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을 베려하는 마음
남을 ‘베려하는’ 마음
윤근택(수필작가/ 문장치료사/ 수필평론가)
초등학교 일학년짜리의 글짓기 가운데 이런 문장이 있어, 담임선생님을 놀라게 한 일이 있다고 한다.
‘내 짝꿍은 남을 베려해요. ’
사실 그 녀석이 ‘배려(配慮)하는’을 ‘베려하는’으로 잘못 적었던 게 아니다. 수시로 학용품 칼로 자기를 위협하는 걸 그렇게 솔직히 적었던 게다.
또, 어느 꼬맹이의 아래‘자연탐구’ 시험문제,‘곤충을 세 부분으로 나누면, □□□다.’에 대한 빈칸 채워넣기 답.
죽/는/다
문제를 낸 선생님은, ‘머리/가슴/배’를 답으로 원했으나... .
내가 새로운 일터인 이 아파트 경비실에서, 한 달여 나름대로 안전운행(?)을 하며 무사기원(?)해왔는데, 신고식은 아주 엉뚱한 데서 생겨났다. 미리 말하겠는데, 겉만 번지르르 했지, 대개의 공동주택 주민들은 인간이 덜 되어 있다. 특히, 별나빠지고 머릿속에 텅텅 빈 여편네들이 우글댄다. 특히 젊은것들일수록.
1개월여 얼굴도 제대로 본 적 없으리만치, 간섭이나 통제가 없던, 그야말로 최적의 여성 관리소장이 부른다기에, 쓰레받기며 집게며 빗자루를 든 채 관리사무실로 갔다.
“아저씨, 왜 부른지 아시겠죠?”
“...... .”
그러자 그는 ‘민원처리부’라는 걸, 사람을 앞에 세워놓고 펼쳐 읽어내려 가며 말하였다.
택배를 찾으러 온 입주민한테 불친절하게도, 장부를 내어주며, 본인의 ‘102동 XXX호’를 찾아 서명토록 했다는 것이다. 그는 예전의 경비원들은 자기네 칸을 잘도 찾아 손가락으로 콕 찍어 주던데 그러지를 않았다는 내용이었다.
어떤 이가 그 민원전화를 받아 적었는지, 거의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적어두었다. 참으로 훌륭한 속기사. 모르긴 하여도, 나랑 같은 조(組)에 속하는 40대의 ‘기전주임(기계 및 전기 담당)’의 작품인 듯. 그에 관해서는 이따가 따로 논의토록 하겠다.
첫 신고를 톡톡히 치르는구나 싶어, 젊은 여성 소장한테, 구구이 변명 않고 앞으로 조심할 터이니 ‘금회 한 선처’해달라고 했다.
자, 그게 왜 남을 ‘베려하는’ 마음인지에 관해, 내 신실한 애독자들께 소상히 고해바치겠다.
나는 그날 그 일을 비교적 소상히 기억하고 있고, 아예 택배수불부의 그 40대 여인의 호수(戶數)에다 빨간 사인펜으로 ‘※’표시까지 해두었다. 그러는 한편, 선배 경비원들한테도 요주의 인물이니 조심하라고 당부도 해두었다.
사건인즉 이렇다. 그날 2월 1일, 저녁 무렵, 경비실 앞 아파트 주행도로에 하얀 승용차가 멈춰 섰다. 사실 남들 주행에 지장을 초래하는 주차이고, 깜박이도 넣지 않았다. 그는 추위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경비실 쪽으로 달려와 출입문을 황급히 열었다.
하나 보면 열을 안다고, 참으로 본 데 없이 제멋대로 자란 여인인 듯.
내가 말했다.
“깜짝이야! 앞으로 노크 ‘똑1똑!똑!’요. 엄마 방에 갈 적에도, 아빠 방에 갈 때에도 노크잖아요?”
그는 바로 그 순간 심사가 틀어졌을 수도 있다. 딸 같거나 질녀 같은 이한테 그 정도 훈계치 못하는 어른이면 무슨 짝에 써?
그는 서둘러대기가 한량없었다. 아니, 설쳐대기가 그지없었다. 눈앞에 바로 보이는 자기 집구석의 택배 물건을, 그것도 굵은 ‘유성매직’으로 ‘102-XXX’까지 쓰인 물건을 나더러 찾아서 공손히(?) 품에 안겨달라는 투였다. 그것은 약과다. 나는 그가 쉽게 볼 수 있도록 택배수불부를 돌려놓고 서명해주십사 했거늘, 입술을 바르르 떨며 대거리했다.
“아저씨, 전에 있던(‘계시던’도 아니었다.) 아저씨들은 이러지 않았어요. 우리 칸을 찾아, 손가락으로 찍어주었는데... .”
단지, 그 일로 나를 불친절한 경비원으로 민원을 제기했다니! 하기야 내가 생각해보아도 내 면상은 흉기이긴 하지만.
그는 나를 베려했다. 환갑이 지난 이가 돋보기를 끼지 않고는 눈이 침침해서, 이내 읽을 수도 없는 그 집구석의 작은 일반 숫자‘102-XXX’. 하지만, 그이한테는 ‘102-XXX’가 고유명사이며 자나깨나 잊지 않는, 자기 남편 이름과도 같은 거. 노인에 대한 배려심이 그렇게도 없어서야? 그는 엄마의 젖이 아닌, 소젖(우유)을 먹고 자란 세대의 일반적 특성이기도 한, 뿔이 돋을 즈음, 대가리가 근지러워 언덕을 비벼대는 중소[中牛]와 진배없다.
그만한 일로, 당사자간에 대화로 풀어도 될 일을, 그 무제한 통신요금제 스마트폰으로 관리사무소에 민원전화를 했다니! 사실 지난 날 내가 통신회사에 다녔기는 하지만, 통신회사마다 휴대전화에 대해 ‘무제한통신요금제’를 적용한 게 이러한 폐단을 낳은 주범일 수도 있다. 통신요금을 생각했더라면, 자기 돈은 단돈 일원도 아까워 시댁 어른들한테는 문안전화 못할 여인일 텐데... .
그 일이 있은 후 쓰레기 분리수거장을 순회하다가 그 여인을 우연히 다시 보게 되었다. 그 여인은 마침 차선(車線) 그어지지 않은 곳에 세워뒀던 승용차에서 무얼 꺼내려는지 트렁크를 열고 있었다. 그 안에는 진열장처럼 개봉되지 않은 종이박스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경비실에 돌아와 택배수불부를 들여다본즉, ‘반품’이라고 주기(朱記)된 그 여인네 물건이 무려 네 개가 있었다.
사실 내가 더 속상해 하고, 더 가슴 따가운 일은 따로 있다. 그 여인네야 어차피 ‘甲’이니, ‘꼴갑’을 떤다고 쳐 밀어두자. 관리사무실에서 그 걸 민원이라고 민원처리부에 적어, 관리소장한테 ‘꼬아(고해)바친’ 이가 누구였든, 그게 인간이냐고? 제대로 된 조직 생활을, 아주 체계와 질서를 갖춘 직장생활을 단 1개월만 맛보았더라도 그런 짓은 아니 하였을 터. 그저 막노동꾼처럼 행한 그 행위가 측은하기만 하다. 나와 같은 용역회사 출신이니, 동질감이라는 게 있어야 마땅하다. ‘전원 공격 전원 수비’인 ‘올라운드 플레이’가 필요함에도... . 더욱이, ‘팀워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아파트 관리 수임 업무에 구멍이 크게 생길 수도 있다. 입에 담기도 민망하지만, 만약에 야간에 화재라도 나면 어떻게 할 텐데? 기전주임인 40대 젊은 녀석 자기 혼자서 그 일을 다 감당할 수 있겠냐고? 사실 그 동안, 잠시씩 자기가 개인 볼일로 외출을 할 적마다 우리 경비원들한테 관리사무실을 잠시 지켜달라고 부탁한 적도 더러 있었고, 우리는 흔쾌하게 베풀었건만... . 그가 누구였든간에 생각이 자라자면 아직도 멀었다. 나이는 공연히 먹는 게 아니라는 거. 보다는, 그 기록물 하나로 인간됨을 역력히 보여준 거 같아서, 또 다른 아파트를 물색해 보아야 하지 않겠나 고민 중이다. ‘슬픈 각시 오나가나... .’라고 하기는 했지만.
말이 나왔으니, 젊은 여성 관리소장도 다소 문제가 있다. 나를 불러 타이르기 이전에 그러한 보고서를 올린 이를 호되게 꾸짖었어야 옳았다.
“이 아무개 주임, 내가 민원처리부에다 이러한 걸 적으라고 하지 않았어요. 생사고락을 같이 할 같은 팀이면서, 팀원의 흉허물을 덮어주거나 해야지, 이게 뭐에요? 내가 퇴근한 야간에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떡하려고? 그 정도의 상상력도 없어요? 그분들 경비원들이 당신 손아래에요? 착각하지 마세요. 그분들 한 때 펄펄 날았던 분들입니다.”
뭐 이 정도는 되어야 진정한 리더가 아닐까?
보신주의자(補身主義者)들이여, 남을 베려하는 이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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