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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줄(3) - 청년기
    수필/신작 2017. 8. 20. 21:28

    (3)

    -청년기-

    윤근택(수필가)

    (yoongt57@hanmail.net)

     

     

    참말로, 그것은 줄이었어요. 끄나풀이었어요. 어떤 노인은 돋보기안경을 끼고 흔들의자에 앉아, 지난날을 회상하고 있어요. 쓸쓸하기만 한 전설을요.

     

    청년기

     

    대략 일생을 이렇게 구획한다는 거 아녜요. 초년은 0~19, 청년은 20대 전후, 중년은 30~49, 장년은 50~69, 말년은 70세 이상.

     

    노인은 청년기에도, 초년기에 이어 예술가적 기질을 유감없이 보여주었어요. 꼭히 그 외모가 이뻐서가 아니라 개성적이고 인상적인 아가씨면, 요즘 젊은이들이 즐겨쓰는 말로 ‘feel이 꽂혀줄기차게 연애편지를 써댔어요.

    대학 일학년 때

    그는 속리산에, 대학 동기생과 함께 등산화도 아닌 구두를 신고 오른 적 있었어요. 등산길에서 만난, 저 부산의 빨간 재킷아가씨한테 졸라 주소를 기어이 건네받았어요. 두 살 위인 아가씨였어요. 그때 그 청년은 그 인연의 끄나풀을 부여잡고 군대생활 3년을 포함해서 무려 4년여를 연애편지 주고받기를 했어요. 그 아가씨야말로 노인의 첫 애인이었던 셈이어요. 그 아가씨는 노인이 수필가가 되는 데 크나큰 영향을 끼쳤어요. 노인은 당시 종종 들려주곤 했어요.

    자기, 후일 아이들 손을 잡고 시장에 나섰다가 문득 내가 생각나면, 서점에 들러봐. 혹시 거기서 나의 시집이 보이거든 한 권 사서 시장바구니에 담아가서... .”

    참말로 말이 씨가 되었어요. 그녀는 부산의 유명서점에서, 그 노인의 젊은 날 시집이 아닌 수필집을 한 권 사서 밤새껏 읽었다는군요. 그녀는 본인의 비자금을 무려 1백만 원씩이나 출판 부조금(扶助金)으로 부쳐온 바 있어요. 지금은 어디에서 무얼 하며 사는지 모를 그녀. 그녀도 이 노인만치나 늙었겠지요.

    대학 일학년 이학기 복학 이후

    이 노인은 미술학과 여대생 둘을 번갈아가며 짝사랑했어요. 그들 둘은 서로 절친한 친구 사이였으며, 둘 다 서양화 전공이었지요. 그들 가운데 하나는 클래식 음악을 너무도 좋아했어요. 그러기에 이 노인은 그때부터 그녀의 수준에 맞추려고 생억지로 클래식을 가까이 하게 되었어요. 그랬던 것이, 이 노인이 이처럼 노쇠해질 때까지 클래식 마니아로 남은 원인이었어요. 또한, 수필작가로 행세하면서도 정작 음악과 미술에 더 관심을 가진 작가가 된 데도 그들 양인의 영향이 컸어요. 그들 둘의 e메일주소도 아직까지 노인의 애독자 그룹에 들어 있긴 해요. 다만, 교편생활을 마감한 그들 둘은 요즘들어 답신을 아니 해올 뿐이에요.

    노인은 이밖에도 꽤나 많은 여성들한테 연애편지를 줄기차게 썼어요. 그 많은 여성들이 차례차례 마음의 문을 열어주었더라면, 지금 처첩(妻妾)이 얼마나 많겠어요? 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지만, 그런 일은 생겨나지 않았어요. 으로부터 퇴짜 당하면 으로,으로부터 퇴짜당하면 으로... 그 대상을 바꾸어 나갔어요. 돌이켜보니, 그랬던 것이 노인을 수필작가가 되도록 했어요. 당시는 아끼는 후배들이 입모아 말하곤 했어요.

    형이 불쌍해서 더는 볼 수가 없어. 왜 바보같이 그렇게 짝사랑만 하고 있어? 육필로 쓴 연애편지를 복사해서 아예 책 한 권으로 만들어 부쳤다가 책조차 되부쳐받질 않나?”

    하지만, 그들은 하나같이 노인의 은인들이었어요. 그들은 자기 자리에 가만히 있었으나, 그 젊은이는 그들을 나름대로 치장해서 아름답게 꾸몄던 셈이지요.

    흔들의자에 몸을 의지한 채 노인은 길게 담배연기를 뿜어내네요. 그리고는 젊은이들한테, 수필작가 지망생들한테 나직 들려주네요.

    내가 수필작가가 된 것은, 못다 쓴 연애편지를 마저 쓰고자 함이었다네. , 여태껏 나의 수필작품들은 편편 변형된 연애편지였다네.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여인한테 최초로 보여주기 위한 연서였다는 말일세. 그러니 자네들도 수필작가가 되려거든, 훌륭한 수필가가 되려거든 다 집어치우고 꾸준히 연서를 쓰시게.”

    노인이 지금 아내를 만난 일

    물론 줄기찬 일방적 연애편지 탓이었어요. 덕분이 아니라 탓이었어요. 노인보다 세 살 위인 할머니. 그 할머니에 관한 이야기는 댓잎편지라는 수필에 있대요. 그 작품은 어느 중앙지 신문 신춘문예 당선 후보작이었다는군요. 더는 이야기하기 싫다는군요. 멋적어 더는 이야기하기 싫다는군요.

    결혼 이후

    노인은 집의 나이 스물아홉에 결혼을 했어요. 그 이후엔들 연애편지를 아니 써왔을까요? 어느 여류시인, 어느 여류수필가, 어느 꽁트작가 등을 번갈아가며 지독스레 사랑했고, 그들한테 각각 수필집 한 권도 넘을 연서를 썼다는군요. 다행스레, 노인보다 다섯 살 위인 어느 꽁트작가는 노인의 육필연서를 여태껏 소중히 보관하고 있다는군요. 그는 노인한테, “윤 작가, 신간 두 권은 거뜬히 만들 편지 끝까지 돌려주지 않을 거에요.” 약을 올린다는 말이 들려요.

    흔들의자에 앉은 노인의 머리 위에 가을햇살이 내리쬐여요. 그 노인의 머리카락은 온통 은빛이군요. 그래요. 미국 민요 은발(Silver Threads)’그대로네요.

    젊은 날의 추억들 한갖 헛된 꿈이랴

    윤기흐르던 머리 이제 자취없어라

    ~ 내 사랑하는 님 내님 그대 사랑 변찮아

    지난 날을 더듬어 은발 내게 남으리

    젊은 날의 추억 그 추억 한갖 헛된 꿈이랴

    윤기흐르던 머리 이제 자취없어라

     

    노인은 마냥 후회하지는 않아요. 노인이 청년기에 짝사랑했던 여성들도 하나같이 노인처럼 늘어갈 텐데,그들을 측은하게 여길 따름이라네요.

    그들은, 노인이 거미줄 날줄처럼 걸쳐두었던 인연의 줄그 끄트머리를 끝끝내 잡아주지는 못했으되, 노인의 애독자들로 다들 남아있으며, 더러는 열광자가 되어 있다고 해요. 노인은 그런 연유로 노후에 이를수록 더 행복해하고 있어요. 아름답고도 쓸쓸한 추억을 많이 간직한 노인이네요.

     

     

     

     

     

     

     

    작가의 말)

    이 글은 곧 (4)’으로 이어질 겁니다.

     

    * 이 글은 본인의 블로그,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 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한국디지털도서관 본인의 서재,

    국디지털도서관 윤근택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본인의 카페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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