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일성 식물
단일성(短日性) 식물
윤요셉(수필가/수필평론가)
나는, 수필작가인 나는 너무도 ‘당연’한 걸 아주 ‘태연’하게 말로 하거나 글로 적는 예가 많다. 다시 어린아이로 돌아가,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사물을 신비롭게 찬찬히 바라보고, 그 사물에 숨겨진 진실 내지 비밀을 캐내고자 한 예도 많다.
이번에는, 아침마다 밭으로 나서서 100 포기 심은 김장배추 모가 잘 자라는지 보살피다가 문득 자문(自問)을 하게 되었다.
‘김장배추와 김장무는 왜 하필이면 가을에 잘 자라지? 겨우내 우리네가 김장을 담가 내내 먹을 수 있게 딱 알맞게시리!’
사실 요즘은 결구배추(結球-배추)도 엇갈이배추와 마찬가지로 봄, 여름, 가을, 겨울 가리지 않고 시설재배나 고랭지재배로 구할 수 있으며, 거기에 따라 포기김치를 언제고 먹을 수 있다. 그러나 결구배추는 노지재배인 경우, 가을철이 재배적기임에는 틀림없다. 중국 원산이라는 결구 배추. ‘씨 없는 수박’ 으로 일반인들한테 잘 알려진 우장춘(禹長春, 1898~ 1959) 박사가 일본으로부터 맨 처음 들여왔다는 걸 나는 알고 지낸다. 기왕지사 내친걸음이니, 내 신실한 애독자들께 덤으로 알려드릴 게 있다. 우장춘 박사의 업적은, ‘씨 없는 수박’ 개발이 아니라 ‘겹- 패튜니아꽃’ 최초개발이다. 또, 그분은 정부에 건의하여 제주도에다 ‘감귤’ 재배를 하면 되겠다고 하여 감귤을 들여왔으며, 강원도 고랭지에다 감자를 재배하면 ‘더뎅이병’ 등에 잘 견딜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해서, 그 이후 ‘씨감자’ 하면 강원도 감자가 된 것이다. 우리 민족한테는 참으로 훌륭한 분이다.
김장용 결구배추의 생장습성은 제법 특이하다. '60일 배추'니 '80일 배추'니 하는데, 파종적기는 처서(處暑) 전후다. 1기생,2기생,3기생, 4기생... 마지막까지 농부들한테 성가시게 시간차 공격을 해오던 바랭이풀조차도 더 이상은 발생치 않는 처서를 골라 발아한다. 놀랍게도, 처서 전후가 조상 묘 벌초 시즌과 맞아 떨어진다. 처서 이후에는 잡초가 거의 발생치 않는 점과 무관치 않다. 아무튼, 배추는 무와 더불어 선선한 기후를 좋아한다. 2015년 올해의 경우, 8월 23일이 처서였고, 나는 김장배추의 파종적기를 벌써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기에 정확히 처서에 맞추어 파종했다. 대체로, 농민들은 약속이나 한 듯 참깨를 쪄낸 비닐멀칭에다 구멍을 뚫어 김장배추와 김장무를 가는 편이다. 나는 올해부터는 참깨파종을 하되, 병충해와 장마철 참깨 썩음을 피하고자 농촌진흥청이 권유하는 참깨 파종 한계일인 6월 25일 전후에 파종하여 아직 수확도 아니 한 터라 달리 머리를 짜냈다. 정부가 무모하리만치 담배값 인상을 한 바람에 속이 상해 잎담배용 담배를 100포기를 재배했는데, 잎을 다 따내 건조한 다음, 그 그루터기를 벤 후 그루터기 사이사이에다 정확히 김장용 배추 100포기를 심은 것이다.
내 이야기가 핵심에 닿지 않고, 빙빙 둘레만 돈 것 같다. 해서, 곧바로 핵심에 닿기로 한다. 배추는, 특히 결구배추는 ‘단일성 식물’이다. 뜨거운 여름에는 곧잘 잎이 녹아내리지만, 서늘한 가을날씨에 잘 자라는 식물이다. 낮과 밤의 길이로 따져, 낮이 밤보다 긴 때 잘 자라면 장일식물이고, 밤이 낮보다 긴 때 잘 자라면 단일식물이다. 배추· 벼 ·옥수수 ·콩 ·담배 ·코스모스 ·국화 ·나팔꽃 등이 대표적인 단일식물이다. 내 신실한 애독자들께 보다 명확하게, 잘 요약된 단일식물의 개념을 ‘네이버 지식백과’에서 아래와 같이 그대로 따다 붙여드린다. 이러한 방식이 요즘 들어 내가 즐겨 쓰는 ‘꼴라주(collage) 형태의 수필’임을 다시 한 번 밝히면서.
<< 즉, 낮이 짧고 밤의 길이가 일정 시간보다 길어지면 개화하는 식물로서 보통 낮이 12시간보다 짧아지면 피는 식물을 가리킨다. 경우에 따라서는 14시간을 경계로 하기도 한다.
가을에 피는 꽃에 이런 성질을 가진 것이 많으며 벼 ·옥수수 ·콩 ·담배 ·코스모스 ·국화 ·나팔꽃 등의 많은 식물이 이에 속하는데, 품종에 따라 단일성(短日性) ·중일성(中日性) · 장일성(長日性)으로 나누어지는 것도 있다. 처음에는 명기(明期)가 짧다는 데서 단순하게 ‘단일’이라는 이름이 붙었으나, 그 후 도리어 일정 시간 이상의 암기(暗期)의 존재가 중요하다는 점이 알려져 장일성의 것과 뚜렷하게 구별되었다.
단일성과 개화 메커니즘의 관계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으나, 암기에 선행하는 명기에서 이산화탄소가 관계하여 어떤 물질 A가 만들어지고(명기가 지나치게 길면 비활성물질 X가 불가역적으로 전화되어 버린다.) 암기가 오면 다음 물질 B가 된다. 암기 중에 빛이 들어오면 가역적(可逆的)으로 급속하게 원래의 물질인 A로 되돌아간다. 일정한 암기가 유지되면 B는 잎에서 이행하여 눈으로 전달되고 거기서 꽃눈을 유도하는 호르몬과 비슷한 물질이 된다고 한다. >>((이상[네이버 지식백과] 단일식물 [short-day plant, 短日植物] (두산백과)에서 옮겨옴.))
위 인용부를 다시 음미해보면, 식물의 개화를 좌우하는 게 일조량(日照量) 곧 낮의 길이가 아니라 어둠 즉 밤의 길이임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새롭게 밝혀진 사실을 토대로 한다면, ‘단일식물’은 ‘장야식물(長夜植物)’로 바꾸어 불러야 할 듯도 하다. 마찬가지 이유로 ‘장일식물’을 ‘단야식물’로 불러야 옳을 듯하다. 어쨌든, 결구용 김장배추와 김장무는 여타 많은 작물들과 잡초들이 활동을 마감하는 시점을 골라 자라는 습성을 지녔다. 이것들은 제법 쌀쌀하다 싶은 날씨를 즐겨하며, 심지어는 영하의 날씨에도 쉬이 얼지 않고 자라나는 편이다. 배추와 무는 온갖 병충(病蟲)들마저 옴츠려 비교적 활동하지 않는 때를 골라 자라므로 농약살포도 비교적 적게 하는 편이다. 이 점은 잎을 날것으로 먹게 되는 채소로서도 크나큰 장점이 아닐 수 없다. 우리 민족이 삼동(三冬) 내내 먹고 지낼 김장으로 화하는 배추. 배추는 밤의 길이가 낮의 길이보다 상대적으로 긴 가을에서 초겨울까지 잘 자라기에 절묘하게 우리네 겨우살이용으로 맞아떨어진다는 것을.
문득, 나는 ‘장일성 인간’일까, 아니면 ‘단일성 인간’일까에까지 생각이 미친다. 수필작가로서 나는 분명 ‘단일성 인간’일 것이다. 어둠이 내리면 농막의 전등을 밝힌 후 날이 새는 걸 안타까이 여기며 글을 적어 댄다. 그러니 ‘단일성 인간’인 셈이다. 나한테 어둠이 없다면, 밤이 없다면 결코 수필작품을 더는 빚지 못하리라. 그런가 하면, 한 녘으로는 농사일을 하고 싶어 안달이 나서 어서 날이 새기를 기다리며 전등을 켰다 껐다 하기도 하고 밖으로 나서보기도 하니 ‘장일성 인간’이도 하다. 나한테 밝음이 없다면, 낮이 없다면 결코 농사를 더는 짓지 못하리라. 아무튼, 동물이든 식물이든 저마다 즐겨하는 시간대가 따로 있다는 것을. 그리고 저마다 타고난 팔자대로, 길들이는 버릇대로 살아간다는 것을. 오죽했으면 내 양친은 살아생전 늘 이 말을 하였을까?
“야야, 팔자는 길들이기 나름이라고 카더래이(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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