과 풀림질을 번갈아 함으로써 몸을 단련시키면, 근원적으로 몸살을 앓지 않게 될 거라는 점 믿어 의심치 않는다. 마찬가지로, 작가인 나는 그러한 이치를 되새기며 어떠한 여건에서도 쉼 없이 창작을 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산후조리를 잘못한 부인이 새 아이를 잉태하고 낳음으로써 몸이 풀리듯, 내가 부실한 작품을 낳았다고 생각할 적마다 또 새로운 생명체, 즉 새 작품을 잉태하여야겠다는 다짐을 해보는 것이다.

* 이 글은 인터넷(한국디지털도서관>윤근택>작품/논문>미발표작)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