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신작

'나는 자연인이다'를 보다가

윤근택 2015. 9. 17. 23:41

 

 

 

                      나는 자연인이다를 보다가

 

 

                                                윤요셉(수필가/수필평론가)

 

 

      텔레비전 채널 가운데는 ‘mbn’도 있다. mbn 프로그램 가운데는 나는 자연인이다도 있다. 나는 그 프로그램을 비교적 자주 보는 편이다. 그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개그맨 겸 영화배우인 윤택이 넉살좋게(?) 출연자와 호흡을 같이 하는 현장연기도 늘 맘에 든다. 그의 이름 윤택이 한자로 尹澤인지 潤澤인지 정확히는 알 길 없다. 그가 작중(作中) 인물과 호흡을 척척 맞추어 제법 연령적 차이가 있음에도, “형님, 이곳에 들어오신 지가 몇 해 되세요?” 등으로 붙임성 있게 멘트를 날릴 적마다 참으로 매력적인 남정네임을 알게 된다. 내가 화면상으로 보기에는 전혀 맛이 없을 듯한, 매회 달리 하는 출연자 자연인이 손수 만든 음식이건만, “! 형님, 너무 맛있어요.”하며 소탈하게 웃는 모습은 더욱 맘에 든다. 아마도 그의 이름 윤택에서부터 호감이 생겨났으리라. 그의 본명이 尹澤이라면, 나의 성명인 윤근택(尹根澤)’에서 중간자 하나만 빠진 셈이니 오죽 하랴!

      그러나 내가 그 프로그램 진행자인 윤택을 치켜세우려 이 글을 쓰는 것은 결코 아님을 내 신실한 애독자들께서는 눈치 채셨을 터. 나는 그 프로그램 출연자들을 볼 적마다 느끼는 공통점이 몇 가지 있다. 우선, 그들은 수도자(修道者) 같더라는 거. 적게는 오년, 길게는 이십 년 산속 외딴 곳에서 홀로이 살면서 말 그대로 자연과 벗이 되어 자연 속 사물들과 대화를 나누더라는 거 아닌가. 다음은, 그들은 하나같이 철인(哲人)이더라는 거. 하루 이틀 숙식(宿食)을 함께 하며 진행자 윤택한테 툭툭가볍게 던져대는 말들이 하나같이 나름의 철학적 메시지가 담겨 있곤 하였다. 그것은 텍스트를 통해 익힌 것들이 전혀 아닌, 자연과 일체가 된 주인공의 소리였다는 점. , 그것은 책상맡에서 머리 짜내어 쓴 글이나 책이 아닌, 몸소 체험해서 얻은, 살아있는 말들이었다는 점. 다다음은, 그들은 하나같이 말을 너무도 조리정연하게 하더라는 점에 매번 놀라곤 한다. 실제로는 어눌한 이들도 있긴 하였으나, 그들의 말조차도 문장으로 따지면, 앞뒤 문장을 통해 화자(話者)의 정리정돈된 사고(思考)를 금세 알 수 있는 것들이었다. 끝으로, 그들은 공히 허튼 욕심을 부리지 않더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들은 거의 공통적으로 이런 말을 하곤 하였다.

      윤택씨(아우님), 이 깊은 골짝에서 농사를 하거나 약초를 채취한들 길이 멀어 내다 팔 형편도 못 되니, 그저 내 먹을 만치만! 그리고 새들과도 나누어 먹어야 하고, 벌레들과도 나누어 먹어야 하니 절반 이상은 남겨 두어야지요.”

      그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분들(아예 맨 처음에는 텔레비전에 자기 사는 모습 찍지 말라고 하는 이도 있었다.)은 좋게 말하면 자연스럽게, 자연의 이치대로 살아가는 자연인이기도 하지만, 나쁘게 말하면, 그들은 하나같이 사회 부적응자들이었다. 즉 세상을 등진 이들 같았다는 말이다.

      지금부터는 내 이야기다. 이따금씩 지인(知人)들은 나더러 그들 생활에 빗대 자연인이라고 부르는 예가 있다. 사실 내 생활이 그 프로그램 출연자들과 비슷한 점 영 없지가 않다. 산속 외딴 곳에다 컨테이너로 농막(農幕)을 짓고, 손수 흙벽이며 흙천정이며 붙이고, 손수 허튼고래구들을 놓고, 지게로 땔감을 져다가 군불을 지피고, 농사를 하고, 앞개울에서 일복 빨래를 손수 하고, 삼시세끼 밥을 스스로 짓고 반찬도 손수 마련하는 등. 그러나 나는 그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이들과 분명 다른 점이 있는데, 나는 세속적 욕망을 감히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거. , 그 세속적 욕망을 끝끝내 저버릴 수 없다는 거. 남들은 나를 두고 쉬이 이런 말을 한다. 심지어 간헐적으로 찾아드는 넷째 누님 내외도 곧잘 이런 말을 한다.

     처남, 자네야 돈 쓰일 일이 거의 없지 않은가. 늘 막걸리와 심플 클래식담배만 있으면 만족해 하니, 자네야말로 자연인이 아닌감? 더더군다나 농사하는 게 취미이니 돈 벌 일만 있고 ... .”

      그러면, 나는 곧바로 대꾸한다.

      매형, ‘2002 한일월드컵의 한국 팀 사령탑이었던 히딩크가 뭐라던가요? ‘나는 아직 배가 고프다.’고 하지 않던가요? 나도 마찬가지에요. 어쨌든 죽을 때까지, 싸 짊어지고 갈 수는 없다 해도 돈을 벌어야 해요.”

      나는 몸 아끼지 않고 나름대로 수익성 있는 작물이라 여기며 이런저런 작물을 벌써 13년째 농사짓고 있다. 하기야 내 인건비 따먹기에도 턱없이 모자라는 해마다의 수입이지만, 생업은 그 어느 종교보다도 거룩하다고 믿기에 죽는 날까지 농사를 할 것이다. 그 점이 그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분들의 생각과 결정적으로 다르다고 보면 옳다.

      내 세속적 욕망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문화니 문명이니 하는 것과 영영 담을 쌓지 않았다는 점. 승용차를 몰고, ‘한국전력을 통해 농사용 전기를 공급받고, 전통온돌에다 보조적으로 전기패널 장판을 깔고, 애독자들과 소통코자 인터넷을 하며, 농비(農費)를 벌충코자 어느 직장 경비실에 재취업하여 격일제로 근무하는 등 나름대로 역동성(力動性)을 지니고 있다.

      그렇더라도 생활을 가급적이면 단조롭게, 단순하게 하려고 하는 편이다. 이따금씩 시내 아파트에서 아내가 이런저런 반찬을 해다가 농막 안 냉장고에 넣어두곤 했으나, 그것조차도 낭비이고 성가신 일이라 여겨 사양했다. 해서, 요즘은 냉장고 안에는 넘치는 반찬이 없다. 꼭 필요한 만큼의 기본적 반찬이 들어있을 따름. 그리고 생활반경을 최대한 좁혔다. 농막을 중심으로 내가 부치는 전답(田畓)이 거의 다 있어, 직경 1킬로미터를 넘지 않는다. 격일로 출퇴근하는 직장도 농막으로부터 승용차로 15분 내외 거리에 있어, 차량 유류비도 최소화된 편이다. 채식(菜食)을 즐기는 관계로, 반찬비용도 콩나물값 외에는 크게 쓰일 곳이 없는 편이다. 그리고 문명을 좇는 나의 태도는 그 텔레비전에 나오는 자연인들과 정반대다. 나는 경운기, 관리기, 전동 분무기 등을 두루 갖췄으며 그것들을 적극 활용하여 농작물마다 농약 듬뿍’, ‘제초제 듬뿍을 실천하곤 한다. 그리하여 한 해 농약값만 하여도 50여만 원, 화학비료값만 하여도 일백여 만원 지출한다. 무공해, 무농약 작물이라고 자랑하는 텔레비전 속 자연인들이 부러운 게 아니라 오히려 게을러터진 사람들로 비쳐지곤 한다. 그들과 달리, 세속적 욕망을 깡그리 버릴 수 없는 나. 나는 어쨌든 수확량을 늘려 뭐니 뭐니 해도 money’가 되어야 한다고 굳게 믿는 사람이다. 훔치거나 빼앗거나 속이거나 하여 취하지 않는 한, 생업에 충실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해서, 나는 결코 자연인이 아닌 사회인이다. 사회인이되, 세속적 욕망을 한껏 지닌 사회인이다. 평소 내가 속한 여러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다소 소홀함 있다하더라도, 좋든 싫든 그들 구성원들과 기본적으로는 부대껴야 한다는 것을.

       내 세속적 욕망 가운데서 가장 덩치가 큰 것을 들라면, 수필가로서 그 이름을 보다 많은 독자들한테 각인(刻印)하고자 하는 욕망일 테지! 이를테면, 입신양명(立身揚名) 가운데 후자인 양명(揚名)을 중시하는 사람. 기왕지사 인간으로 아니, 사내로 태어났다면, 양친께서 지어주신 내 이름 윤근택만이라도 이 세상에 그 어떤 방식으로든 떨치고[]’ 가야하지 않겠냐고?

       다시 한 번 힘주어 밝히건대, 나는 결코 자연인이 아닌 사회인이다. 평소 내가 속한 여러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다소 소홀함 있다하더라도, 좋든 싫든 그들 구성원들과 기본적으로는 부대껴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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