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신작

윤 수필가, 오솔길을 걷다

윤근택 2018. 9. 15. 21:54


                              윤 수필가, 오솔길을 걷다

 

                                     

                                                     윤근택(수필작가/ 문장치료사/ 수필평론가/설치미술가)

 

   격일제 24시간 아파트 경비원이기도 하며 농부이기도 한 나. 마침 창밖에 가을비는 내리고,비번이며, 바쁜 농사일도 한숨 돌렸고 하여 짬을 내어 낮잠을 즐겼다. 사실 밀렸던 피로를, 그렇듯 긴 잠으로 몰아 자고나면, 몸과 마음이 가뜬해진다. 거기에 더해, 오늘은 초저녁잠도 맛있게 자며 꿈까지 꾸었다. 그러한데 오늘은 넘치게(?) 잔 게 탈이다. 깨어나니, 벽시계는 여태 저녁 여덟 시. 날이 밝아오자면 아직 까마득하기만 한데... . 평소와 달리, 막상 머릿속에 간직한 새로운 글감도 없고... .

   산속 외딴 농막. 외등(外燈)을 켜고, 깜장고무신을 신고, 손전등을 켜 들고, ‘심플 클래식(Simple classic)’담배에 불을 댕겨 물고, 밖에 나선다. 들깨밭 사이로 난, 개울가 농로(農路)까지 진입로. 숫제 오솔길이다. 내 몸 하나만 지나가도 될 만치 좁게 길을 내고, 나머지는 들깨며 옥수수며 팥이며 고추며 온갖 작물을 해마다 번갈아 빼곡 심기에 숲속 오솔길을 방불케 한다. 참말로, 농장 둔덕에 자리한 농막과 농로까지 100여 미터는 오솔길이다.

   ‘그래, 오솔길, 오솔길, 오솔길... 오솔길!’

   나는 아침저녁으로 늘 그 길을 걸었음에도 왜 여태 깨닫지 못했을까. 그러다가 마치 몽유병 환자처럼 깜깜한 이 밤에 손전등을 켜들고 걷다가 비로소 오솔길임을 되짚게 되었으니... .

   참말로, 나는 그 누구 못지않게 오솔길을, 그것도 무려 15여 년째 걷고 있는 셈이다. ‘다믄한 포기라도 작물을 더 심고자, 좁히고 좁혀 가르마로 만든 오솔길. 나는 이 오솔길을 걷는 동안, 열병식(閱兵式)하듯 늘어선 옥수수의 환대도 받아왔거늘... . 해서, 나는, 농부인 나는, 저 프랑스의 소설가 겸 시인 겸 극작가 겸 문예평론가였던 레 미 드 구르몽(Remy de Gourmont)’보다 오솔길의 참맛을 더 느껴왔던 셈이다. 그는 낙엽이란 시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시몬, 나무 잎새 져버린 숲으로 가자.

     낙엽은 이끼와 돌과 오솔길을 덮고 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하략)

 

    한편, 나는, 농부인 나는, 저 미국의 시인이었던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보다 오솔길의 참맛을 더 느껴왔던 셈이다. 그는 가지않은 길이란 시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상략)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면서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오솔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이 호젓하기만 산속 농막. 돌이켜본즉, 내가 60여 년 걸어온 길도 오솔길이었으며, 내가 앞으로 걸어갈 길도 오솔길이어야겠다. 수필문학가로 30여 년 걸어온 길도 여축없이 오솔길이었으며, 앞으로 걸어갈 길도 오롯이 오솔길이어야겠다. 숱한 불면의 시간들, 전등을 밝힌 채 의자에 꼿꼿 앉아 키보드를 두드릴 수밖에 없는 나. 어느새 돋보기까지 끼고서, 운명으로 여기며 수필이란 외길을 홀로 걷는 나.

  ‘오솔길, 오솔길... 오솔길, 오솔길!’

    자꾸자꾸 부르다가 보면, 눈물이 핑돌 만큼 외로워진다.

     오솔길, 사전적 풀이는 이렇다.

  ‘오솔-’‘-의 합성어다. 여기서 말하는 오솔-’오솔하다(사방이 무서울 만큼 고요하고 슬쓸하다.)’의 어근(語根). 오솔의 어원(語源)외솔(외따로 서 있는 소나무)’이면 또 어떠랴.

    정말로, 오솔길을 홀로 걸어갈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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