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부팔모(三父八母)수필/신작 2014. 11. 6. 06:38
삼부팔모(三父八母)
윤요셉 (수필가/수필평론가)
종종 종합병원을 지나치다가,상복(喪服)을 입은 상제(喪制)들을 보게 된다. 하여간,인간은 매분 매초 태어나고 매분 매초 죽으니까. 사실 요즘 인간은 대개 종합병원 분만실에서 태어나서 신생아실을 거쳐 … 종국에는 종합병원 지하 영안실로 간다. 그렇게 옮아가는 시간이 80여 년 걸릴 따름이다. 요즘이야 간소하게시리, 상제들은 상장(喪章)을 달거나,상완장(喪腕章)을 두르거나, 검은 옷을 입거나, 흰 옷을 입거나 하기에, 망자(亡者)와 관계를 눈으로 쉽게 파악하기 힘들다. 나는 이제 애독자님들께 느닷없는 질문을 하나 던진다.
“당신의 아버지는 살아생전 어떤 아버지였습니까? 또, 당신은 어떤 아버지입니까? 당신의 어머니는 살아생전 어떠한 어머니였습니까? 또, 당신은 어떤 어머니입니까?”
이 무슨 뚱딴지 같은 말이냐고? 자신을 기준으로, 아버지도 친부(親父)를 포함해서 네 종류의 아버지가 있으며, 어머니도 친모(親母)를 포함해서 아홉 종류의 어머니가 있다는 사실. 고려 성종 4년 (985년)에 이르러, 일반 백성들도 널리 따르게 되었다는 상례상(喪禮上) 오복제(五服制). 그것은 다섯 종류의 상복에 관한 사항이었다. 고인과 관계에 따라, 최복(衰服)을 달리 했다지 않은가. 최복이란, 상복을 입는 걸 이르는 말이다. 오복으로 세분한 것은, 망자에 대한 슬픔의 정이 각자 서로 다르기에 착용 기간 등을 감안하여 그렇게 정했다고 한다. ‘삼부팔모’는 이러한 오복제에서, 친 아버지, 친 어머니와 구별하여 최복을 입게 되는 아버지,어머니를 구체적으로 일컫는다.
우선, ‘삼부’에 관한 소개다. 서자(庶子)의 입장에서, 함께 사는 계부(繼父), 함께 살지 않는 계부, 친모(親母)가 후살이 간 데 따라가서 섬기는 계부 등이다. 다음은, ‘팔모’에 관한 소개다. 적모(嫡母)는 서자 입장에서 아버지의 본처, 계모(繼母)는 아버지가 재혼하여 얻은 아내, 양모(養母)는 거두어 주고 길러준 어머니, 자모(慈母)는 사랑이 깊다는 뜻의 어머니, 가모(嫁母)는 다시 시집 간 어머니, 출모(黜母)는 아버지한테서 쫓겨나 집을 떠난 어머니, 서모(庶母)는 아버지의 첩, 유모(乳母)는 갓난아이일 적에 젖을 먹여 길러준 어머니 등. 물론 그 어떤 아버지이든 그 어떤 어머니이든 세상을 뜨면, 최복을 하고 합당한 예(禮)를 갖추었던 것으로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다만, 입는 상복의 모양새 등을 달리 했고, 착용기간도 각각 달리 하였다고 전한다.
사실 한 인간이 이 세상에 왔다가 홀연히 떠나게 되는 것은 허망한 일이다. 그러기에 우리네 선조들은 그 복잡한 장례절차를 치르면서 예를 다했다. 자기 부모의 장례를 매일 치르는 게 아닌지라, 전문가가 아닌 이상 누구든지 일을 당하면 우왕좌왕 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그러한 걸 총정리 해서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하며 규범을 만들게 되었을 것이다. 장례절차에 관한 우리 나라 최초 문헌은 조선조 <<經國大典>>이라는데, 비교적 소상히 적혀 있음을 인터넷 매체를 통해 일독(一讀)한 바 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삼부팔모는, 망자(亡者)가 자신과 어떤 관계에 있었던 아버지 또는 어머니인지를 말하는 것으로, 상복의 종류와 상복의 착용기간을 정하는 데 중요한 기준이 되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또다시 짓궂은 질문을 독자님들께 해야겠다.
“당신의 아버지는 어떤 아버지였습니까? 또, 당신은 어떤 아버지입니까? 당신의 어머니는 어떤 어머니였습니까? 또, 당신은 어떤 어머니입니까?”
왜 또다시 이 질문을 하냐고? 최근 ‘울산 계모 사건’이니 하며 아동학대를 심하게 한 여인들을 언론에서 난타질을 하는 걸 보았기 때문이다. 자기 속으로 낳지 않았다 하여 어린아이들을 너무 못살게 군 것이 너무 가슴 아팠다. 구박받은 아이들도 가엾지만, 흔히 ‘의붓 아버지’, ‘의붓 어머니’라고 하는 이들의 ‘속 골병’도 어느 정도는 알아 주어야 할 것 같다. 사실 내 속으로 낳은 아이도 인력(人力) 대로 아니 될 적이 많은데… . 오죽 했으면, “무자식 상팔자.” 라는 말까지 나왔겠냐고? 오죽 했으면, “자식새끼는 애물단지.”란 말까지 나왔겠냐고? 그런데도 우리네 선조들은 굳이 자기 대를 잇겠다며, 양자(養子)를 들이는 등 하였다. 당신들은 한결같이 소망했다. “내 제사상에 물이라도 한 대접 떠 놓을 녀석이 있어야겠다.’고, “내 무덤에서 풀이라도 내려줄 녀석이 있어야겠다.”고. 위에서 주욱 소개한 ‘삼부팔모’와 ‘오복제’에 비추어 보더라도, 우리네 선조들은 어떠한 믿음이 있었던 게 분명하다. 그것은 바로 인간중시의 사상이었다. 특히 상례(喪禮)를 모든 예의예절의 으뜸으로 여겼음을 엿볼 수 있다.
참,이 글을 쓰기 위해 자료를 챙기다가 흥미로운 사실을 하나 알게 되었다. 하필이면 삼년상(三年喪)을 치르는 이유가, 위로는 하늘을 본받고, 아래로는 지상에서 법을 취하고, 가운데는 사람에서 취하기 위해 ‘3’이란다. 또, 어린아이가 엄마 품을 떠나는 데 3년이 걸리기에, 이에 보은(報恩)코자 삼년상을 치른다고도 하였다. 이러한 점에 비추어 보더라도 삼년상은 퍽이나 의미롭다. 바삐 살아가는 우리들. 설사,지난 날 조상들처럼 삼년상을 치르지는 못하더라도,그 유래를 안 이상,마음가짐만이라도 그 뜻을 그대로 따름이 좋을 듯한데… .
나는 삼부팔모 가운데 그 어떤 어버이도 여태 모셔본 적이 없다. 친 아버지, 친 어머니 슬하에서만 줄곧 자랐다. 나는 삼부팔모 가운데 한 분을 모시고 사는 이들에 비하면, 대단한 행운아다. 특히 날로 이혼이 늘어나면서 가정이 해체되는 판국인데… . 참말로, 세월이 흐를수록 불가항력이 아닌 다른 이유로 그 많이 늘어난 삼부팔모들과 그 자녀들은 오복제 가운데 자기한테 합당하고, 고인에게도 합당한 상복이라도 제대로 챙겨 입으려나 모르겠다.
* 이 글은 본인의 블로그, 이슬아지 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한국디지털도서관 본인의 서재,
한국디지털도서관 윤근택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본인의 카페, 이슬아지 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수필 > 신작 '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감을 깎다가 (0) 2014.11.11 나무를 심은 사람들 (0) 2014.11.08 일회용 라이터로 담뱃불을 댕기다가 (0) 2014.11.03 고드렛돌 (0) 2014.11.01 애먼 눈곱 (0) 2014.1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