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널고정 89.7
채널고정 89.7
윤근택(수필작가/ 문장치료사/ 수필평론가)
나의 또 다른 작품, ‘ 윤 수필가, 포지타노(Positano)에 오다’ 의 전반부는 이렇게 적고 있다.
< (상략) 사실 나는 그렇듯 아름다운 음악을 들을 적마다 나의 유언과 묘비명(墓碑銘)에 관해서까지 미리 생각하곤 하였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세상의 모든 음악만을 내내 틀어주오. 하더라도, 무거운 ‘레퀴엠’ 따위는 싫소.’
하기야 많은 위인들의 묘비명도 이채롭다고 들었다. 그 가운데도 ‘내 우물쭈물하다가 이럴 줄 알았다.’라는 영국의 극작가 버나드쇼의 묘비명은 너무너무 멋있다.
어쨌든, 나는 장르와 크게 상관없이, 음악듣기를 참으로 좋아한다. 사후(死後)에는 음악을 못 들을까 봐 그게 한걱정이다.(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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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승용차의 라디오는 ‘89.7’로 채널고정이 되어 있다. KBS1F.M. 대구 쪽 주파수다. 그 방송사 서울 본사 쪽 주파수는 본디 93.1. 시동을 걸면, 곧바로 음악이 나온다. 직장인 어느 아파트 경비실 라디오도 내가 근무하는 시간대에는 항상 ‘89.7’로 맞춘다. 거기서도 음악이 나온다. 그런가 하면, 내 ‘만돌이농장’요소별로 설치한 라디오 세 대도 모조리 ‘89.7’로 주파수를 고정시켜 24시간 내내 틀어둔다.
24시간 격일제 아파트 경비원으로 근무하며, 홀로 초소에 앉아있는 시간도 시시각각 변하므로, 어찌 보면, 아주 불규칙적인 생활이다. 그러함에도, 길게 보아, 그 또한 일정한 생활패턴과 일정한 ‘생활 사이클’을 지녔다고 해야 할 터.
나는 위에서도 이미 밝혔듯이, 음악듣기를 생활화하고 있다. 내가 눈 떠 있는 시간은 물론이거니와, 잠결에도 귓전에 내내 음악을 틀어둔다. 전등도 밝혀둔 채 자는 둥 마는 둥 하면서. 내 ‘음악듣기’는 호흡이다. 내 음악듣기는, 그 장르가 다양하지만, 가급적이면 클래식이나 ‘뉴 에이지 음악’에 초점이 맞춰 있다.
자, 내 일상과 맞물린 그 ‘89.7’프로그램에 관해 간략히 소개하자. 농막에서 일어나 새벽 5시 무렵 가족이 사는 시내 아파트로 내려가게 되는데, 그때는 ‘국악의 향기’프로그램. 6시 30분 무렵 승용차를 몰아 7분여 아파트 경비실로 출근하게 되는데, 그때는 ‘새 아침의 클래식’. 그 프로그램은 ‘계몽시대 음악’ 내지 ‘고음악(古音樂)’이 소개된다. ‘박지현 아나(‘아나운서’에 대한 박지현씨한테만 붙이는 나의 애칭임.)의 ‘출발 F.M.과 함께’는 1년여 들었건만, 아쉽게도 내 생활패턴 변화로 말미암아 자주 듣지 못한다. 그 다음은 ‘장일범의 가정음악’, ‘F.M. 풍류마을’, ‘생생 클래식’, ‘ KBS 음악실’로 이어진다. 내가 이곳 아파트에 취직한 이후, 초소 근무시간과 겹쳐 집중적으로 듣게 되는 프로그램은 ‘전기현의 세상의 모든 음악’, ‘명연주 명음반’, ‘F.M. 실황음악’, ‘ 당신의 밤과 음악’ 등이다.
이쯤 되면, 나는 가히 ‘음악 애호가’ 수준을 훨씬 뛰어넘은,‘음악 열광자’라고 해야 할 터.나한테는 음악이, 음악이라도 좋은 음악이 호흡이다. 삶 자체다. 텔레비전은 아예 없기도 하려니와 볼 일도 거의 없다. 라디오가 이렇듯 고마운 존재일 수가!
옛날에 어느 서당(書堂) 훈장이 학동(學童)들한테, 깜깜한 방을 가득 채울 수 있는 걸 가져오라고 숙제를 내었다지 않던가. 그러자 어느 학동이 한 자루의 양초를 가져와서 불을 밝힘으로써훈장으로부터 크게 칭찬을 받았다지 않던가. 촛불도 그러하지만, 음악도 그러하다는 것을. 음악은, 다들 너무도 잘 알지만, 여타 장르의 예술과 달리, 귀만 열려 있으면 감상할 수 있는 특장점을 지녔다. 그 작디작은 떨림판인 고막(鼓膜)만 성하면, 거의 공짜로, 언제 어디서든 감상할 수 있는 예술 장르 아닌가. 사실 나는 문학인이지만, 정작 타인의 문학작품을 거의 읽어오지 않았다. 정확히 말해, 내가 끝까지 정성들여 읽은 책은 달랑‘생떽쥐베리’의 <어린왕자> 뿐임을 누차 내 신실한 애독자들께 고백하였다. 그것도 성인이 다 되어서야 읽었을 따름이다. 대신, 나의 음악듣기는 유년시절부터 환갑 나이에 이른 지금까지 주욱 이어왔다. 내가 생각하기에, 아무래도 그 많은 예술 장르 가운데에서 음악이 으뜸이 아닐까 하고서. 작곡가는 오선지에다 음표를 그려두었지만, 그것은 엄밀히 말해 무형(無形)이다. 그러나 그 악보를 기초로 하여 연주자에 따라, 연주하는 악기(성악까지 포함해서)에 따라 천 갈래 만 갈래로 느낌을 달리 준다는 것을. 그러기에 음악인들은 ‘연주한다’는 말 대신 ‘해석한다’ 또는 ‘재해석한다’는 말을 즐겨 쓰는지도 모를 일.
여기서 글쓰기 잠시 멈춤. 농막 밖 닭장에 설치해둔 라디오에서 ‘전기현의 세상의 모든 음악’재방송(01시 ~02시)이 막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의 감칠맛 나는 ‘오프닝 멘트’를 들어야겠기에.
다시 내 이야기 이어간다. 나는 작가이지만, 내가 듣는 아름다운 음악을, 그 누구한테 전해주고픈 열정이 더 강한지도 모른다. 달리 말해, 나는 아름다운 음악을 전하고자 ‘글’이라는 방법을, ‘수필’이라는 방식을 취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정녕, 음악은 예술의 꽃이다.
오죽했으면, 위에서도 이미 밝혔지만, 이러한 묘비명을 생각하겠는가.
‘세상의 모든 음악만을 내 무덤가에 내내 틀어주오. 하더라도, 무거운 ‘레퀴엠’ 따위는 싫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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