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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수필가, 야리끼리(遣切;やりきり)하다수필/신작 2023. 12. 31. 12:41
윤 수필가, 야리끼리(遣切;やりきり)하다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음악 칼럼니스트)
내가 이미 적은 ‘무두일(無頭日)’이란 수필작품의 도입부는 이렇게 되어 있다
<아침 출근시간임에도 이 아파트의 관리소장은 출근하지 않았다. 경리주임은, 소장이 연차휴가를 내었다고 전한다. 이에, 내가 말했다.
“박주임, 오늘은 ‘무두일(無頭日)’이네요. 직장인들한테 가장 좋은 요일이 아닌가요?”
경리주임은 무두일이 대체 무엇이냐고 되묻는다. ‘신조어 홍수 시대’를 살면서, ‘불금(불타는 금요일)’은 알면서도‘무두일’의 개념은 모르는 모양이다.
無頭日이란, 말 그대로 ‘우두머리가 없는 날’을 일컫는다. 직장인들한테는 무두일이 제일 편한 날이었다는 것을.(하략)>
나는 지난 해 섣달에 부업삼아 격일제로 인력시장, 즉 용역에 나가서 공사현장에서 노가다(막노동)를 무려 일곱 대가리(7일 일급을 받는 일)를 하였다. 그야말로 ‘체험 삶의 현장’이었다. 짭짤한 용돈도 챙겼으며, 평소 체험을 중시하는 수필가로서 글감도 얻었고, 덤으로 아파트 경비원 및 아파트 전기주임 후보자를 발굴하여 두 분 취업도 도와드렸다. 일석이조니 일거양득이니 하는 게 바로 그런 일. 일용인부로 나선 동료분들한테서 건설현장의 용어와 대업요령(對業要領)를 익힌 것도 보람 있었다.
그분들은 수시로 휴대전화기를 열어 시간을 체크하곤 하였다.
“아직도 오후 두 시 반밖에 아니 되었어. ‘휴우!’‘시마이(仕舞;しまい;마무리)’하자면... .”
나도 지루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일당을 받자면 그때부터 한 시간 반 더 꿈적여야했기에.
그런데 12월 30일에는 장땡을 잡은 날이었다. 현장 작업반장이, 헬멧을 쓰고 방진마스크를 끼고 반코팅장갑을 낀 우리한테 선언했다.
“여러분, 오늘은 토요일, 즉 빨간 날이니 오후 3시 15분에 ‘시마이’해드리겠습니다. ”
다들 “야호!” 했다. 일당은 다 챙기되, 1시간 반가량 조기퇴근을 하게 되었으니까. 나와 짝을 이룬 김 노인은 작업 중 나한테 가르쳐주었다.
“윤 반장(공사현장에서는 서로를 ‘반장’이라 예우하고 있었다.), 이를 ‘야리끼리’라고 불러요. ”
야리끼리, 할당제 근무를 의미하며, 당일 할당량을 끝내면 즉시 퇴근해도 된다는 뜻이란다.‘오늘 일은 야리끼리다’라고 표현하면, 당일 예정된 공정을 빨리 끝내면 정해진 시간보다 일찍 마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야리끼리는 공사감독이나 총반장의 고유권한이란다. 그날 작업량과 밀접한 관계를 지녔으나, 대체로 멘스날(달거리날), 곧 ‘빨간 날’에 주로 행해진단다. 과거 같으면 공휴일이 주를 이뤘겠지만, 주5일제 근무가 정착된 요즘은 토요일도 ‘야리끼리’가 종종 이뤄지는 모양이다.
시급제(時給制) 개념이 공사현장에도 여지없이 적용되는 듯싶었다. 용역은 정해진 시간이 되면, 들고 있던 삽자루며 끼고 있던 장갑이며 쓰고 있던 헬멧을 미련 없이(?) 벗어던지고 손을 탈탈 털고 퇴근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 점 매력이었다. 내일 또 어디로 팔려가서 어떤 일이 주어질지 모른다는 것도 매번 설레게 하였다. 운 좋은 날은 야리끼리를 하고 온전히 일당을 받을 수도 있으니... . 지난날 사 반 세기 동안 매일 정해진 시간, 정해진 일을 하여왔던 데 비하면, 인력시장 막노동도 그런 대로 매력이 있었다.
건설현장에서 일용인부들이 가장 좋아하는 말은 야리끼리임이 분명타. 그밖에도 ‘시마이(仕舞;しまい;끝;마무리)’도 좋다. ‘오사마리(納;おさまり; 마무리;끝냄)’도 좋은 말. 그리고 ‘오라이(オーライ;All right)’도 참으로 좋은 말.
격일제 아파트 경비원인 나, 마침 1월1일부터는 용역회사가 즐비한 경산역과 지척의 아파트의 경비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니 비번일에는 새벽같이 그 ‘oo 인력’으로 달려가서 대기석인 장의자에 앉아 있을 요량이다. 더러는 ‘대마찌(デマーチ;손해;손실;damage)가 나더라도... . 즉, 갑자기 비가 오거나 기상변화 있어 현장으로 팔려가지 못하고 헛걸음치는 일이 있더라도 나는 그리하리. 빨간 날, 곧 멘스날에도 인력시장에 나가보리. 더러더러 운 닿아 야리끼리하는 날이 있으면 더욱 좋고.
* 이 글은 본인의 블로그, 이슬아지 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