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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얻은 나의 뮤즈(muse)께(10)카테고리 없음 2022. 12. 12. 01:03
새롭게 얻은 나의 뮤즈(muse)께(10)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거의 매일 그대와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주고받음’을 하여온다오. 아주 자질구레한 일상에 관한 사항이라도 서로 문안인사를 그렇게 곁들여서.
이번에는 어제 내가 그대한테 띄운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부터 여기에다 그대로 옮긴 다음, 이야기 이어가려하오.
<그대께 보고드려야겠다? 배추밭에 남은 배추들이 서러워할세라, 아파트 경비원으로 지내면서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쓰레기분리거장에서 주워온 이불 수십 장을 배추에다 일일이 덮어줬다? 경험상, 그러면 겨우내 그 이불 속에서 배추들은 얼지 않고 잘 지낸다? 본디 서늘한 기후를 좋아하는 그것들은 생명활동을 이어가며 더 자라고 더 알도 밴다? 나는 아내와 함께 온 밭 가득이었던 김장배추들을 퍽이나 많이 부엌칼로 도려내었다? 우리 4인 가족이 겨우내 먹고 지낼 김장김치를 50여 포기 담갔고, 그대를 포함해서 예닐곱 댁 김장김치용으로 나누어 드렸다? 그리고도 아내는 200여 포기를 팔았다? 배추밭에는 채 뽑히지 않은 배추와 더불어, 부엌칼에 베인 배추의 맨 바깥쪽 잎들이 즐비하다? 오늘 나는 그 배추의 ‘바닥잎들’ 알뜰히 거두었다? 떡잎들은 닭장 청계(靑谿)들 간식거리로, 비교적 말짱한 것들은 원두막 마루에. 이미 원두막 빨랫줄에다 빨래처럼 주욱 걸어둔 ‘무청’들은 ‘시래기’, 오늘 원두막 마루에 널어둔 배춧잎들은 ‘우거지’. 그대는 그 개념을 알고 지내왔을까? 나는 그대한테 그렇게 말린 시래기와 우거지를 부칠 거다? 재치 있는 그대는 금세 한 편의 수필작품을 빚어 ‘윤쌤’한테 헌정할 듯. 이 문자 메시지도 그 작품 속에 따갈는지도.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대는 목 디스크로 말미암아 지금은 오른 쪽 팔과 오른손이 거의 굳어져 있다고 하니... . 이럴 어떡해? 명수필작가가 그 무슨 변고냐고? >
사실 위 문자 메시지는 꽤나 길다오. 누군가가 나더러 산문작가가 아니랄까봐서.
어쨌든, 나는 이제 위 문자 메시지를 바탕삼아, 수필의 격을 갖춘 글로 아래와 같이 윤색하려고 하오.
그대도 익히 가슴으로 알아, 나한테 글로 이미 적어왔듯이, 농심(農心)은 더도 덜도 아니고 위 내용 그대로라오. 참말로, 나는 80일 여 애써 가꾼 김장배추를 허투루 버릴 수는 없다오. 물론, 내 필요한 만큼 알속만 도려내어 챙긴 후 그것들을 밭에다 내버려두어도 얼고[凍] 발효되어 더러는 거름이 되기도 하겠지만... . 이제 나한테는 그대도 있고 닭들도 있지 않소? 겨우내 그대가 우거지국을 끓여 드시면 좋을 테니. 보다는, 내가 내 필요에 따라 그 알속만 쏘옥 도려내고 그 뿌리들과 함께 몇몇 날 거들떠 보들 않고 두었던 배추들 바닥잎 내지 떡잎들이 측은하여서 더는 늦기 전에 알뜰살뜰 거두어들일밖에.
그 바닥잎 내지 떡잎들이야말로 ‘무녀리[←門열이]들’. 그 점이 나한테는 엄청 중요하다오. 이따가 따로 이야기 들려주리니. 2022년 올해 처서(處暑)는 양력 8월 23일이었다오. 처서는 가을 김장배추의 파종적기라오. 나는 그 자잘한 배추씨앗을, ‘피트모스(床土)’ 채운 ‘100구(口) 플러그(포트)’에 정성껏 알알이 넣었다오. 들며나며 조루로 물을 주는 한편 그 여린 잎들한테 배추나방이 얼씬도 못하도록 배추 전용 살충제도 종종 살포했다오. 그대는 이 점 아실까? 배추나방은 여린 배춧잎에다 알을 슬고, 그 배추벌레 유충은 깨어나 그 연약한 배춧잎을 모조리 갉아먹어버린다오. 그렇게 애지중지 돌보던 배추의 어린모를 본밭에 내다 심어도 농부의 근심은 더해진다오. 한눈팔면, 이번에는 ‘가을의 전령사’로 일컫는 귀뚜라미들이 그 연약한 배춧잎을 다 갉아먹어버린다오. 어디 그뿐인 줄 아시오? 진딧물들이, 차차 알배어 들어가면서 공[球]처럼 되어가는 배추의 속잎의 즙액을 빨아먹는 데 그치지 않고, 오줌을 싸는지 온통 얼룩을 만들어버린다오. 더 곤혹스러운 일은, 진딧물들이 배추의 속에 숨어 지내면 살충제로도 도저히 잡을 수 없다는 사실.
김장배추를 길러내는 농부들은 대개가 위 단락에 적은 병충해를 예방코자, 치료코자 배추 전용 살충살균제를 때맞춰 살포해야 한다오. 배추는 날걸로 먹는 채소이니, 나도 배추 전용 저독성 농약(低毒性 農藥)을 그 동안 수차례 살포하지 않았겠소? 바로 그 점이 내가 밭에 남은 배추들의 ‘바닥잎’ 내지 떡잎을 ‘ 네 떡 나 몰라라.’ 외면할 수 없이 알뜰살뜰 거두어들이는 이유라오. 다시 말하거니와, 그것들은 ‘무녀리’였다는 사실. 그 많은 속잎들과 달리, 내가 살포한 농약을, 얻어맞아도 최고 많이 얻어맞은 잎들 아니오. 안으로 안으로 새 잎들이 돋아나 살쪄가면서 공처럼 둥글게 하는 데에도 헌신한 잎들이 아니오. 그것들은 하나같이 배춧잎을 가운데에서 맏이들 아니오. 무녀리, 무녀리. 그것들 잎사귀들이 자기네 아우들인 속잎들을 감싸 안고, 밭 바닥에서 빗물로 말미암아 튀어오르는 흙물도 감내(堪耐)하였다는 걸 생각하면... . 내 양친의 살아생전 말씀이 새삼스럽다오. 겹쳐진다오. 당신들은 평소 고급스럽다가거나 품격 있다거나 하는 말씀은 결코 아니 하셨다오.
“야들아, 똥도 먼저 나온 놈이 뭉그래진대이(뭉거진다).”
희생·양보·포용 등을 당신들은 그렇게 표현하시었다오. 배추의 바닥잎 내지 ‘맨 바깥잎’이야말로 ‘희생·양보·포용’등을 나한테 제대로 일깨워준다오. 특히, 배추의 맨 바깥 그 억센 잎들이야말로 ‘포용’내지 ‘포옹’의 실천자들이 아니오? 그 동안 70일 내지 80일 자기네 어린 동생들인 노란 속잎들을 꼬옥 안고 지내왔지 왔소? 그들보다 남을 터질 만큼 더 꼬옥 안아주는 이를 나는 이 세상에서 더는 찾지 못할 것 같소. 참말로, 터질 듯 남을 안아주는 이는 배추의 떡잎들뿐일 듯하오.
오늘 나는 오전 한 나절, 위에서 소개했던 일을 정말로 잘 한 듯하여 뿌듯하오.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듯하오. 미리 원두막 빨랫줄에 널어둔 시래기와 원두막 마루에 널어둔 우거지를 걷을 거요. 경험상, 건조한 날은 그것들이 ‘와삭와삭’ 부셔져서 곤란하다오. 겨울비가 내리거나 눈[雪]이 내리는 날을 택하면 되오. 그날은 습기를 머금어, 우거지와 시래기가 유들유들해지니까. 나는 그대한테 우거지와 함께 시래기를 그대 가족 겨울나기 음식 재료로 부치려 하오. 그대가 이러한 혼잣말을 하기 바라면서.
‘윤쌤이 나한테 우거지를 택배로 부친 이유는 ... .’
작가의 말)
나는 종종 많은 이들한테 말해왔다.
‘잘 쓰인 편지가 아주 훌륭한 수필작품입니다.’라고.
온 국민이 휴대전화기를 들고 있고, 문자메시지 주고받음이 생활화된 터. 하더라도, 연인간의 절절한 대화도 그 저장의 취약성으로 말미암아 기록으로 남지 못한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이에, 33년째 수필작가 행세를 해온, 재치 있는 윤 수필작가는 새롭게 시도한다. ‘휴대전화기 메시지 주고받음’을 이처럼 문자화하면 되겠다고. 이 대한민국 수필계에서 내가 창시자라고 자부하면서.
당연히 이 글을, 작중인물인 여류 수필가 그분한테 헌정한다. 새로운 수필 장르를 개척토록 해준 그대께 경의를 표한다.
요컨대, 서로 주고받은 휴대폰 문자 메시지도 수필작품이 된다.
더 욕심내는 게 있다면, 내가 이처럼 힌트를(?) 드리면, 곧바로 자신만의 독특한 수필작품을 빚기를. 안타깝게도, 작중인물은 목 디스크로 말미암아 지금은 오른 팔과 오른손을 제대로 못 써, 나한테 문자 메시지를 날리기도 힘들다고 하니 이럴 어떡하나?
* 이 글은 본인의 티스토리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