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전 수필집 되찾음
님들께서도 그 책, <이슬아지> 필요한 분 계시면,
복사 수량(수요)을 감안해야 하오니,
우편물 받으실 주소 일일이 남겨 주세요.
부디,
아름다운 하루!
23년 전 수필집 되찾음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내가 적은 서간문 형태의 수필, ‘새롭게 얻은 나의 뮤즈(muse)께(13)’의 하단 ‘작가의 말’에는 이렇게 적고 있다.
< (상략)33년째 수필작가 행세를 해온, 재치 있는 윤 수필작가. 새롭게 시도한다. ‘휴대전화기 메시지 주고받음’을 이처럼 문자화하면 되겠다고. 이 대한민국 수필계에서 내가 창시자라고 자부하면서. 나아가서, 이 글은 두 수필작가가 힘 합쳐 적은 ‘콜라보레이션(collaboration) 수필’이다.(하략)>
이번 글도 몇 분들과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 ‘주고받음’과 통화를 가감 없이 글로 옮김으로써 완성코자 한다. 그분들 개인정보 보호를 생각하여서, 휴대전화기 뒷번호로 처리한다. 그들 공히 여성들이다. 그리고 그들 모두 예술가들이다. 수필가이거나 시인이거나 서양화 화백(畫伯).
나는 ‘6561’한테 오래간만에 전화를 걸었다. 새해 및 명절 인사를 겸해서. 부탁을 정중히 해보았다.
“나의 책꽂이에는 23년 전인 1999. 11.20. 발간한 두 번째 수필집, <이슬아지>가 단 한 권도 없더군요. 혹시 님의 책꽂이에 그 책이 남아 있다면, 도로 받고 싶어서요. 사례는 톡톡히 할 테니... .”
상대는 대뜸 그 책이 있다고 하였다. 순간, 소중하게 간직한 품이 고마웠다. 하지만, 그는 무슨 일이 있어도, 억만금을 주어도 그 책은 자기 소유라면서 퇴짜를 놓았다. 심지어, 빌려줄 수도 없다고 하였다.
이번에는 ‘ 8831’한테 같은 요지로 전화를 걸어보았다. 그는 그 동안 이사를 여러 차례 하면서 그 책이 사라졌을지도 모른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전화통화를 하면서 책꽂이를 뒤지고 있었다. 용케도, 그 책을 책꽂이에서 찾았다면서 본인도 놀라워하였다. 그는 선뜻 택배로 부쳐주겠다고 하면서 한 마디를 덧붙였다.
“윤쌤, 이 책에 실린 글들이야말로 온 몸으로 쓴 듯하였어요. 그 이후의 글들은 너무 기교가 들어있어서... .”
나는 들떠서 이번엔 ‘ 6561’, ‘8831’뿐만 아니라 ‘0352’, ‘1711’,‘6500’한테 동시에 문자메시지를 발송하였다.
‘윤쌤한테 기적적인 일이 생겨났어요. 지금으로부터 23년 전인 1999년에 발간한 제 두 번 째 수필집이자, 현재까지 낸 책들 가운데에서 마지막 책인 <이슬아지>. 정작 제 책꽂이에는 단 한 권도 꽂혀있지 않아요. 해서, 증정받았던 분들한테 이리저리 수소문해서 결국은 한 권 도로 받을 수 있게 되었어요. 보아가며, 그 책을 재판으로 찍든지 해체하여 복사 후 제본하든지 해서 많은 분들께 증정할 생각. 불과 석 달 만에 적은 책이지만... .’
한편, ‘0352’한테는 따로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 누부야네 책꽂이에도 그 책 있으면, 도로 살 게요.’
그랬더니, ‘0352’는 이내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맡길 테니, 내일 매형(부군) 사무실에 들러 받아가세요~~^^’
나는 다시‘0352’한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 누부야, 그 책이 23년 전 책인데, 아직 간직? 이사도 그 동안 수 없이 다니신 분께서... . 감동! 그 책을 해체해서 영남대 정문에 자리한 복사업체에서 복사 후 제본하여 새로이 알게 된 분들한테 증정할 요량. 500권 정도 생각하고 있어요. 아주 좋은 생각 아닌가요?’
누부야는 다시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부수를 좀 줄임이 어떠할지?’
한편, ‘6561’은 내가 어렵사리 나의 수필집을 되찾을 수 있게 되었다는 위 문자 메시지를 받고 문자메시지 보내왔다.
‘기적적인 일이 이뤄졌군요. 축하드립니다. 재판하면 독자들이 좋아할 거에요.’
그는 다시 한 번 메시지를 보내주었다.
‘귀한 책을 받은 분들은 감동하겠네요.’
그의 깊은 심중을 헤아려, 나는 답신을 보냈다.
‘ 그럴까요? 그리고 님께서도 그 책을 무려 23년씩이나 간직하고 계시니, 요 다음에 혹 만나면 업어드릴 게요.’
그도 질세라, 답해 왔다.
‘ 단언컨대, 업힐 날은 없을 겁니다. ㅋ’저는 증정받지 않았고,(누군가로부터) 추천받고 서점에서 구입했어요.’
감동이다. 나는 나름대로 예(禮)를 갖추어 ‘6561’한테 답신을 보냈다.
‘ 정말 그런 일이? 그렇다면 더 소중한 분이심에도 여태 관리를 소홀히 해왔군요. 앞으로는 좀 더 신경 쓸 게요. 우리는 벌써 이처럼 옛 추억담을 나누고 있군요. 돌이켜보니, 님이 제 글 읽고서 님들 문학회 카페에 글 올리시어 알 게 된 지가 10년도 넘었고, 서로 얼굴 한 번도 본 적 없건만... . 오늘 이러한 다자간 문자메시지 ‘주고받음’ 등은 내일 ‘콜라보레이션 수필’로 빚어 님께도 바치겠나이다.’
이제 그 수필집, <이슬아지>에 관한 간략한 소개다. ‘영양 - 영덕 - 울진’으로 이어진 나의 3년 간 방황. 내 40대 초반에 온 몸으로 쓴 글들로 채워져 있다. 거의 매일 한 편씩 적어 3개월 만에 ‘뚝딱’해치운(?) 작품집이다. 그 책으로 많은 인기를 누렸고, 정작 본인도 모르게 정부로부터 문예창작기금도 받았으며, 책 중앙부위에 삽입된 수필,‘책값청구서’덕분에 수강료 내지 부조금도 단 한 분으로부터 ‘1,000,001원(일백만 일원; 사업가인 그의 고유한 송금방식이다.)’씩이나 받았다. 그는 후일 한 아름의 원고더미를 안고 그 먼 영양까지 둘 내외분이 찾아온 적도 있다. 그 거액의 수강료 아니 교정료를 받았던 나. 그는 그렇게 공부해서 문단에 데뷔까지 했다는 것은 나중에 알았다. 지금은 그가 수필계에서 제법 잘나간다고 듣긴 하였다. 그 책에 실린 ‘유품’이란 수필은 본인도 모르는 사이 어느 출판사 중학교 1학년 1학기 국어교과서에 3년 동안 실리는 등.
돌이켜보니, 그게 벌써 사 반 세기 전의 일. 내가 위 독지가(篤志家)들 덕분에 나의 두 번 째 수필집, <이슬아지> 두 권을 거의 동시에 받게 될 텐데, 그 글들을 다시 읽노라면, 잃어버린 젊은 날이 떠올라 또 다시 울 것만 같다. 그렇잖아도 책 제목을, ‘이슬(늘 눈가에 이슬 맺히는) + 아지(아저씨)’와‘이슬아지(산앵두)’로 중첩한, 즉 문장수사법상 ‘중의법(重義法)’으로 정했던 터에.
작가의 말)
굳이, 이젠 꾸미고 다듬고 하여 공들인 척 글 쓸 생각도 없다. 그야말로 있는 그대로.
이 글을, 위 5인 여류 예술가들한테 공히 바친다.
* 이 글은 본인의 티스토리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