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신작

줄(5)- 아동기

윤근택 2017. 8. 22. 20:35

(5)

            -아동기-

 

 

                                                                                                  윤근택(수필가)

            (yoongt57@hanmail.net)                                                  

 

참말로, 그것은 줄이었어요. 끄나풀이었어요. 어떤 노인은 돋보기안경을 끼고 흔들의자에 앉아, 지난날을 회상하고 있어요. 쓸쓸하기만 한 전설을요.

 

집에서

 

아동기 노인은 이미 수필작가였어요. 노인의 어머니는 아침마다 당신 슬하의 열 남매 가운데 끝으로 붙은 세 아들을 깨웠어요. 여덟 번째 영택이,아홉 번째 근택이, 막내 수택이가 그들이었어요. 국민학교 저학년에 불과했던 형제들. 노인의 어머니는 핑계를 잘도 대었어요.

야들아, 이 에미는 이젠 눈이 침침해서 편지를 쓸 수 없대이. 이 에미가 불러주는 대로 받아 적으렴. 군에 간 느그 희야() 둘한테. ”

사실 이 노인의 어머니는 어깨너머로 국문을 익혀, 더러 받침은 틀렸어도 내려쓰기로 글도 꽤 잘 적는 분이었어요. 심지어 남의 집 사돈지(査頓紙)’도 대신 적어 주는 분이었어요. 돌이켜 보면, 지금 이 노인보다도 훨씬 젊은 50대 부인이었던 노인의 어머니.

그때 그 학동은, 어머니가 읊어주는 대로 받아쓰기를 참 잘 했어요. 형과 동생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치요.

경택아, 정택아, 니들 고향 들판에는 온통 황금물결이란다. 니들이 무척 그립고나. (중략) 군무(軍務)에 충실하고, 상관들 말을 잘 듣고 건강히 지내려므나. 고향에서 에미가.’

구성진 어머니의 목소리, 눈가에 맺히던 그 이슬.

참말로, 이 노인은 그때부터 작가가 될 소양을 그렇게 갖추게 되었어요. 어머니가 그렇게 가르쳐 준 노래는, 후일 이 노인이 삼십 대 초반 문단 데뷔작 우산으로 이어졌어요.

 

학교에서

담임선생님들은 국군장병 아저씨께편지쓰기를 숙제로 곧잘 내곤 했어요. 이 노인은 군대에 가 있는 두 형님을 떠올려, 그들한테 쓰는 기분으로 위문편지를 쓰곤 했어요.

다음날 수업시간에 선생님은 몇 몇 아이들을 차례차례 교단으로 불러내어 자기가 쓴 편지를 읽으라고 했어요. 내 이름은 부르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맨 나중에 선생님은 손에 든 편짓지를 치켜들고, 고개를 갸우뚱갸우뚱 하며 알 듯 말 듯한 말씀을 하셨어요.

여러분, 우리 반에 비양심적인 학생이 하나 있어요. 선생님이 아무리 생각해봐도 국민학생이 쓸 수 있는 글이 아니에요. 자기 누나나 형한테 부탁하여 써 온 것 같아요. ”

학급 전체는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그가 누구인지를 알아보려고 했어요.

선생님은 이 노인을, 편짓지를 든 손으로 가리키며 짧게 호출하셨어요.

윤근택. .”

윤근택 학생은 교단으로 불려 나갔어요. 대꾸가 가관이었어요.

선생님, 제가 잘 쓴 거도 아닌데요. 저는 그저 느낀 대로 제 가슴이 일러주는 대로 썼을 뿐인데요. ”

하지만, 그 아동은 자신의 편짓글을 친구들 앞에서 읽어 내려가자, 두 볼에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어요. 자기 글에 감동해서요.

흔들의자에 몸을 의지한 노인은, 그때의 일을 회상하며, 돋보기안경을 벗어 손수건으로 눈가의 이슬을 닦아요.

노인은 또다시 젊은이들한테 권유하네요.

자네들 말일세, 수필작가가 되려거든, 하여간 편지를 적어버릇해야 된다네. 그리고 자신이 적은 글에 자신이 감동해서 눈물 흘리지 않으면, 결코 남들을 감동시킬 수 없다네.”

노인은 여태 흔들의자에 몸을 의지한 채 옛 추억에 잠겨 있어요. 그건 참말로 질긴 인연의 끈이었어요. 문학과 인연의 끈이었어요.

 

작가의 말)

이 글은 곧 (6)’으로 이어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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