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난로 앞에서- 일백 열 한 번째, 일백 열 두 번째 이야기-
나무난로 앞에서
- 일백 열 한 번째, 일백 열 두 번째 이야기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111.
불기운이 약해, 나무난로의 불문[火門]을 열고 부지깽이로 장작불을 휘젓는다. 그러자 맞은편 접의자에 앉은 외손주녀석, 으뜸이가 자기도 해보겠다며 부지깽이를 건네 달라고 한다. 녀석은 어른 흉내를 잘도 낸다.
“한아버지, 근데(그런데) 이 매초롬한 부지깽이는 무슨 나무?”
아주 좋은 질문이다. 그렇잖아도 이야기꺼리가 궁하던 터에.
“으뜸아, 이 나무는 ‘참중나무’인데, 외할아버지 밭이웃인 ‘월곡할매’네 밭에서 지난 봄 고추지주로 삼으려고 지게에 잔뜩 지고 와서 썼던 거란다. 그때 월곡할매 아드님이 참중나무 새순을 따고, 내년 잎 수확을 용이케 하고자 나무의 키를 낮추려고 베서 군데군데 모아둔 것이었는데... .”
녀석은 이 할애비가 ‘참중나무’라고 한 말에 뭔가 또 짚이는 게 있는가 보다.
“한아버지, 이 나무는 ‘땡중’이 아닌 ‘진짜 중[眞僧]’?”
사실 지난 번 제 106화 말미에 나는‘떼죽나무’를‘때중나무’로도 부른다고 일러준 바 있다. 그 열매가 ‘조르르’ 달리되, 여러 개씩 한 군데 달려 마치 머리를 박박 깎은 스님 같은 데에서 유래한다고. 그때 녀석이 곧바로 연상했다.
“한아버지, 머리 박박 깎은 중[僧]. 술을 마시거나 고기를 먹는 등 승려가 지켜야 할 계율을 지키지 않는 ‘땡중’.”
하여간, 녀석이 유추하듯, ‘참중나무’는 한자표기로 ‘승목(僧木)’이 맞다. 봄날 참중나무의 어린잎은 주요한 사찰반찬의 재료로 쓰인다. 장아찌·부각·튀김·숙회·전(煎) 등. 녀석의 넷째 왕고모(王姑母) 내외, 즉 나의 넷째 누님 내외도 그러한 반찬거리를 장만코자 봄마다 내 농장 중나무 잎을 따러 온다.
“으뜸아, 네 말따나 스님들이 즐겨먹는 데에서 ‘참중나무’ 혹은 ‘중나무’라고 부른단다. ‘죽나무’라고 부르기도 하고. 그러한데 우리 경상도쪽에서는 먹을 수 있는 잎이 달리는 참중나무를 ‘가중나무[假僧木]’라고 불러. 지난 날 수목학을 익힌 이 할애비마저도 ‘참중이 진짜중인지, 가짜중이 진짜중인지’ 여태 온통 헷갈리는 게 사실이야. ”
조손(祖孫)은 드디어 스마트폰으로 ‘참중나무와 가중나무의 구별점’을 실물사진을 곁들여 함께 검색하게 된다. 참중은 멀구슬과, 가중나무는 소태나무과. 참중은 무늬결이 아름다워 가구재로 크게 대접받는 나무, 가중은 목재로서 가치가 없는 나무. 참중은 스님들이 그 새순을 즐겨먹는 나무, 가중나무는 예전에 중국에서는 쓸모없는 나무라 하여, 죄를 짓고 동헌으로 끌려오면 회초리로 삼았던 나무. 그리고 둘 다 그 잎으로는 구별하기에 힘들다.
“한아버지, 도대체 세상천지에 ‘참[眞]’이어디 있어? 정의가 어디 있어? 모두 힘 있는 자(者)가 ‘진짜 중’, ‘가짜 중’ 따위로 가를 뿐.”
이 외할애비는 더 이상 대꾸할 말이 없다. 다만, 외손주 녀석의 붉은 귓불이 전에 없이 예쁘다는 걸.
102.
지난 번 ‘참중나무’이야기(제 101화)의 ‘참[眞]-’이 또 하나의 실마리 내지 모티브가 되어, 이 할애비는 노변담화를 거뜬히 이어갈 수 있을 것 같다.
“으뜸아, 나무 이름 가운데에는 ‘개-’가 붙은 나무들도 꽤 많다? ‘야생의’또는 ‘질이 떨어지는’의 뜻을 더하는 말이란다. 어디 네가 ‘개-’란 이름 지닌 나무 이름 아는 대로 말해보렴.”
그러자 외손주녀석은 창밖의 나무 한 그루를 가리키며 이내 대답한다.
“한아버지, 저 나무를 한아버지가 으뜸이한테 ‘개비자나무’라고 일러준 적 있다? 글고(그리고) 뒷동산에 우람하게 서 있는 저 ‘엄나무’의 별명이 ‘개두릅’이라고도 가르쳐 줬다?”
정말 총명한 아이다.
“으뜸아, 나무 이름 말고도 ‘개-’가 붙은 낱말들을 대어보렴.”
녀석이 주저 없이 열거해나간다.
“개꿈·개죽음·개떡·개꼴·개새끼.”
하여간, 인간의 가치기준으로, ‘참답지 못한’걸 ‘개-’로 부른다. 하더라도, ‘개-’로 된 나무들 대개는 저마다 몫을 톡톡히 한다. 그 겉모습이 헷갈려서 붙여진 예가 많으니까.
참옻과 개옻, 두릅과 개두릅, 염주나무와 개염주나무... 살구와 개살구, 키버들과 개키버들, 벚꽃과 개벚꽃 등.
“으뜸아, 이제 이 할애비가 그 많은 ‘개-’가 든 나무들 가운데에서 참옻과 개옻에 관한 이야기만 간단히 들려주련다.”
이 할애비는 다음과 같은 요지로 마저 들려준다.
‘ 옻나무는 우루시올(urushiol)이란 화학성분을 지녔는데, 이 우윳빛 성분은 산과 알칼리에 안전하고 수분을 차단하여 방부작용을 하기에 청동시대부터 이른바 옻칠 재료로 쓰였다. 이 할애비는 어린 날 새마을사업 때에 마을 어른들이 길을 넓히려고, 무연고 고분(古墳)을 이장하는 걸 본 적 있다. 그때 썩지 않고 온전히 보존된 옻칠 널을 본 적 있다. 나전칠기(螺鈿漆器)에 옻이 Tm였다. 우리가 쓰는‘칠(漆)한다’ ‘칠흑같다’는 본디 옻[漆]에서 온 말. 속이 차가운 이들이 옻닭을 먹으면 창자 내벽 등 장기에 옻칠 피막이 형성되어 호전되는 효과가 있다. 우루시올 성분은 항암효과가 있어, 항암제로도 쓰인다. 이 할애비는 옻을 너무도 잘 타기에 옻나무 근처에도 얼씬대지 않는다. 그리고 개옻나무도 참옻나무에 못지않게 여러 효능을 지니고 있다.’
외할애비의 수목학 강의를 듣고 있던 녀석은 색다른 반응이다.
“한아버지, 강아지(개)는 사람과 가장 친숙한 동물이잖아. 그래서 그 많은 나무들 이름에다 ‘개-’를 붙인 거 같애. 결코 ‘그럴싸하다’고깔보아서가 아니라 좀 더 친숙하게 지내려고 말이야. ”
꿈보다 해몽이라고 했던가. 개떡같이 이야기 하여도 찰떡같이 받아들인다고 했던가. 외손주녀석의 긍정적인 사물 바라봄이 대견하기만 하다.
또 다시 산골 농막에는 어둠이 내리고.
(다음 호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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