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음악 이야기

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46)

윤근택 2015. 8. 28. 22:14

 

 

                          

                               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46)

                                                 - 칸타타(cantata)를 바침-

 

                                                                         윤요셉(수필가/문장치료사/수필평론가)

 

칸타타(cantata), 이는 이탈리아어 cantare에서 온 말이다. 노래하다는 뜻이다. 17~18세기 바로크 시대에 발전한 성악곡의 한 형식으로, 독창· 중창·합창과 기악반주로 이루어지며, 이야기를 구성하는 가사의 내용에 따라, ‘교회칸타타세속칸타타(실내칸타타)’로 대별된다. 작은 규모의 오라토리오라고 말하여도 된다. 이 칸타타는 어느 대가(大家)가 출현하여 200여 편을 적음으로써 절정을 이루었고,그가 세상을 뜨면서 사그라진 것으로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칸타타라고 하면, 금세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이전 나의 글, ‘오라토리오에서처럼, 독자님들께 흥미를 더해 드리고자 아직은 밝힐 수 없다.

그는 오로지 교회에서만 살다시피 했다. 오르간 주자(奏者)로서,성가(聖歌) 지휘자 즉, 칸토르[音樂長]로서 지냈다. 그는 서양 종교음악 불후의 명작으로 꼽히는, <<요한 수난곡>><<마태오 수난곡>> 등도 작곡하였다. 그는 불과 열 살이 되던 해 양친을 잃었다. 그의 이름은 시냇물이란 뜻이다. 전처(前妻)6촌 여동생과, 후처(後妻)인 음악인이 낳은 자녀들이 무려 스무 명이나 되는 이였다. 200여 년 6세대를 거치는 동안 그 집안의 후손들 가운데 예술가가 아닌 이가 고작 6명에 불과했던, 음악 명문가의 자제였다. 그는 당시 음악인 가운데 제법이나 장수한(?), 65세로 생을 마감하였고, 지병인 눈병(안과질환)으로 세상을 등진 것으로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과연 가능했을까? 고작, 루카복음 제429절인,(예수님)저희와 함께 묵으십시오. 저녁때가 되어 가고 날도 저물었습니다. 달랑 그 한 줄 가지고서 한 곡을 거뜬히 적을 수 있었다니! 그것도 coro, aria, choral, recitative, aria, choral 등 나름의 형식을 갖추어서 말이다. 사실 위에서 소개한 루카도 당시 시리아에서 잘나가던 의사였기는 하다. 그는 청진기와 메스를 던지고, 주님의 가르침에만 순종했던 사람이다. 그리하여 루카복음이 생겨났다고 하더라만 .

그는 세속에 물들지 않았던 사람이다. 그는 음악에 그 누구보다도 충실했던 사람이다. 충분히 퇴고되지 않은 악보를 남기지 않았다고 한다. 하기야 20여 편의 세속칸타타도 적긴 하였다. <<커피칸타타>>, <<사냥칸타타>>, <<농민칸타타>> 등이 그것들이다. 그는 경건하게, 평생토록 교회에서 살면서 오선지에다 오로지 신의 음성만 기록해 나갔다. 그의 후진들인 작곡가들은 저마다 특징지어지는 말이 있다. 모차르트는 아름다움, 베토벤은 강함, 슈베르트는 즐거움. 그는 특히 베토벤으로부터 우러름을 받았다. 그의 이름이 시냇물이었지만, 베토벤은 그를 일컬어 큰 강물이라고 하였다. 아울러, 베토벤은 그를 화성악의 아버지라고 했다. 도대체 그가 누구일까? 그는 바로 요한 세바스찬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이다.

바흐, 위에서도 소개했지만,그는 한평생 교회를 떠나지 않았고, 200여 편의 교회 칸타타를 적었다. 그 칸타타는 예수님의 생애와 관련된 작품들이다. 그 가운데는 이미 소개한 칸타타 제 6( 저녁이 되었으니 저희와 함께 머무르십시오)와 더불어, 4(그리스도는 죽음의 포로가 되어서),140(눈 뜨라고 부르는 소리 있도다), 147(마음과 입과 행동과 생명으로)은 많은 이들로부터 사랑받는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나의 애독자들께서는 바흐와 관련된 일화(逸話)를 인터넷 매체 등을 통해서라도 쉬이 접할 수 있을 터. 그러니 그것은 더 이상 나의 몫이 아니다. 다만, 그러한 거장(巨匠)주님이란 절대자가 없이는 한 줄의 악보도 쓸 수 없었다는 걸 주목하게 된다. 이 하찮은 글쟁이가 그나마 몇 줄 글을 적을 수 있다는 걸 감사 드린다. 이를 축복으로 여긴다. 나의 글짓기는, 속죄(贖罪) 내지 참회(懺悔)의 방편일 수 있다는 것도 감사드릴 따름이다. 이 모든 것 주님, 당신께 바쳐야겠다.

이제 경건한 맘으로 기도를 드려야겠다.

주님, 또 하루 해가 저물었습니다. 이 골짝 찾아오는 이는 없습니다. 주님, 비록 누추하나마 저희와 함께 이 곳에 묵으십시오. 감사하나이다. 아멘.

그리고 성모 마리아님께도 전구(傳求)해야겠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해 빌어주소서. 그들에게 바흐의 <<칸타타 제6>>도 들려주소서. 아멘.

 

 

(다음 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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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종합문예지이며 계간지인 <<自由文學>>에 뒤따라오며 시리즈물로 실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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