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신작

'식별'에 관해

윤근택 2018. 11. 18. 02:11


                                           '식별(識別)’에 관해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일전 어느 애독자한테, 내가 손수 접붙인 능수매화 묘목을 몇 그루 부쳐드리겠다며, 이런 내용이 담긴 e메일을 부친 적 있다.

   <(상략)그리고 또 하나. 꽃이 붉으면 홍매, 꽃이 희거나 파란 빛을 띠면 청매. 물론, 그 가지의 속도 그런 빛을 각각 띤다는 거 아녜요. , 그 근본은 못 속인다는... . 주기(朱記)된 부분이 수필작품으로 가면, 철학이며 중심사상이고 주제겠지요?(하략)>

    막상 그런 편지를 부치고 나니, 문득 벌써 40여 년 전에 전공필수과목으로 익힌 수목학(樹木學)’앞 부분, 즉 총론에 적혀있던 학술용어가 떠오른다. ‘분류(分類)’식별(識別)’이 그것이다. 분류란, 수목(사물)을 종류에 따라 가르는 걸 일컫는다. 다들 알다시피, 분류의 계제(階梯; stage; step)>>>>>이다. 분류의 대가(大家)는 린네(Carl von Linn'e,1707~1778,스웨덴)였다. 그는 이른바 이명명법(二命名法,이를 학명이라고도 한다.)을 창안했다. ‘소나무를 하나의 예로 들어본다.

Pinus densiflora Siebold et Zuccarini’.

‘ Pinus ’산에서 자라는 나무란 뜻을 지닌 속명(屬名),‘densiflora’는 종명(種名)을 각각 나타낸다. 이탤릭체로 쓰게 된다. ‘Siebold et Zuccarini’는 이 종()을 최초로 발견하여 명명한 이들의 이름이다. ‘Siebold’ 외에도 더 있었다는 뜻이다. 덤으로, 내 신실한 애독자들께 린네의 흥미로운 일화(逸話)를 들려 드리겠다. 그는 식물이름 최초 명명자를, 하도 많아‘Linne’로만 모조리 쓰지 않았다는 사실. 자신한테 평소 인심 써준, 이웃들의 이름도 최초 명명자로 종종 넣어줬다고 한다.

   그건 또 그렇다 치고... . ‘수목학은 식별이 중심이 된 학문이라, 우리는 꽤나 헷갈렸다. 요즘도 마찬가지다. 오죽했으면 내가 이미 써서 인터넷 매체에 올린 감자 이야기란 수필에 이렇게 적었겠는가.

 

  ‘(상략) 감자에 관해서 내가 요즘도 헷갈리는 게 하나 있다. 감자가 변한 줄기이고 고구마가 변한 뿌리인지, 감자가 변한 뿌리이고 고구마가 변한 줄기인지 헷갈린다는 말이다. 사실 중학교 입학시험(당시는 중학교도 뺑뺑이가 아닌 입학시험제였다.)을 앞두고 자연이란 과목의 모의고사를 볼 적이면 늘 그 문제가 나왔던 기억. 이는 마치 칡[]과 등나무[]를 함께 심으면 서로 엉켜 둘 다 말라죽는다는 데서 비롯된 갈등(葛藤)’만치나 헷갈린다. 칡과 등나무는 각각 ‘(줄기)왼감기‘(줄기) 오른감기의 습성을 지녔는데, 왼감기가 칡인지 등나무인지, 오른감기가 칡인지 등나무인지 그때그때마다 잊어버린다는 거 아닌가. , []이 왼쪽에 달린 놈이 광어인지 도다리인지, 눈이 오른쪽에 달린 놈이 도다리인지 광어인지 헷갈리듯이. 이처럼 비슷한 사물 둘의 식별요령을 아주 명쾌하게 가르쳐준 이가 있으니... .

아동문학가 고() 권태응(權泰應) 선생이다. 그분은 일본 강점기에 저항시를 적게 되는데, 바로 <감자꽃>이 그것이다.

 

    자주 꽃 핀 건 자주 감자

    파보나 마나 자주 감자

    하얀 꽃 핀 건 하얀 감자

    파보나 마나 하얀 감자

 

    그 동시를 구구이 풀이할 것도 없다. ‘왜놈의 씨는 왜놈이 될 것이요, 회색분자는 회색분자요, 백의민족은 백의민족이다.’로 요약하면 마뜩하다. (하략) (이상은 본인의 수필작품 감자 이야기에서 따옴.)>

  *‘전문 읽기는 아래를 클릭하세요.

                            '감자' 이야기

                 윤근택 감자이야기 윤근택(수필가

 

   이제 내 이야기는 다시 일전 어느 애독자이며 여류수필가인 분한테 띄운 e메일 내용으로 돌아간다.

  ‘꽃이 붉으면 홍매, 꽃이 희거나 파란 빛을 띠면 청매. 물론, 그 가지의 속도 그런 빛을 각각 띤다는 거 아녜요. , 그 근본은 못 속인다는... .

   다시 생각해 보아도 내가 그 편지에서 제대로 적은 듯하다. 봉숭아도 마찬가지다. 그 줄기가 붉은 빛을 띠면 붉은 꽃을 피운다. 그 줄기가 흰 빛을 띠면 흰 꽃을 피운다. 나는 경험적으로 그걸 알 수 있었다. 참말로 신기한 일. ‘나물 날 곳은 잎새부터 안다.’와 겹쳐지는 사실 아닌가. 더욱 신기한 것은, 똑 같은 자양분을 토양으로부터 빨아올림에도, 어느 봉숭아는 흰 꽃, 또 어느 봉숭아는 붉은 꽃을 피운다는 거. 해서, <<華嚴經>>에 이렇게 적고 있는가 보다.

   ‘蛇飮水成毒 牛飮水成乳(뱀이 물을 마시면 독이 되고 소가 물을 마시면 젖을 이룬다).’

   그런가 하면, 한 때 유행했던 말, ‘신토불이(身土不二)’도 다시 떠오른다. ‘몸과 땅은 둘이 아니라는 뜻으로, 자신이 사는 땅에서 나는 것을 먹어야 체질에 잘 맞는다는 말이다. 의학자들은 곧잘 이를 뒷받침하는 말을 하곤 한다. 가령 노란 빛을 띤 과일을 오래도록 많이 먹게 되면, 일시적이기는 하나, 노란 얼굴빛을 띠게 된다는 식의 이론.

   자, 두서없는 나의 이야기 이제 정리해야겠다.내가 대학시절 익힌 수목학에서는 분류와 식별이 주를 이뤘다. 그러한데 달포 전 분류와 식별을 제대로 못하는 직장동료들 셋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 나와 마찬가지로 천주교인들이었다. 피아(彼我)도 분류치 못한 채, 식별도 못 한 채, 아주 사소한 말 실수와 아주 사소한 행동 실수로 나를 곤경에 처하도록 했다. 특히 그들 가운데 하나는, 그야말로 피아 식별 없이 총기난사, 아니 언행난사를 저질렀다. 그것이 야수(野獸)한테 빌미를 줬다. 해서, 나는 결정타를 맞고 억울하게 아파트 경비원에서 소명(昭明) 기회도 없이 해고를 당했다는 거 아닌가.

그러하지만 위에서도 이미 밝혔듯,‘그 근본은 못 속이는 것이니... . 한마디로, ‘나는 그래도 괜찮다.’.

 

   작가의 말)

   예기치 않았던 한 편의 글을 거뜬히 적게 되었다. 내가 일전에 어느 애독자한테 부친   편지 내용에 적혀 있었던 한 구절로 하여... .

   어쨌든, 그 애독자한테 고마움을 전한다. 해서, 그분께 이 글을 헌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