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제초제를 치는 이유는
내가 제초제를 치는 이유는
윤요셉 (수필가/수필평론가)
종종 나의 농장으로 찾아드는 아내한테서 곧잘 듣는 말이 하나 있다. 제발 일을 더 크게 벌리지 말고, 이녁 토지 800여 평만이라도 알뜰히 가꾸라는 잔소리다. 그러함에도 나는 아내 몰래, 남의 묵정밭 등을 잘도 얻어 보탠다. 그 밭들을 장만하는 데는 제초제가 명쾌한 답이라는 걸 너무도 잘 안다. 남들 보기엔, 잡목과 잡초가 무성하여 아무런 쓸모 없는 어설픈 토지이지만, 몇 종류의 제초제를 섞어서 분무기로 살포하면 이내 멀쩡해진다. 흔히 하는 말로, 몇 차례 확인사살까지 하고 나면, 작물을 곧바로 재배할 수 있게 된다. 이미 나의 수필 여러 편에서도 적은 바 있지만, 제초제는 생력농업(省力農業) 즉, ‘힘 덜 들이는 농업’의 총아(寵兒)다. 선택성 제초제, 비선택성(전멸) 제초제, 발아억제제, 이행성(뿌리에까지 약물이 옮겨가는) 제초제 등 종류도 다양하여, 작물에 따라 어느 하나를 골라 쓰거나 혼용하거나 하면 효율적이다.
공무원 출신인 일흔 중반의 그분이 갑작스레 세상을 떴다는 이야기를 들은 나. 그분의 부인한테 전화를 걸어,위로의 말과 함께 내 농장 맞은편 그 묘전(墓田)을 어떻게 하실 거냐고 은근슬쩍 여쭈어 보았다. 그랬더니, 윤과장(나의 택호임.)이 좀 부쳐달라고 통사정하였다. 사실 농사에 관한 한 반거들충이였던 그분. 그분 내외분은 일주일에 한 두 차례 그곳에 왔으나, 내가 이곳에 정착한 이후 내내 잡초와 잡목들이 활개를 쳤다. 이녁 조상들 두 위(位)의 묘와 그분 자신의 묘까지도 앞으로 묵히게 생겼기에, 매년 벌초를 해드리겠다고 하면서 못 이기는 척 응낙을 했다. 봄날,나는 그 밭에 심겨진 매실나무들을 강전정(强剪定)하는 한편, 하늘에 치솟은 반시(盤柴; 쟁반감)의 키도 과감하게 낮추었다. 물론, 잎 나기 전 ‘황 소독’도 빠뜨리지 않았으며, 그 이후에도 이미 두 차례 방제(防除)를 하였다. 현재까지 작황은 썩 좋은 편이다. 사실 나는 거기 심겨 있는 과수만을 본 것이 아니다. 묘 옆 100여 평 남짓한 공터에 탐이 났던 것이다. 잡목과 잡초가 들어차 있고, 굵은 돌들이 군데군데 박혀 있어, 곧바로 관리기를 몰고 가서 갈아엎을 형편이 못 되었다. 그래서 관리기 작업은 내년으로 일단 미루어 두기로 하였다. 대신, 거기에다 집중적으로 제초제로 때려(?) 잡초와 잡목 발본색원에 나섰다. 그리고는 그곳에다 들깨 모를 옮겨 심든지 더덕 모를 옮겨 심든지 메밀을 갈든지 할 요량이었다. 몇 차례 제초제를 쳤더니,이젠 그곳이 훤하다. 경험상, 들깨 모를 그러한 곳에다 심게 되면, 들깨 그늘에 치여 잡초가 나지 않곤 하였다. 그러나 내가 올해 그러한 사정으로 심어야 할 들깨밭 면적이 너무 넓은 관계로, 마음을 고쳐 먹게 되었다. 내가 이러한 결정을 한 데는, 엊그제 막걸리를 사 들고 내 농장에 방문한 ‘ㅇㅇ농약방’ 김사장의 조언(?)도 큰 몫을 차지한다. 그는 자기네 농약방에서 이런저런 제초제를 공짜로(?) 여러 병 가지고 나섰고,내 이웃 마을 ‘흥산리’ 자기네 개간지에 다녀왔다. 그는 대숲으로 우거졌던 자기네 밭에다 온갖 제초제를 혼합하여 살포했단다. 그는 그곳에다 7월께 ‘가을메밀’을 갈겠단다. 그 수확물도 수확물이지만, 아마투어 시인이기도 한 그는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을 생각해서라도 그렇게 하겠다는 거 아닌가. 참으로 흥미로운 발상이다. 농림학교 출신이며 농촌지도소(요즘은 줏대 없이 그 국적도 희미한 ‘농업기술센터’로 부른다.) 농촌지도사 출신인 그. 그는 아마투어 시인답다. 7월 중 가을메밀을 갈게 되면, 60일~100일만에 수확할 수 있는 ‘구황작물’이라는 게 아닌가. 사실 여러 해 전 나도 그 점을 알아, 이 ‘만돌이 농원’ 언덕바지에 메밀을 심은 바도 있다. 많은 이들이 그 메밀밭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은 바도 있다. 우리 내외는 그 메밀을 베어 털어서, 시골 맏누님댁에 갖다다 준 적도 있다. 누님은 그 메밀로 메밀묵을 만들어 정월 초 남매계취에 가져왔다. 이를테면, 우리 두 집은 기술제휴를 맺었던 셈이다. 그 메밀씨앗은 맏누님댁에서 가져왔던 것이고, 그 수확물 일부는 맏누님댁에 그렇듯 되돌아갔으니… .
나는 ㅇㅇ농약사 김사장의 기분을 너무도 잘 안다. 그가 무얼 말하는지조차도 알겠다. 그는 놀려 놓은 토지를 단순히 작물로 채우겠다는 뜻도 아니다. 부자인 그가 그 수확물로 재물을 삼으려고 그러는 것도 아님을 너무도 잘 안다. 그는 ‘메밀꽃 필 무렵’에 그 밭 메밀꽃 이랑에 숨어 지내고 싶다고 하였다. 그러다가 옛사랑이 어쩌다 길을 잃고 방황하다가 그곳을 지나면, 그녀의 손목을 잡아당겨 메밀꽃 이랑에 엎어지고 싶다고 하였다. 사실 그와 나는 새벽에 길에서 만나 ‘빈 속’에 막걸리를 몇 대포씩 마실 때 그러한 꿈을 이야기 하였다. 하여간, 너무너무 멋있는 발상 아닌가. 그가 잡초 무성한 밭에 제초제를 치는 이유는, 메밀을 재배하고자 함이며, 그 메밀 농사는 메밀꽃을 피우고자 함이며, 그 메밀꽃을 피우는 것은 첫사랑이 ‘길엇들기’를 비원(悲願)함이며, 그 비원은… .
이제 내가 나의 농장, ‘만돌이 농원’ 맞은편 언덕바지 최씨네 밭에다 제초제를 치는 진정한 내 속내를 알게 되었다. 나는 7월께 어디에서 구하든 메밀씨앗을 기어이 구해서 뿌릴 것이다. 어떠한 열악한 환경에도 싹을 틔우는 메밀. 나는 그 메밀이 자라 하얗게 무리지어 꽃 필 때를 기다릴 것이다. 나는 그 꽃밭에서 숨어 지내리라. 그러다가 내 고운 이가 혹 길 엇들어 경산시 지정 등산로인 그곳을 지나치면… . 아, 나의 비원이여! 진실로 말하건대, 내가 남의 묵정밭에다 제초제를 거듭거듭 치는 이유는, 그러한 것이다. 내 고운 이의 팬티에, 블래이지어에 메밀꽃물이 들든 말든 더 이상 내 알 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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