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신작

보물찾기

윤근택 2018. 1. 25. 09:39


                                                보물찾기


 


                     

                                                     윤근택(수필작가/ 문장치료사/ 수필평론가)


 


  아파트 경비원인 나는 출근과 동시에 내가 맡은 동()의 현관과 필로티(pilotis)의 외등을 끈다. 그런 다음 쓰레받기며 집게며 비닐봉지며 빗자루며 온갖 보물찾기 도구를 챙겨 외곽을 돈다. 참말로, 그 작업이 보물찾기다. 주민들이 야반투척(夜半投擲), 밤을 도와 던진담배꽁초며 과자봉지며 휴지며 온갖 보물을 찾아 화단 등을 낱낱이 살피게 된다. 군데군데 숨겨놓은 그것들을 찾는 일이, 나한테는 시급 7,530원 돈벌이가 되는 작업.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그들이 눈물겹게도, 노인 일자리 창출을 위해 슬쩍슬쩍 밑밥인양 던져둔 보물.


  문득, 오늘은 학창시절 소풍(消風)이 떠오를 게 뭐람? 사실 내가 매일 이른 아침, 이렇게 아파트 외곽을 도는 것도 소풍에 해당할 터. 돌이켜보면, 소풍의 하이라이트는 언제고 그 보물찾기 행사였다. 점심 도시락을 먹고 나면, 선생님들은 본인들의 도장이 찍힌 작은 종이에다 각종 경품명을 적어 온데에다 감추어 두었다. 대개 돌멩이 밑에다 감춰두었던 기억. 우리는 일제히 길을 나섰다. 서로 다투듯 보물을 찾아댔다. 바지런한 친구들은 여러 보물을 찾았다. 우리는 다시 선생님을 가운데 두고 둘러섰다. 그리고 차례차례 자신들의 보물 품명이 적힌 티켓(?)과 보물을 교환했다.


  환갑 나이가 지나, 다시 그 보물찾기 행사를 색달리 체험하며, 그 보물찾기 기분으로 돌아가다니! 아파트마다 그 아파트에 걸맞은 아파트법이(?) 따로 있어서, 이곳 아파트에서는 고철이며 헌옷이며 파지(破紙)며 소주병·맥주병이며 여러 분리배출물들은 입찰에 의해 수거 업체가 도맡아 실어간다. 하지만, 내가 근무하였던 또 다른 아파트에서는 고철과 병과 깡통은 경비원들 몫으로 허락되었다. 그때 선배 경비원들은 신참인 나한테 어지간히도 당부하곤 하였다.


 “프라이팬이 가장 돈이 돼. 보이는 족족 보물창고에다 옮겨다 놓게나. 사실 그 프라이팬은 다시 도금을 하여 새것으로 둔갑하여 여편네들한테 팔린다지 않던가?”


  참말로, 그분들은 알기도 많이 알았다. 주민들이 무단배출한 물품들이 어떻게 재생되는지조차 알고 있었다. 따지고 보면, 끼리끼리 모으기만 하면 돈이 된다. 기왕지사 이 글을 쓰면서 우리가 흔히 잘못 쓰는 어휘 하나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버리는 이의 입장에서는 분리배출이고, 줍거나 모으는 이 입장에서는 분리수거이건만, 똥오줌 가리지 못하듯, 주체와 객체도 구분하지 못한 채 모조리 온 국민이분리수거라고 쓰고 있다는 사실.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어휘 하나만이라도 정확히 썼으면 한다.


  요 며칠 전 나는 파지인 종이박스에서 귀한 보물을 하나 줍고, 횡재를 했노라고 혼자서 싱글벙글이었다. 그건 어느 정유회사의 주유권 1만원권이었다. 어느 머저리가 그 귀중한 유가증권을 쓰레기와 함께 내다버리다니! 퇴근을 하여 당해 회사 직영점 주유소에 승용차를 세웠다.


 “3만원어치요. 현금 2만원과 이 주유권요.”


  그랬더니, 주유원은 주유권을 찬찬히 살피더니, 유가증권은 발행일로부터 5년간만 유효하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려 주었다. 그러면 그렇지!빈 지갑을 주운 사람처럼 기분 들떠 있었던 나.


또 하루는 멀쩡한 A4용지가 폐지와 섞여 한 박스 분리배출장에 나와 있었다. 이번에는 내 눈으로 똑똑히 확인한 새 종이. 그 한 박스를 실어와서 내 책상위에 올려놓았다. 앞으로, 수년간은 창작메모 등에 쓰고도 남겠다.


  사실 아파트 경비원으로 몇 해만 더 근무하게 되면, 내 농장 만돌이농원은 보물섬이 될는지도 모르겠다. 엘 도라도(El Dorado) 즉 황금향(黃金鄕)으로 변할는지 모르겠다. 이미 주워온 것들도 많다. 멀쩡한 선풍기가 10여 대, 쓸만한 진공청소기가 3, 옹기 항아리가 2, 화분이 7개 등. 어디 그뿐인가. 내가 농사를 하면서 가시밭길을 맘대로 다닐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안전화도 실은 주워서 신은 것이다. 이 신발의 내력이다. 지난 번 아파트의 경비원들 가운데 일흔 넷인 OO 형님은 재담꾼이었고, 나랑 꽤 친했다. 그분은 이따금씩 등 뒤에다 물건을 감추고 다가와 말하곤 하였다.


 “윤 주임, 신발 문수는? 내가 이번엔 칠곡 시장에서 265mm 안전화 한 켤레 사왔다. 어여(어서) 신어봐라.”


  사실은 그분이 분리수거장을 돌다가 의류함 위에 얹힌 그 신발을 가져와서는 그렇게 너스레를 떨었던 게다. 지금은 그 아파트를 떠나왔지만, 그분이 선물로 건네준 이 안전화를 정하게 신고 지낼 요량이다.


  에스파냐 약탈자 프란시스코 피사로는 자기 나라 여왕의 재가를 받아, ‘엘 도라도를 찾아 여왕께 황금을 바치겠다며 선박과 180명의 군사를 얻어 잉카제국을 무너뜨렸다. 마찬가지로,‘에르난 코르테스도 그렇게 하여 아즈텍을 약탈했다. 하지만, 나는 그들과 달리, 약탈자가 아니다. 그렇다고 하여 도둑도 아니다. 나는 흙속에서, 쓰레기 더미에서 보물을 찾는 이.


    다시 한 번 학창시절 소풍 때 행복했던, ‘보물찾기행사를 떠올리며... .


   참, 귀중한 거 하나 빠뜨릴 뻔했다. 대체로, 아파트 경비실의 책상이며 의자며 선풍기며 전기난로며 용품도 죄다 주워다 쓰는 게 하나의 전통 내지 관습이라는 거. 하더라도, 우리들 경비원들만은 재활용품이 아니라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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