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신작

겨울 나그네

윤근택 2017. 8. 28. 18:27

겨울 나그네

윤근택(수필가)

 

오솔길을 홀로 걸어요. 길섶에는 한국전력의 전주가 일정 거리씩 늘어서 있어요. 그렇게 늘어선 전주는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악보의 마디어요. 그 전주 사이에는 굵고 까만 전선이 여러 가닥 마치 삶에 지친 듯 쳐진 모습으로 매달려 있어요. 그건 영락없이 오선지여요. 그 오선지를 지탱하는 쟁반만한 사기애자들. 그것은 낮은음자리표여요. 나는, 나는 이 악보상의 마디와 오선지를 멀찍이 쓸쓸히 쳐다보며 걸어요. 마을 어귀까지 그렇게 걷다가, 그 오선지 위에서 새까만 음표를 보았어요. 까마귀들이었어요. 영락없이 슈베르트 연가곡(連歌曲) ‘겨울 나그네’ 24곡 중 제 15번 곡까마귀의 악보였어요.

나는, 나는 그 노랫말을 상기해요.

마을에서부터 나를 따라오는/ 까마귀 한 마리/ 지금 이 순간에도/ 내 머리 위를 맴도네/ 까마귀여, 불가사의한 짐승이여/ 내게서 떠나지 않으련?/ 혹시 내 육신을 먹이로 삼으려는 건 아니겠지?/ 이제 나는 지팡이에 기대어/ 더 이상 걸을 수도 없어/ 까마귀여 내가 죽을 때까지/ 충실함을 보여다오//

 

30세의 슈베르트는, 21세의 시인 빌헬름 뮐러가 적은 연시(連詩)에다 곡을 붙여나갔어요. 31세로 생을 마감한 슈베르트. 그는 말년에 그렇듯 길을 떠났어요. 자신이 겨울 나그네가 되었어요. 그는,

안녕- 풍향계- 얼어붙은 눈물- 곱은 손- 보리수 - 넘쳐흐르는 눈물- 냇가에서- 회상 - 도개비불- 휴식 - 봄의 꿈 - 고독- 우편마차 - 흰 머리 - 까마귀 - 마지막 희망 - 마을에서 - 폭풍의 아침 - 환영(幻影) - 이정표 - 여인숙 - 용기- 환영(幻影)의 태양 - 거리의 악사 등을 차례차례 만나게 되어요. 21세의뮐러, 모르긴 하여도, 자신의 이야기를 시로 적었을 것 같아요. 그는 실연을 당하고, 애인의 창가에 가서 굿 나잇!’ 하며 메모지를 붙여 작별을 고한 후 그렇게 겨울 나그네가 되었을 거여요. 30세의 슈베르트는 살이가 매우 궁핍했고 매독과 장티푸스로 병들어 있었다지 않아요. 굶고 병들어 이듬해 죽었다는 게 정설이데요. ‘뮐러의 그 시에 빗대서 자신의 운명적인, ‘세상으로부터 실연을 그 슬프디 슬픈 겨울 나그네로 적었던 거 같아요. 나는, 수필작가인 나는, 61세 환갑에 이른 나는, 뮐러에 이어 슈베르트에 이어 겨울 나그네가 되어 이처럼 길을 걸어요.

그 불쌍한 슈베르트를 다시 생각해요. 그는 그 짧은 생애에 가곡만 하여도 무려 650곡이나 적었다는 거 아녜요. 수줍음이 많고, 키가 작았대요. 그는 자신이 적은 곡을 아주 친하게 지내는 몇몇한테만 보여주곤 했대요. 키가 작아 군대 징집에도 면제되었다던 그. 그는 살아생전 자신의 세상 고별사와도 같은 그겨울 나그네의 연주도 들어보지 못했다고 해요. 그는 죽음을 목전에 두고, 너무 슬퍼했대요. 자신이 너무도 존경했던 베토벤이 1827년에 사망했기에요. 슈베르트는 그로부터 채 2년도 지나지 않은 1828년에 눈을 감았어요. 그러기 전 베토벤도 죽음 직전에 탄식했대요.

왜 좀 더 일찍 슈베르트를 알지 못했을까?’ 슈베르트, 그는 유언을 남겼어요. 자기도 베토벤 무덤 옆에 묻어달라고요. 친구들은 그의 유언을 따랐어요.

후일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들이 그의 무덤가에 묘비를 세웠어요.

음악은 여기에 풍려한 보배와 그보다 훨씬 귀한 희망을 묻었노라. 프란츠 슈베르트, 여기 잠들다.’

슈베르트, 그는 슬픔을 사랑했던 예술가 같아요. 살아생전 이런 말도 남겼어요.

나의 작품은 음악에 대한 나의 이해와 슬픔을 표현한 것이다. 슬픔으로 만들어진 작품이야말로 세상을 진정 행복하게 하리라고 생각한다. 슬픔은 이해를 돕고 정신을 강하게 한다.’

나는, 61세의 나는, 30여 년째 수필작가로 행세하는 나는, 홀로 길을 걸어요.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 악보인 오솔길의 전주와 전주 사이에 걸린 오선과 음표들을 따라 걸어요. 슬퍼요. 꼭히 그 누구라고, 그 무엇이라고 밝힐 수는 없으나, 잃음으로 하여 슬퍼요. 저 낮은음자리표와 d단조의 선율을 따라 걸어요. 이어서, 슈베르트, 그의 또 다른 명작인 현악 4중주 죽음과 소녀의 선율도 귓전에 들려요. 2악장이 환청처럼 들려요.

맞아요. 그의 말이 맞는 거 같아요. 나는, 나는 그의 말을 패러디 해 봐요.

나의 작품은 문학에 대한 나의 이해와 슬픔을 표현한 것이다. 슬픔으로 만들어진 작품이야말로 세상을 진정 행복하게 하리라고 생각한다.’

, 사랑했던 나의 임이시여! 애지중지했던 나의 임이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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