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신작

나무난로 앞에서 (71)

윤근택 2019. 12. 6. 02:03

       


                                           나무난로 앞에서 

                            -일흔 한 번째, 일흔 두 번째 이야기-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71.

  지난번(연재물 70회째)에는 녀석과 노변담화(爐邊談話)를 이렇게 마무리했다.

  < (上略) 녀석은 도대체 누구 새끼인지 모르겠다. 해서, ‘植物動物이란 낱말이 지닌 뜻을 마저 들려준다.

  “(누군가가) 심어주어야 하기에 식물, 스스로 옮겨 갈 수 있기에 동물이라고 불렀을 뿐인 걸.”

  이 말을 듣던 녀석은 마치 차시예고(?)’라도 하듯 대꾸한다.

  “한아버지, 방금 누군가가 심어주어야 하기에 식물이라고 말했어. 누군가가는 누구누구야?”

  호기심 많은 외손주녀석은 이 할애비한테 이처럼 무궁무진한 글감과 영감(靈感)을 주고 있으니, 아니 이뻐할 수가 없다.

  이제 희나리 장작을 난로 깊숙 집어넣어도 되겠다. 불문을 닫자, 연기와 송진 내음도 가시었다.().>

   녀석이 캐묻는다.

  “한아버지, 지난번에 식물은 누군가가 심어주어야 하기에 식물이라고 말했어. 누군가가가 누구누구야?”

  마침 그 질문을 끝내자마자 녀석은 대봉 홍시감을 마치 주스를 빨 듯 후루룩빨고서 감씨를 허공에 내뱉는다.

  “으뜸아, 우선 저기 중동의 이스라엘인들 이야기부터 들려주어야겠구나. 이슬라엘인들이 자녀들 교육에 쓴다는 그 경전 아닌 경전, 탈무드. 거기에는 이러한 가르침도 적혀 있었어. 과일을 먹되, 그 씨앗을 땅에다 고이 묻어주라고. 그러면 후일 그들의 자녀들이 따 먹게 될 거라고 말이야.”

  그러자 녀석은 방금 전 자기가 감씨를 내뱉은 걸 이내 뉘우친다.

  나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은 요지로 이어진다. 우리네 인간들이 식물을 심어주는 예는 아주 작은 일부분일 따름이다. 식물의 씨앗들을 그야말로 산지사방(散之四方) 흩여, 후대(後代)가 번성케 하는 데에는 산새들의 공로가 대단하다. 그들 산새들은 달콤한 과육(果肉)을 먹고 채 소화되지 않은 씨앗을 배설함으로써 그 씨앗들은 싹을 틔우게 된다. 그때 씨앗과 함께 배설된 똥은 어린 싹의 좋은 밑거름이 된다. 새들의 조상과 식물의 조상들은 진즉에 어떤 약속이 되어 있었던 거 같다. 대개 씨앗의 겉껍질에는 파라핀 즉, 양초질이 발려 있어, 오줄없이 아무 때고 촉을 틔우는 일이 드물다. 씨앗들은 새들의 모이주머니에 머물렀다가 여러 경로를 거쳐 모래주머니에 이르면 모래와 비비어져 그 발아억제제인 파라핀 피막(皮膜)이 벗겨진다. 그리해야 발아가 되니... .

  누구 새끼인지 외손주녀석은 영리하기 이를 데 없다.

  “ 한아버지, 지난번에 한아버지랑 석쇠에 구워 소금장에 찍어먹었던 그 닭똥집이 바로 그런 일을 하는 거로구나. 완죤(완전) 놀라운 새들의 모래주머니!”

  나는 흥이 나서 녀석한테는 다소 과분하지만, ‘일찍 일어나는 새‘early bird’이야기를 넌지시 곁들인다.

  “으뜸아, 이빨이 없는 새들은 새벽부터 일어나 식물 씨앗을 쉼 없이 쫀다? 목 근처 모이주머니가 풍선처럼 부풀어질 때까지 말이야. 그런 다음 아주 서서히 그리고 조금씩 모래주머니로 내려보내 모래로 비비어 소화한다?”

  녀석은 새들과 씨앗들의 신비스런 약속에 감탄해 한다. 뿐만 아니다. ‘애들은 어른들의 아버지라더니, 이런 말까지 한다.

  “한아버지, 한아버지도 새들을 닮은 거 같애. 늘 일찍 일어나 그 가슴 속 주머니에다 글감을 챙겨넣곤 하니까 말이야. 그리고 한아버지도 어금니가 몇 개 빠졌으니 새들처럼 이빨이 없는 셈이고 말이야!”

  고놈 참으로 맹랑하다.

  “으뜸아, 퍼뜩 생각해 보았는데 말이야. 새들이 부리가 아닌 입술을 지녔고 이빨까지 지녔다면 일이 아주 틀어져버렸을 것 같애.”

  녀석은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 것 같더니, 이내 말을 한다.

  “한아버지, 으뜸이가 생각해 내었다? 새들이 우리처럼 이빨을 지녔더라면, 그 많은 씨앗들을 와삭와삭깨물어버렸을 테고, 그랬다면 그 많은 아가 과일나무들도 태어나지 못했을 것 같애.”

  역시 아이들은 어른들의 아버지임에 틀림없다.

  “으뜸아, 저 밖 뒷산 숲들을 한번 내다보렴. 저 산 속에 참나무들, 밤나무들, 잣나무들은 또누가 심었게?”

  녀석은 사람들이 심었을 거라고 추측한다.

  “ 으뜸아, 저 숲은 깜박 잊어버림의 산물(産物)이란다.”

  그러자 녀석이 이번에는 어리둥절해 한다.

  “ 저 숲을 가꾼 이들은 다람쥐들인 걸. 겨우내 다람쥐들은 이곳저곳 자기만 아는 땅속에다 겨울 양식으로 쓰려고 도토리 따위를 감춰두거든. 워낙 여러 곳에다 그렇게 저마다 묻어두고는 그만 그 자리를 깜박깜박 잊어버리고 말아. 그러면 그 자리가 습도와 온도가 적정한 곳이라, 도토리는 이때다!’하며 이내 싹을 틔워. ”

  이 이야기를 듣던 녀석의 눈이 반짝인다.

  “다람쥐들, ‘홧팅(파이팅)!’. 한아버지랑 나랑 가을마다 알밤을 줍게 해주는... . 다람쥐들은 으뜸 조림가(造林家)’! 산림청장 표창감!”

  이밖에도 식물을 심어주거나 자리를 옮겨주는 존재들이 많지만, 녀석한테 더는 들려주지 않아도 될 듯. 대신, 아름다운 저 뒷산 숲은 ‘(다람쥐들) 잊어버림의 산물임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참말로, ‘잊어버림이나 잃어버림이 다 나쁜 것만은 아닌 거 같다. 하기에, 이처럼 내가 늙어가는 걸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려 한다.

  조손(祖孫)은 또 다른 이야깃거리를 남겨둔 채 농막 안으로 자리를 옮긴다. 이 산마을에 어둠이 누구 말마따나 길손처럼 찾아들었기에.

  

 72.

  이번 이야기는 본인의 또 다른 작품, ‘절골 이야기(32) -윤노인 외손주와 놀다- ’가운데 ‘ 3. 쥐똥나무 가지로를 그대로 베껴온다.

  조손(祖孫)이 이번엔 나무난로 앞이 아닌 아궁이 앞에 나란히 쪼그리고 앉아 있다. 감자를 잿불에다 묻어 두었다. 내 손에는 쥐똥나무 가지를 들고 있다.

  “한아버지, 이번에는?”

  “, 잠자코 지켜보렴.”

  쥐똥나무는 ‘Y’ 모양으로 자라는 습성이 있다. 살아있는 쥐똥나무 ‘Y’가지를 잘라, 상단부 ‘V’‘U’ 모양이 되도록 노끈으로 묶어야 한다. 가늘면 가늘수록 탄력이 있어 좋다. 그러고는 불에 은근슬쩍 구우면 된다. 호드기를 틀 때처럼 껍질이 벗겨지고, ‘U’로 굳어진다. 새총가지로는 쥐똥나무만한 게 없다. 고무줄을 묶고, 가죽혁대를 잘라 약실(藥室)’을 붙인다. 녀석은 좋아서 어쩔 줄 모른다.

  이제, 녀석은 이 절골 덤불을 찾아, 온 데 달리리라. 참새, 굴뚝새, 비둘기온갖 새를 쫓으리라. 나는 돌멩이가 아닌, 색다른 실탄을 녀석의 호주머니에 잔뜩 넣어주고 싶다. 열매면 좋겠다. 콩알이며 팥알이며 돌복숭아씨며 자두씨며 매화씨며 모두를 골고루 넣어주고 싶다. 녀석이 새들을 놀래주는 동안, 이 골짝 벌판에 그것들이 떨어져 더러는 운 닿아 싹을 틔우겠지. 사실 탈무드의 가르침은 이와 다소 달랐다. 그들은 과일을 먹고 난 뒤 씨앗들을 함부로 버리지 말고, 땅에다 묻어주도록 가르치지 않던가. 녀석이 후일 애비에미 품으로 돌아가, 다 큰 다음 이곳에 들를 일도 있겠지. 그때쯤 온통 꽃동산이 되어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이 할애비는, 이 할애비는 청춘이었을 적에 새총을 쏘는 거라며 애인의 등 뒤에서 브래지어 끈을 찰싹찰싹잘도 당기곤 했단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네가 못들은 척 해다오. , 지나간 시절이여.

 

 

 

 

 

 

 

 

(다음 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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