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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추밭에서(13)
    수필/신작 2022. 12. 6. 00:05

    어찌되었든 갈 데까지 가보자고요.

    저는 여러 연재물 적어 왔습니다.

    동일 제재로요.

    작가의 상상력이 얼마나 뻘칠 수 있는지,

    스스로 시험해봅니다.

    이게 무슨 자랑이겠습니까?

    저는 이날이때까지 끝까지 정성들여 읽은 문학책은 달랑 한 권.

    '생떽지베리'의 <어린 왕자>인 걸요.

    그것도 성인이 다 된 다음에 읽었지요.

    그러함에도 40여 년 본격적으로 작품활동을 해오면서,

    5,000여 편의 수필작품을 빚은 걸요.

    종이책으로 따져, 50권도 넘을 글을요.

    그 에너지는 오로지 그 누굴 몸서리나게 사랑함에서 비롯되었다는 거.

    님들 두루두루 사랑해요.

     

                                                                             고추밭에서(13)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나의  ‘고추작물 돌봄’은 이어진다. 대체로, ‘잡초관리’만은 간단하다. 잠시. 사실 우리네는 ‘잡초제거’ 내지 ‘잡초박멸’이라고 다소 거친 용어를 쓰지만, 서양인들은 ‘Weed control’이라고 다소 누그러뜨려 표현한다. 그들은 ‘공존동생(共存同生)’을 늘 생각하는 듯. 어쨌든, 고추밭고랑에 들어선 바랭이풀은 ‘한 놈만 골라 패라’는 뜻을 지닌 어느 농약회사의‘선택성 제조체’를 살포하면 거저다. 한방에 끝난다. 그 제초제는 바랭이풀을 비롯한 ‘벼과(poa과)식물’만 골라 죽인다. 사실 예전에 전라도 농부들이 한탄조로 불렀다는 민요에는 이런 소절이 있다.

        ‘논에 가면 피가 원수요, 밭에 가면 바랭이가 원수요, 집에 가면 시누이가 원수라네. 이 세 놈의 원수를 어떻게 할거나.’

       기왕에 내 고추농사가 화단가꾸기 수준이 아닌 바에, 선택성 제조체 한 번만 살포하면 된다. 마땅히 그리해야 한다. 제초제는 ‘생력농법(省力農法)’ 즉, ‘일손을 덜어주는 농법’의 총아(寵兒)이니까. ‘벼’를 두고 ‘피’만 골라 죽이는 선택성제초제도 있는가 하면, 고추작물 등 ‘잎 넓은 작물’한테는 전혀 약해가 없는 선택성 제초제도 있다. 제초제는 부가가치가 높아서인지, 내가 벌써 예전에 살펴본즉, 국내 50여 농약제조회사가 제초제 생산에 참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농부들을 중노동에서 해방시켜준 그분들한테 경의를 표한다.

         장마철을 틈타 1기생, 2기생, 3기생 ... 마구 발생하는 바랭이풀은 그렇게 선택성 제초제로 다스리면 된다. 사실 고추밭고랑에다는 이미 발생한 잡초를 말려 죽이는 제초제와 ‘아예 싹을 틔우지도 말라’하며 잡초 씨앗들을 코팅해버리는 제초제 두 가지를 섞어 살포하게 된다. 그러한데 끝까지 성가신 잡초가 있으니... . 바로 ‘까마중이’와 ‘명아주’다. 잠시 흥미로운 사실 하나. 우리 쪽 경상도에만 남아 있는  ‘도트랏(‘아래 아’로 표기되어 있음.)’은  ‘명아주’의 옛말이라는 점. 이들은 고추작물 포기마다에  ‘나도 좀 같이 살자’ 하며 들어선다. 멀칭비닐을 씌우고, 고추모를 심을 정도의 좁은 구멍을 뚫고, 거기다가 고추모를 심어 적은 양의 흙으로만 복토(覆土)를 하건만, 그 좁은 틈새에 그것들은 어떻게 들어서는지. 특히, 이들 가운데에서 까마중이는 자기 신분까지 속이고 들어서게 된다. 사이비고추인 셈. 어릴 적에는 그 잎 모양과 줄기 모양이 고추작물 엇비슷하여 쉬이 구분하기 힘들다. 그것들은 자라는 동안 고추작물보다 우렁차다. 분명코, 내가 목적하는 식물은 고추. 그걸 ‘작물’이라고 부른다. 대신, 내가 의도치 않은 식물은 까마중이. 그걸 ‘잡초’라고 한다. <잡초학 개론> 첫 페이지에 잡초의 정의를 그렇게 적고 있다. 부연하자면, 함암·항염·혈당 조절·천식해소·간 보호·경련 완화 등 약제로 쓰고자 까마중이를 재배하는 농부 입장이면, 까마중이가 작물, 그 사이사이에 저절로 난 고추는 잡초가 된다. 마찬가지로, 나중에 그 줄기로 청려장(靑藜杖) 지팡이를 만들고자 명아주를 재배하는 농부라면, 명아주가 작물, 그 사이사이에 저절로 난 고추가 자라면 그 고추는 잡초.

        오늘도 나는 고추작물 발치마다에 돋아난 ‘사이비 고추’인 까마중이를, 보이는 족족 일일이 뽑아내고 있다. 그러다가 문득, ‘내가 너무 이기적이다’라는 생각까지 하게 될 줄이야! 모든 생명체가 제 몫을 다하고자, 하느님의 미션(mission)을 받들고자, 세상에 태어나 자기 종족을 번식코자 하는데... .

        작물과 잡초, 출가(出家)와 가출(家出), 발효와 부패 등이 사실은 다를 바 없건만, 내 필요에 따라 , 내 알량한 욕심에 따라 달리 생각해 왔다는 거. 그러한 점에서 ‘잡초제거’라고 험악하게 말하는 우리네와 달리, 서양인들이 ‘잡초 관리(Weed control)’로 부르는 점을 높이 살밖에.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내가 그 많은 수필작가들 가운데에서도‘농부 수필가’인 점이 자랑스럽기는 하다. 왜? 나는 이러한 자기고민까지를 잠시나마 하고 있으니.

     

     

     

     

      * 이 글은 본인의 티스토리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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