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말, '에멜무지'
아름다운 말,‘에멜무지’
윤요셉(수필가/문장치료사/수필평론가)
우리말 가운데에서 ‘시나브로’와 더불어 이처럼 아름다운 말이 있다니, 새삼 놀랍기만 하다. 두루 아시다시피,‘시나브로‘는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을 뜻한다. 살아생전 내 아버지가 다음과 같이 아주 종종 쓰던 말이기도 하다.
“야들아,‘에멜무지’로 산토끼 철사올가미를 밭둑 울타리에다 놓아 보거라.”
‘에멜무지’는, 주로 ‘에멜무지로’로 쓰이는 말이다. 다시 살펴본즉, 내 아버지가 의도하던 뜻,‘헛일하는 셈 치고 시험 삼아’외에도 ‘단단하게 묶지 아니한 모양’도 뜻한다. 사실 나도 살아생전 내 아버지한테서 배워 “에멜무지로 ... .”라는 말을 이웃들한테 자주 하는 편이다. 그때마다 내 말을 듣는 상대가 무슨 뜻인지 몰라, 되묻는 수도 있다.
요컨대, “야들아,‘에멜무지’로 산토끼 철사올가미를 밭둑 울타리에다 놓아 보거라.”에 모든 의미가 녹아 있다. 농작물을 해치는 산토끼를 철사올가미로 잡으면 요릿감으로 금상첨화(錦上添花)이겠지만, 막상 잡히지 않더라도 녀석들을 한바탕 혼내줌으로써 농작물에 더 이상 범접(犯接)하지 못하게 할 터이니... .
이 ‘에멜무지로’와 비슷한 뜻을 지닌 말도 있긴 하다. ‘밑져 봐야 본전!’이란 말.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에멜무지로 행하는 일들이 의외로 많다. ‘에멜무지로’는, 무료하게 지내느니보다는 뭔가 일을 저질러야 한다는 교훈도 담긴 어휘임에 틀림없다. “노느니 염불!”이란 말도 “에멜무지로!”와 제법 통한다. 아니 가느니보다는 설령 후회할지라도 앞으로 걸어가 보는 게 남는 장사다. 그러는 것이 자못 진취적(進取的)이라는 거. 이 ‘에멜무지로 행함’은, 그 얻게 됨이 ‘일거양득’ 내지 ‘일석이조’에는 못 미친다할지라도, 참으로 남는 장사다. ‘일확천금’에는 턱에도 못 미치지만, 참으로 남는 장사다.
반면, 일생일대 모두를 건 도박을 일컫는 말이 있다. ‘건곤일척(乾坤一擲)’이 바로 그것이다. 그 말의 유래도 흥미롭다. 항우는 유방과 화평을 맺고 천하를 둘로 나눠 가진다. 홍구에서 서쪽은 유방(한나라)이, 동쪽은 항우(초나라)가 나누어 통치하기로 했다. 유방은 장량과 신평의 책략에 따라 그 약조를 어기고 한신, 팽월의 군사와 함께 항우를 해하에서 무찌르고 천하의 패권을 잡는다. 후일 당나라의 대문호 한유(韓愈)가 격전지였던 홍구를 지나다가 다음과 같이 회고시를 읊었다고 한다.
‘ 용은 피로하고 호랑이는 지쳐/ 강을 사이로 땅을 나누니/ 억조창생들의 목숨이 보존 되는구나/누가 군왕이 말머리를 / 돌릴 수 있도록 권할까 /정녕 천하를 걸고 겨루었던가 (眞成一擲賭乾坤)//’
‘건곤일척’이면, 오버랩되는 장면이 있다. 바로 우리네 전통놀이인 윷놀이. 우리는 명절 때에 온 가족이 모여 편을 가른 후 윷놀이를 하곤 한다. 같은 편의 누군가가 네 개의 윷가락을 잡고 하늘 높이 던져 올리면, “모야! 모야!”일제히 소리치곤 한다. 한편, 반대편 사람들은,“뒷또(뒷도)!뒷또!” 하며 약을 올리곤 한다. 어쨌든, 윷놀이도 ‘건곤일척’임에 틀림없다. 그렇더라도 그 윷놀이는 신나는 ‘놀음’이였다. 결코 ‘노름’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런데... 일전 나는 비보(悲報)를 접했다. 내 지난 직장의 한 기수 입사 후배였으며, 평소 나를 잘 따르고 좋아했던 ‘권OO’과장. 그가 죽었다는 소식이었다. 그는 지난 봄 명예퇴직을 하였고, 몇 해 전 나처럼 적잖은 명예퇴직금도 일시에 탔을 터인데... . 주식(株式) 장난질(?)을 하다가 그야말로 한방에 온 재산 다 날려버리자, 스스로 하나뿐인 그 고귀한 목숨을 끊었다지 않는가. 세상에! 평소 항우 장수처럼 뱃심도 두둑하고, 내가 그를‘(배)뽈록이’라는 별명까지 지어 불었건만... . 나는 여태 정말 이해가 가지 않는 게 있다. 자본주의 사회의 뿌리다시피하는 ‘주식회사’형태가 과연 정의로운 제도인가 하고서. 또, 나는 그 많은 경제학자들의 이론이 과연 온당하냐고 의심을 품곤 한다.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는‘권OO’. 사실 그도 그 알량한 학문을 무기로 삼아 주식에 뛰어들었을 테니... . 수많은 이들을 건곤일척하게 하고, 노름꾼으로 만들며, 일확천금만을 노리게 하는 그 제도. 귀신도 그 결과를 알 수 없다는 그 노름판에 온 세계민을 끌어들이는 그 제도가 과연 앞으로도 이 지구상에서 지속되어야 할는지. 국가가 들어 그렇듯 큰판으로 벌린 도박판은 괜찮고, 동전 따먹기 수준의 개인간의 노름판은 처벌하는 것도 좀 우습고. 괜한 푸념이다.
다시 내 이야기 ‘에멜무지로’에 충실코자 한다. 나는‘도’가 나와도 좋고 ‘개’가 나와도 좋은 윷판을 생각한다. 해서, “도나 개나... .”가 마냥 좋기만 하다. 얼마 아니 지나지 않아 회갑을 맞게 될 나. 본디도 그러했지만, 앞으로도 허튼 물욕(物慾)을 부릴 하등의 이유가 없다. 해서, 에멜무지로 농사를 지으면서 여생을 이어갈 것이다. 참말로,‘에멜무지로’는 아름다운 순우리말이다. 결코,‘에멜무지’는‘에나멜[enamel;琺瑯(법랑)]’에서 온 말이 아니다. 에나멜은 도료(塗料)를 한 꺼풀 입히는 걸 이르지만, ‘에멜무지로’는 그렇지 않다. 다시 말하거니와, 무리한 욕심 부리지 않고 무언가를 한번 시도(試圖)해보는 걸 이르는 말이니, 이 어찌 아름답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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