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신작

내가 제초제를 치는 이유는

윤근택 2014. 5. 20. 06:36

 

                내가 제초제를 치는 이유는             

 

 

 

  윤요셉 (수필가/수필평론가)

 

 

종종 나의 농장으로 찾아드는 아내한테서 곧잘 듣는 말이 하나 있다.   제발 일을 더 크게 벌리지 말고, 이녁 토지 800여 평만이라도 알뜰히 가꾸라는 잔소리다. 그러함에도 나는 아내 몰래, 남의 묵정밭 등을 잘도 얻어 보탠다. 그 밭들을 장만하는 데는 제초제가 명쾌한 답이라는 걸 너무도 잘 안다. 남들 보기엔, 잡목과 잡초가 무성하여 아무런 쓸모 없는 어설픈 토지이지만, 몇 종류의 제초제를 섞어서 분무기로 살포하면 이내 멀쩡해진다. 흔히 하는 말로, 몇 차례 확인사살까지 하고 나면, 작물을 곧바로 재배할 수 있게 된다. 이미 나의 수필 여러 편에서도 적은 바 있지만, 제초제는 생력농업(省力農業) , 힘 덜 들이는 농업의 총아(寵兒). 선택성 제초제, 비선택성(전멸) 제초제, 발아억제제, 이행성(뿌리에까지 약물이 옮겨가는) 제초제 등 종류도 다양하여, 작물에 따라 어느 하나를 골라 쓰거나 혼용하거나 하면 효율적이다.

공무원 출신인 일흔 중반의 그분이 갑작스레 세상을 떴다는 이야기를 들은 나. 그분의 부인한테 전화를 걸어,위로의 말과 함께 내 농장 맞은편 그 묘전(墓田)을 어떻게 하실 거냐고 은근슬쩍 여쭈어 보았다. 그랬더니, 윤과장(나의 택호임.)이 좀 부쳐달라고 통사정하였다. 사실 농사에 관한 한 반거들충이였던 그분. 그분 내외분은 일주일에 한 두 차례 그곳에 왔으나, 내가 이곳에 정착한 이후 내내 잡초와 잡목들이 활개를 쳤다. 이녁 조상들 두 위()의 묘와 그분 자신의 묘까지도 앞으로 묵히게 생겼기에, 매년 벌초를 해드리겠다고 하면서 못 이기는 척 응낙을 했다. 봄날,나는 그 밭에 심겨진 매실나무들을 강전정(强剪定)하는 한편, 하늘에 치솟은 반시(盤柴; 쟁반감)의 키도 과감하게 낮추었다. 물론, 잎 나기 전 황 소독도 빠뜨리지 않았으며, 그 이후에도 이미 두 차례 방제(防除)를 하였다. 현재까지 작황은 썩 좋은 편이다. 사실 나는 거기 심겨 있는 과수만을 본 것이 아니다. 묘 옆 100여 평 남짓한 공터에 탐이 났던 것이다. 잡목과 잡초가 들어차 있고, 굵은 돌들이 군데군데 박혀 있어, 곧바로 관리기를 몰고 가서 갈아엎을 형편이 못 되었다. 그래서 관리기 작업은 내년으로 일단 미루어 두기로 하였다. 대신, 거기에다 집중적으로 제초제로 때려(?) 잡초와 잡목 발본색원에 나섰다. 그리고는 그곳에다 들깨 모를 옮겨 심든지 더덕 모를 옮겨 심든지 메밀을 갈든지 할 요량이었다. 몇 차례 제초제를 쳤더니,이젠 그곳이 훤하다. 경험상, 들깨 모를 그러한 곳에다 심게 되면, 들깨 그늘에 치여 잡초가 나지 않곤 하였다. 그러나 내가 올해 그러한 사정으로 심어야 할 들깨밭 면적이 너무 넓은 관계로, 마음을 고쳐 먹게 되었다. 내가 이러한 결정을 한 데는, 엊그제 막걸리를 사 들고 내 농장에 방문한 ㅇㅇ농약방 김사장의 조언(?)도 큰 몫을 차지한다. 그는 자기네 농약방에서 이런저런 제초제를 공짜로(?) 여러 병 가지고 나섰고,내 이웃 마을 흥산리 자기네 개간지에 다녀왔다. 그는 대숲으로 우거졌던 자기네 밭에다 온갖 제초제를 혼합하여 살포했단다. 그는 그곳에다 7월께 가을메밀을 갈겠단다. 그 수확물도 수확물이지만, 아마투어 시인이기도 한 그는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을 생각해서라도 그렇게 하겠다는 거 아닌가. 참으로 흥미로운 발상이다. 농림학교 출신이며 농촌지도소(요즘은 줏대 없이 그 국적도 희미한 농업기술센터로 부른다.) 농촌지도사 출신인 그. 그는 아마투어 시인답다. 7월 중 가을메밀을 갈게 되면, 60~100일만에 수확할 수 있는 구황작물이라는 게 아닌가. 사실 여러 해 전 나도 그 점을 알아, 만돌이 농원 언덕바지에 메밀을 심은 바도 있다. 많은 이들이 그 메밀밭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은 바도 있다. 우리 내외는 그 메밀을 베어 털어서, 시골 맏누님댁에 갖다다 준 적도 있다. 누님은 그 메밀로 메밀묵을 만들어 정월 초 남매계취에 가져왔다. 이를테면, 우리 두 집은 기술제휴를 맺었던 셈이다. 그 메밀씨앗은 맏누님댁에서 가져왔던 것이고, 그 수확물 일부는 맏누님댁에 그렇듯 되돌아갔으니 .

나는 ㅇㅇ농약사 김사장의 기분을 너무도 잘 안다. 그가 무얼 말하는지조차도 알겠다. 그는 놀려 놓은 토지를 단순히 작물로 채우겠다는 뜻도 아니다. 부자인 그가 그 수확물로 재물을 삼으려고 그러는 것도 아님을 너무도 잘 안다. 그는 메밀꽃 필 무렵에 그 밭 메밀꽃 이랑에 숨어 지내고 싶다고 하였다. 그러다가 옛사랑이 어쩌다 길을 잃고 방황하다가 그곳을 지나면, 그녀의 손목을 잡아당겨 메밀꽃 이랑에 엎어지고 싶다고 하였다. 사실 그와 나는 새벽에 길에서 만나 빈 속에 막걸리를 몇 대포씩 마실 때 그러한 꿈을 이야기 하였다. 하여간, 너무너무 멋있는 발상 아닌가. 그가 잡초 무성한 밭에 제초제를 치는 이유는, 메밀을 재배하고자 함이며, 그 메밀 농사는 메밀꽃을 피우고자 함이며, 그 메밀꽃을 피우는 것은 첫사랑이 길엇들기를 비원(悲願)함이며, 그 비원은 .

이제 내가 나의 농장, 만돌이 농원 맞은편 언덕바지 최씨네 밭에다 제초제를 치는 진정한 내 속내를 알게 되었다. 나는 7월께 어디에서 구하든 메밀씨앗을 기어이 구해서 뿌릴 것이다. 어떠한 열악한 환경에도 싹을 틔우는 메밀. 나는 그 메밀이 자라 하얗게 무리지어 꽃 필 때를 기다릴 것이다. 나는 그 꽃밭에서 숨어 지내리라. 그러다가 내 고운 이가 혹 길 엇들어 경산시 지정 등산로인 그곳을 지나치면 . , 나의 비원이여!  진실로 말하건대, 내가 남의 묵정밭에다 제초제를 거듭거듭 치는 이유는, 그러한 것이다. 내 고운 이의 팬티에, 블래이지어에 메밀꽃물이 들든 말든 더 이상 내 알 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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