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신작

생업은 종교만치나

윤근택 2018. 7. 25. 01:44

 


                                   생업은 종교만치나

 

                                 윤근택(수필작가/ 문장치료사/ 수필평론가/설치미술가)

 

   아파트 생활을 하는 내 신실한 애독자들께서도 종종 보았겠지만, 이사를 하는 동안 자칫 긁힐세라, 엘리베이터 내벽을 보호재로 잠정적으로 덧씌우는 예가 있다. 보호덮개를 두고, 아파트 경비원들인 우리는 보양재라고 부른다. 보양재라... 살펴본즉, 건설 용어로 보양(保養)’콘크리트나 모르타르 따위를 잘 보전하여 굳힘을 뜻한다.

   내가 아파트 신축공사장에서 잠시잠깐 막노동을 한 적도 있는데, 그때도 날마다 그 보양재를 대했다. 그러다가 최근 5년여 여러 아파트에서 경비원으로 두루 지내게 되면서, 그 보양재 때문에 곤욕을 치른 일도 있다. 아파트마다 그곳 나름의 법이(?) 있어서, 이사하는 세대에 특수한 재질의 보양재를 유상(有償)으로 빌려주는 예도 있었다. 심지어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여 이사하는 세대에 전기료를 물리는 아파트도 있었다. 그 보양재를 설치하고 철거하는 일도 경비원들의 몫이었으니... .

   달포 전 나는 1,213세대씩이나 되는 신축 아파트에 경비원으로 취업해있다. 새로 지은 아파트에 연일 입주자들이 이사를 온다. 자연 이 아파트의 엘리베이터 내벽은 프라이우드(합판) 등으로 보양이 되어 있다. 이를테면, 엘리베이터는 아직 제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미개봉 상태다. 이미 입주한 세대들 가운데에서 성미가 급한 입주자들은 배려심 없이, 그 보양재를 곧바로 철거해줄 것을 관리사무실 쪽에다 요구해서 불가피하게 보양재 철거를 시작했다는데... . 앞으로는 나를 포함한 경비원들은 엘리베이터 긁힘도 감시해야 할 지경이다.

   명색이 수필작가인 내가, 자기 업무와 관련된 보양재 넋두리로 끝낼성싶은가. 나는 이 아파트의 엘리베이터를 탈 때마다 혼잣말을 하게 된다는 거 아닌가.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작품이 또 있을까? 세상에 이처럼 종교만치나 거룩한 게 있을까?’

   도대체 무엇을 보곤 하기에 이런 혼잣말을 하냐고? 바로 각양각색으로 다채롭게 적힌 홍보문과 거기 곁들여진 전화번호들, 그리고 온갖 전단지들 몇 가지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 신속배달 중화요리. 요 앞. 전화 010-2877-XXXX ’, ‘구경하는 집 112XXX’, ‘ 학사 태권도 ’... ‘중문, 눈줄 깔끔하게 시공’, ‘인터넷 + 휴대전화 + 텔레비전 40만원 지원’. 사실 내 신실한 애독자들께서도 종종 엘리베이터 보양재에 거의 개발새발 환칠을 한 듯 적힌 홍보물을 보실 터. 더러는 받침도 틀린 그 홍보물들. 진실로 그것들이야말로 살아있는 예술작품이더라는 거. 나아가서, 생업은 종교만치나 거룩하다는 것을. 나는 그 홍보물을 볼 적마다 참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이들의 참모습을 느끼곤 한다.

   여담이다. ‘마케팅학(-) 개론에서는 광고홍보를 구분한다. 유료인 것은 광고,무료인 것은 홍보라고 한다. 엘리베이터 보양재를 다채롭게 장식한 그들은 유료인 광고 대신 무료인 홍보를 택한 이들이다. 보양재가 일제히 철거되면, 그들은 전단지를 만들어 들고 와서 지정된 게시판에 1주일 정도 게시해 주십사 하며 적정 광고료를 내겠지만... .

   위에서 나는 보양재에 개발새발 환칠하다시피 한 것들을 살아있는 예술작품이라고 한 바 있다. 다시 말하거니와 그것들은 살아있는 예술작품이다. 예술작품이되, 혼자서 만든 예술작품이 아니다. 수많은 이들이 불꽃 튀듯 경쟁적으로 칠한, 역할분담한(?) 작품이다. 그것이야말로 콜라보레이션(collaboration)’이요, ‘옴니버스(omnibus)’, ‘하모니. 그러한 점에서, 내가 적은 농부 수필가가 적는 미술 이야기(19)’의 주인공,‘장 미쉘 바스키아 (Jean Michel Basquiat,1960~1988, 미국)’의 작품 세계를 훌쩍 뛰어넘는다고 감히 말하고프다. 위 나의 글에는 도시의 벽에다 낙서를 해대던 화가라는 부제(副題)까지 붙어 있다. 부제가 보여주듯, 그는 낙서화 또는 아동화를 그렸던 이다. 혼자서 작업했던 그와 달리, 엘리베이터 보양재에 작업한 이들은 공동작업을 하였으되, 아주 치열하게 경쟁하여 공동작업을 하였다. 그러한 점에서도 바스키아의 작품을 능가한다고 힘주어 말하고프다.

   시나브로 내가 근무하는 이 아파트의 그 많은 엘리베이터의 보양재도 철거될 테지. 그러면 그 많은 예술가들은 또 다시 신축 아파트로 몰려갈 테지. 그들은 거기서 또다시 열정적으로, 자기 온 생애를 담은 낙서화를 그리게 될 테지.

   끝으로, 나는 그들을 위해 기도드린다.

  ‘, 하느님, 그들에게 은총 내려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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