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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속 작은 이야기
윤요셉 (수필가/수필평론가)
‘고놈들 참으로 부지런하단 말이야!’
내가 밭에 나설 때마다 재잘대는 산새들과 윙윙대는 벌들이 대견해서 하는 혼잣말이다. 산 속 외딴 농막(農幕)에서 지내는 나. 새벽 다섯 시 무렵엔 지난 밤에 무슨 일이 있었건 어김없이 일어난다. 냉장고에서 물통을 꺼내 찬물을 한 대접 따라 들이키면, 정신이 이내 맑아진다. 작업복을 입고, 장화를 신고, 우의(雨衣) 바지를 입는다. 장화와 우의 착용은 밤새 내린 이슬을 감안해서다. 그리고는 허리에다 전정가위가 든 혁대를 두르고, 한 손엔 호미 또 한 손엔 왜낫을 들고 이 밭 저 밭을 둘러보게 된다. 우리 속담에 ‘곡식은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고 하였다. 서양 속담에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The early bird catches worm).’고 하였다. 나야말로 이들 두 속담의 충고를(?) 날마다 그대로 실천하는 셈이다. 사실 나처럼 전답(田畓) 사이에다 농막을 짓고, 그곳에서 살다시피 하면, 농사에 큰 도움이 된다. 시간 절약은 말할 것도 없고, 연장 사용 등도 효율적으로 할 수 있게 된다. 들 가운데 농막이 있으면, 새벽부터 해 저물 때까지 얼마나 긴 시간을 농사에 몰두할 수 있는지 모른다. 낮잠을 자는 등 쉬기도 좋고.
이러한 나도 산새들과 벌들한테만은 당해낼 재간이 없다. 산새들은 그 긴 밤 동안, 벗들이나 이웃들한테 그처럼 재잘재잘 이야기 들려주고 싶어 어떻게 견뎠을까 싶을 지경이다. 고놈들은 내가 일어나기도 전에 이미 일제히 일어나 그 특유의 맑은 목소리로 재잘댄다. 단지, 벌레를 잡기 위해서 그리 하는 것 같지가 않다. 참말로, 고놈들은 밤 내내 몸을 뒤척이며 자기 벗들한테, 이웃들한테 들려줄 이야깃거리를 궁리하는 듯싶다. 어리호박벌,뒤웅박벌, 나나니벌 등도 부지런하기 그지 없다. 내가 고추밭에 가면 하얀 고추꽃 속을 드나들며 꿀을 모으느라 이미 부지런을 떨고 있다. 내가 참깨밭에 가면 그곳에서도 어김없이 참깨꽃 속을 드나들며 또 부지런을 떨고 있다. 내가 밭둑마다에 수 없이 심어둔 호박 덩굴도 부지런하기는 마찬가지다. 고놈들은 밤새 또다시 덩굴손을 내밀어 밭 안 쪽으로 기어들어 참깨 대궁이나 고추 대궁에 매달리려고 한다. 나는 고놈들 덩굴을 거의 매일 한 차례씩 밭둑으로 밀쳐 길들일밖에. 그 호박덩굴에 맺힌 노란 호박꽃에도 어김없이 벌들이 윙윙 댄다. 이 모든 일들이 산속에서 일어나는 일상 이야기다. 사실 산새들과 벌들이 그처럼 부지런을 떨지 않으면, 농부인 나는 제대로 수확을 볼 수가 없다. 아니, 허탕이 되고 말 것이다. 산새들은 과일 등속을 물고 가서 과육(果肉)은 냠냠 쪼아 먹고 과핵(果核)은 군데군데 떨어뜨림으로써 새로운 터전에서싹을 돋게 한다. 벌은 암꽃,수꽃을 드나들다가 자기 날개며 몸뚱아리며 발이며 온 몸에다 꽃가루를 묻혀 중매를 하게 된다. 벌들은 이른바 충매화(蟲媒花)들의 훌륭한 뚜쟁이다. 고놈들은 마치 떡에 고물을 묻히듯 온몸에 숫제 꽃가루 범벅이 된 채로 온 데 쏘다닌다. 그리고는 때때로 날개로, 발가락으로 그 꽃가루를 털어낸다는 게 ‘꽃가루받이’로 이어지고,농부한테는 풍성한 수확으로 이어지니… . 사실 농사는 하늘이 거의 다 지어준다고들 하지만, 벌들이 부지런을 떨어줌으로써 결실을 보게 되는 것이다. 고놈들 미물(微物)이 없었던들 어찌 결실이 가능했겠냐고! 과학자 아인슈타인은 살아생전 무슨 이유였는지 몰라도, 벌들이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경고를 우리한테 보낸 바 있다. 고놈들 개체수가 줄어들거나, 생활습관이 바뀌거나, 몸에 난 솜털 등이 돌연변이로 사라지거나 하면 우리는 낭패를 당할 것이다.
오늘도 나는 이른 새벽에 산새들의 지저귐과 벌들의 윙윙 댐을 듣게 되었다. 참으로 부지런하고 참으로 갸륵한 것들이었다. 평소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미물들이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오늘 새벽엔 고놈들의 지저귐과 윙윙댐을 듣다가, 나도 모르게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William Butler Yeats, 아일랜드, 1865~1937)의 망향시(望鄕詩)를 외게 될 줄이야! 바로 ‘이니스프리의 호도(湖島)가 그것이었다. 원제는 ‘The Lake isle of Innisfree’다.
‘나 이제 일어나 가리,이니스프리로 가리,/ 거기 외 엮어 진흙 바른 오막집 짓고 아홉 이랑 콩 심고, 꿀벌 통 하나 두고/ 벌들 잉잉대는 숲속에서 홀로 살리라./ 내 그곳에서 평화 누리리/ 천천히 아침의 베일로부터 귀뚜라미 우는 저녁까지/(중략)/ 저녁이면 홍방울새 나래소리 가득한 곳,/ 나 이제 일어나 가리, 이니스프리로 가리/ 밤이나 낮이나 호숫가 잔 물결 소리 듣고 있으니/ 한길이나 잿빛 포도(鋪道)에 서 있으면/ 가슴 깊은 곳에서 그 소리 듣네.//’
노벨문학상 수상자이도 하였던 예이츠는 정작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한마디로, 런던에 눌러 살면서 향수에 관해 위와 같이 몽환적(夢幻的)으로 읊었을 따름이다. 하지만, 나는 내 고향도 아닌 타향의 어느 골짝에 실제로 오막집 손수 짓고, 남들로부터 임차한 토지를 포함해 2000여 평 농사를 하며 여생을 보내고 있다. 예이츠와는 달리, 중국의도연명은 돌연 공직에서 사표를 내던지고, ‘나 이제 돌아가리’로 시작하는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읊으며 귀향하여 작으나마 농사를 직접 지었다. 사실 도연명도 지금 나만큼의 농사거리도 아니 되었을 뿐만 아니라, 농사기술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반거들충이었다. 그런가 하면, 흘러간 옛 가요 가운데는 ‘가련다 떠나련다 어린 아들 손을 잡고/ 감자 심고 수수 심는 두메산골 내 고향에’로 시작되는 ‘유정천리(有情千里)’가 있었는데, 정작 작사가든 가수든 말로만 낙향한 노래다. 내가 이러한 사항들을 시비 삼듯 말하는 이유가 따로 있다. 산 속에 홀로이 농막 지어 살면서 손수 농사를 하고 산새들의 지저귐과 벌들의 윙윙댐 등을 직접 들어본 후에나 무슨 이야기라도 펼쳐가야 남들한테 실감을 주게 되지 않겠냐는 뜻이다. 말로야 무슨 짓을 못하겠냐만, 탁상맡에서야 무슨 글인들 못쓰겠냐만… .
아무튼, 오늘 새벽 나는 부지런을 떠는 산새들과 벌들한테 새삼스레 삶을 배우고, 새삼스레 미물에 대해 고마움을 느끼게 되었다. 그것은 축복이었다. 참으로 행복한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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