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신작

담배모를 심고

윤근택 2015. 4. 25. 00:02

 

담배모를 심고

윤요셉 (수필가/수필평론가)

 

       오늘 저녁 무렵에는 담배모 50포기를 심었다. 관리기로 이랑을 짓고, 복합비료를 알맞게 뿌리고, ‘멀칭 비닐(피복 비닐)’을 깔고... 정성스레 담배모를 심었다. 내가 담배라는 작물의 모습을 다시 보게 된 것이 정말 얼마만인가? 그리고 그 몸서리나던 담배농사를 내가 이렇듯 다시 하게 될 줄이야! 해서, 인간은 그 근본을 바꿀 수 없는가 보다. , 팔자를 절대로 뜯어고칠 수가 없다는... .

      대체, 나한테 어떤 일이 그 동안 있어 왔냐고? 이제 차근차근 설명하기로 한다. 올해, 양력으로 정월 초하루부터 정부 당국은 담뱃값을 거의 100%에 가깝도록 인상하였다. 세상천지에 이런 일이! 내가 그나마도 기대했던 야당 소속 국회의원들조차 과거와 달리, 선명성이 없어, 투쟁심도 없어, 머저리같이 국회 본회의에서 담뱃값 인상에 헤헤동조를 했으니... . 그 인간들이 내세운 핑계거리는 우스꽝스럽기만 하다. 국민 건강 증진을 위해서라나? 그들은 언젠들 국민을 국민으로 제대로생각해 왔더냐고? 나는 작가인데다가 골초이다. 내가 즐겨 태우는 담배는 심플 클래식인데, 종전 2300원 하던 게 졸지에 4300원이 되어, 노후의 생계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게 이르렀다. 엥겔지수가 아닌, 니코틴지수(?)가 너무 높아졌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해서, 용단을 내릴밖에. 둘레에서는 나더러 입 모아 이참에 담배 끊으라 했으니, 아예 끊기로 용단을 내렸을 것 같은가? 천만의 말씀이다. 여름날까지는 부득이 비싼 담배 태우겠지만, 정부가 하는 꼴이 너무 얄미워서라도 담배를 더 태울 거라고 벼르게 된 것이다. 나는 일찍이 내 선친(先親)을 통해, 밑천 덜 들이고 잎담배를 말아 말똥담배로 태우는 방법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서, 유년시절부터 청년기까지 담배농사 수입으로 가족을 먹여 살렸던 내 양친의 잎담배 생산 과정을 너무도 잘 알기에, 너무도 생생히 동참했기에... .

       새해 벽두에 고향 청송의 진보엽연초조합에 전화를 걸어, 청송읍내 엽연초 생산자 조합원을 수소문하게 이르렀다. 사실 내 고향 청송은 내가 성인이 될 때까지는 담배 주산지였으나, 세월이 바뀌어 담배 재배 농가도 드물어졌다. 나는 용케도 몇몇 담배 재배농가의 연락처를 알아내게 되었고, 그들한테 일일이 전화를 걸어, 담배 모 50여 포기만 부쳐줄 것을 부탁했다. 그리하여 오늘 고향의 어떤 후배로부터 택배로 생광(生光)스럽게시리 담배모 50포기를 받은 것이다. 곧 여름이 되면, 내가 담배나무(본디는 다년생 목본류였으나, 우리나라에 들어와서는 일년생 초본류가 되었다.)에서 숙성된 잎을 차례로 딸 것이고, 그것들을 내 어린 날 모기에 뜯기며 관솔불아래서 그랬듯, 새끼에다 엮든지 하여 고추건조기에 넣어 발효시킬 것이고, 그리고는 급속히 고온으로 열건(熱乾)하여 그야말로 꾀꼬리처럼 노란 잎담배로 구워 낼 것이다. 그리고는 그 잎담배를 손바닥으로 비벼 바수어, 미리 사둔 장죽(長竹)에다 우겨넣을 것이다. 그때부터는 정부로부터 단 한 푼도 담뱃세 뜯기지 않을 것이다. 사실 엉뚱한 데 돈을 다 쏟아 붓고서 애꿎은 끽연가들한테서 담뱃세 명목으로 돈을 그러모을 궁리를 했던 당국자들.

      이제 담배에 관한 추억담을 내 신실한 애독자들께 소개할까 보다. 그러기에 앞서, 나는 공교롭게도 동양 유일한 학과라고 일컬어지는 연초학과가 존재했던 충북대학교 농과대학 임학과출신이다. 사실 연초학과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커트라인이 높아 부득이 가장 따라지(?) 학과로 알려졌던 임학과에 입학했다는 사실을 고백 아니 할 수가 없다. 어쨌든, 모교에는 연초학과가 있었고, 내가 특히 아직까지 친하게 지내는 이들 가운데는 연초학과 출신 동기생들이 많다. 그랬던 연초학과가 요즘은 특용작물학과로 이름이 바뀐 것으로 알고 지낸다. 다시 내 추억담으로 돌아간다. 나는 담배농사가 주력사업인 양친 슬하에서 자라났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온상에서 담배모를 키우는 일, 이식하는 일, 숙성한 담뱃잎을 찌는(따는) , 새끼에 담뱃잎 엮는 일, 건조실 이른바 황촛집(黃草-)‘달 대(새끼 끝을 매다는 자리)‘에다 매다는 일 등을 너무도 생생히 보았다. 아울러, 내가 큰형님 대신에 당번을 서서 불문[火門]을 열고 장작개비와 흙과 버무린 석탄을 넣기도 했다. 정말로, 잎담배 가공기간은 여름방학 기간과 겹쳐졌던 관계로, 우리 남매들한테는 차라리 여름방학이 없었으면 좋을 듯하였다.

      그렇게 애면글면 했던 담배농사. 그제나 이제나 정부 전매품(專賣品)이니, 납품 때에 등급을 판정하는 감정원(鑑定員)들의 횡포 대단하였다. 돈 아까워서 맥주라고는 단 한 잔도 못 마시던 내 아버지. 그러한 데도 당신은 눈이 말똥말똥한 새끼들을 생각해서, 그들한테 로비하기 위해 기생집에까지 갔다고 하니... . 그렇게까지 하며 아버지 당신은 당신의 열 새끼를 길렀지 아니 하냐고? 거기다가 당신의 아홉째 녀석인

       나를 4년제 대학까지 보내지 않았냐고? 오로지 담배농사 하나로 말이다. 담배 농사와 얽혀진 이야기를 하자면, 이 밤 꼬박 새워도 다 못할 것 같으니, 이 정도에서 줄이기로 하자. 대신, 본인의 고추벌레라는 작품이 있고, 인터넷에도 검색할 수 있으니, 나의 애독자님들께서 더 알고 싶으시면... .

      이번에는 담배에 관한 일반적인 사항이다. 끽연가들이 피우는 담배는 단순히 한 종류의 담배에서 얻는 게 아니라는 점. 담배는 크게 갈라, 황색종·벌리종(Burley)·터키종이 있다. 이들 종류를 알맞게 섞어야 담배가 제 맛이 난다는 점. 나라마다 제조회사마다 그 혼합비율이 다르며, 그것을 노하우로 여긴다는 사실. 그러한 걸 브렌딩(blending)’이라고 하는데, 그것을 각각 노하우로 여기며 남들한테는 전혀 공개하지 않는다고 한다. 다들 알다시피, 모든 음식물은 장만하는 손길에 따라 그 맛이 달라지는 법이다. 가장 기본적인 담배의 브렌딩은 이렇다. ‘여러 종류의 잎담배+ 설탕+ 글리세린 + 감초+ 코코아+ + .’ 사실 따지고 보면,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다. 만드는 이가 이런저런 맛깔스런 재료를 더 추가하면, 얼마든지 새로운 담배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지 않냐고? 만약에 만약에 내가 앞으로 현재의 50포기 담배를 길러, 그 잎을 따서 브렌딩할 작품(?)이 그 콧대 높은(?) 아니, 독점적인 한국담배임삼공사의 제품보다 우수하다면, 나는 돈방석에 앉게 되는 걸까? 실제로, 50 포기의 담배에서 수확할 씨앗만 하더라도 경산시 전역에 보급하고도 남을 만치의 수량이라는 사실. 담배씨는 겨자씨와 양귀비씨와 더불어 자잘하기로 유명하니까.

      기왕에 내친걸음에, 나 혼자만 피우기 위해서가 아닌, 대한민국 모든 끽연가들을 위해 새 담배의 씨앗을 만들어내고 말아? 어디 ’KT &G‘와 상품 경쟁을 해 봐?’

      유해물질이 1000여 종이나 함유되어 있다고 하는 담배, 백해무익하다고들 말하는 담배. 하지만, 담배재배 농가에서 자라났으며, 작가이며 애연가인 나는, 그렇게 말하는 이들의 일그러진 그 의식구조와 그 단안(單眼)을 몹시 못마땅하게 여긴다. 단언컨대, 담배는 내 어버이가 열심으로 재배함으로써 나를 이날 이때까지 양육한 작물이며, 내 괴로움을 달래준 작물이고, 나를 두고두고 고뇌케 하는 작물이다. 그러니 그 누구든지 유감 있으면 나 잡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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