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치가 갈치 꼬리를 문다’
* 제 더듬이에 닿기만 하면, 이내 글이 되고 맙니다.
‘갈치가 갈치 꼬리를 문다’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음악 칼럼니스트)
문득, 그 시험문제인 ‘갈치가 갈치 꼬리를 문다’가 떠오를 줄이야! 거꾸로 셈해본즉, 그게 벌써 40여 년 전 일인데... .
대학 일학년 이학기 제대복학생이었던 나. 나는 그때부터 무려 13회 정도 경향 각처 언론계 기자 혹은 프로듀서 입사시험을 보게 되었다. 번번이 미끄러졌지만, 언제고 그 입사시험과목은 매력이었다. 국어, 영어, 상식, 논문(작문) 네 과목. 내 장기 과목인 국어와 작문이 둘씩이나 들어 있기에. 그러다가 ‘안동 MBC 프로듀서’ 시험에는 1차 필기시험에 합격하기도 하였다. 그때 국어과목 시험문제들 가운데에는 색다른 문제가 하나 들어있었다.
‘ 다음 예시처럼 우리 속담을 한자성어(漢字成語)로 고치되, 한자로 쓰시오.’
그래서 맞닥뜨린 문제가 ‘갈치가 갈치 꼬리를 문다’ , ‘나중 난 뿔이 우뚝하다’ 등. 나는 전자(前者)를 ‘自繩自縛(자승자박)'으로 쓰고 싶었으나, ‘繩’을 정확히 쓸 수 없어, 부득이 유의어(類義語)인 ‘同族相殘' 및 '同族相爭’이라고 적었다. 나는 후자(後者)를 ‘後生可畏(후생가외)’로 적고 싶었으나, ‘畏’가 이내 떠오르지 않아, ‘靑出於藍(청출어람) 靑於藍(청어람)’이라고 적었다. 젠체하며 덧붙이기까지 하였다. ‘청색은 쪽풀에서 물감을 얻되, 그 청색은 쪽빛보다 푸르다. 이때 쓰인 어조사 ‘於’ 앞의 것은 ‘시발격조사’이고, 뒤의 것은 ‘비교격 조사’다.’
그때 1차 필기시험 합격 후 2차 카메라 테스트 및 음성 테스트에 갔다가, 면접관이었던 그 회사 간부로부터 격려를 받기도 하였다.
“윤근택, 당신, 대단히 웃기는 사람이더군요. ‘취직방랑객’이라고요? 작문 채점하다가 당신 글 읽고 감동 먹었어요.”
사실 그 작문 제목은 ‘나의 좌우명’이었다. ‘나한테는 좌우명이 없습니다.’로 시작한 글. 취직방랑객이며 바퀴달린 가방을 끌고 전국을 쏘다니는 나한테 좌우명은 없으되, 나는 이 취직방랑이 끝날 때까지 굴하지 않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사실 나는 아직도 그때 내가 썼던 그 글 생생히 기억한다. 첫 수필집, <독도로 가는 길>에도 그 글 실었던 기억.
사설(辭說)이 길었다. 그때 내가 근사값이라고(?) 여기며 적었던, ‘갈치가 갈치 꼬리를 문다’에 해당하는 한자성어는, ‘同族相殘 혹은 同族相爭’ 임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그게 정답이었던 셈.
同族相殘, 세상의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의 숙명이라고 하니, 참으로 가슴 아픈 일.
‘나무위키’는 이렇게 친절히 알려준다.
<동족상잔은 동족끼리 서로 죽인다는 뜻이다. 동족혐오가 심해져 생기는 현상. 더 강화되면 동족을 먹는 동족포식이 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로 식인종이 있다.
사회학, 생물학계에서는 생활여건에 비해 자신의 동족이 많아지면, 동족상잔이 발생할 확률이 커진다고 본다. 일반적으로 동족상잔에서 죽는 쪽은 약한 유전정보를 가진 개체들 또는 종족보전이 어려운 개체들이고 살아남은 우수한 개체들이 장기적으로 종족의 번영을 이끌게 된다. 현대에는 유럽 및 영미권보다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동유럽, 이슬람 문화권, 태평양 원주민, 아메리카 원주민 사회에서 인명경시 풍조가 더 강한데다 약자 및 사회부적응자 솎아내기가 빈번하게 일어난다. 인구밀도가 동양이 높기도 하며, 공산화나 독재 등 인명경시 풍조가 있는 정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고대에는 자식을 인신매매 또는 비속살해하던 일이 비일비재했다. 하루에 한 끼도 먹기 어려운 시대였기에 매우 우수한 개체가 아니면 자식이여도 사람으로 여기지 않았다. (중략)
지배층들과 상류층들이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와 사회 통제, 그들 기준으로 부적격자에 해당되는 자들을 솎아내고 피지배층들과 하층민들의 불만이 자신들에게 집중되는 일을 방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피지배층들과 하층민들의 동족상잔을 유도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은 편이다.
인간, 동물 할 것 없이 거의 모든 동물들은 어떤 이유로든, 어느 정도의 규모로든 동족상잔을 한다.(하략)>
그러면서 ‘나무위키’는 우리네 인간들 동족상잔의 예를 열거하고 있다. 보신전쟁·아일랜드 내전·국공내전·러시아 내전·핀란드 내전·스페인 내전·그리스 내전·팔레스타인 내전·리비아 내전·시리아 내전·유고슬라비아 내전·이라크 내전·예멘 내전 등.
사실 그 많은 내전 가운데에서도 가장 비극적인 내전이 한반도에서 일어났으니... . 바로‘6.25 전쟁’. 현대 한국사회에서 ‘동족상잔의 비극’이라고 표현되는 대표적 사례라고 하고 있단다. 거기에 더해, ‘제주 4.3 사건’도 동족상잔의 비극. 제주도에서 군경에 의해 주민 수만 명이 사망한 최악의 참사.
자, 내가 이 글을 적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동양 어느 나라의 어리석은 유권자들은 자기네를 대표하는 수장(首長)을 5년마다 뽑되, 뽑고 나서는 이내 5년 동안 호된 대가를 치른다. 그러함에도, 또 어리석음을 반복한다. 정말로 그들은 ‘어린 백성’이다. 즉, ‘어리석은 백성’이다. 다 접어주더라도, 지정학적으로, 대륙국과 해양국에 꼽사리로 반도(半島)에 자리한 나라의 수장은 지혜로워야 한다. 자칫,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 그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말은 온 국민의 생명과 안녕에 직결된다. 사실 충청도분들한테는,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대단히 미안한 이야기겠지만, 하나 덧보태야겠다. 그분들은 말끝을 흐리는 경향이 있다. 내가 4년간 충북 청주에 자리한 ‘국립 충북대’를 다녔고, 그곳 학우들 말투에도 익숙해 그 점 잘 안다.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정립(三國鼎立)’의 시절, 고구려 군사가, 백제군사가, 신라 군사가 번갈아가며 창과 칼로 그분들 목을 겨누자, 잠시 생각에 잠겨, “그런 것 같기도 허구유~~.”다소 애매한 말투로 생명을 부지해왔다는, 믿거나 말거나 하는 전설. 그분들 나름의 훌륭한 생존전략이었던 셈.
동양의 어느 반도국 수장은 자못 ‘막가파’다. 그는 전혀 깊은 고뇌 없이 말폭탄을 내던지곤 한다. 힘도 없으면서, 강대국인 러시아와 중국한테 맞짱이라도 뜰 생각인지, 자극적 말을 마구 쏟아낸다. 화약을 거머쥔 북한의 애송이 지도자한테도 달랠 요량은 않고 부아를 돋운다.
이제 그에게 신신당부한다.
“당신도 내가 40여 년 전에 풀었던, 언론계 입사 국어시험문제에 한 번 답을 달아보시오. ‘갈치가 갈치 꼬리를 문다’를 한자성어로 적되, 한자로 적으시오.’ 아마 당신은 한자실력마저도 나 수준에 절대 못 미칠 터이니, 미국어로 적으시려나, 일본어로 적으시려나 모르겠소.”
작가의 말)
제 글을, 언제고 정말 관심 있게 꼼꼼 읽어주시는, 제 뮤즈께 바쳐요. 제 글 가운데에서 모자라는 점은 님께서 채우거나 고치는 등 님의 글로 편곡하여(?) 종이매체에 발표하시어도 개의치 않아요. 그리고 제발 아프지 마세요. 얼른 쾌차하시어, 많고 아름다운 수필작품을 지으시기를.
* 이 글은 본인의 티스토리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