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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 타작을 하며(4)수필/신작 2022. 11. 19. 02:58
콩 타작을 하며(4)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콩대 처리와 콩깍지 처리에 이어, 다음 공정은 협잡물(挾雜物) 즉 ‘뉘(사실 쌀에만 주로 쓰는 말이다.)’고르기. 이 공정이 끝나면, ‘아시 까불리기’된 걸 바가지로 마대에 퍼 담아 시내 아파트에 사는 아내한테 갖다 줄 것이다. 아내는 알뜰히 알콩을 골라 메주를 쑤고, 내 점심 도시락반찬으로 콩자반도 자주 만들 터.
작업을 이어가다가 불현 듯 그 속담이 떠오를 줄이야 !
‘(네가)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하여도 (더는) 믿지 못하겠다.’
분명 팥이 아닌 콩으로 메주를 쑤건만... .
사실 최근 나의 ‘뮤즈들’ 가운데에서 나를 속상하게 하는 한 뮤즈한테 결별 내지 작별의 편지를 띄웠다. 정작 그도 문학인이면서 내가 띄우는 음악편지며 e메일이며 내 블로그에 올린 신작(新作) 등을 거의 아니 읽는다는 걸 알아차리게 되어서. 오로지 그는 잿밥[齋-]에만 신경쓰는 듯하여 그리하였다. 예수님의 이르심을 패러디할밖에.
‘새 콩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느니.’
그 뮤즈와 나의 관계는 ‘콩가루 집안’임에 분명타. 결코 한 덩어리로 뭉쳐질 수 없는... .그 연유는 이렇다. 쌀이나 밀이나 보리 등의 곡류(穀類)는,‘글루타민(glutamine)‘이란 성분이 들어있다. 이 글루타민은 점성(黏性)을 지녀, 가루가 된 당해 곡류를 찰지게 뭉치게 한다. 쉽게 말해, 그것들 가루로는 풀[糨糊]을 만들 수 있다. 반면, 콩가루는 그 글루타민이 없어, 입자간에 서로 뭉쳐지지 않고 따로따로 논다는 거 아닌가. ‘콩가루 집안’은 그래서 생긴 말이란다.
참말로,‘따로국밥’도 유분수이지!
하더라도, 콩가루의 이러한 취약점이 마냥 나쁜 것만도 아니라는 생각을 언뜻 하게 될 줄이야! 전래동요를 흥얼댄다.
만약에 인절미가 시집을 간다면/
콩고물과 팥고물로 화장을 하고/
빨간 택시를 불러 타고서/
달려라 달려가 목구멍으로//
그래, 바로 그거야. 콩가루는 ‘콩고물’ 되어, 떡한테 옷을 입히는 곡물이다. 그러면 눈요기밖에도 더 큰 효과가 있다는 것을. 우리네 여인들은, 콩가루의 그 뭉쳐지지 않는 그 성질을 떡 만들기에 응용할 줄을 어떻게 알았을까? 지난 날 내 어머니. 당신은 물 가득 채운 가마솥 위에다 시루를 얹어 그 틈새를 밀가루반죽으로 김새지 않게 360도 빙 땜을 하였다. 그런 다음 미리 빻아온 쌀가루 한 켜, 그 위에다 콩가루 한 켜, 또 그 위에다 쌀가루 한 켜, 이번에는 팥가루 한 켜... 어머니는 그렇게 켜켜이 여러 가루들을 채웠다. 그런 다음 밥보재기를 덮고 장작불을 아궁이에 한 나절 지폈다. 시루떡을 찌는 동안에는 우리 조무래기 남자 형제들은 부엌에 얼씬도 못하게 하였다. 부정 타서(?) 시루떡이 갈라진다면서. 지금 생각해보니, 우리들 빳빳한 고추가 자칫 시루떡을 뚫거나 망가뜨릴 위험성이 있다는 상징적 의미였을까.
그렇게 쪄서 부엌칼로 잘라낸 시루떡은 무지갯빛이었다. 그야말로 ‘보기 좋은 떡이 맛도 좋다’였다. 이제금 생각해보니, 모두 콩가루의 그 취약성 덕분이다. 콩가루는 점도(粘度)가 강한 ‘쌀가루 층’과 격벽(隔壁)을 만들어 줌으로써 얻어낸 예술품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콩가루는 한 덩어리로 뭉쳐지지 않는다. 그 점이 결코 나쁘지만은 않다는 것을. 그래서 쓰임도 오히려 다양하다는 것을. 그러니 이 낮술이 깨면, 즉 각성(覺醒)하면, 나의 뮤즈들한테 사과의 편지를 써서 부쳐야겠다. 나의 글을 알뜰히 읽어주지 않는다는 ‘(콩) 꼬투리를 잡아’ 그 뮤즈들한테 작별을 고했으니... . 더는 늦기 전에 내 ‘잘못 생각’을 전해야겠다. 그리해야겠다.
이리하여 올해 나의 콩 타작 모든 공정은 끝났다.
작가의 말)
농주에 잔뜩 취해 초저녁잠에 깊이 빠져들었던가 보다. 깨어나니 새벽 두 시. 찬물을 한 대접 마시고, 마구 키보드를 토닥였다. 단숨에 마감하였다.
그리고 내가 새롭게 얻은 뮤즈께서는, 절제되지 않고 정제되지 않은 이 글 맘에 아니 들면, 개작(改作)하여 본인의 작품으로 발표하여도 좋다. 이젠 내 곳간의 쇳대(열쇠)마저도 그대께 맡기고픈 걸. 그대가 이 대한민국 최고의 수필작가가 되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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