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신작

윤 수필가, 칼을 차다

윤근택 2018. 1. 19. 21:00


                                     윤 수필가, 칼을 차다

              


                                                            윤근택(수필작가/ 문장치료사/ 수필평론가)

 

중학교 시절, 어느 선생님이 곧잘 하던 말이 떠오른다.

기가 차고 메가 차고, 순사가 칼을 차고, 학생이 볼을 차고, 사내가 불알을 차고... . ”

참말로, 요즘 나는 칼을 차고 지낸다. 그것도 격일제로.내가 칼을 찬 이유는, ‘[]을 장식으로 혹은 폼으로 단 이들을혼내주기(?) 위함이다. 내가 찬 칼은 장군이나 일본 순사가 옆구리에 찼던 칼이 아니다. 아주 날카로워, 갖다대기만 하면, 무엇이든 베이는 아주 작은 칼이다. 흔히들 도루코라고 부르지만, 명색이 작가인 내가 특정회사의 브랜드명을 그대로 쓸 수는 없다. ‘문구용 칼이라고 불러야 옳을 듯. 하여간, 그 칼을, 자칫 잃을세라, 붉은 띠를 묶어 들고 다닌다. 내가 그 위험천만인 이 문구용 칼을 상시 지니고 다니는 이유에 관해서는 잠시 미루어두기로 하고... 그 유명한 노철학자의 말을 흉내 내어 봐야겠다.

도대체, 이게 뭡니까? 국민소득 몇 천 불이고, 세계 선 국 대열에 들었다고? 다 웃기는 소립니다. 기본도 아니 되어 있는 국민성인 걸!”

사실 자기가 처한 환경에 따라, 사물을 제각기 달리 보이기 마련이다. 특히, 천한 일을 할수록 잘나빠진 인간들이 얄미울 때가 있다. 적어도 지금 내 눈에 비친 이 고급 아파트 510세대 입주민들 가운데에서, 눈을 장식으로 달지 않고, 사물을 제대로 보기 위해 올바르게 달고 지내는 이는 1할대도 되지 않는 것 같다. 이 글을 읽게 될 내 신실한 애독자들도 대개 그들과 마찬가지로 눈을 장식으로 달고 지낸다. 참으로 죄송한 이야기이지만, 그러하다. 이처럼 말하는 나는, 그 누구 못지않은 독설가(毒舌家)이다. 혼자 탄식해 본다.

다 집어치우고, 유치원 시절부터 대학시절에 이르기까지 소방·수방 요령’,‘재활용품 분리배출 요령등만 가르쳐도 좋으리.’

, 이제 미뤄뒀던, 내가 문구용 칼을 지니고 지내는 이유를 털어놔야겠다.

어느 아파트 경비원인 나는, 내가 맡은 2동과 4동의 분리수거장을 돌며, 주민들이 함부로 내던져놓은 종이박스를 문구용 칼로 테이프를 자르는 등 펴서 차곡차곡 사각의 모양으로 쌓고 있었다. 후일 집게차가 집어 실어갈 수 있도록.그러자 제2초소 선배 경비원이 내 작업장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는 격려의 메시지를 던져 왔다.

윤형, 열심히 하시오.”

처지가 비슷한 그에게 나도 질세라, 응수했다.

성님, 하여간 인간들은 눈을 장식으로 달고 지내나 봐요. 이 큰 항공마대 앞에까지 파지(破紙)를 들고 와서, 담을 생각을 왜 못할까요? 그리고 여기 네모꼴로 쌓아둔 종이박스 해체분도 보이지 않는가 봐요?”

그는 내가 눈은 장식이란 말에 희미한 가로등 아래서 호방하게 웃어젖혔다. 동료의식이란 이런 거.

사실 나는 여태껏 통틀어 6개 아파트 경비원으로, 전기주임으로 지내온다. 가는 곳곳마다 정도의 차이는 다소 있었으나, 거기서 거기다. 나는 이미 위에서 내가 독설가임을 밝혔다. 내가 작가이긴 하지만, 결코 고상하게 말하지 않는 편이다. 일찍이 어른들이 일렀다.

아 새끼가 처먹었는지 안 처먹었는지는 똥무더기를 보면 안다.”

지당한 가르침이다. 다들 처먹기는 얼마나 많이 처먹어대는지, 다들 내지르기는 얼마나 많이 내질러대는지? 분리수거장을 순회할 적마다 너무 심하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다 생략하고, 종이박스에 관한 이야기만 하기로 하자. 종이의 원료인 펄프, 그 펄프의 원료인 나무는 8,9할대 외국에서 수입한다. 일찍이 대학에서 임학(林學)을 전공한 나는, 너무도 그 사실을 잘 안다. 그러함에도 대체로 그 소중함을 모르고 지내는 것 같다. 기왕지사 벌린 춤이니, 더 심한 욕설을 퍼부어야겠다.

‘(황급히) 삼태기로 거시기 가리기를 하고들 있어.’

어디에서 듣긴 들었는지, 개인정보 운위하며 택배로 도착된 종이박스 따위에서 송장에 적힌 자기 이름 등은 잘도 뗐더라는 거. 하지만, 경비실에서 경비원인 우리는 매직펜 등으로 그들 세대를 ‘101-XXX’로 표시하여 내어주기에, 금세 무단배출한 주인공을 알게 된다는 것을.

농부이기도 한 나는 종이박스의 소중함을 그 누구 못지 않게 알고 지낸다. 10kg들이 감 박스의 경우, 낱개에 1200원가량에 사서 사용하게 되는데, 그 종이박스 값이 과일 값 1만원가량에서 1할을 점한다는 거. 해서, 그 종이박스 값이 아까워서 생과(生果)가 아닌 감말랭이로 가공해서 내다 판다는 거 아닌가. 내 신실한 애독자 여러분, 이러한 점을 깊이 새기시어, 제발 님들만이라도 종이박스를 아파트 분리수거장에 함부로 내던지지 마시길.

경비실에 앉아, 택배회사 기사양반들이 올 적마다 사업아이디어 내지 사업 창안 아이디어를 제공하곤 한다.

기사 양반, 당신네 회사 본사에 창안하시오. 종이 박스에다 경비원 아저씨들을 도와줍시다. 박스는 뽀개서 배출해주세요.’ 안내문구를 인쇄하면 차별화에 성공할 거요.”

하지만, 그들 또한 힘없는 백성.

나는 가칭 전경련(전국 경비원 연합회)’를 결성하여, 초대회장을 맡을 생각도 해보곤 한다. 그리하여 종이박스에다 경비원 아저씨들을 도와주세요... ’캠페인을 벌여볼까도 생각 중이다.

분리배출이 국민운동으로,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정규 교양필수과목으로 채택되는 그날까지 분투할 것이다. 그러기 전에 내가 실천할 수 있는 것부터 생각했고, 실천한다.

택배를 내어줄 때에는, “ 입주민님, ‘파지 할배를 생각하시어, 문구 칼로 펴서 내어주세요.”계몽하고 있다.

한편, 명함 크기의 스티커도 사비(私備)로 만들 요량이다.

사랑하는 나의 애독자님들, 님들도 이웃들한테 내 작은 소망을 전해주시길. 이 작은 생각이 국민운동으로 발전한다면, 독수리 문양이 새겨진 아파트 경비원 모자가 얼마나 보람 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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