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신작

지네 소동

윤근택 2014. 4. 23. 22:46

            

           지네 소동     

   

 

 윤요셉 (수필가/수필평론가)


 

격일제로 이 연수원 사감실에 근무한다. 나는 평소 버릇대로 교대시간인 일곱 시 반보다 30여 분 미리 왔다. 우리는 늘 A4용지에 빼곡 적은 특기사항 내지 인계인수사항을 함께 읽으면서 맞교대를 하게 된다. 아주 경미한 사항일지라도 우리 둘은 그렇듯 매끈하게 주고 받는 편이다. 거기다가 덧붙여, 지난 번 근무자한테 수고했노라고 인사말을 빠뜨리지 않는다. 그리고 헤어질 때는 손바닥에 불이 날 정도로 하이 파이브를 하곤 한다.

오늘도 나는 으레 그 말을 하였다.

나의 파트너님, 지난 밤 별 일 없었어요?

그랬더니, 나의 파트너는 평소와 달리, 큰 일이 있었노라고 혼쭐이 났다고 답했다. 순간,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내가 무슨 실수라도 했던 것은 아닐까 하고서. 그러나 그의 이야기는 의외였다. 어젯밤 새벽 1시 가량 되었는데, 숙직실에서 곤히 잠들었던 그는 전화벨소리에 잠을 깼단다. 기숙사 213호에 투숙중인 여성 연수생이 무서운 벌레가 나타났다고 건 전화였단다. 황급히 올라가보니, 옷장과 벽 사이에서 꽤 큰 지네가 기어 나왔고, 간단히 잡아 죽일 줄로 알고 어설프게 다루다가 그 놈이 숨어버린 통에 혼쭐이 났단다. 더군다나 잠에 취해 있었기에 그의 말마따나 간단히 처치하지 못했을 법하다. 동료끼리 2인이 투숙하여 그 늦은 시간에 치킨 안주로 맥주를 먹고 마시던 여성 연수생들. 그들은 기숙사가 떠나갈 듯 비명을 질러댔고 . 이 연수원이 산 자락에 자리한 터라 벌레들이 자주 출현한다고는 들었지만, 방충망 등 시설이 훌륭한 곳에 지네가 그렇듯 나타났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실제로 지네가 자주 나타난다고 한다. 심지어, 들고양이조차도 몰래 들어와 소동을 피운 사례도 있다고 한다. 사실 짚이는 게 영 없지는 않다. 연수생들은 자기네 방에서 외부로부터 치킨을 주문하여 먹는 예가 많다. 요즘 젊은이들은 어찌 그리 닭고기를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그 방에 지네가 출현했던 것은, 그 여성 연수생들이 들여와 먹던 닭고기 내음 때문이었던 셈이다.

   이렇게 적고 보니, 서두가 너무 길어졌다. 이제부터 가속도를 붙여야겠다. 다들 잘 아시는 바, 닭과 지네는 상극(相剋) 관계다. 살아서는 서로 앙숙이다. 신경통이나 관절염 등에 약으로 쓰려고 절지동물(節肢動物)인 지네를 잡을라치면, 항아리에 닭뼈를 담아 함정인양 땅에다 묻어두면 된다고 하였다. 그러면 와글와글 그 함정에 빠져든다고 하였다. , 한의학에서 인간의 마디인 신경과 관절이 탈났을 적에 지네의 그 마디 많음[節肢]을 응용했다는 것도 놀랍지 아니 한가. , 마디는 마디로 낫게 한다.는 원리인 셈이다. 하여간, 지네를 일망타진하려면, 닭고기를 그렇게 활용하면 된다. 지네는 닭의 시신(屍身)을 그렇게 공격하는 셈이다. 지네를 퇴치하려면, 닭을 풀어놓으면 된다. 이들 두 동물은 살아생전에는 상극이지만, 둘 다 죽어 한 그릇에 담기면, 서로 보약[相補; 相補藥]이 된다고 한다. 닭과 지네 가운데 강자(强者)는 따로 없다. 서로 물고 물리는, 그야말로 치킨 게임(chickin game)이다. 둘은 천적(天敵) 관계다.

  문득, 역학(易學)에서 말하는 상극(相剋)과 상생(相生)의 개념이, 가위·바위· 게임과 아주 닮음꼴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가위, 바위, 셋 가운데 절대강자는 없다. 이기는 쪽으로 생각하면 이렇다. 가위는 보(보자기)를 자를 수 있고, 바위는 가위를 부술 수 있고, 보는 바위를 감싸서 맥을 못 추고 한다. 지는 쪽으로 생각하면 이렇다. 가위는 바위에 부셔지고, 바위는 보에 싸여 맥을 못 추고, 보는 가위에 잘리게 된다. 그러나 이들 셋이 공존하면, 즉 함께 나오면 이기는 자()도 지는 자도 없다. 한편,역학에서 말하는 오행(五行), 즉 토()·()·()·()·()의 상호관계는 이렇다고 한다. 상극에 관한 사항이다. []는 불[]를 끄고,불은 쇠붙이[]을 녹이고, 쇠붙이(도끼나 톱이나 낫)는 나무를 베어내고, 나무[]는 흙[]의 양분을 섭취하여 자라고, 흙은 물을 막아댄다[堤防]. 물론 이들 오행 가운데도 절대강자는 없는 셈이다. 상생에 관한 사항이다. 나무는 불을 피우고, 불은 흙()을 만들어내고, (광산? 도가니?)은 쇠붙이를 생산해 내고, 쇠붙이는 녹아 물이 된다. 사실 파고들면 그리 간단한 게 아닐 테지만, 그 원리라는 게 위와 같다. 대체로, 우리는 상극보다는 상생을 중시한다. 말 그대로 둘 다 잘 먹고 잘 살자는, 평화공존 내지 동존공생(同存共生) 의미로 곧잘 쓰곤 한다. 대표적인 상생의 부부관계를 궁합(宮合)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그러한 궁합의 외연(外延)이 음식궁합, 약 궁합 등으로 넓어진 것도 사실이다. 위에서 소개한 닭과 지네의 경우, 그들 양자(兩者)는 살아서는 상극이지만, 죽어서는(함께 끓으면) 보약이 된다는 거. 음식궁합으로 따지면, 이들 둘은 궁합이 잘 맞는 셈이다. 놀랍게도, 닭고기는 인삼과도 궁합이 그렇게 잘 맞는다고 한다. 우리가 흔히 삼계탕이라고 부르는 그 요리를 한번 생각해 보시라. 사실 내가 알기로는, 닭고기와 인삼은 둘 다 열을 내는 식품이라, 열이 많은 이들한테는 해롭다고 들었는데, 그것들이 어우러져 복 더위를 달래는 식품이 된다니! 그것이야말로 이열치열(以熱治熱)은 아닐는지? 기왕지사 삼계탕 이야기마저 꺼냈으니,하나 더 짚고 넘어가자. 삼계탕, 주객이 전도된 잘못된 어휘라고 한다. 계삼탕이 올바른 표현이라는 것이다. 닭이 주재료이며 인삼이 보완재(補完財;補完材料)이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이는 상당히 논리적인 주장이다. 어쨌거나, 닭고기와 인삼을 함께 끓이면, 시너지(synergy)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아냈을까? 그 발견도참으로 위대한 발견이다. 그건 또 그렇다 치자. 닭고기는, 돼지고기와 마찬가지로 약궁합에는 맞지 않는 식품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한의사들은 탕제를 건네주며 예외 없이 닭고기와 돼지고기를 피하라고 이르곤 하였다. 닭고기는 열을 내는 식품이라서 그렇다고 하였다.

  마음 같아서는, 서로 궁합이 맞는 음식재료와 서로 궁합이 아니 맞는 음식재료 등에 관해서도 일람표 형태로 적고 싶으나, 독자님들께서도 웬만큼은 아실 테니 생략키로 한다. 대신, 어젯밤 기겁을 하고 아우성 쳤을 두 여성 연수생들을 다시 떠올린다. 그들은 혹시라도 연수소감 설문지에다 지네가 나타나 놀라게 할만치 기숙사 관리를 소홀히 하고 있었음. 등으로 적을까 그게 두렵다. 그러면 온 식구가 매달려 지네 퇴치를 해야 될 테니 한걱정이다. 사실 그 늦은 시간에 닭고기를 먹지 않았더라면, 그런 소동도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 단잠을 깨서 고생했던 나의 파트너도 생각 아니 할 수가 없다. 신입 사감인 나더러 묘책을 내어 놓으라면, 세 개의 안()을 제시하고 말리라. 1. 항아리를 사다가 기숙사 둘레에다 묻고, 연수생들이 먹다 남긴 닭고기를 모조리 그 항아리에 넣자. 2. 기숙사 뒷산에 닭을 방사(放飼)하자. 3. 연수생들의 닭고기 반입을 금지하자. 사실 그렇게 공식적으로, 공개적으로 행하지 않더라도 방법은 있다. 내 파트너를 꼬드겨 기숙사 둘레 으슥한 곳에다 항아리를 몰래 묻고, 연수생들이 쓰레기통에 버린 닭고기를 수시로 담아두면 될 테니까. 그러면 지네잡이로 짭짤한 부수입도 거둘 수 있을 것이고, 신경통으로 혹은 관절염으로 고생한다는 애독자가 계시면, 그분들께 잘 말린 지네 사체(死體)를 선물로 부쳐드릴 수도 있을 것만 같다.

  주제의식이 거의 없는 이러한 글도 수필이라고 부를 수 있을는지는 모르겠으나, 이 또한 내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글이라 여겨 본다.

 

 

 

* 이 글은 한국디지털도서관, 바로가기 한국디지털도서관 윤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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