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신작

나무난로 앞에서 - 아흔 일곱 번째, 아흔 여덟 번째 이야기 --

윤근택 2020. 10. 1. 01:05

 

                                                     나무난로 앞에서

                                   - 아흔 일곱 번째, 아흔 여덟 번째 이야기 -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97.

  조손은 또 다시 나무난롯가. 맞은편 접의자에 앉은 외손주녀석 으뜸이는, 지난번 (제 96화)에 들려준,‘아프리카의 여왕’으로 일컬어지는 ‘돌무화과나무’이야기를 환기하고 있다.

  “한아버지, ‘아프리카 여왕’은 참말로 훌륭한 나무야. ‘어머니의 젖줄’이 되어 온갖 생명체를 길러낸다니 말이야.”

  고 녀석, 참으로 이로운 ‘돌무화과나무’를 기억하고 있다. 해서, 더는 고민할 것도 없이 또 신기로운 나무에 관해 노변담화(爐邊談話)를 이어갈 수 있게 생겼다.

  “으뜸아, 너도 잘 알다시피, 대개의 나무들은 씨앗으로 종족번식이 이루어지지만, 새끼를 낳는 나무도 있다?”

  그러자 녀석은 난로 가까이, 이 맞은편 할애비 쪽으로 의자를 바짝 당기고 자세를 가다듬어 귀담아듣고자 한다. 이러면 이 할애비는 더욱 신날밖에.

  이번에는 마치 스무고개를 넘듯 내 이야기는 이어진다.

  “으뜸아, 전세계 아열대와 열대지방에 자라며, 주로 인도양과 서태평양 해안선을 따라 강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에 떼지어 사는 나무란다. ”

  그러자 녀석은 그러한 나무가 우리나라에는 살지 않아, 가까이에서 볼 수 없음을 안타깝게 여긴다. 하더라도, 나는 애호가들이 적합한 환경을 만들어 시험삼아 수목원 등지에서 심는다고 일러준다.

  “한아버지, 새끼를 낳는 나무가 도대체 누구인데? 글고(그리고) 어떻게 새끼를 낳아?”

  녀석의 조바심으로 인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술술 들려준다.

  바로 ‘맹그로브나무’다. 굵은 가지의 가장자리에서 어린 싹을 틔운다. 그 어린 싹을 ‘주아(珠芽; bulbil)’라고 부른다. 사실 ‘주아’란, 식물학에서는 크기가 작은 2차 비늘줄기를 일컫는다. 잎겨드랑이 모서리나 꽃이 피는 자리에 만들어진다. 완전한 크기로 자라면 떨어져, 새로운 개체로 성장하는데, 떼어서 땅에 심어도 잘 자란다. 특히 양파류와 백합류 같은 식물들에서 많이 볼 수 있다. 맹그로브나무도 ‘주아번식법’을 취한다. 어미나무는 그렇게 품속에서 키우던 어린 나무를 바닷물에 떨어뜨려 스스로 자라게 한다.

  “한아버지, 잠깐! 이 으뜸이가 어느 분의 외손주인데, 짚이는 게 없겠어? 맹그로브 엄마나무가 그런 방법으로 자식을 키워낼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을 것 같애. 그곳이 하필 바닷가이고 파도가 쉴 새 없이 칠 테니까, 아가나무들이 바다 멀리 떠내려 갈까봐... .”

  대체, 누구의 새끼인지, 상상력과 추리력이 대단하다. 옳은 말이다.

  어린 나무는 밀물 때 맞추어 바닷물에 떨어지게 되고, 진흙에 닿으면 그 흙속에 뿌리를 내리고 정착하게 된다. 그런 다음 가지에서 새로운 뿌리가 층층이 어지럽게 나온다. 맹그로브나무가 다른 나무들과 특히 다른 점은, 그 많고 어지러운 뿌리의 일부가 땅밖으로 나와 있다는 점. 맹그로브나무는 소금기 많은 곳에 자라기에, 뿌리로 호흡하고자 수면 위에 그렇게 뿌리를 꽤나 허공에, 그것도 하늘을 향해 거꾸로 내어 놓는다. 뿌리는 산소를 발아들이기도 하지만, 강한 파도에도 나무 전체를 균형있게 하여 지탱한다. 또한, 뿌리는 촘촘한 구조로 되어 있어 소금기를 걸러내는 역할까지 한다.

  “한아버지, 맹그로브나무는 그 소금기를 다 견뎌내어? 한아버지는 이 으뜸이한테 자주자주 일러주곤 했다? 내가 지퍼를 내리고 고추를 내어 꽃나무 발치에다 쉬를 하게 되면, 그 오줌기가 진해서 꽃나무뿌리가 마른다고 말이야. 대신, 그 오줌을 물에 태워 묽게 하면 요소비료가 된다고 말이야!”

  녀석은 오줌에 그 성분이 많이 들어 있다고 하여 ‘질소 비료’를‘요소(尿素)’라고 달리 부른다는 것도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삼투압과 역삼투압의 개념도 아는 듯싶다. 배추를 소금으로 절이는 이치까지도.

  “으뜸아, 그러게 말이야. 맹그로브나무는 여간 신기한 나무가 아니야. 소금물에서도 자란다는 게 말이나 돼?”

  그러자 녀석의 추리는 한없이 뻗힌다.

  “한아버지, 지난 번 ‘아프리카 여왕’즉 ‘돌무화과나무’이야기가 다시 떠올라. 그 나무는 온갖 생명체들을 길러낸다고 하지 않았어? 맹그로브나무도 무척 이로운 나무일 것 같애.”

  맞는 말이다. 맹그로브는 그 어지러운 가지와 뿌리형태 덕분에 많은 생명체의 은신처, 산란처가 된다. 망둥어·상어·열대어·악어· 홍따오기 등의 서식지가 되어준다. 한편, 맹그로브가 떨어뜨리는 잎들은 바닷물에 유기질을 공급하여 더욱 풍요롭게 만든다. 이미 위에서 언뜻 말했지만, 밀썰물에 맞추어 해안 생태계를 오염시킬 수 있는 입자들을 뿌리에서 걸러준다. 어디 그뿐인인가? 그 빽빽한 뿌리와 가지들은 해안선의 씻김을 막아준다. 떼지어 사는 맹그로브나무들이 그 뿌리와 가지가 파도를 갈라치기 하므로.

   “한아버지, 으뜸이가 다시 말하지만, 맹그로브나무도 ‘아프리카 여왕’과 마찬가지로 많은 생명체들 삶의 터전인 걸!”

   나의 어린 외손주녀석은 이미 임학박사 수준이다.

  “으뜸아, 기왕지사 꺼낸 이야기이니 좔좔 마저 들려주련?”

   녀석은 ‘짝짝짝’ 박수를 친다.

   맹그로브나무는 이산화탄소 흡수량이 소나무에 비해 3배에 달할 만큼 이산화탄소 흡수량이 높아서 가속화되는 지구온난화를 막아줄 수 있는 지구의 허파 역할을 해 준다고 합니다. 몇 년 전까지 무분별한 관광지 개발과 새우양식장 건설로 많은 맹그로브숲이 파괴가 되었지만, 2015년 유네스코에서 매년 7월 26일을 맹그로브숲 보호의 날로 지정하고 맹그로브나무를 심으며 보호하고 있다고 한다. 맹그로브숲에는 ‘맹그로브 게’처럼 맛있는 해산물을 잡을 수도 있다.

  나무난로 불문[火門]을 열어, 졸참나무 장작을 하나 보태 넣으면서 내 이야기는 더 이어진다.

  “참, 으뜸아, 이 할애비가 벽난로 땔감으로 인기 있는 나무가 뭐라던?”

  그러자 녀석은 금세 대답한다.

  “사과나무 장작이 ‘짱’이라고 한아버지가 언젠가 들려줬다? 그 향기와 불꽃이 ... .”

  맞는 말이다.

  “으뜸아, 그러면 숯 가운데 최고급품은 뭔지 아니?”

  녀석은 고개를 갸우뚱댄다.

  “사실 라오스의 ‘마이띠유’라는 ‘졸가시나무’를, 보름가량 굽어서 만든 백탄(白炭)을 최고급 숯으로 알려져 있어. 본디는 이를 두고서 ‘비장탄(備長炭)’으로 불러. 그런데 맹그로브장작으로 굽은 숯도 ‘비장탄’으로 부르곤 해. 숯불이 오래 가고 향이 좋아서, 미식가들이 돼지고기 등 숯불구이에 종종 쓴다는구나.”

  녀석은 뜻밖의 제의를 해온다.

  “한아버지, 우리도 어디 가서 그 맹그로브숯을 사자. 글고(그리고) 그 숯불에다 돼지삼겹살 구워 먹어보면?”

  후일을 기약하고 나의 이번 이야기는 접기로 한다.

  흥이 나면 늘 그러해왔듯, 녀석은 환호한다.

  “맹그로브나무 파팅(파이팅)! ‘바다의 숲’맹그로브 파팅!”

  나무난로의 불이 사위어 간다. 이 산골 외딴 농막에는 또 다시 어둠이 내리고.

 

  98.

  조손은 나무난롯가에 마주보고 앉아, 잠시 말없이 서로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다. 이러한 사이에도 이 농막에는 FM 라디오에서 음악은 흐른다. 사실 내 농막에는 4계절 내내 24시간 내내 음악이 흐른다. 내가 본디‘세상의 모든 음악 듣기’애호가이기도 하지만, 고라니· 멧돼지 등이 농작물을 해치지 못하게 하는 효과도 있을 듯하여 그리한다. 마침 라디오에서는 아스토르 피아졸라(Astor Piazzolla, 1921~1992, 아르헨티나)의 ‘Oblivion(망각)’이 흐른다.

  이 할애비는 잠시 눈을 감고 이런저런 옛 추억들을 더듬는다.

  이번에는 난로 맞은편 외손주녀석 으뜸이가 먼저 말을 걸어온다.

  “한아버지, 저 음악 꽤나 쓸쓸한 분위기다? 쓰인 악기는 아코디언인 것 같고... .”

  이 할애비는 드디어 말문을 열밖에.

  “으뜸아, 저분은 ‘리베르탱고’라는 나름의 음악세계를 연 분이야. 어릴 적에 자기 큰아버지가 사다준 자기 나라 아르헨티나 고유악기,‘반도네온’으로 연주하는 걸. 네가 말한 ‘아코디언’과 비슷하게 생긴 거란다. 그리고 지금 흐르는 음악의 제목은‘망각’이야.”

  녀석은 그제야 이 할애비가, 자기는 도저히 알 수 없지만 어떤 추억을 망각의 늪에서 다시 건져 올려 눈을 지긋이 감고 있었음을 알아차린 듯하다.

  “한아버지, 망각이라 망각이라... .”

  참말로, 피아졸라의 ‘망각’은 제목 그대로 쓸쓸한 분위기의 선율이다. 하더라도, 하더라도... .

  “으뜸아, ‘잊혀짐’이나 ‘잊음’이 다 나쁜 것만은 아니란다. 저 창 너머 뒷산을 내다보렴. 언젠가 네한테 들려준 것 같기도 한데, 저 참나무류의 숲은 ‘망각’의 선물인 걸.”

  그러자 녀석은 이내 대꾸한다.

  “한아버지, 한아버지는 으뜸이한테 언젠가알려준 적 있다? 다람쥐의 망각 덕분에 저 참나무류의 숲을 가꾸었다고 말이야.” 녀석은 날래게 그 사실을 기억한다. 다람쥐는 겨우내 먹잇감으로 삼고자 도토리를 물어다가 자기만 아는 땅속이나 바위틈에 쉼없이 숨겨둔다. 그런데 하도 여러 군데 그렇듯 도토리를 숨겨두다 보니, 더러는 잊어버린다. 그 덕분에 도토리들은 싹을 틔워 숲을 이루게 된 것이다. 한편,청설모는 잣나무 꼭대기나 호두나무 꼭대기에서 그것들 열매꼭지를 따고, 땅에 그 열매가 떨어지면 그대로 뛰어내려 그 열매를 까먹는다. 그러한 청설모도 더러더러 자기의 수확물을 잃어버린다. 그 덕분에 잣이나 호두는 싹을 틔우게 된다.

  “으뜸아, 지난 날 이 할애비가 대학생일 적에 전공필수과목인 <造林學>도 배웠다? 노교수님께서는 분명히 일러주셨다? 조림과 육림(育林)의 일등공신은 그 누구도 아닌 다람쥐들이라고 말이야. 그러니 임학도인 우리가 독림가(篤林家)인 다람쥐들한테 늘 고마워해야 한다고 하셨어.”

  누구의 새끼인지, 녀석은 이내 말한다.

  “한아버지, 앞으로 으뜸이는 도토리와 알밤 주우러 가자고 조르지 않을 거다? 조림의 일등공신 다람쥐들 양식이니깐.”

  나무난로 불문을 열고 갈참나무 장작을 하나 더 집어넣는다.

 

(다음 호 계속)

 

 

 

  작가의 말)

 

  이 글 시리즈물을, 제 98화에 이르기까지 단 한 번도 읽지 않은 분들에 대한 특별배려입니다. 나의 큰딸은 집의 나이 서른여섯임에도 아직 미혼입니다. 자연 작중인물 외손주 ‘으뜸’은 아직 이 농막에 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 시리즈물은 앞으로도 끝없이 이어갈 겁니다. 계속 지켜봐 주십시오.

 

 

 

(다음 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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