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신작

나는 집 부자

윤근택 2014. 4. 27. 11:29

 

                     

           나는 집 부자    

   

 

 윤요셉 (수필가/수필평론가)


 

   일요일 새벽이다. 나는 다시 승용차를 몰아 이곳 연수원 사감실에 왔고, 맞교대자 장 사감을 배웅하고 내 자리에 정좌(靜坐)한다. 이 연수원도 주 5일 근무제에 동참한 까닭에, 토요일과 일요일 등에는 투숙중인 연수생이 한 명도 없다. 그러기에 오늘 하루는 62개나 되는 방을 갖춘 이 기숙사가 오롯이 나만의 휴식처가 되었다. 휴식처라도 그냥 휴식처가 아니다. 컴퓨터가 있고, 뉴에이지 음악이 흐르고, 산새들이 날아와 정원의 나뭇가지에서 재잘대고,숙직실 온돌이 덥혀져 있고 . 한마디로, 최적의 창작 환경이다.

   문득, 내가 이 경산시내에서도 꽤나 손꼽히는 부자라는 사실을 깨닫는다.노숙자나, 무숙자(無宿者), 집 없는 천사 등과 달리, 나는 집을 소유하고 있는데, 그 집이 여러 채씩이나 된다. 하나하나 소개하기로 한다. 이곳 경산시내에서 제일 좋다는 아파트 단지 대림 e편한 세상 106동 ㅇㅇㅇㅇ호는 세 여성 즉,아내와 큰딸과 작은딸이 각자 하나씩 방을 넓게 쓰고 있다. 바로 그 아파트 곁에 큰딸은 Hands coffee라는 간판의 커피전문점을 열고 있다. 그리고 아내는 나의 명퇴금으로 경산시내 옥산2지구 신화평광 아파트 한 채를 사서 남한테 전세 놓아 두고 있다. 여기까지만 집계해도 집이 세 채씩이나 되는 셈이다. 경산시 남천면 송백1 1152번지에 가면, 여러 채의 집들이 있다. 내가 기거하는 농막 한 채, 창고 한 채, 헛간 두 채, 원두막 한 채, 비닐 하우스 한 채. 여기까지 중간 집계하면, 아홉 채의 집이 된다. 사실 이 집들 모두는 내가 언제든지 가서 쉴 수 있는 공간들이다. 비가림이 다 되어 있어, 전기장판 등 약간만 보완하면 잠을 잘 수도 있는 곳들이다.

   집 소유는 여기에서 끝나지도 않는다. 지난 212일부터는 아주 훌륭한 집 한 채를 더 갖게 되었다. 바로 이 연수원 기숙사다. 방이 62개나 딸렸고, 그 방들은 모텔급이다. 게다가 정원도 잘 가꾸어져 있고, 온수와 냉온방 등 시설도 잘 갖춰져 있다. 그 방들을, 고용한(?)  여성 넷으로 하여금 매일 싹싹 닦고 있다. 정원을, 고용한(?) 정원사로 하여금 돌보고 있다. 냉온방과 온수를, 고용한(?) 설비 담당 넷으로 하여금 윤번제로 돌보고 있다. 나는 만능열쇠(마스터 키)를 지니고 있기에,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이 방 저 방에서 뒹굴 수도 있다. 해서, 나는 벼락부자가 되었다.

   독자 여러분께서는 내 이야기가 이쯤에 이르면, 분명 이렇게 비아냥 투로 말하려 들 것이다.

   그것들 모두가 어찌 당신 것이오?

   이에, 내가 진짜로 응수할 말은 이 글 끝머리에 가서나 할 테고, 일화(逸話)부터 소개해야겠다.

   나는 KT의 전신(前身)한국전기통신공사청송전신전화국에서 최초 로 근무하였다. 우리는 번갈아 가며 숙직근무를 하였다. 당시는 숙직수당도 꽤 세었다. 야간 정해진 시간에, 상부인 대구본부 당직실로 이른바, 당직보고를 전화상으로 하게 되었는데, 본부 당직실 근무자가 양 아무개부장일 적에는 제법 신경을 써야만 했다. 간부들의 소재파악도 보고사항에 포함되어 있었기에,일일이 확인한 후 보고를 하지 않으면 야단맞기 일쑤였다.

   국장님은 사택(社宅)에 계시고, 비상연락번호는 2국에 0007번입니다. 업무과장은 사택(社宅)에 계시고 .

   내가 습관이 되어 그렇게 보고하다가 또 꾸지람을 듣게 되었다. 왜였냐고? 그는 내가 자택(自宅)이라고 하지 않고, 사택(社宅)이라고 했기 때문에 그리 하였다. 그의 논리는 아주 간단했다. 자기가 살고 있으면, 그것이 자가(自家)이든 사글세든 전세든 자기 집[自家]라고. 그날 이후 나는 직장생활을 끝낼 때까지 내내 사택이란 어휘는 아예 쓰지 않았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아도, 양아무개 부장은 적극적인 마인드와 긍정적인 마인드를 지녔던 분 같다. 게다가 주인의식까지 갖추었던 분임에 틀림없다. 내가 사는 동안에는 나의 집이라니, 이 얼마나 중요한 사실이냐고!

   대체로, 이런 생각을 하기가 쉽다.

   내 집도 아닌데, 대충대충 살다가 나가면 그만이지!

   그러다 보면, 환경정리 등을 소홀히 하여 환경을 더욱 나쁘게 만들고 만다. 주인의식이야말로 선순환이 아닌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버리게 한다.

   사실 농부인 나한테도 유사한 일이 자주 발생한다. 남이 버려둔 묵정밭을 일구어 고추·들깨 ·고구마 등의 작물을 재배하는데, 내 소유의 밭보다 정성을 덜 들이게 되더라는 거. 주인이 언제 도로 내어놓으라고 할지도 모르니, 유기질 비료 등을 내 소유의 밭보다 덜 넣게 되더라는 말이다. 일년생 작물은 그래도 나은 편이다. 감나무밭 300여 평도 그렇듯 줍다시피 하여 10여 년째 부치고 있는데,내 소유의 감나무밭보다 손이 덜 가곤 하였다. 내 농토 사이에 꼽사리 낀 복숭아밭 200여 평의 경우는 더 엉망이다. 밭 주인과 지상물(地上物)인 복숭아나무의 주인이 다른 데다가, 복숭아나무 주인인 영감님이 힘이 부쳐 해마다 이 사람 저 사람한테 임대료를 받고 맡김으로써 그러한 일이 발생하였다. 결국 돌고 돌아 올해는 내가 임차료 일십 오만 원에 떠맡았는데, 농약값과 임차료나 제대로 건질지 의문이다. 이러한 악순환을 경험해서라도,독자님들께 참고적으로 알려 드려야겠다. 토지를 남한테 빌려주거나 남으로부터 빌리게 되거들랑,가급적이면 5년 이상 사용조건으로 하시길. 그래야만 제대로 관리를 하게 된다.

   , 이제 내가 진짜로 이 글을 통해 하고픈 말을 들려드려야겠다. 사실 너무도 많이들 쓰는 이야기지만, 원효대사의 해골바가지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가 없다. 원효스님은 의상스님과 함께 당나라 유학길에 오른다. 중국 당항성(唐項城 ;南陽)에 당도하자, 폭풍우가 몰아쳤다. 폭풍우를 피해 무덤 속에서 자게 되었다. 잠결에 갈증이 나서 물바가지를 더듬더듬 찾게 되었다. 물이 꿀맛 같았다. 아침에 일어나 살펴보니, 그것은 빗물이 고인 해골바가지였다. 순간, 스님은 깨달음을 얻었다. 그리고는 유학을 포기하고 귀국을 서둘렀다. 그 깨달음은 바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였던 것이다. 세상사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로 풀이되는 화엄경(華嚴經)의 중심사상. 참고적으로,그 원전(原典)은 이렇다.

  若人欲了知三世一切佛 應觀法界性. 一切唯心造.(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를 알고자 하거든, 응당 법계의 성질을 잘 보아야 한다. 모든 것은 마음에서 지어내는 것이다.)’

    내 경애하는 독자님들께서는, 내가 집 부자라고 우기는 이유를 이제야 다들 아실 것이다. 지난날 양아무개 부장은 나한테 훌륭한 스승이었다. 그가 일러준 대로, 내가 사는 동안은 그곳이 어디든 나의 집이 맞다. 그러니 이 기숙사를 최적의 환경으로 가꾸어야 할 것은 뻔한 이치다.

   기왕지사 집에 관한 이야기이니, 세상에서 가장 집을 잘 짓는 동물이 누굴까에 관해서도 덧보태야겠다. 바로 새들이다. 프랑스 사람들은, 새 둥지 만드는 일 빼고는 인간이 못할 일은 없다.고까지 하였다. 새들 가운데도, 베짜기새 의 건축술은 아주 놀라웠다. 다큐 프로그램을 통해 본 사항이다.

아프리카 서부 나미비아. 베짜기새는 몸집과 모양이 참새와 흡사하다. 평균 기온 40, 연간 강우량 100mm 안팎, 흙먼지가 일고 먹이조차 귀한 사막. 혈연관계에 있는 녀석들은 300여 마리씩 무리지어 산다. 커다란 수목의 가지에다 누대(累代)에 걸쳐 대형의 둥지를 튼다. 60여 년 그곳에서 살았다는 주민이 증언한다, 마을 아카시아나무 위에 걸쳐 있는 둥지를 어린 시절부터 주욱 보아왔노라고. 그 둥지는 건초 더미 같기도 하고, 타작 후 쌓아둔 짚북데기 같기도 하다. 공동주택인 셈이다. 녀석들은 마치 초가지붕의 이엉을 해마다 덧이어 나가듯 하루도 쉬지 않고 집을 고쳐나간다. 그것이 녀석들의 주요 일과다. (이 단락은 나의 또 다른 작품 베짜기새에서 그대로 가져 왔음.)

그런데 새들 가운데도 두견이는 자기 집을 한평생 짓지 않고 남의 둥지에 탁란(托卵)’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흔히들 그들 무리를 일컬어 얌체족이라고 몰아부친다. 그들인들 왜 자기 자녀들을 남한테 맡겨 키우고 싶었겠나? 나의 종씨(宗氏)인 조류학자 윤무부 박사는 그들을 무척 불쌍히 여겼다. 그들은 유전적으로 나뭇가지에 앉기 불편한 발을 타고 났기에 그럴 수밖에 없다고 하였다. 그러니 내 편한 대로 남을 비난만 할 게 못 된다.

이제 이 글 마무리를 지어야겠다. 우리 둘레에는 아직도 집 없는 분들이너무도 많다. 노숙자, 집 없는 천사, 무숙자 등등. 전세금 폭등이니 하면서 고생하는 이들도 많다. 사실 우리네는 거의 반평생 집 한 채를 장만하느라  시간과 정력을 다 소진(消盡)해버리기까지 한다. 나 또한 그러한 점에서 자유롭지 못하였다. 사람이 우선이고 집은 부차적이고 기본에 불과함에도 그렇게들 한다. 저 창공을 자유롭게 날으는 새들보다 우리네가 더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는지? 저들은 알을 낳을 때 등 꼭히 필요한 때에만 한시적으로 집을 짓던데 말이다. 그러나 저러나 나는 집 부자임에 틀림 없다. 그러기에 나는 지금 억만장자보다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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