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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수련(65)문장이론/문장수련(문장이론) 2014. 12. 19. 22:47
문장수련(65)
-본인의 수필 ‘아버지의 매듭’의 예-
윤요셉 (수필가/수필평론가)
이번 호에도 본인의 작품을 예로, 함께 ‘문장수련’을 해보도록 하겠다. 이 작품은 어느 현상문예(기성, 신인 가리지 않고 응모가 가능했음.)에 출품하였다가 보기 좋게(?) 낙선한 작품이기도 하며, 전주에 사시는 ‘김학(金鶴)’ 수필가님네 사이트(‘행촌수필문학회’)에도 올려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행촌수필문학회 게시판’에는 2011.12.9. 올렸는데, 살펴본 바 2014.12.19. 현재 접속건수 내지 조회건수가 무려 612건이다. 한마디로, 독자님들의 관심이 폭발적임을 짐작케 한다. 아마 서울에 사는 어느 여류수필가와 그 작품에 관해 토의 내지 논쟁(?)한 내용이 작품 하단에 적혀 있기 때문인 듯하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 내용이 곧 수필작법에 관한 사항이고, 문장이론이며, 내가 늘 즐겨 말하는 ‘문장수련’의 종합편(?) 아닐까 해서, 이렇듯 다시 옮겨 독자님들께 전한다.
자, 함께 찬찬히 읽어보도록 하자. 출력하여 중요한 부분은 밑줄까지 쳐가면서 익히는 것도 썩 나브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의 매듭
윤근택(수필가/문장치료사/수필평론가)
농사를 하다보면 지게를 져야 할 일이 가끔 있다. 지게꼬리로 짐을 묶을라치면, 아버지의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쯔쯔, 지게꼬리 하나도 제대로 못 매는 자슥!”
인제 걱정해줄 아버지도 곁에 아니 계시지만, 나는 지게꼬리도 함부로 묶을 수가 없다. 설령, 운반거리가 가까워도 일러주신 그 ‘말뚝매기매듭’을 짓는다. 이 매듭은 지게를 지고 갈 때는 짐을 단단히 조여 주고, 짐을 부릴 적엔 풀기가 쉽다. 특히, 풀기에 용이하다. 끝자락을 잡고, 당겼던 반대 방향으로 살살 밀면 쉬이 풀린다. ‘한번감기’나 ‘옭매듭’보다는 아무래도 낫다.
그러고 보면, 당신한테서 물려받은 매듭법이 제법 된다. 첫째, ‘꼬아잇기’다. 당신은 여러 가닥 새끼를 드려서 멍에를 만들었다. 그것이 꼬아잇기다. 나는, 이 매듭이 마디가 생겨나지 않고 제법 매끈해져 밧줄잇기에 종종 응용한다. 둘째, ‘틀어감기’다. 이는 ‘반결삭’의 한 예다. 당신은 볏단을 묶을 적에 이 매듭법을 주로 썼다. 몇 오라기 짚을 꼬아서 볏단 허리에다 두르고, 거머잡은 짚의 끝자락을 배배 튼 다음, 볏단 허리춤에다 말아넣음으로써 묶음을 완성하곤 했다. 나는 산에서 퇴비용 풀을 베어 단을 묶을 때, 칡으로 ‘틀어감기’를 곧잘 부려 쓴다. 셋째, ‘세 가닥 땋음’이다. 당신은 시래기를 늘 세 가닥의 줄로 엮었다. 나는 굳이 세 가닥이어야 하는 의미를 한동안 모르고 지냈다. 그러다가 우리 내외가 시래기를 엮어달면서부터 그 연유를 알게 되었다. 두 가닥으로 엮어 달면 꼬임이 풀려 무청이 빠지기 일쑤였다. 굴비엮음도 언제나 ‘세 가닥 땋음’이었다. 넷째, ‘사각 매듭’이다. 당신은 굵기가 다른 두 밧줄을 색달리 이었다. 각각의 끝자락에 ‘홀쳐매기’를 하여 작은 고리를 만들고, 이들 두 고리를 서로 걸어 하나의 밧줄로 만들었다. 나는 한 때 낚시를 하면서, 이 매듭법을 ‘스퀘어매듭’이라 부르며 무척 즐겨 썼다. 뿐더러, 이 매듭법을 변형하여 철사로 올가미를 만든 다음, 밭 가장자리에 설치해 놓고, 농작물을 해치는 고라니와 산토끼를 제법 골려주기도 했다. 생각해보니, 당신은 이밖에도 여러 종류의 매듭법을 두루 썼던 것 같다. 달구지에 짐을 맬 때는 ‘접어줄임매듭’을, 두레박을 달 때는 ‘닻매듭’을, 싸리로 다래끼를 엮을 적에는 마무리 단계에서 ‘한번매기’를, 낟가리의 둘레를 묶을 적엔 말목에다 ‘지레매듭’을, 그리고 소머거리를 엮을 적에는 거듭거듭 ‘직공의 매듭’을... .
기왕에 이야기보따리 풀었으니, 이참에 또 따른 ‘매듭’도 한바탕 풀어젖히고 넘어가자. 모르는 게 없는 네이버(naver) 박사(?)가 두루 일러준다. 박사는 브리태니카 사전을 펼쳐보이면서, 열두 종류 매듭법을 그림과 함께 소개한다. ‘한번매기’, ‘옭매듭’, ‘외과결찰’, ‘반결삭’, ‘블랙월 히치(blackwall hitch)’, ‘개치포(cat's paw)’, ‘감아매기매듭’, ‘닻매듭’, ‘접어줄임매듭’, ‘시트벤드(sheet bend)’, ‘평가락지매듭’ 등이 그것들이다. 나는 이 글 말미에다 이해를 돕고자 그림도 퍼날라 두련다. 어쨌든, 매듭은 묶는 사람에 따라, 쓰임에 따라 그 이름도 다양함을 알겠다. 일찍이, 뱃사람들은 돛단배를 띄우면서 갖가지 매듭을 고안해 냈다. 매듭은 그들의 필수적인 기술이기도 했다. 그들은 무척 복잡하고 정교한 매듭을 창조해 내었다. ‘어부의 매듭’이니 ‘닻매듭’이니 ‘그물코매듭’이니 하는 말에서도 이를 엿볼 수 있다. 매듭은 등산가들한테 가면 새로운 이름을 얻게 된다. ‘에반스매듭’, ‘푸르지크매듭’, ‘까베스탕매듭’, ‘스퀘어매듭’, ‘테이프매듭’ 등이 그것들이다. 한편, 매듭이 공예가들의 손에 닿으면 좀더 아름다운 이름을 지니게 된다. ‘나비매듭’, ‘가지방석매듭’, ‘굼벵이나래매듭’, ‘납작이매듭’, ‘단추매듭’, ‘덩굴무늬매듭’, ‘병아리매듭’, ‘새발매듭’, ‘참매듭’ 등이 그것들이다. 그 어느 매듭이든 쉽게 맬 수 있어야 하고, 당길수록 단단해져야 하고, 마무리가 깔끔해야 한다. 그리고는 손쉽게 풀 수 있어야 한다.
다시 아버지의 매듭으로 이야기 끈을 끌어당겨야겠다. 당신은 매듭을 지을 때 따로이 그 이름을 가르쳐주지는 않았다. 아니, 어쩌면 당신마저 그 이름들을 낱낱이 몰랐을 수도 있다. 그저 매듭은 농부였던 당신의 일상이었을 뿐. 열 남매 가운데 아홉째인 나는 늘 서툴렀다. 그러기에, 평소 ‘맺힌 구석이 한 군데도 없는 녀석’이라는 말을 들었다. 매사에 끊고 맺는 맛이 없다는 말이다. 매듭이 분명치 않다는 말이기도 하다.
당신은 사경(死境)에 이르러, “초롱이 애비 올 때가 되었는데... .” 혼잣말을 하곤 했단다. 동기(同氣)들한테서 그 말을 전해 들었을 적에, 나는 마치 잉카의 ‘결승문자(結繩文字)’를 해독해 낸 듯했다. 기실, 당신은 ‘풀매듭’의 속성을 진작에 알고 있었던 것이다. 끝머리 즉, 끌채를 잡아당기면 쉬이 풀리는 게 ‘풀매듭’이란 것을. 뿐더러, ‘고르디우스의 매듭’이 아닌 바에야, 풀리지 않는 매듭은 세상 어디에도 없음을 알고 있었다.
다들 소리 내어 울어댔다. 어찌된 영문인지 나는 울음이 나오지 않았다. 대신, 잡았던 당신의 손을 놓아주며 축원했다. “아버지, 이승의 모-든 인연 풀어두고 좋-은 나라 가십시오. 부-디 고통 없는 나라로 미련없이 훨-훨 날아가십시오. 거기서 어머니도 다시 만나시고요.” 내가 어떻게 그런 말을 다 할 줄 알았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이승을 떠나는 이한테 최고의 덕담임을 나중에야 알았다.
염사(殮士)는 창호지를 접어 만든 끈으로, 아버지의 몸을 정성스레 묶어나갔다. 염사의 매듭솜씨는 현란했다. 당신이 평소 나뭇단을 묶을 때 그렇게 즐겨 쓰던, 바로 그 매듭법으로 당신의 몸이 묶였다. 상여꾼들은 어깨에 메려고 광목천으로 상여에다 저마다 ‘기둥묶기’를 해댔다. 당신은 평소 우답(牛畓)에 소를 몰고 가서 고삐 끝을 말목에 잘도 매더니... . 내 할아버지 아니, 당신의 아버지는 84년 전, 열두 남매 가운데 막내로 태어난 당신의 배꼽을 명주실로 묶어주었을 것이다. 오래오래 살라며 명주실 꼬아서 찬찬히 묶어주었을 것이다. 아버지, 당신은 나의 배꼽도 그러한 맘으로 묶어주었을 것이다. 왼새끼 꼬아 고추를 엮은 금줄 또한 고샅에다 자랑스레 쳐 주었으리라. 상제(喪制)들 가운데 넷째인 나도 새끼로 드린 띠를 허리에다 묶고 있었다. 형제들처럼 짚신도 신고 있었다. 당신이 그 짚신을 삼아주지는 않았더라도, 당신은 생전에 이웃 상주(喪主)들한테 짚신을 곧잘 삼아주었다. 그러기에 우리도 갚음으로 짚신을 받은 것이리라. 소리꾼은 요령(鐃鈴)을 흔들며 구성지게 만가(輓歌)를 불러댔다.
“너호아 너호아 너호넝차 너호아… .”
상여소리는, 이승에 구구절절이 맺힌 매듭 다 풀고 가라고 산메아리가 되었다.
붙임 : 매듭법 모형도(출처 : 브리태니카 백과사전) 1부. 끝.
* 이 글은 아직 종이매체에 발표한 적은 없습니다. 한국디지털도서관 (네이버.윤근택> 미발표작)에 실려 있습니다.
* 2011년 어느 현상문예 낙선작 가운데 한 편입니다.
* ‘고르디우스의 매듭’에 유의해서 읽어주세요. 저는 ‘매듭’을 통해 ‘태어남’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인생을 전부 다 농축해서(?) 이야기 한 겁니다. 사실 엄숙한 이야기인데요. 저는 제가 적은 이 글에 감동하여 눈물을 흘리기도 했어요. 그런데 심사위원들의 역량이, 눈이 거기까지 못 미친 모양입니다. 시골 아이들한테(?) 제 글을 보여준 게 잘못이었지요. 하기야, 저한테서 한 수 지도받은(?) 수필가가 예심위원이었으니, 안목이 제대로?
* 어느 수필가와 본 작품에 관한 토의 내용(이메일 주고받기)
TO : 김ㅇㅇ
FROM : 윤근택
아래 선생님의 충고는 글쓰기에 참고가 되겠군요.
선생님의 그 고견(高見) 따로 옮겨두었다가 요다음에 제 수필이론(제법 여러분과 교신한 내용을 따로 모아두었거든요.)에 반영하지요. 아래 지적하신 부분에 관한 해명(?)입니다. 제가 일자리 구하지 못해 빌빌거릴 적에 아버지께서 저를 궁지에 몰아넣어 가출한 적 있었어요. 누가 버려둔 농가(農家)에 은둔하여 수개월 밥 끓여 생된장 하나로 먹고 지냈죠. 마른 가지들을 주워다 군불을 때면서요. 이때 저는 삶의 전환점을 다시 한 번 맞습니다. 이때 쓴 ‘댓잎편지’라는 수필은 후일 ‘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 후보작이 되기도 했지요. 뒷날 기회 있으면, 그 작품 타이핑 하여 부쳐드리기로 합니다. 제 첫 수필집 《독도로 가는 길》에 수록된 작품이기도 합니다.
어느 날, 화물차를 몰고 소꼴 베러 온 친구가, 저를 한편으로는 불쌍하게 여기며, 또 한편으로는 약을 올리면서(자기는 중학교밖에 나오지 않았으나 성공했다는 투로.) 술을 함께 마시게 되었어요. 안주는 생된장에 부추를 찍어먹는 걸로. 그는 저를 기어이 꼬드겨 음주운행을 하여 달기약수터로까지 질주하여 교통사고를 일으켰죠. 당시 저는 운전을 할 줄 몰랐고, 그의 핸들을 뺏을 처지도 못 되었죠. 가야 할 길은 천리인데(취직해야 하는데), 얼굴에 살점이 떨어진 상태로(화물차 앞 유리창으로 헤딩하고 튕겨 나왔지요.) 병원 중환자실에서 지냈지요. 그야말로 사경을 헤맸던 겁니다. 해서, 그 길로 아버지를 미워했지요.
아직도 눈두덩과 볼에 살이 패인 흉터가 남아 있어요. 대학을 막 졸업한 84년 봄의 일입니다. 그 해 8월, 병원에서 퇴원하여 얼굴에 붕대 감은 상태에서 KT 입사 시험 본 겁니다. 첫 발령지가 고향 청송이었지요. 고향만 아니면 어느 곳에 보내 주어도 좋다고 본부 인사담당과장에게 사정했건만… .
그 길로 보따리를 싸서 이번엔 아주 가출하게 된 겁니다. 미리 분가(分家)를 감행한 게지요. 결혼자금이니 달셋방 자금이니 일체 없이 대학 졸업장(10남매 가운데 4년제 대학 출신은 저뿐이니 행운아지요?) 하나가 전재산이었어요. 아버지께 인사도 드리지 않고서 뛰쳐나왔어요. 후불제 월세방을 얻어, 현재 아내인 숙녀와 동거를 시작했고요.
물론 후일, 아버지와 화해했어요. 당신은 저를 무척 자랑스럽게 여기셨어요. 자존심이 강하다는 걸 아시게 되었고요. 당시 영양전화국에 근무하고 있었는데요, 고향의 병원 중환자실에 누워 계시면서, 저를 자주 찾으셨대요. 그리하여 곧바로 달려갔어요.
작품이다 보니 시간적으로는 gap이 있지만, ‘극적 효과’를 감안하여 ‘풀매듭(‘장차 풀도록 묶는 매듭’을 일컫습니다. 참 아름다운 어휘죠?)’ 그렇게 쓴 겁니다. 그러기에 ‘풀매듭’은 ‘화해’를 상징하는 말입니다. 궁궐 기둥에 풀기가 아주 어렵게 묶여있던 ‘고르디우스 매듭’.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독자들은 ‘풀기가 난해한 매듭’임을 알 듯했거든요. 이것을 푸는 자가 왕이 된다는 신화를 빠뜨릴 수 없었어요. 알렉산더는 칼로 난도질하고 그 나라를 정복했다는… . 부자지간의 갈등은 끝내 풀린다는 의미로 쓴 건데요? 그리고 잉카의 ‘결승문자’는 ‘해독이 어려운 문자’라는 뜻도 지녔습니다. 기왕에 제재가 ‘매듭’이니 ‘매듭문자(새끼줄의 매듭으로 의사소통했던 문자)’를 끌어다 써야 했지요. 아버지의 속마음을 알았다는 뜻이 되잖아요. 저는 이러한 문장기술(文章技術) 상당히 중시합니다. 저는, 엉뚱한 소재를 끌어다 쓸 게 아니라 유효적절한 소재와 적합한 어휘를 동원해서 제재에 충실해야 한다고 믿는다는 이야기죠. 제 이론의 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몇 분의 평론가가 이러한 제 어휘 구사력에 관해 눈치 챈 적 있습니다. ‘언어의 이중적 구조’라고 말입니다. 언어가 지닌 ‘심층적 의미’와 ‘표층적 의미’를 함께 노린 것들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부분도 다시 관심있게 읽어보세요. ‘아버지의 매듭‘이란 작품에서 ‘기왕에 이야기보따리 풀었으니, 이참에 또 따른 ’매듭‘도 한바탕 풀어젖히고 넘어가자.‘ , ‘다시 아버지의 매듭으로 이야기 끈을 끌어당겨야겠다.’ 등이 그것입니다. 기왕에 제재가 ‘매듭’이었으니, 화제전환에도, ‘풀었으니’, ‘풀어젖히고’, ‘이야기 끈’, ‘끌어당기자.’ 등의 어휘를 쓴 겁니다. 기교 내지는 기술을 중시한 대목이라고 자부합니다.
그리고 선생님의 고견(高見)처럼 ‘감성적 요소’와 ‘지적(知的) 요소’가 절묘하게 융합되면 좋겠는데, 그 게 어려워요. 독자층은 워낙 다양한데다가, 다들 바삐 살아가는 마당에 머리를 써서 남의 글 파고들 것 같지도 않으니까요.
제법 장황해졌군요.
제 글 꼼꼼하게 읽어주시었으니, 이 정도는 서비스해 드려야지요.
그럼,
아름다운 밤 되세요.
--- 경산에서 윤근택 드림
추신 : 둘의 교신 내용 자체가 ‘수필이론’일 테니, 이 이메일 내용 워드프로세서 작업하여 님께 다시 부쳐드리기로 합니다.
Subject: 다행입니다
Date: Thu, 8 Dec 2011 06:56:56 +0900 (KST)
From: 김ㅇㅇ
To: 윤근택 <yoongt57@paran.com>
윤선생님 <매듭>을 읽으면서
지식과 정보는
감동을 깎아먹는 기능을 가졌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 또한
감동보단 지식전달에 더 치중하며 살기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최대로 궁금한 지점은 여기입니다.
①당신은 사경(死境)에 이르러, “초롱이 애비 올 때가 되었는데… .” 혼잣말을 하곤 했단다. 동기(同氣)들한테서 그 말을 전해 들었을 적에, 나는 마치 잉카의 ‘결승문자(結繩文字)’를 해독해 낸 듯했다. 기실, 당신은 ‘풀매듭’의 속성을 진작에 알고 있었던 것
②“초롱이 애비 올 때 되었는데…”란 말씀에 무슨 잉카문명의 비밀이 담겼다는 말인지요?
그다음에 고르디우스의 매듭까지 나오니
오히려 윤선생님이 사경을 헤매이는 처지처럼 느껴지는군요.
윤선생님 진심으로는 아버님을 그리
존중하거나 사랑하지 않으신 건 아닌 건지요????
얼마 전에
저와 함께 글 공부하던 동문이
어떤 응모전에 나갔었는데
심사기준엔 등단자도 상관없다고 해놓구선
결선에서 등단자는 탈락시켰단 정보가 새어나갔답니다.
그 동문이
심사위원에게 반기를 들어 ‘형사고발’조처를 취한다고
협박을 한 후에
다시 결과를 번복하고 ‘은상’을 받아냈답니다.
이런 세상에서
글을 쓰고 있는 제가 한심하단 생각이 드는군요.
글 없는 세상에 가고 싶습니다.
그럼 이만 총총.
* 이 글은 본인의 블로그, 이슬아지 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한국디지털도서관 본인의 서재,
한국디지털도서관 윤근택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본인의 카페, 이슬아지 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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