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신작

대왕참나무

윤근택 2018. 1. 19. 21:28

대왕참나무

윤근택(수필작가/ 문장치료사/ 수필평론가)

 

내 전임자(前任者)인 경비원이 이 아파트를 떠나 다른 아파트 경비원으로 옮겨가게 한 데는, ‘대왕참나무탓도 있었다는 걸 오늘에야 알게 되었다. 어느 대기업의 연구원이었기도 하고, 공업계 고등학교 교원이었기도 하며, 주식투자로 살림을 다 날려버리기도 했다는 그. 구랍(舊臘) 27일에 그가 갑작스럽게 사표를 내자, 용역회사와 아파트측은 부랴부랴 구인(求人)을 하게 되었던 모양이다. 사실 이 바닥, 아파트 경비원 세계는 매년 11일 기준으로, 새로운 이닝(inning)이 시작되고, 대체로 12월 중순이면 인사인동이(?) 완료되는 편인데... . 마침 나는 어느 아파트 전기주임으로 1년 계약 만료로 해고되어, 정부로부터 5개월간 실직급여를 받은 후에 재취업할까 말까를 견주고 있던 터. 내가 사는 아파트로부터 승용차로 채 7분도 걸리지 않는 이 아파트에 경비원 자리가 났다기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취업했다. 순전히 위에서 소개한 이의 덕분이다. 연때가 맞은 것이다.

대왕참나무, 그가 이곳을 떠나게 했던 그 조경수 덕분에 내가 곧바로 일자리를 잡게 되었는데... . 지은 지 5년 여 되는, 최신식 아파트 510세대. 어떤 머저리 조경업자가 이 수목을 주종(主種) 조경수로 택해 심었는지, 앞으로 일이 자못 걱정스럽다. 지난날 대학시절 임학(林學)을 전공한 나. 수목학 교재에는 이 수목, ‘대왕참나무가 아예 소개되지도 않았다. 다만, 몇 해 전 어느 고급 아파트에 조경수로 심겨 있는 이 수목에 달린 표찰이 핀오크인 걸 알게 되었을 따름이다. 그 잎 모양이 물고기의 지느러미 같기에 ‘Fin-Oak’일 거라고 여겼다. 하지만, 이곳에서 보름 여 근무하는 동안, 호기심으로 기어이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되었다. ‘Fin-Oak’가 아니라 ‘Pin-Oak’라는 사실을.

다음백과는 이렇게 적고 있다.

<참나무과 참나무속 (Quercus)의 붉은참나무(red oak) 무리에 속하는 2()의 북아메리카산 교목. 핀오크라는 말은 특히 미국 동부와 중부의 저지대와 축축한 고지대에서 자라는 쿠에르쿠스 팔루스트리스를 지칭한다. 이것은 보통 키가 25m 정도이지만 35m까지 자라기도 하며, 수관은 넓고 피라미드 모양이며 줄기 아래쪽의 가지가 아래로 처진다.

(;톱날)처럼 생긴 가느다란 잔가지가 줄기와 큰 가지에 처럼 튀어나와 있다. 타원형의 잎은 녹색으로 광택이 나며 길이가 13정도인데, 5~7갈래로 잘게 갈라져 있으며 가을에 주홍색으로 변한다. 암갈색의 도토리는 아래쪽이 얕게 팬 깍정이[殼斗]에 싸여 있다. ‘쿠에르쿠스 엘립소이달리스도 잔가지가 핀처럼 튀어나와 있지만 대개 건조한 고지대에서 자란다.

타원형의 도토리는 거의 반 정도가 비늘로 된 깍정이로 싸여 있다. 잎은 가을에 노란색 또는 연갈색으로 물드는데, 종종 자주색의 얼룩이 생기기도 한다.>

 

핀오크대왕참나무로 번역된 것도 요상하다. 위 소개글에서는 잔가지가 줄기와 큰 가지에 처럼 튀어나와 있어’, ‘핀오크란 이름을 붙이게 되었던 모양인데... . 그걸 다시 대왕참나무라고 이름짓다니! 살펴본즉, 'pin'이 미국 속어로 갱 등의 우두머리 또는 보스란 뜻도 지녔다니, 거기서 대왕-’이라고 따왔을는지도 모른다. , 마라토너 손기정이 썼던 월계수관이 사실은 핀오크 잎으로 장식된 관이었기에, 서울의 손기정체육공원에 심게 되면서부터 관상수로 널리 보급되었다는 거 아닌가.

입주 초기부터 이곳에서 일해 왔다는 선배 경비원들로부터 들은 웬수같은 핀오크의 습성. 대개의 나무들은 가을이 되면, 잎들은 자기가 붙어있던 가지의 겨드랑이에서 떨켜[離層]의 작용에 의해, 미련없이 떨어져 정처없이 길을 떠난다. 대신, 후사(後嗣) 즉 겨울눈을 맺지 못한 잎들은 겨우내 끝끝내 마른 채 붙어있다. 그런데 이 눔의 대왕참나무는 4월이 되어 새 잎이 돋아야, 마저 자기 자리를 떠나더란다. 톱날 모양이라도 큰 톱날 모양의 잎둘레를 지닌 이 나무. 내가 아침마다 경험해본즉, 아니나 다를까 잎들이 보도 블럭 사이 등에 끼이면, 빗자루로 잘 쓸려지지도 않는다. 세월아 네월아 하며 시나브로 한 잎 두 잎 떨어지는 저 미련함이여, 집착이여!

청소까지 담당하는, 경비원으로서 나. 아침저녁으로 핀오크를 쳐다볼 적마다 왕짜증이다. 혼잣말도 곧잘 하게 된다.

대왕은 무슨 놈의 얼어죽을 대왕? 니들이 대왕이면 나는 상왕이다. 태상왕이다. 오게 될 가을이 한걱정이다. 니들이 나를 한바탕울릴는지 모르겠다.’

해바라기의 그 유명한 사랑으로란 노래도 사실은 어느 환경미화원 가족에 대한 노래라지 않던가. 그 멤버 가운데 이주호는 어느날 아침 신문을 읽어다지 않던가. 아빠엄마가 둘 다 환경미화원인 세 어린 자매. 그들은 너무도 가난한 삶에 지쳐 함께 음독자살을 기도했고, 그 가운데 가장 어린 자매는 그만 숨을 거두었다는데, 최주호는 환경미화원의 탄식을, ‘솔잎 하나 떨어지면 눈물 따라 흐르고란 노랫말을 보태 그 노래를 만들었다고 한다. 하기야 나는 그런 형편까지는 닿지 않았지만... .

하여간, 저들은 떠날 때는 말없이도 모르는 거 같고, ‘떠나는 이의 뒷모습이 아름답다는 말도 모르는 거 같다. 그런데 비해, 우리가 알고 지내는 소나무는 사철 푸르고, 모든 수목을 인솔(引率;이끄는)한다는 데서 지어진 []’에서 비롯되었다는데... .

임학도였던 내가 아무리 보아도 대왕참나무대왕의 품격을 전혀 지니지 않은 듯하다. 다만, 가지가 균제롭게, 마치 내 고향 청송의 왜생(矮生) 사과나무들처럼 전정을 한 듯 내어놓고, 원추형(圓錐形;송곳꼴) 내지 피라미드형의 수형(樹形)을 지닌 것 외에는 빼어난 구석이 없는 듯하다. , 가지가 처진다는 것도 특이하기는 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렇지. 그렇게 가지가 처진 나무가 어디 핀오크 너희들 뿐인가. 능수버들, 능수매화, 능수느티, 능수소나무,능수벚꽃 ... . 얼마든지 있다. 내 농장에만 하여도 능수매화뿐만 아니라 운용매화(雲龍梅花)도 있는 터.

내 전임자가 이곳을 떠난 이유 가운데에는 저 대왕참나무가 가을에 오줄없이 잎을 떨구어 아주 몸서리가 났다는 거. 그러함에도 청소 담당구역을 공평하게 가르자고 제의했건만, 지금 내가 그 누구라고 감히 밝히기는 뭣하지만, 어떤 이가 나 몰라라 했다는 거.

마음 같아서는 수목 전문가이도 한 내가 아파트 관계자들께, 하층(下層) 입주민들의 일조권 등을 감안하여, 나무의 키를 과감히 낮추어 왜생으로 기르자고 건의는 하고 싶지만, 또 어떤 봉변을(?) 당할까 싶어 꾸역꾸역 참을밖에.

모르긴 하여도, ‘핀 오크는 그 이름답게 그 예리한 으로 내 가슴을 언젠가는 콕콕 찌를 것만 같다. 바로 이런 일로 인해서.

관리소장, 도대체 경비원 아저씨들 핀핀 놀릴 거야? 저 건너편 ‘I WISH' 경비원들 한 번 봐봐. 캄캄한 새벽부터 낙엽을 싹싹 쓸고 있잖아?”

내 신실한 애독자들께 진실 하나만 더 전하고 글을 맺을까 보다.

낙엽도 가랑잎일 적에는 이리저리 나부대지만, 자기 자리를 찾아 정착하게 되면, 그때부터 서서히 발효되어 자연으로, 흙으로 돌아가고, 끝내는 자기네가 떠난 나무의 자양분이 된다. 이는 만고의 진리이다. 그러니 경비원들 더러 낙엽을 굳이 싹싹 쓸게 할 것까지도 없다는 것을. 그러한 점에서, 내가 위에서 주욱 몹쓸 관상수라고 헐뜯기만 한 대왕참나무의 잎들도 예외는 아니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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