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난로 앞에서(75)
나무난로 앞에서
-일흔 다섯 번째, 일흔 여섯 번째 이야기-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75.
나무난로 불은 활활 타고... . 맞은편 접의자에 앉은 외손주 녀석은 그 작은 손바닥을 연신 들여다보며 오늘따라 보챈다.
“한아버지, 이 오른 손 검지가 자꾸 아파.” 해서, 이 할애비는 녀석을 나의 의자 쪽으로 건너오라고 한다. 그런 다음 돋보기안경을 끼고 녀석의 손가락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작고 까만 가시가 박혀 있다. 아마도 어제 녀석과 함께 고무새총으로 참새를 잡겠다고 찔레덩굴을 헤집고 다니다가 찔레가시가 박힌 모양이다. 녀석한테 일러, 농막에서 손톱깎이와 ‘바느질 바늘’을 찾아오도록 한다. 녀석은 금세 그것들을 찾아 들고 왔다.
녀석의 검지 손가락에 박힌 가시를 뽑으려 한다.‘바느질 바늘’로 가시 박힌 살점 언저리를 조심스레 찌른 다음, 내 두 엄지손가락손톱으로 ‘자근자근’ 주무르자 그 까맣고 작은 가시의 끝이 드러난다. 이번에는 손톱깎이로 그 가시를 집어낸다. 사실 가시를 빼낼 적에는 손톱깎이가 아주 유용하다는 걸, 내 젊은 날 연인이었던 어느 여인이 가르쳐준 적 있다. 그리고 몇 해 전에야 내가 안 사실인데, 가시를 뽑는 데에는 ‘화살나무’의 재가 아주 유용하단다. 줄기에 화살 날개같이 생긴 게 달려 생긴 이름 화살나무. 그 화살나무의 줄기를 태워 재를 만든 다음, 그 재를 가시 박힌 살점 위에다 묻혀 두었다가 가시를 배면 쉬이 가시가 빠진다고 하였다. 해서, 화살나무를 ‘가시나무’라고도 부른단다. 화살촉이 또 다른 화살촉인 가시를 뽑는다?
“으뜸아, 당분간은 약간 아프겠지만, 곧 괜찮아질 거야. ”
녀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맞은편 자기 의자로 돌아가 앉으며 혼잣말처럼 한다.
“ 완죤(완전) 나쁜 가시! 왜 나무들 가운데에는 가시가 돋친 나무들도 있는 거야?”
아주 잘되었다. 이 할애비의 노변담화(爐邊談話)는 또 이어갈 수 있게 생겼다.
“으뜸아, 나무들 가운데에서 가시를 단 나무들은 말이야, 스스로를 보호하고자 해서... .”
녀석의 눈빛이 금세 달라진다.
해서, 나는 다음과 같은 요지로 그 진실을(?) 전해준다.
대개, 나무들은 외침(外侵)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자 가시를 단다. 이를 바꾸어 말하자면, 그것들 가시달린 나무들은 인간을 비롯한 동물들의 먹잇감 등으로 유용한 성분을 퍽이나 지녔다는 뜻이다. 두릅, 망개, 산초, 제피(계피), 엄나무, 가시오가피 등은 우리 몸에 좋다지 않은가.저 아랫녘 구순(九旬)의‘신호영감’내외분은 이 할애비한테 알려준 바 있다.
“윤 과장, 쏼쏼 끓는 이 가마솥에는 스무 종류 이상의 가시달린 나무들과 감초가 들어 있어.나는 해마다 한 두 차례씩 이렇게 약을 지어 먹어.”
참말로, 나무의 가시들은 유용한 성분을 지녔음이 분명하다.
내가 여기까지 이야기해주자 녀석은 고개를 끄덕인다.
“으뜸아, 놀랍지 않던? 네 손가락에 박힌 그 가시를 또 다른 가시인 바늘질바늘로 뽑았다는 거.”
녀석은 누구의 새끼인지, 총명하기 이를 데 없다.
“한아버지, 참 그렇네. 지난번에 으뜸이가 벌침에 쏘였을 적에는 벌꿀을 발라줬다?”
사실 우리네 삶은 응용이다. 깨달음이다. 가시로 또 다른 가시를 뽑는다는 거. 이야말로 ‘이이제이(以夷制夷)’다. 저 아랫녘 신호염감 내외분은 그걸 유사하게 실천하고 있다. 그 많은 종류의 나무가시들 ‘미량(微量)의 독(毒)’을 한데 모아, 이를 감초로 중화(中和) 내지 해독하여 한약으로 복용하고 계시지 않은가. 술꾼인 이 할애비가 복어탕을 즐겨 사 먹는 이치도 마찬가지다. 복어가 품고 있는 미량의 독이 또 다른 독인 술독을 잘 다스리게 되니까. 사실 복어탕에 들어가는 미나리의 음식궁합(?)도 놓칠 수가 없다. 미나리는 수채에서도 잘 자라나지 않던가. 미나리는 오염된 물을 섭취하되, 스스로 독을 녹이는 자정능력(自淨能力)을 지녔다는 이야기이니... . 여기까지는 녀석이 다소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로 이어졌으나, 하나만 더 깨우쳐주려 한다.
“으뜸아, 며칠 전에 네 손가락을 찔렀던 그 찔레가시도 지금처럼 겨울이 아닌 봄에 찔리면 더 아프다? 심지어, 곪기도 하는 걸? 왜 그렇다고 생각해?”
그러자 녀석은 이내 답한다.
“한아버지, 으뜸이는 금방 알겠다? 봄에는 찔레 햇순이 나오고 물이 ‘좍좍’ 오르니깐.”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나무난로 불기운도 사위어 간다. 조손(祖孫)은 농막 안으로 자리를 옮겨 이부자리를 깔아야겠다.
76.
일전에 시내 철물점에서 산 손작두. 한약방에서 쓰는 한약재 절단용 손작두다. 이 할애비도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이젠 어쩔 수 없이 건강에 신경을 더 써야하기에 그걸 장만했다. 우선 시험삼아 뒷동산에 심어둔 헛개나무 가지, 가시오가피가지, 벌나무 가지, 구지뽕나무 가지 등속을 베어와서 그 작두로 토막토막 자르고 있다.
호기심 많은 외손주녀석이 묻는다.
“한아버지, 지금 무얼 하려고?”
녀석한테 잠자코 기다려보라고 한다. 그리고 그 나무 절편(切片)들을 양은주전자에 넣고 물을 가득 채운 후 나무난로 뚜껑 위에 올려놓는다.
이윽고, 물은 ‘쏼쏼’ 끓고, 양은주전자 뚜껑에서는 ‘꽤!’소리와 함께 수증기가 내뿜는다.
“한아버지, 주전자에서 증기기차 기적소리가 나. 으뜸이가 열차를 타고 가면 ... .”
녀석은 제 에미와 애비가 문득 그리운가 보다.
그렇게 끓인 차[茶]를 조손이 나눠 마시며 내 노변담화(爐邊談話)는 이어진다.
“으뜸아, 우리 몸에 좋은 나무들 가운데에는 ‘-자(子)’로 끝나는 나무 이름들도 많다? 네가 아는 대로 대어보렴.”
그러자 녀석은 “자두!”한다. 녀석은 이 할애비네 ‘만돌이 농장’에 많이 심겨진 몇 종류의 ‘자두’만 떠오르는 모양이다.
이에 나는 지금 우리가 마시는 차에 들어간 나무에도 ‘ - 자’로 끝나는 나무가 하나 있다고 일러준다. 바로 헛개나무가 ‘지구자(枳椇子)’란 별칭을 지녔다고. 이밖에도 오미자, 구기자, 복분자 등이 있고, 이들에 쓰인 ‘-자’는 열매·씨·알 등을 일컫는 말이라고. 대체적으로, 그런 이름을 지닌 나무의 열매들은 몸에 이롭다고 덧붙인다.
맹랑한 녀석은, ‘몸에 이롭다’는 말에 색달리 반응한다.
“한아버지, 그라뭐(그러면) ‘순자(順子)’도 한아버지 몸에 이롭겠네?”
녀석은 자기 외할머니이자 내 아내인 ‘차순자(車順子)’를 그렇게 빗대서 하는 말이다.
“그럼! 어디 순자뿐이겠어? 네 왕고모님들 이름들도 거의 ‘-자’자로 되어 있잖니?”
총기어린 녀석은 자기 왕고모들 이름도 차례차례 읊어댄다.
“봉자·춘자·말자.”
이 할애비가 느끼기에 나의 손위누이들은 나무랄 데 없이 좋은 여인들이었고 좋은 여인들이다.
녀석과 ‘-자’에 관한 이야기는 이 즈음에서 접고, 방금 전 우리가 달여 먹은 차 가운데에서 ‘지구자’란 이칭(異稱)을 지닌 헛개나무로 화제를 바꾸게 된다. 나는 녀석한테 다음과 같은 요지로 일러준다.
헛개나무 즉 지구자 열매는 갈색이 돌며 굵은 콩알만 한 크기로 열리는데, 이를 받치고 있는 열매자루가 멋대로 부풀어 서로 연결되어 참으로 괴상하게 생겼다. 열매가 익을 무렵이면 열매자루는 새끼손가락 굵기 정도로 굵어지면서 울퉁불퉁하고 꾸불꾸불한 갈색의 꽈배기 모양으로 서로 뒤엉켜 있다. 동그란 열매는 어디에 숨었는지 찾기 어렵고, 어찌 보면 징그럽기까지 하며, 심지어 닭발처럼 생겼다. ‘지구자’라는 생약명으로 알려진 이 열매는 비록 모양은 형편없이 못생겼지만 은은한 향기에 달콤하기까지 하며, 그 속에는 간에 좋은 성분을 함유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헛개나무가 유명해진 이유다.
중국 명나라 때 이시진이 쓴 《본초강목》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헛개나무는 가을이 되면 열매 대궁이 비대해지면서 산호모양으로 되는데, 이것을 약으로 쓰며 맛이 달아서 사람들이 먹는다. 열매는 숙취를 덜게 하고 간을 보호해주는 약효가 있다. 나무 조각을 술독에 넣으면 술이 물로 된다. 또 헛개나무를 기둥으로 쓰면 그 집에서는 술을 빚을 수 없다.’
이런 부연설명을 듣자, 녀석이 기어이 한마디 한다.
“한아버지, 근데(그런데) 맨날맨날 농주(農酒)라며 막걸리 부어마시는 한아버지한테는 헛개나무가 ‘짱’이네?”
그러면서 녀석은 평소 흉물스럽게만 여기던 그 헛개나무의 열매 즉 지구자를, 뒷산 헛개나무 아래에서 이 할애비를 위해 보이는 족족 주워오겠다고 한다.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조손은 여러 나무의 가지 조각으로 우려낸 차를 또 따라 마신다.
(다음 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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