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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림콘크리트’와 ‘덜구질’수필 2023. 3. 24. 11:32
‘버림콘크리트’와 ‘덜구질’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음악 칼럼니스트)
1. 버림콘크리트
행운이다. 이 ‘만돌이농장’ 농토를 구입하고 가꾸어온 지 20여 년. 사시사철 내 농토를 쓸어안고 맑은 개여울이 흐르는 등 입지조건이 좋다. 단, 농로(農路) 끝자락에 내 농토가 자리하는데다가 개울을 건너는 콘크리트다리가 쏠아서 차가 썩썩 들어올 수 없는 점이 아쉬웠다. 그 동안 남의 밭 귀퉁이 주차공간을 눈치보아가며 이용해왔는데... . 무슨 행운인지, 나는 보채지도 않았건만, 경산시 당국에서 콘크리트다리를 내 밭 건너까지 놓아주고 있다.
마음 같아서는 공사업체에 무료봉사를 해드리고 싶은데, 그러면 안 된다며 일당까지 받아가며 틈틈 일을 돕고 있으니, 그야말로 ‘기쁨 두배’. 콘크리트 다리를 놓는 과정 가운데에서 최초 작업은 굴착기에 의한 터파기. 나는 레벨측량 때 푯대를 하루에 몇 차례 잡아주는 것으로 일당까지 받았다. 다음 단계는 바닥 고르기. 능수능란한 그는 굴착기 바가지로 개울바닥을 마치 ‘쿵더쿵!쿵더쿵!’‘덜구질(←달구질)’하듯 다졌다. 그러자 마치 테니스코트처럼 편편하게 되었다. 그 다음에 행한 것이 ‘레미콘 갖다부음(타설)’. 거기에는 철근도 들어가지 않았다. 그는 강도가 약한 레미콘이라고 일러주었다. 그걸 ‘버림콘크리트’라고 하였다. 참으로, 흥미로운 건축용어다.
버림콘크리트, 호기심 많은 이 농부 수필가가 그 어휘를 놓칠 리가 없다. 밤새껏 인터넷 등을 뒤져가며 끝까지 알아내었다. 버림콘크리트란, 구조물 밑바닥에 까는 저강도 콘크리트로, 무철근(無鐵筋) 시공을 하는 걸 일컫는다. 본체 콘크리트의 품질을 확보하거나, 밑면을 평탄하게 만들어, 배근(配筋) 따위를 돕기 위해 행한다. ‘고르기 콘크리트’또는 ‘레벨링 콘크리트’로 부르기도 한다. 향후 본작업 할 적에 레미콘이 엉뚱한 데로 흘려내리거나 흙에 닿아 엉망이 되거나 습기조절이 아니 되는 걸 미연에 방지해주고, 요 다음 작업자들이 올라서서 배근작업 등을 용이토록 하게 하여준다.
중요한 사항은, 그 콘크리트를 '버림콘크리트'라고 부른다는 점. 말은 ‘버림-’이지만, 일회용인 듯하지만, 막상 그렇지도 않다. 그 버림콘크리트 바닥도 인체의 골근에 해당하는 철근들과 나중 자기를 덮는 레미콘과 한 몸체가 되어, 내 밭을 가로지르는 콘크리트 구조물이 된다는 사실.
너무 흔해빠진 말이기는 하지만, ‘버리는 것이 곧 얻는 것이다’는 말과 겹쳐진다. 건축업자들이 겸양의 표현으로 그것을 ‘버림콘크리트’라고 부를 뿐 제 몫을 단단히 한다. 그러니‘버림콘크리트’라는 말보다는 위에서도 언뜻 이야기하였지만, ‘고르기 콘크리트’또는 ‘레벨링 콘크리트’라고 불러버릇하면 참 좋겠다. 세상천지에 버릴 존재가 어디 있던가. 돌멩이 하나, 벌레 한 마리도 다 저마다의 몫을 하는 터에. 내가 그 누군가한테서 버림을 받는 게 서럽듯, ‘버림 콘크리트’도 그러할지니.
2. 덜구질
그 작업순서로 따지면, 위에서도 이미 이야기하였지만, 버림콘크리트 만들기 전에 덜구질이 선행된다.
덜구질, 나는 이미 두 군데서 덜구질을 체험하였다. 이번 다리공사까지 보태면 세 번이 되는 셈이고.
첫째, 내 아버지는 새로운 집터를 구해 새집을 지었다. 초가삼간에 조롱조롱 달린 당신의 열 남매를 키울 수 없게 되자 그리하였다. 후일 집안에서는 우리 집을 일컬어, ‘새집’ 혹은 ‘새집에’라고 불렀다. 아버지, 당신은 동네 장정들을 불러모아 주춧돌 놓을 자리에 덜구질을 하였다. 바윗돌을 얼기설기 동여매어 장정들이 밧줄을 빙 둘러 서서 잡고, ‘쿵더쿵!쿵더쿵!’ 터를 다졌다. 그것이 덜구질이었으며, 그날은 막걸리에 푸짐한 안주가 대령했다. 좋은 일에 나선 마을 장정들은 무료봉사를 하였다.
다음은, 그리하였던 내 아버지는 84세 일기로 이승을 떴다. 하관을 하고, 맞상제인 내 백씨(伯氏)가 상복 두루마기에 한 삽의 흙을 담아, 당신의 시신 위에 뿌리며 크게 욌다. “취토(聚土)! 취토!” 그 말은 시작신호였다. 상두꾼들은 가래로, 삽으로 내 아버지 시신 위에다 흙을 퍼넣었다.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그 무거운 발길로 마구 흙을 지질러 밟아 다져나갔다. 작대기로 흙을 ‘쿡쿡’ 쑤셔대는 상두꾼도 있었다. 봉분이 켜켜이 되어가자, 앞소리를 메기는 상두꾼 우두머리는 메가폰을 메고 소리를 메겨나갔다.
“에허리 덜구야! 에라호리 덜구야!”
상두꾼들 가운데 한 이는 긴 작대기 끝에다 새끼 한 바람을 묶고 상제들을 차례차례 불어댔다. 우리는 그 새끼에다 굴비를 엮듯 지폐를 꽂아나갔다. 차츰 높아가는 봉분을 빙글빙글 돌며 상두꾼과 상제들은 마치 무슨 모의를 하듯, 그렇게 신나게, 흥겹게 덜구질을 해나갔다. 무덤의 흙을 다지며, 고인이 좋은 곳으로 가기를, 유족들이 복을 받기를 바랐던 그 덜구질.
늦복인지, 사비(私費)로는 엄두도 못 낼 폭 5미터가량의 콘크리트다리가 내 ‘만돌이농원’에 머잖아 완공될 것이다. 터파기 - 덜구질 - 버림콘크리트 타설 - 상판(슬래브) 치기 - 되메우기 등 일련의 공정으로 완공될 것이다. 참으로, 고마운 일. 거기에다가 수필작가인 나는, ‘버림 콘크리트’를 알게 되었으며, 그 옛날 덜구질까지 추억하였고, 적잖은 일당까지 챙겨 아내 차마리아님한테 입술연지를 사줄 수 있게 생겼으니 ... .
작가의 말)
모자라는 것은 님들께서 채워서 읽어주세요.
‘마이다스의 손’입니다. 윤 수필작가 손에 닿기만 하면, 곧바로 글이 되고 맙니다.
* 이 글은 본인의 티스토리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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