섣부른 짓 이후
섣부른 짓 이후
윤근택(수필가/문장치료사/수필평론가)
가끔씩 공연한 일을 저지른 다음, 이내 후회하는 일이 있다. 이번에도 뒷맛이 영 개운치 않다. 오늘 내가 어느 수필전문잡지사 편집부에서 받은 한 통의 e메일. 자기네는 신작(新作)이어야 하며, 청탁한 원고만을 싣게 되며, 나의 정기구독 기간은 2년 전에 만료되었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제법 정중한 문투(文套)였다. 나의 신실한 독자님들께서는 다음 몇 가지 사항을 미루어 짐작하실 수도 있겠다.
자존심 강한 수필작가 윤근택은 며칠 전 우송된 그 수필전문지를 받았고, 몇 해 전 마지못해 1년치 네 권(계간지인 까닭임.)을 정기구독하는 조건으로 작품 한 편을 발표하였고, 구독기간이 만료되었음에도 무슨 영문인지 또 책이 왔고, 기왕지사 그렇게 된 거 e메일로 본인의 안부를 곁들여 종이매체 미발표작 두어 편을 부쳤고, 지면(紙面)이 허락되면 실어주었으면 좋겠다는 말도 덧붙였으리라.
자, 우리끼리 터놓고 이야기하자. 어느 문학잡지든 속간(續刊)이 힘들다는 거 너무도 잘 안다. 매번 소요되는 발행비도 만만찮을 것이다. 대개,편집에 참여하는 이들은 그 잡지를 통해 데뷔한 수필작가들이다. 주로, 발행인은 문학강좌를 맡은 분들이고, 이 분들은 제자들을 육성하여 자신의 잡지로 문단에 데뷔시킨다. ‘신인상’ 등으로 데뷔하는 이는, 지인(知人)들에게 자신의 데뷔작이 실린 책을 증정코자 제법 많은 부수의 모지(母誌)를 맡아주게 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크게 문제삼을 것은 못 된다. 내가 그러한 과정을 일절 거치지 않았다 하여 남을 헐뜯다시피 말할 수는 없다. 어쨌거나,거듭된 신인 발굴 이후가 문제가 된다. 자기네 잡지로 출발한 작가들의 수효가 차츰 늘어나다 보니까, 그들의 글조차도 다 못 실어주는 형편이 된다. 자연, 양산(量産)된 수필작가들이 웬만해서는 ‘모지(母誌)’ 아닌 잡지에 발표할 기회가 적어지게 된다. 이러한 문제로 인해, 대부분의 수필잡지는 ‘동인지’ 형태로 전락하게 되었다. ‘끼리끼리 문학’이란 자조(自嘲) 섞인 말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인 듯하다. 그리고 ‘아무개 문학회’라는 것도 ‘계취(契聚)’ 형태가 된다. 하기야, 적으나마 원고료를 주는 잡지도 있고, 원고료 대신 두어 권의 책을 부쳐주는 잡지사도 있긴 하다. 다만, 내가 겪어본 바 대체로 이러한 시스템이더라는 것이다.
하여간, 나는 싱겁기 그지없는 짓을 하고 말았다. 그것도 오래간만에. 곧 아무런 일도 없었던 듯이 지내겠지만, 여러 문학회가 ‘계취’ 같더라는 것만은 다시 더듬고 넘어가야겠다. ‘호랑이도 자식 난 골에 두남둔다.’고 하였는데, 하물며 인간에서랴. 참, 여기서 ‘두남둔다’는 말은 누구를 두둔하고 편든다는 뜻이다. 어차피 팔은 안쪽으로 굽게 마련이다. 동인(同人) 내지 동문(同門)끼리야 ‘아무개의 문학세계’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서로 추켜주는 일을 크게 탓할 수 있겠나. 하지만, 객관적 잣대로 찬찬히 들여다 보면, ‘전혀 아니올시다!’ 가 의외로 많은 게 문제다. 나아가서, 배타적(排他的)인, 일종의 ‘패거리’라면 문제는 더욱 커진다. 본디 많은 생명체는 ‘떼짓기’를 좋아하는 본성을 지닌 것만은 분명하다. ‘군집(群集)’, ‘군서(群棲)’, ‘군락(群落)’, ‘촌락(村落)’ 등의 낱말은 그래서 나온 것이다. 우스꽝스런 이야기 한 자락을 하고 넘어가자. 내 작은 딸 미카엘라가 아주 어렸을 적에 자기 언니한테 곧잘 하던 말.
“언니, 니는 촌년이잖아? 이래 봬도 나는 도시에서 태어났다고!”
대체, 무슨 말이냐고? 녀석은 자기가 태어난 곳은 대구의 어느 대학병원 분만실이고, 자기 언니가 태어난 곳은 안동의 어느 종합병원 분만실임을 그렇게 말하곤 했던 것이다. 맹랑한 것 같으니라고! 그런 논리라면, 요즘 젊은이 대개가 그들 고향이 모텔이거나 제주도겠네? 하지만, 나는 녀석의 그 말을 종종 떠올려 본다. 그 말이 그냥 웃자고 한 말 같지가 않다는 것을. 떨친다 떨친다 하면서도 우리는 지연(地緣)이나 학연(學緣)의 굴레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이는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오죽했으면 <<書經>>의 <洪範條>에서조차 이런 구절을 적어두었을까?
‘無偏無黨王道蕩蕩 無黨無偏王道平平(무편무당왕도탕탕 무당무편왕도평평(군왕은 어느 한 편에 치우치지도 말고 무리도 만들지 말라는 뜻임.)’
후일 조선의 영조(英祖)는 이 멋진 구절에서 따와서 ‘탕평책(蕩平策)’을 펼쳤다.
꼭히 그렇게까지 거창하지는 않지만, 나는 기회 있을 적마다 후진 수필작가들 또는 수필작가 지망생들한테 이르곤 한다. 무소뿔처럼 혼자서 가라고. 그 무엇보다도, 기웃거려 남의 문체(文體)나 문투(文套)를 흉내내지 말라고 당부하는 편이다. 그러했던 내가 어찌 망령되이 그런 식으로 그 잡지사에다 e메일과 더불어 원고를 부쳤던고? 물론, ‘지면이 허락되면… .’ 이란 겸양(謙讓)을 가장한 자존심을 나타내기는 했더라도 그렇지. 그분들 편집진들이 얼마나 민망스러웠을까? 나름대로 고충도 많을 텐데… . 하오니, 나의 신실한 후배 수필가들께서는 나와 같은 어리석음을 범하지 마시길… . 굳이, 종이매체가 아니더라도 인터넷 등 다양한 매체가 있어, 읽는 분은 다 읽게 되어 있다. 이 점 안심해도 좋다. 오히려 ‘조회수’ 등으로 독자들의 반응도 실시간대로 알 수 있으니. 끝으로, 일전에 독자님들께 부친 신작(新作), ‘ ‘킬리만자로의 표범’에 부쳐’에도 문학인의 올바른 자세에 관한 힌트가 적혀 있으니 다시 읽으시어 새겨보면 좋겠다.
* 이 글은 제 전자도서관 (한국디지털도서관 윤근택 서재)에서다시 불러 왔습니다.
이젠 독자님들을 위해 다원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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