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게
‘부게’
윤근택(수필작가/ 문장치료사/ 수필평론가)
어떤 사물을 보게 되면, 거기 겹치는 사물이 있다. 이를 연상작용(聯想作用)이라고들 한다. ‘항공마대’를 볼 적마다 지난날 내 아버지가 겨우내 ‘결어’ 마당에 설치하고, 그 안에다 타작한 나락 즉 벼를 꼭꼭 채웠던 ‘부게’가 떠오르곤 한다. 이 ‘부게’에 관한 이야기는 잠시 미루어 두고... .
나는 어느 아파트 경비원으로 격일제 근무를 하며 지내는데, ‘쓰레기 분리 배출장’에는 대형 항공마대가 놓여 있고, 입주민들은 들며나며 폐지(廢紙)며 폐종이박스며 분리되지 않은 쓰레기며 분별없이 그 대형 마대에 던져 넣게 된다. 그들은 마치 ‘(다급해서)삼태기로 거시기 가리듯’ 그렇게 던지게 된다. 다음 이를 위해 서라도 꼭꼭 채워야겠다는 생각 등은 아예 그들의 몫이 아니다. 그러면 나는 수시로 그 항공마대에 폐지를 꼭꼭 채우거나 빈 종이박스는 ‘뽀개서’ ‘포개야’ 한다. 그 항공마대가 몇 개 채워질 무렵, 수거업체에서 집게차를 몰고 와서 그 마대의 폐지를 집게로 집어 올려, 대형 화물차량에 싣고 돌아간다. 참으로 편리한 세상. 폴리에틸렌 (polyethylene) 계열의 섬유로 짠, ‘변형된 부게’는 내구성(耐久性)도 갖춘 듯. 사실 그밖에도 PET병이며 종이박스며 스티로폼박스며 온갖 용기(容器)가 철철 남아서 오히려 탈이다.
이제 잠시 미뤄뒀던 ‘부게’ 이야기다. 지역에 따라서는 멱구리, 멱사리, 멱다리, 멱대기, 멱드리 구멱어리 등으로 두루 부르나, 내 아버지는 그걸 ‘부게’라고 불렀다. 내 아버지는 겨우내 새끼를 꼬아 날줄을 삼고, 짚으로 씨줄을 삼아 부게를 결었다. 그 부게란, 이미 위에서 소개한 ‘항공마대’와 그 크기와 그 모양이 비슷한 용기. 그런 모양으로 겯되, 소형으로 겯던 용기를 ‘봉태기’라고 불렀음을 덤으로 알려드린다. 재배기술 발달과 통일벼 계통의 다수확품종 육종(育種) 보급 등의 덕분으로, 내 아버지의 벼 수확량도 해마다 늘어났고, 기왕(旣往)의 송판(松板)으로 짠 ‘뒤주’가 넘치자, 내 아버지는 수확한 벼를 야적(野積)할 수밖에 없었다. 당신은 그러한 이유로, ‘부게’를 결었다. 마당 한 복판에다 볏단 ‘공금(‘굄’을 당신은 늘 이렇게 불렀다.)‘을 하고, 그 위에다 ’부게‘를 앉혔다. 그런 다음 부게의 뱃가죽이 빵빵해지도록 벼를 꼭꼭 채워나갔다. 아버지 당신은 그 부게 위에다 ‘ 우지지’라고 부르며 짚이엉을 이었다. 비가 스며들지 못하도록 비늘지어 볏단으로 지붕을 그렇게 씌웠다. 후일 당신은 그 ‘부게 공금 짚단’의 가장자리마저 낫으로 베서 정원(正圓) 꼴로 예쁘게 만드는 걸 잊지 않았다.
툇마루에 앉아, 그 부게를 바라볼 적마다 행복해 하던 당신. 마을 사람들한테조차 자랑삼아 보여주던 그 부게. 그 부게에 구멍을 뚫어 벼를 수시로 도적질해가던 쥐들. 그 쥐들이 흘려놓은 낟알을 주워 먹으려고 ‘짹짹’ 대던 참새들. 모두 아련하기만 한데, 요즘은 담을 그릇조차 흔해 빠져 그게 더 문제다. ‘삐삐선’으로 짜서 들고 다니던 장광주리를 더는 보기 어렵고, 대개 검은 비닐봉지에다 인스턴트 식료품을, 장이 아닌 대형마트에서 사오게 된다. 지우산(紙雨傘)도 더는 볼 수가 없다. 내 이웃이었던 ‘운호영감’은 우의(雨衣)의 원형이었던 ‘짚도롱이’를 잘도 만들고 잘도 입고 지냈는데... . 그 영감님은 ‘ 비삿갓’도 잘도 쓰고 다녔는데... . 그 비삿갓은 대나무살에다 창호지를 붙이고 들기름을 바른 지삿갓(紙삿갓)이었다. 이젠 모두 역사박물관에나 가 있을 물건들.
참말로, 세상이 급발전하여, 돈만 있으면 처녀젖으로 목욕물 삼아 목욕도 할 수 있는 지경에까지 이른 듯. 그런데 그런데 ... 정말 우리네 삶이 나아진 걸까? 나는 남의 이야기로만 흘려들었던 일을 요즘 절감(切感)하고 있다. 내 몸이 자기 주인을 닮아 까다롭거나 예민해서 그리 된지는 모르겠다. 업무상 ‘쓰레기 분리장’에 나가서, 파지며 비닐이며 플라스틱이며 온갖 걸 정리정돈하게 되는데, 숙소로 또는 경비초소로 돌아올 적마다 온몸이 근지럽더라는 거. 특히, 지하 주차장을 돌며 하루 한 차례씩 승용차에서 흘러내린 바닥의 오일을 걸레로 닦게 되는데, 그곳에 다녀오기만 하면, 온몸이 근지러워 견디기 힘들더라는 거. 내 가족들한테 차마 내색은 못하나, 그러한 일이 잦은 것만은 확실하다. 선배 경비원들이 최근에야 그 원인을 알려주었다.
“ 윤 선생, 바로 그게 미세먼지 때문이오. 나는 3년여 이곳에서 근무했고, 그 일을 주욱 해왔는데,처음엔 힘들었지만, 이젠 만성이 되었다우.”
아, 그게 바로 미세먼지 곧 ‘죽음의 먼지’ 때문일 줄이야! 문명은, 우리한테 누리는 만큼 거기 걸맞은 대가를 요구한다는 것을.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아파트 분리배출소 대형 항공마대를 볼 적마다 내 아버지의 ‘부게’를 떠올리곤 한다. 이 말마저도 사치스러운지 모르겠으나, ‘참말로 그때가 좋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