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신작

감을 깎다가

윤근택 2014. 11. 11. 20:51

 

감을 깎다가               

 

 윤요셉 (수필가/수필평론가)

 

    

    올해 감이 그야말로 감당이 불감당이다. 내남없이 대풍(大豊)인데다가, 나는 내 농장 밭 가장자리에 늘어 선 30여 그루뿐만 아니라 십 여 년째 남의 집 감나무밭 300여 평도 무상(無償)으로 부치고 있어, 감 농사로 따지자면, 대농(大農)에 해당한다. 따서 생감으로, 홍시용으로, 곶감용으로, 말랭이용으로 알음알음 내다 팔아도 팔아도 끝이 없다. 해서, 부득이 제법 값나가는 곶감·감말랭이 박피 겸용 기계까지 사와서 밤마다 새벽까지 감을 깎아대기까지 한다.

     오늘밤에도 그 반자동기계에다 감을 물리고, 감자깎기 채칼을 감의 그 매끈한 낯짝에 들이대서 사르르사르르 깎고 있었다. 벽시계를 올려다 보니, 새벽 세 시가 넘었다. 전동모터에 의해 빠르게 돌아가는 기계가 능률을 한껏 올려주기에, 지루한 줄을 몰랐던가 보다. 재빠르게 돌아가며 얇은 칼밥을 길게 대팻밥처럼 늘여놓는 감을 보노라니, 감이란 과일이 여느 과일과 퍽이나 다른 성질을 지녔다는 생각을 문득 하게 되었다. 요컨대, 깎으면 곶감이 되고 말랭이가 되지만, 그대로 오래도록 두면 홍시가 된다. 달리 말하면, 깎지 않으면 결코 곶감이나 말랭이가 되지 않는다는 점. 특히, 따다가 땅바닥에 떨어뜨려 멍든(?) 감은 그대로 두면 이내 물러터지지만, 그걸 얼른 깎아서 가을볕에다 내어 놓으면 물기가 말라 쪼그라들어 하다못해 감말랭이라도 얻게 된다는 사실. 나는 무슨 큰 발견이라도 한 듯, 감 깎기를 마감하고서 이런저런 연상(聯想)을 즐기게 된다.

     참말로, 감은 땡감 시절부터 여느 과일과 다르다. 그 피부가 두껍다기보다는 질긴 편이다. 그러기에 웬만한 병충(病蟲)도 피부를 통해서 침투하지 못한다. , 감꼭지나방 유충만은 감에 침투한다. 녀석들마저도 감에 침입하더라도 네 개의 리본 꼴인 감의 꽃받침과 화병(花柄 ; 감꼭지)이 맞닿은 부위로 파고 들어 가며, 그렇게 되면 그 열매는 감나무에 달린 채 홍시가 되고 만다. 사실 많은 이들의 상식과 달리, 나처럼 감 농사를 짓는 농가에서는 감꼭지나방으로 인해 나무에 달린 채 때 이르게 익는 홍시를 상품성 전혀 없는 과일로 본다. 나의 애독자들께서는 감의 그 독특한 피부를 통해, 한가지 사실을 얼른 유추해내실 것이다. 감은 여느 과일농사에 비해 농약살포를 덜 하리라는 점. 실제로, 감꼭지나방과 둥근 무늬 낙엽병 등만 때맞춰 한 두 차례 방제하면 된다. 어쨌든, 감은 피부가 독특하다. 홍시가 되어서도 그 피부는 하늘하늘 하기는 해도, 비교적 질긴 편이다. 어떤 이들은 그 얇은 막을 벗겨가며 알뜰히 홍시를 먹기도 한다. 그러한 물질을 큐티클(cuticle)이라고 한다. 규소(硅素) 내지 규산질 내지 유리로 보면 된다. 가장 쉽게, 아주 얇디얇은 유리질이 감의 표면에 발려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러니 빗물 침투도 아니 될뿐더러, 과일 속 물기도 밖으로 쉽게 빠져나가지 못하게 되어 있다. 나의 신실한 애독자들께서는 이 점을 통해서도 감이 저장성이 뛰어남을 유추해내실 것이다. 설령, 따서 노지(露地)에 모아두어도 빗물이 과일 속으로 스며들지 않을 거라는 것도 유추해내실 것이다. 위에서 이미 이야기했지만, 깎으면 곶감이 되고, 그냥 두면 홍시가 되거나 식초가 되어버리거나 한다. 나아가서, 감의 그 독특한 피부는 내가 밤마다 생감을 수고롭게시리 늦도록 깎아야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 나의 이야기는 점층(漸層)되어 간다. 감의 살갗을 깎는 걸 두고, 박피(剝皮)라고도 한다. 박피라면, 성형수술의 한 분야이기도 하며, 그 시술은 새롭고 고운 살갗이 돋아나도록 하는 것이지만 . 감의 경우는 전혀 다르다. 일단 껍질을 그렇듯 벗기기만 하면, 과일 속 물기가 까닥까닥 말라 들어간다. 대체로, 곶감을 깎기에 좋은 시기는 서리가 내리는 때다. 이는 우리 내외가 여러 해 경험한 사실이기도 하다. 밤낮 일교차가 심한 때에는 오히려 잘 마르기도 하지만, 얼었다 녹았다 하면서 당도를 더하기도 한다. 그 무엇보다도, 감 입장에서는 본의 아니게 보호막이 사라진 터라, 그 상처 부위에 기온이 높으면 곰팡이 등으로 오염되기가 쉽지만, 무서리와 된서리가 내릴 적에는 침입자가 얼씬도 못할 테니, 양질의 곶감이 된다. 감의 박피는 우리네 인간을 실로 이롭게 한다. 박피로 상처 입은 감은 자가치유를 한다는 것이, 그만 하얀 분()을 내어 놓게 되고, 말랑말랑해져 곶감이라는 주전부리가 잘도 되어 주니까.

     나의 이야기는 점입가경이 되어야 한다. 감의 껍질은 또 그렇다 치고, 내가 한때 무척 좋아했던 고스톱에서 껍데기도 꽤나 소중했다. 우리들간에는 이 말이 유행했다.

쌍피는 비행기를 타고 가다가도 내려서 먹는다.

사실 고스톱판에서 피(;죽정이)는 퍽이나 쓸 만 하였다. 일타쌍피(一打雙皮) 등은 신명나는 일이기도 하였다. 특히, 피바가지가 있어, 기본 피를 못 따왔을 적엔 승자한테 곱절로 억울하게 물어주어야 했던 기억. 하여간,고스톱판에서 알짜만큼이나 소중했다.

 감깎기’’로부터 출발한 나의 연상(聯想)박피쌍피를 거쳐 어느새 개혁(改革), 혁신(革新), 혁명(革命) 등에 닿았다. 여기서 말하는 은 두말할 것 없이 짐승의 피부 즉, 가죽을 이르는 말이다. 사실 무시무시한 말이다. 본디 지니고 있던 가죽을 벗겨, 전혀 새로운 사람, 새로운 짐승으로 만든다는 말이니 .  가죽을 벗겨 전혀 새로운 생명체로 만들되, 그 상처 부위에다 굵은 소금도 술술 치겠다는 의지까지 녹아 있는 말이 아니냐고? 사실 말로는 쉽지만, 의식이 말랑말랑한 아이들은 몰라도, 성인(成人)의 의식구조를 바꾼다는 것은 거의 힘들다는 게 정설(定說)이다. 그러기에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각종 정신교육 등은 효과가 거의 꽝이라는 거 아닌가. 그러함에도 우리네는 개혁이니 혁신이니 혁명이니 따위의 말을 즐겨 쓴다. 아마도 주체자의 희망사항을 그렇게 말할 것이다. 대신, 들소나 물소나 악어나 여러 야생동물의 가죽은 질겨서 곧잘 벗겨 말려 피혁제품으로 쓰게 된다. 사실 그렇게 가죽을 벗기는 것은, 개혁 등과 상관 없는 일이고 .

나의 연상은 이제 종착역인 환골탈태(換骨奪胎)에 닿았다. 어의적으로 풀이하자면, 뼈를 아예 갈아치우고, 어머니 뱃속의 태까지도 어찌해보겠다는, 아주 무시무시한 말이다. 살펴본즉, 환골탈태는 중국 남송(南宋) 승려 혜홍(惠洪) <<冷齋野話(냉재야화)>>에 최초로 소개된 말이란다. 환골탈태와 관련된 그의 글은 아래와 같다. 나처럼 문학인의 길을 걷는 이들한테는 아주 귀중한 글인 듯하여 다소 지루한 느낌 들더라도, 인용해 보도록 하겠다.

 <송나라의 대문장가 소식(蘇軾)과 함께 북송을 대표하는 시인 황정견(黃庭堅)이 이렇게 말한 적 있다.

()의 뜻은 끝이 없지만, 사람의 재주는 한계가 있다. 한계가 있는 재주로 무궁한 뜻을 추구하려 한다면, 도연명이나 두보라 해도 그 교묘함에 잘 이르지 못할 것이다. 뜻을 바꾸지 않고 자기 말로 바꾸는 것을 환골법(換骨法)이라고 하고, 뜻을 가지고 형용(形容)하는 것을 탈태법(奪胎法)이라고 한다.

 환골이란 원래는 도가(道家)에서 영단(靈丹)을 먹어 보통사람들의 뼈를 선골(仙骨)로 만드는 걸 말하며, 탈태는 시인의 사상이 마치 어머니의 태내에 아기가 있는 것처럼, 그 태를 자기 것으로 하여 시적 경지로 승화시키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환골탈태란, 선배 시인들이 지은 시구를 자기의 시에 끌어다가 쓰는 방법을 의미한다. 이는 시를 짓는 한 기법이다. 환골탈태를 잘 하려면 고인(古人)의 시를 많이 읽고, 전해오는 자료를 많이 수집하여 섭렵해야 하며, 항상 자구(字句)를 다루는 일에 정진해야 한다. 이렇게 꾸준히 노력하지 않으면, 자칫 모방이나 표절에 머물기가 쉽다.> - 이상 <<冷齋野話(냉재야화)>>에서.

, 이제 내 이야기 마무리할 단계다. 위에서 연상작용으로 주욱 얻은 그 모든 말들의 뜻은 다 잘 알겠는데, 참으로 실천하기 어렵다. 쌍피 먹기도 어렵고, 개혁 등도 실행하기 어렵다. 수필작가로서 환골탈태는 더더욱 어렵다. 하기야 보통 솔개는 40여 년 살지만, 벼랑 끝에 올라 부리를 스스로 바위에 부딪쳐 깨는 솔개는 회춘하여 70여 년 산다고 하니, 그들이야말로 환골탈태의 모상(模像) 아니겠냐만 . 어쨌든, 그런 것들 실천도 어렵지만, 그걸 더 이상 왈가왈부할 형편도 못 된다. 농부로서 코앞에 닥친 일부터 해야 하니까. 날마다 하늘을 쳐다보며 감따기도 어렵지만, 밤마다 내가 행하는 감 박피도 그 어떤 일만치나 어렵고, 지루하다는 것을. 사실 어제도 아내와 감으로 인해 한바탕 입씨름을 했다. 내리 사흘 동안 혼자서 아홉 그루의 감나무에서 감을 따서 무더기무더기 모아 두었는데, 자기 볼일 다 보고서 내 농장에 뒤늦게 방문한 아내가 딴에는 위로한답시고 투덜댔던 것이다.

어떻게 감당하려고 이렇게 많이 땄어요? 아직 된서리도 내리지 않건만 .

 겨울을 재촉하는 늦가을기운. 여차하면 얼려서 다 버리게 되니, 가능한 한 속히 감을 따서 이불 등으로 덮어두어야 하건만, 감나무에서 하나하나 개수를 세듯 아껴 딴다고 될 일이 절대 아니건만 . 어차피 생감으로나 홍시로나 판로(販路)도 한계에 닿았으니, 잘 간수해두었다가 겨울 내내 박피를 하여 감말랭이를 만든다고 누가 무어라 할까마는 . 하여간, 밤잠을 줄여서라도 감이나 매일매일 부지런히 깎을 일이다. 그러면 박피의 참맛을 제대로 알게 될 것도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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