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86) - 그의 <관현악 모음곡 제 2번> 은-
제 음악공부는 계속 이어집니다.
부디,
폭염에 더위 잡수시면 아니 되어요.
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86)
- 그의 <관현악 모음곡 제 2번> 은-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활어횟집에 가면, ‘모듬회’라는 게 있다. 이런 저런 활어들을 썰어 한 접시에 ‘모은 회’. 사실 ‘모으다’에서 비롯된 말일 테니, 어법상 ‘모은 회’가 맞겠지만. 하여간, 그 각각의 맛이 달라, 골라가며 젓가락으로 집는 맛 어지간하다. 다음. 내 어릴 적 손위 누이들은 이웃 또래 누나들과 어울려, ‘모둠이(모듬이)’를 곧잘 하곤 하였다. 겨우내 긴긴 밤을 달래려, 그들은 집집 다니며 이런저런 반찬을 모아, 커다란 박바가지에다 비빔밥 등을 해서 함께 나눠먹던 그 ‘모둠이’. 그 맛과 흥취 어지간하였다.
음악에서도 위에서 소개한 ‘모듬회’나 ‘모둠이’에 해당하는 음악형태가 있다. 그게 바로 ‘모음곡[組曲,suite]’이다. 이 시리즈물 제 81화에서 이미 아래와 같이 적은 바 있다.
<(상략) 3. 모음곡 [組曲,suite]
17~18세기에 가장 발전했으며, 당시에는 주로 춤곡 악장들로 이뤄졌음. 19~20세기에 와서는 소나타보다 작은 형식의 기악 모음곡 경향을 띰. 차이코프스키의 <호두까지 인형> 시리즈물이(?) 여기에 해당함. 내가 좋아하는 ‘솔베이지의 노래’가 들어있는 그리그의 <페르 귄트 조곡> 도 여기에 해당함. 요한 세바스찬 바흐에 이르러 절정을 이룸.(하략)>
위 인용문 끝 부분에서, 그 모음곡이 절정에 이루게 했던 이가, 바로 이 글 주인공인 ‘요한 세바스찬 바흐(1685~1750, 독일)’임을 밝혔다.
나는 몇몇 날 그의 모음곡들 가운데에서 <브란덴부르크 협주곡>를 비롯하여 4개의 <관현악 모음곡>을 집중탐구하였다. 물론, 내내 위 두 종류의 모음곡 전곡(全曲)을 수차례 듣고 있었다. 이번 호에는 그의 모음곡들 가운데에서 <관현악 모음곡 2번>만 다뤄보기로 한다.
<관현악 모음곡 2번> b단조, BWV 1067.
그의 아른슈타트 시절(1703-1707) - 바이마르 시절(1708-1717) - 쾨텐 시절(1717–1723) - 라이프치히 시절(1723–1750) 가운데에서 ‘쾨텐 시절(1717~1723)’에 적은 것으로 추정된다. 대략 그때 그의 나이는 32세~38세. '레오폴트 공 관현악단'에 의해 연주되기를 바라며 적은 곡으로 알려져 있다.
7개 곡으로 이뤄진 모음곡. 그 곡 구성은 이렇게 되어 있다.
제 1곡 : 서곡(overture). 당시 프랑스 루이 14세로부터 총애를 받던 베르사이유 궁정악장 ‘륄리(Lully)’의 영향을 받아, 프랑스 궁정음악풍으로 웅대하게 시작. 사실 바흐는 본디 이 작품명을 <관현악 모음곡>이라고 하지 않고, 첫 곡의 이름을 따서 <서곡(overture)>이라고 했던 모양.
제 2곡 : 론도. 사실 론도 형식을 갖춘 ‘가보트(gavotte)’. 가보트는 프랑스 남부지방에서 시작된 춤곡. 가보트란, 프랑스 지방의 산(山) 사람 ‘가보츠(gavots)’에서 온 말. 17, 18세기 프랑스와 영국의 궁정에서 유행했던 농부들의 활기찬 키스 춤. 제 2곡부터는 각국 춤곡으로 이뤄진다. 이로써 그의 <관현악 모음곡 2번>은 내가 첫 단락에서 이미 밝혔듯, 제대로 차린 ‘모듬회’ 내지 ‘모둠이’가 된다.
제 3곡 : 사라방드(Sarabande). 3박자의 느린 춤곡. 페르시아를 기원으로 16세기 무렵 에스파냐를 통해 유럽에 전해졌다고 한다. 사실 나는 바흐와 같은 나라 독일에서 태어나고 그와 동시대를 살고 간 ‘헨델’의 곡 <사라방드>를 꽤나 좋아하는 편이라, 그 박자를 대충 알고 지낸다.
제 4곡 : 부레(bourree). 빠른 스키핑 스텝을 특징으로 하는 프랑스의 민속춤. 춤추는 사람들은 발에서 나는 소리를 강조하기 위해 나막신을 신기도 한다는데... .
제 5곡 : 폴로네이즈(Polonaise). 뜻하는 바, ‘폴란드의-’ 혹은 ‘폴란드풍-’이란 옛 춤곡. 3박 리듬이며 중세 말 귀족사회 궁정정무도회의 필수품이었다고 함. 또한, 이로부터 유래된 기악곡에 쓰이는 악곡의 형식의 일종을 가리키기도 한다. 보통 속도는 3/4박자. 사실‘폴로네이즈’라면, 금세 떠오르는 작곡가가 있다. 폴란드 출신 ‘쇼팽’. 그는 폴로네이즈 시리즈물(?) 명작을 퍽이나 남겼다.
제 6곡 : 미뉴에트(Minuet). 17~18세기 유럽에서 유행한 프랑스 춤곡이다. 미뉴에트는 프랑스말로 ‘작은 스텝’을 일컫는단다. 우아한 3박자의 춤곡.
제 7곡 : 바디네리(Badinerie). 바디네리는 위 2~6곡과 달리, 춤곡이 아니다. ‘농담’이란 뜻을 지녔다. 참말로, 경쾌하고 익살스럽게 플루트 솔로로 연주된다.
이 농부 수필가는, 위와 같이 구성된, 맛깔스런 그의 <관현악 모음곡 제 2번>을 거듭거듭 들으며, 깊이깊이 파고들다가 드디어 몇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모음곡은, 연주 동영상을 통해서라도, 여러 악기들을 플루트 한 대가 주도하고 있더라는 사실. 특히, 피날레인 제 7곡은 플루트 솔로. 실로, 플루트가 중심악기가 되어, 마치 플루트협주곡처럼 되어 있다는 점. 실제로, 바흐는 후일 이 곡 가운데에서 제 7곡인 ‘바디네리’를 따로 떼 내어, 표제음악으로, 플루트 편곡까지 하였다. 대체로, 작곡가들은 동시대를 살았던 명연주자를 위해, 그가 자기 곡을 연주해주길 바라며 적는 예가 많다는데... . 살펴본즉, 바흐도 특정인을 염두에 두고 그 피날레를 적었다고 한다. 당시 프랑스의 플루트 명연주자, ‘피에르 가브리엘 뷔파르댕’. 그렇다면 바흐는 명연주자 피에르 가브리엘 뷔파르댕이 한껏 플루트 연주기량을 발휘하도록 배려했던 셈. 하더라도, 그때 바흐가 그 곡을 적었을 때 쓰였던 플루트는 요즘의 플루트와 달랐다는 점도 내 이야기에서 빠뜨릴 수 없다. 그 당시는 ‘가로 피리’로 일컬어지는 ‘트라베르소’혹은 ‘소프라니노 리코더(sopranino recorder)’로 부르는 악기였다니, 현대 연주가들은 바흐가 추구했고 악보에 적었던 그 음을 감히 재현해낼 수 없다는 점. 뿐만 아니라 그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에 적은 여러 악기 악보도 그 악기들이 사라져, 도저히 그가 추구했던 진정한 음을 현대 연주가들은 유사 악기로는 제대로 재현해낼 수가 없다지 않던가. 그 점은 매우 아쉽다.
하여간, 바디네리는 농담. 농담은 익살스럽고 경쾌한 분위기로 자유롭게 연주하라는 바흐의 권유와 배려. 그의 바디네리야말로 ‘스케르초(scherzo)’의 다른 말인 듯. 바디네리는 ‘카덴차(cadenza)’와도 통하는 말. 카덴차는, ‘악장이 끝날 무렵 등장하는 독주악기의 기교적인 부분. 특히, 거장적인 기교를 요구하는 독주 협주곡에서 화려한 클라이맥스를 이룬다. 19세기가 상당히 경과하면서까지 작곡가가 적당한 곳을 지정해주면 연주자가 카덴차를 마음대로 연주했다.’. 바흐의 바디네리는 ‘유모레스크(humoresque)’와도 통하는 말인 듯. 유모레스크란, ‘경쾌한 기분의 소곡(小曲)’을 이르는 말. 실제로, 드보르작의 <유모레스크>와 슈만의 <유모레스크>도 있지 않던가.
대체로, 많은 음악 평론가들은 바흐의 <관현악 모음곡 제 2번>에 관해 이렇게 말한다.
“프랑스 궁중음악풍의 웅대한 서곡으로 시작하여 독일 민초들 속에서 오래도록 발전해 온 춤곡들로 엮었다.”
음악에 관한 한 문외한인 농부 수필가. 하지만, 그의 곡을 두고 다시 이렇게 말하고프다.
“모듬회처럼 맛깔나서 젓가락으로 이 살점 저 살점 집듯이,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그 7곡을 따로따로 감상해도 좋은 음악. 내 누이들이 모둠이하여 온갖 반찬으로 박바가지에 비빈 비빔밥을 숟가락으로 서로 다투어 푸듯 해도 좋은 음악. 요컨대, 요한 세바스찬 바흐, 당신은 그 관현악 모음곡으로만으로도 종합예술가였음에 틀림없나이다. 존경하나이다.”
훗날, 요한 세바스찬 바흐조차도 이 <관현악 모음곡 2번>을 포함하여 4개의 <관현악 모음곡>과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을 적던 ‘쾨텐 시절(1717–1723)’을 회상했다.
‘그때가 나한테 가장 좋았던 시대였어. 풍부한 창조력과 흡족한 행복감이 넘쳤던 걸.’
한평생 자기 고국 독일을 떠나지 않았던 작곡가. 교회에 몸 담아, '칸토르' 즉 , 음악장으로 지내며 오르간 주자였던 그. 세기 후 '멘델스죤'이, 생일날 자기 조모로부터 건네받은 악보 '마태 수난곡'인지 '요한 수난곡'인지를 통해 그 위업 그제야 드러나기 시작된 분.
' 요한 세바스찬 바흐, 당신을 존경하나이다.'
작가의 말)
내 신실한 애독자님들께서는 일부러 시간을 내어서라도 그의 <관현악 모음곡 2번> 전곡을 들어보시길.
그리고 이 글도 이 세상에 하나뿐인 님한테 바쳐요. 저한테 글 쓸 수밖에 없는, ‘동기(動機)’를 늘 주시는 분이시까요. ‘소리없는 깊은 강’처럼 모성애를 늘 실천해보이시는 님.
* 이 글은 본인의 블로그, 이슬아지 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