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수제비돌에 맞는 개구리는
물수제비돌에 맞는 개구리는
윤근택(수필가/문장치료사/수필평론가)
어쨌든, 크든 작든 남들과 싸움을 피해야 한다. 대립각을 세워서는 아니 된다. 다들 아시겠지만, 왜낫은 슴베가 예각(銳角)이어서 살짝 닿기만 하여도 손이 베이기 십상이다. 반면, 조선낫이나 도끼는 왜낫에 비해 그 슴베가 둔각(鈍角)이라서 손 등이 쉽게 베이지는 않는 편이다. 하여간, 남들 앞에서는 날을 세우지 말고, 둔각의 상태로 머물러야 한다. 그러함에도 애석하게도, 싸움을 피할 수 없을 때가 많다.
요즘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각종 ‘갑질(甲질)’. 난들 왜 그러한 갑질에 시달리지 않겠나?흔히 하는 말이 있다. ‘아니꼬우면 그만 두면 된다.’고. 나는 지금 어느 아파트에서, 분에 넘치게도,‘전기·영선(營繕) 주임’으로 지낸다. 본디는 사반 세기 동안, 짱짱하게 나가던 어느 국영기업체 사무직 으로 지냈고, 과장까지 올랐다가 명예퇴직을 한 사람이니... .
이처럼 신분세탁(?)까지 하기 전에는, 3년여 아파트 경비로 지내왔다. 참말로, 별의별 아파트 주민들의 갑질을 다 경험했다. 대개는 선하고 친절한 주민들이지만, 별난 족속들도 적지 않다. “아파트 경비는 인간도 아니다.” 자조(自嘲)하는 동료들도 많다. 승용차를 몰아 출퇴근 하는 동안에도 새로 짓는 고급 아파트 등도 많이 보게 되는데, 넌더리가 난다고나 할까? 또 그 고급 아파트에 입주하게 될 젊디젊은 부인 몇몇은 ‘슈퍼갑질’을 해댈 것이다. 그러면 백발의 어느 ‘경비아저씨’는 자의반타의반 보따리를 싸게 될 것이다.
자, 자꾸 남의 이야기를 할 게 뭐냐? 자꾸 빙빙 돌려 이야기할 게 뭐냐? 최근 내가 겪은 어느 갑질을 이야기함이 옳다.
초등학교 교장 출신이라는 어느 주민은 세상에서 가장 친절한 척 한다.
“수고하십니다. 쉬엄쉬엄 쉬어가며 (일) 하세요. 참, 그런데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노인정 앞 수채구멍에 어레미가 떨어졌던데 ... .”
요컨대, 아닌 척 하며 그분은 할 말은 다 한다. ‘꾸지람하는 시어미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그분을 위해 만들어진 속담 같다.
보험설계사이며 천주교인데가 성가대 대원이기도 한 어느 부인. 그는 이 마실(아파트) 주민들한테도 악명 높다. 혼자 사는 그는 온갖 걸 민원제기 한다. 부리나케 달려가본즉, 이런 민원이었다.
“아저씨, 명절이라 우리 아이들이 올 텐데, 이 복도등 유리갓을 닦아주세요.”
나는 군소리 한마디 아니 하고 사다리를 놓고 그 유리갓을 분리하여, 시키는 대로 다 해주었다.
그러면서, 나도 천주교인이니 자매님께서 앞으로 잘 봐주십사 인사를 하고 돌아왔다. 그는 이밖에도 화장실 수채구멍에 머리카락이 막혔으니 뚫어달라는 민원도 제기했다. 또, 한번은 내가 경리주임으로부터 민원을 전해 받았다. 경리주임은 그 댁 보일러가 말을 아니 들어 밤새껏 떨고 지냈다고 잔뜩 짜증 섞인 민원전화였다고 곁들였다. 내 특장점이 뭔가.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1544에 바로 가!’아닌가. 이는, 배우 이순재의 광고 멘트를 패러디한 것이다. 출근하자마자, 전달받은 민원쪽지를 들고, 공구가방을 어깨에 메고 106동 000호로 올라갔다.
“입주자님, 보일러는 어디에 있습니까? 우선, 전기 플러그를 뽑아보아야 하니까요. 그리고 ‘온도조절기’는 어디 있습니까?”
그랬더니, 그는 그야말로 왕짜증을 내며 대꾸했다.
“보일러는 베란다에 있지 않아요? 그리고 온도조절기는 여기 거실 벽에 있지 않아요? 이런 일을 처음 해 봐요? 그리고 여자 혼자 사는 집인데, 안방은 왜 기웃대며 훔쳐봐요?”
참말로,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사모님, 본디 세대의 보일러는 저희가 봐 드리는 게 아니에요. 단지, 서비스 차원에서 봐 드리는 겁니다. 앞으로 이런 일로 부르지 마세요.”
울화통이 치밀었으나, 그가 ‘희망온도’와 ‘현재온도’의 개념도 모르고 함부로 조작해서 그르친 온도조절기를 제대로 조작해 주었다.
그리 했건만, 나는 관리소장한테서 한 소리를 들었다. 내가, 혼자 사는 여자의 침실을 들여다보았다고,‘성희롱’ 운위(云爲)하며 그가 민원을 제기했다는 거 아닌가.
내가 무슨 말로 그 주민을 책망해야할지? 그 아침에, 자기의 요청으로, 서비스 차원에서 그렇게 갔거늘. 그럴 양이면, 자기 침실의 방문을 미리 닫아놓고 외간남자인‘전기·영선 기사’한테 도움을 요청하든지 하지 않고서... . 마치 덫을 놓아두고 멧돼지를 기다리는 듯 저급하기 이를 데 없는 짓이여! 사실 나는 그가 매번 민원 처리를 위해 방문할 적마다 보험을 들어달라고 졸랐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사양하기는 했다. 그러니 일종의 보복인 셈인데, 이전의 직원들도 나처럼 시달려, 시쳇말로 조상 시끄러워 보험을 들어준 예가 있다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그 이후에도 그는 아주 소소한 일로도 민원을 제기했으나, 다시는 내가 그 댁에 가지 않고, 맞교대자 ‘강00’주임한테 민원을 넘기곤 한다.
위의 두 사례는용역회사에 소속되어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근무하는 직원들이면 누구든지 일상으로 겪는 일들 가운데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더 기막히는 갑질은 글로 적기조차 민망해서 적지 않기로 한다.
아이들은 연못가에 가서 재미삼아, 내기로 돌멩이를 집어들고 물수제비를 뜬다. 드럽게(더럽게) 재수 없는 개구리는 그 물수제비 돌에 맞아 아파하기도 하고, 심지어 죽기까지 한다는 것을. 또 하나, 좋은 말이 떠오른다.
“돈 나오는 모티(모퉁이)는 죽을 모티인 기라(거다).”
나의 경우, 아직은 그 수준까지는 아니다. 좀 더 견뎌낼 수 있다.
이참에 나도 어떤 이들한테 갑질을 해댔으되, 슈퍼갑질을 해댔던 점 없지 않았던가 반성해본다. 짚이는 게 하나 있다. 바로 많은 수필작가들과 많은 수필작가지망생들에게 행한 말과 행동. 나는 최근까지 한국의 그 많은 이들한테 행패를 부렸다. 스스로 ‘문장치료사’라고 칭하고, 그들의 글을 ‘(병든) 문장치료 한다며’온통 난도질해댔지 않은가. 조금, 아주 조금 먼저 알았다고 행한 짓임이 분명하다. 그 점 크게 반성한다. 그분들도 내 수제비돌에 맞았던, 개구리와 같은 처지였음을.
끝으로, 이 아파트의 관리소장은 부드럽고 교양있는 분인데, 그가 나한테 타이르는 말을 보태고 글을 맺을까 한다.
“윤 주임, 우리 모두 퇴직금 받읍시다.”
참말로, 감격적인 말이다. 성질 죽여 중도에 잘리지 않고, 1년은 채워야 퇴직금을 받을 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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