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巖] (4)
바위[巖] (4)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음악 칼럼니스트)
이미 나의 수필작품들 여러 군데에서 내 ‘만돌이농장’을 소개하였다. 두 뙈기 밭 연면적 800여 평을 휘감고, ‘생기천(生氣川)’이란 개울이 사시사철 흐른다. 이 경산시와 청도군을 가르는 저기 선의산(仙義山;해발고도 759m)에서 발원하여 흘러내리는 개울이다. 개울에는 버들치·갈겨니·다슬기 등이 한가로이 노닌다.
나는 한낮이면 일복을 홀라당 벗고, 그 맑은 개울에 뛰어들어 멱을 감곤 한다. 멱을 감은 다음, 농막으로 돌아올 적에는 세숫대야나 광주리에다 편편하고 예쁜 돌들을 습관적으로 몇 개씩 담아오게 된다. 그렇게 담아온 돌들을 뜨락에 가지런하게 정돈하게 되는데, 본디 콘크리트바닥에서 돌바닥 마당으로 차츰 되어간다. 우리끼리만 이야긴데, 사실 나보다는 내 아내 ‘차 마리아님’이 ‘어머, 너무 이뻐!’호들갑떨며(?) 이러한 짓을 더 많이 하고 있다.
8미터 폭의 개울은 큰비가 온 다음, 모습이 조금씩 바뀌곤 한다. 특히, 개울바닥에 홍수 덕분에(?) 강제적으로 정돈된 돌들로 하여 새로운 모습이 되곤 한다. 어디서 숨어 지내다가 나타난것인지, 어디서 박혀 있다가 큰물에 뽑혀 나온 것인지, 맨질맨질한 돌들이 이쁘기만 하다. 본디는 더러더러 모도 나 있었을 터인데... . 억겁의 세월 동안 물살에 깎이고, 서로 부딪쳐 갈린[磨], 그야말로 연마된 수마석(水磨石)들.
혼잣말을 하게 되었다.
‘ 맞어! 그것들을 ‘수마석’이라고들 하였어! 내 젊은 날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울릉, 영덕, 울진 4년 여 물편에서 종종 보았던 그 이름답던 조약돌도 수마석들이었던 거야! 그것들도 풍파에, 세파에 시달려 그처럼 아름답게 변모했던 거야!’
문득, 고등학교 시절 익혔던 <지질학>의 ‘암석의 생성과정’ 단원이 떠오를 줄이야! 이에, 잠시 다시 복습.
‘화성암(火成巖)은 마그마가 지표나 지하에서 식어 형성된 암석. 변성암(變成巖)은 기존의 암석이 열과 압력을 받아 변화되어 만들어진 암석. 퇴적암(堆積巖)은 퇴적물에 쌓여서 굳어진 암석. 애초에 퇴적암은 존재치 않았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현재 지구의 75% 가량은 퇴적암. ’
내가 두서없이, 위 족보와 관련 없이 떠올리는 암석의 이름들도 더러 있다. 화강암·점판암·이암·장석·운모·현무암... .
다시 내 이야기는 본류(本流)로. 집중호우 등으로, 벌건 황톳물이 다리[橋脚]를 아슬아슬 넘어, 내 농토에 침수 피해를 입힐 지경에 이른 다음,‘뒷물’이 잦아들면, 개울바닥은 또 새로운 모습으로 변하곤 한다. 한마디로, 이쁘다. ‘우루루 쾅쾅’하던 그 소리와 함께 그 큰 바윗돌이 저기 상류 어디에서부터 떠내려 오는 동안 서로 부딪쳐 모가 떨어져나가고 깎이고 다듬어지고... . 그러한 숱한 과정을 통해 주먹돌, 조약돌, 복새(‘유기질이 풍부한 모래’를 이르는 우리 쪽 사투리임.)로 탈바꿈한다. 위에서도 잠시 이야기하였지만, 나는 수마석들 가운데서 납작납작한 돌들을 수시로 주워 와서 농막 앞마당에 까는가 하면, 농막 외벽 돌담을 고치곤 한다. 참으로 유용한 돌들.
개울에 나서서 그처럼 돌을, 마치 보물찾기라도 하듯 주워오면서, 나이 칠십을 바라보는 동안 놓쳤던 몇 가지를 생각하기도 한다.
첫째, 우리네 생애도 돌들의 변용(變容)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본디 모난 원석(原石)이었으나, 이웃들과 부대껴 모가, 즉 개성이 달아나고 풍화 내지 수마가 되어왔다는 점. 사실 항구불변의 존재는 이 우주 그 어느 곳에도 없는 법이다. 위에서 이미 밝혔듯이 바윗돌들도 ‘화성암 - 변성암 - 퇴적암’의 사이클을 그리며 변모하는 터에.
둘째, 살아가는 동안 깨어지고 닳고 깎이는 게 다 나쁜 것만도 아니라는 사실. 원석은 원석대로, 수마석은 수마석 대로 다 가치롭다는 것을. 더러는 수마를 겪으면서 자신도 몰랐던 옥(玉)이나 광물질을 남들한테 드러내 보여 뽑혀가기도 한다는 것을. 마치, 내가 때때로 주먹돌과 조약돌을 개여울에서 주워오듯.
끝으로, 바윗돌이 풍화되고 수마되어 잘게잘게 부셔져 나가는 과정이 남들한테는 이로울 수도 있다는 거. 이를 ‘옥쇄(玉碎)’라고 부르지 않던가. 즉, ‘부셔져 알알이 옥처럼 아름다움’을 일컫는 말. 전장(戰場)에서 장렬하게 죽어가는 걸 ‘옥쇄작전’이라고 하지 않던가. 우리네 삶도 그러할지니. 사실 돌이 부셔져 모래가 되면, 우리네 인간한테는 아주 이롭기만 하다. 그 모래와 석회암을, 바순 시멘트와 자갈과 물을 섞어 휘황찬란한 콘크리트 구조물을 만들지 않는가. 사실 우리네는 그러한 바윗돌들의 재구성 내지 재합성의 궁궐에서 산다. 바윗돌의 바스러짐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닳고 씻긴 황톳물은 강가에 이르러 삼각주를 이루고 퇴적옥토가 되어 경작지가 되고... . 거기서도 끝나지 않는다. 바다에 이른 바윗돌의 영혼들, 즉 부유물들은 침전되어 그 속에 머문 각종 미네랄과 원소들은 해양생명체들의 자양분이 된다.
요컨대, 우리네 생애도 바윗돌의 변용과 크게 다르지 않으리. 칠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이르러서야 이처럼 자연을, 자연스러움을 깨달아간다. 더욱 놀라운 깨달음은, ‘항구불변’은 이 우주상에 없다는 점. 하지만, 이 우주는 영속한다는 사실. 해서, 옛 그리스인들이 말했던,‘카오스(CHAOS; 혼돈, 무질서)’가 아닌, ‘코스모스(COSMOS; 일체로서 질서로운 우주)’의 믿음이 지극히 옳다는... .
틈만 나면, 안달부리지 말고 개울에서 새롭게 발견한 돌들을 주워 와서 농막 둘레 이곳저곳에 장식하리.
작가의 말)
이 연작물 다음 이야기는?
* 이 글은 본인의 블로그, 이슬아지 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