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신작

‘시력(視力)’에 관해

윤근택 2020. 6. 13. 02:01

‘시력(視力)’에 관해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나한테는 40년 가까이, 나와 나의 가족을 멀리에서 가까이에서 지켜봐주는 의누님이 하나 있다. 젊은날 나는 그녀한테 연정(戀情)까지 품어, 줄기차게 육필편지를 보낸 적 있고, 최근에는 그녀가 그 편지들을 두어 차례 꼼꼼 다시 읽었다는 내용의 e메일을 부쳐 온 적 있다. 그러더니 그 편지들이, 기어이 수필작가가 된 나한테는 귀중한 자료 내지 정보인 듯 여겨졌다면서, 의매형한테 졸라, 승용차로 그 먼 데에서 내 농장에 찾아와 302통의 편지를 건네주기까지 하였다. 사실 지금도 그러하지만, 철딱서니 없었던 젊은날에 내가 그녀한테 뭐라뭐라 편지를 적어보냈던 것인지, 다시 더듬어 볼 겨를조차 없다. 그야말로 무한질주로(?) 새 작품 적기에 바빠서 그러하다.

  한편, 나는 거의 매일 몇몇 분한테 주기적으로 신작(新作)이며 ‘세상의 모든 음악’이며 나의 근황(近況)이며 온갖 이야기를 e메일로 띄우곤 하는데, 그분도 정기수신자에 포함된다. 40여 년 동안 그처럼‘똑똑’ 잘도 떼먹던 그녀의 답신(答信). 그 연세가 70에 다다르니, 이제야 제법 철이 나나 보다. 요즘 들어서는 웬일로 나의 e메일에 꼬박꼬박 답신을 보내오니까. 그런데 안타까운 내용의 아래 두 e메일. 당사자한테는 다소 미안하지만, 원문대로 여기 옮긴다.

 

  <윤 작가님! <간디의 신발>, 다시 잘 읽었습니다. 인공 노안렌즈를 삽입한 탓에 당분간은 일렁거림이 심해 컴퓨터를 보지 못할 듯....해요.건강을 우선 챙겨야 긴 여름을 이기겠더라고요.나 자신에게도 하는 말입니다. 또 소식 나눠요. 암튼 대단하십니다~~~>

  <백내장 수술 하느라 2주를 물과 이별하며 보냈어요. 아직도 한 달 기다려야 정상적인 생활이 됩니다. 잘 지내시나요? 세상 하나를 건너 뛴 듯...... .나이 들며 하나 둘 탈이 나고, 치료하고...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우리 삶인가 봅니다. 베란다 너머로 하늘이 푸르군요. 여름이 왔나요???? 안~녕. 5월 24일 누이가~~~>

  위 두 편지를 연거푸 읽으며 안타깝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세월을 생각하게 되었다. 하더라도, 위로의 편지는 따로 써서 띄우지는 않았다. 대신, 내 속으로는 이런 말까지 하였다.

 ‘그러게... 내가 그렇게 닦달했음에도 그 젊은 날 다 허비해버리고, 작품집 한 권도 묶지 않은 할매!’

  사실 나도 환갑진갑 지난 터라 눈이 침침하여 돋보기를 끼지 않고는 잔글씨가 보이지 않으니... . 더 늦기 전에 이 글을 통해 그녀한테 위로의 말을 달리 전해야겠다.

  “할매, 노안(老眼)은 내가 믿는 하느님께서, 할매가 믿는 부처님께서 우리한테 내린 축복인 걸요! 세상 사물을 이제는 더 이상 시시콜콜 따지지 말고, 면경알처럼 들여다보지도 말고, 대충대충 걸러서 보도록 허락해 준 시작점(始作點)인 걸요.”

  막상 위와 같이 말해놓고보아도, 가슴 미어지는 이야기는 남기 마련. 아파트 경비원이기도 한 나는, 시급제(時給制)이니까, 주민들 몰래몰래 시간을 죽이고자, 리모컨이 아파 뒈질 지경으로 이 채널 저 채널 텔레비전을 보게 되는데... . 그러다가 작중(作中)의 어느 인물이, ‘그 눔의 나쁜 시력(視力)’으로 말미암아, 온 중국을 울린 일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바로‘신비한 TV 서프라이즈(2018. 10.21.방영.).’‘매일 ‘위조지폐’로 고기 사는 할머니를 ‘정육점 주인’이 눈감아 준 이유’라는 부제가 붙은 영상물이었다. 지금부터는 굳이, 나의 글로써 꾸며갈 일도 없겠다. 어느 분이 작가인 나보다도 아래와 같이 드라마틱하게 아주 잘 적어 두었으니까. 단, 그 분량이 넘쳐, 본인이 평소 그렇게도 강조하는, ‘산문의 단락 중요성’을 무시한 채 한 단락으로 재편집했음을 양해해주시길.

  <칼과 도마가 부딪히는 소리만이 시끄럽게 울려 퍼지는 중국의 한 점육점에서는 매일 20위안어치의 고기를 사러 오는 할머니가 있다고 하는데요. 고기를 받아든 할머니는 잠시 주머니를 뒤지더니 엉성하게 만들어진 ‘위조지폐’를 내민다고 합니다. 주인은 아무 말도 없이 위조지폐를 받아들더니 할머니를 향해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습니다. 중국의 한 매체에 이처럼 위조지폐를 내는 할머니를 눈감아주는 정육점 주인의 가슴 찡한 사연을 전했는데요. 80세에 다다른 노인 ‘리 라오타이’가 올 때마다 정육점 주인은 항상 말 없이 위조지폐를 받아들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아챈 아내는 왜 리오타이를 신고하지 않는지 캐물었지만, ‘다퀴앙’은 우물쭈물 거리며 답변을 피하기만 했죠. 결국 제풀에 지친 아내는 다퀴앙의 이상한 행동을 모른 척하기로 했는데요. 그러나 다퀴앙의 영문 모를 행동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라오타이가 더 이상 고기를 사로 오지 않자, 다퀴앙은 정육점의 문도 닫은 채 마을 사람들에게 라오타이의 행방을 물으러 다녔습니다. 마침내 다퀴앙은 며칠 전 라오타이가 위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아무 연고도 없던 라오타이를 위해 마을 사람들이 장례식을 열어주고 있다는 주민의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다퀴앙은 곧바로 장례식장을 찾아가더니 그대로 주저앉아 오열하기 시작했는데요. 도저히 다퀴앙을 이해할 수 없었던 아내는 다시 한 번 다퀴앙에게 이유를 물어봤습니다. 그제야 다퀴앙은 자신과 라오타이에게 얽혀 있는 과거의 이야기를 눈물로 털어놨는데요. 다퀴앙의 고백에 따르면 라오타이는 사실 다퀴양의 계모로 지낸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불임 상태였던 라오타이는 가족들로부터 ‘자식도 낳지 못한다’는 구박을 받고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다퀴앙은 자신에게 친절히 대해주던 라오타이를 보내고 싶지 않았지만, 당연하게도 어린 다퀴앙에게 발언권은 없었는데요. 결국 라오타이는 집을 떠나 소식조차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몇십 년이 지난 후 다퀴앙은 우연히 폐지를 주우며 어렵게 살고 있는 라오타이를 보게 되었습니다. 라오타이는 그동안 시력까지 나빠졌는지 자신이 보수로 받아드는 지폐가 가짜라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일개 정육점 주인인 다퀴앙은 라오타이를 극진히 보살펴 주거나 상황을 나아지게 해줄 여유조차 없었는데요. 때문에 다퀴앙은 라오타이가 건네는 위조지폐를 말없이 받아들며 라오타이가 마음 편히 고기라도 먹을 수 있게 배려해줬던 것입니다. 진실을 알게 된 아내는 다퀴앙을 부둥켜안고 함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그간 힘들고 외로운 삶을 이어왔을 라오타이를 향해 정중히 합창했습니다. 이와 같은 사연을 접한 누리꾼들은 “하고 싶은 말을 삼켜왔을 다퀴앙의 마음을 생각하면 그저 눈물이 난다. 선한 마음씨에 라오타이도 마음만은 편히 세상을 떠났을 것”이라며 위로의 말을 전했습니다.>

  재탕삼탕으로 본 위 프로그램은 정말 내 가슴 미어지게 하였다. 정말로, 어느 할머니의 그 ‘나빠진 시력’은 말미암아 온 중국의 시청자들 눈에 뜨거운 눈물 맺히게 하였다.

  내가 기억하는 또 하나의 시력. 이하는 본인의 수필작품, ‘훌륭한, 말 조련사들 이야기’에서 일부 따다 붙인다. 대학 일학년 때 교양영어책에 소개되었던 어느 노인과 말[馬] 이야기.

  <그 이야기기가 실화(實話)인지 작가에 의한 창작물인지는 알 길 없다. 그리고 그게 당시 ‘77학번(1977년)’이었던 내가 읽은 거라, 그 글 제목은 떠오르지 않는다. 모르긴 하여도 ‘Fellow’ 즉, ‘동료’ 내지 ‘동반자’였을 것이다. 그 내용인즉, 이러했다.

  ‘ 우유배달부 노인이 살았다. 그 노인은 이른 새벽이면 애마(愛馬)와 함께 온 동네를 돌아다니게 된다. 달구지를 끄는 애마는 그렇게 기특할 수가 없었다. 말은 노인이 우유배달을 하는 집 앞에 정확히 멈추어 서서, 노인이 우유통을 배달하도록 돕는다. 언덕바지든 내리막이든, 비가 오든 눈이 오든, 바람이 불든 벌써 수십 년째 노인과 노인의 애마는 함께 일을 해오는 중이었다. 그야말로 동고동락하던 사이.

그러던 어느 날 둘은 폭주 차량에 받혀 뜻하지 않은 교통사고를 당당하고 만다. 노인은 길가에 쓰러지고, 말은 울고, 수레는 찌그러지고, 우유통은 길바닥에 쏟아지고... . 행인들은 우르르 몰려들었다. 다들 웅성댔다. 그러는 사이에 경찰관들이 순찰차 경적을 울리며 달려왔다. 경찰관 가운데 한 경찰관이 노인의 시신을 검시(檢屍)하면서 군중한테 혼잣말처럼 던지는 말이 충격적이었다.

  “여러분들, 이웃이면서도 여태 모르셨어요? 이 분 앞 못 보는 장님이네요. 이처럼 앞 못 보는 분이 어떻게 우유배달을 그 오랜 동안 탈 없이 해 오실 수 있었을까?”

  다시금 이야기하지만, 저 남녘 어느 곳에 사는 의누님은 노안 수술을 하였단다. 안타깝지만, 우리네가 늙어가면 으레 있는 일. 그래도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의료기술이 있어, 마음 다소 놓인다. 눈뿐만이 아니라 이빨도 그러하다. ‘이빨 빠진 호랑이’란 말이 있고, 사실 나도 벌써 수 년 전에 아래위 합쳐 어금니 세 개가 빠져 달아났음에도 여태 ‘임플랜트 시술’미루고 있다. 우리끼리만 살짝 이야긴데, 어느 잘 나가는 치과병원장이 나의 임플랜트만은 공짜로 해주겠다고 제의해오면 그때서야 고려해볼 일이다. 이 무슨 이야기? 나는 의식이 제법 깨어있는 치과병원장에게 아래 광고 헤드카피를 제공할 테니까.

  ‘저희 OO치과병원은 ‘이빨빠진 백두산호랑이’한테도 임플랜트 시술을 성공적으로 해주었어요.’

  오, 그러나 누구라도 함부로 위 광고 헤드카피(안)을 쓰면, ‘옴팡’ 독박쓸 일. 이른바,‘지적소유권’이라는 게 있으니, 자칫 나와 송사(訟事)에 휘말릴 걸.

나의 그 할매한테는 다시 한 번 이 이갸기 들려드리며 글 맺으려 한다.

  “할매, 노안(老眼)은 내가 믿는 하느님께서, 할매가 믿는 부처님께서 우리한테 내린 축복인 걸요! 세상 사물을 이제는 더 이상 시시콜콜 따지지 말고, 면경알처럼 들여다보지도 말고, 대충대충 걸러서 보도록 허락해 준 시작점(始作點)인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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