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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를 다듬으며
    수필/신작 2015. 4. 11. 00:30

                                       파를 다듬으며

                                         - 나누기 -

       

                                                윤요셉 (수필가/수필평론가)

    이 산골 외딴 농막에서 지내면서, 홀로 자취(自炊) 아닌 자취를 하는 나. 오늘은 파김치를 담글 요량으로, 파밭에 나서서 대파와 더불어 쪽파를 뽑아다가 쭈그려 앉아 다듬고 있다. 곧 나는 까나리액젓에다 다듬은 파들을 죽여,고춧가루와 버무려 맛깔나는 파김치를 만들 텐데 .

    문득, 이 대파와 쪽파의 내력을 생각하게 된다. 대파는 줄잡아 4(四代)째 그 밭에 지낸다. 여름날 꽃대가 뻣뻣해지면, 그것들로부터 씨를 채취한 후 새로운 자리에다 뿌리는 한편, 낫으로 파의 발치를 말끔하게 베곤 한다. 그러면 대파는 포기가 벌어 여러 쪽의 새 대파로 자라곤 한다. 흔히들 아는 것과 달리, 대파는 씨뿌림이 아니더라도 그처럼 뿌리나누기[分株]로써도 개체수가 늘어난다. , 새롭게 늘어난 뿌리는 실파가 아닌 굵은 파로서 새롭게 출발할 따름이다. 그렇게 포기가 늘어나는 걸, 농학(農學)에서는 분얼(分蘖)이라 하며, 벼농사도 벼의 분얼 성질을 최대한 살리는 쪽으로 발달해 왔다. 하여간, 대파는 이처럼 씨앗으로써 뿐만 아니라, 뿌리나누기로써도 그 개체수를 늘여갈 수가 있다. 뿌리나누기는 여러 종류의 영양번식법 가운데 하나다. 그런가 하면, 쪽파는 한여름이면 비늘줄기가 아예 말라버리곤 한다. 그러면 그것들의 뿌리를 캐서 그늘진 곳에다 말리게 된다. 그러고서는 초가을에 덩이뿌리에서 몇 쪽씩 갈라 다시금 심게 된다. 사실 쪽파는 대파와 서양파 양파를 교잡하여 얻은 트기다. 하여, 대파와 양파의 성질을 함께 지니고 있다. 대파와 달리, 쪽파는 한여름에 그처럼 비늘줄기가 망가지는 탓에 쪽파의 번식법은 오로지 뿌리나누기로써만 이루어진다.

    대파와 쪽파를 다듬노라니, 명강사(明講師)황 마리스텔라 수녀님의 성경 강의가 오버랩 될 게 뭐람? 나는 경산 수녀원 부속 대구가톨릭어버이성경학교’ 3학년이고, 매주 한 차례씩 강의를 들으러 간다. 오늘 낮엔 황 수녀님은 마르코복음 630절에서 44절까지 기록된 오천 명을 먹이시다제하(題下)의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에 관해서도 강의해 주셨다. 사실 그 대목은 마르코 복음서 뿐만 아니라 마태오 복음서, 요한 복음서, 루카 복음서 등 이른바 4대 복음서에 모두 기록되어 있으되, 무려 여섯 번이나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흔히들 오병이어(五餠二魚 )’라고 하는 그 기적. 즉 다섯 개의 빵떡과 두 마리의 물고기로 오천 명의 군중한테 배불리 저녁 한 끼 먹이셨다는 기적을 일컫는다. 사실 신앙심이 얕은 나는 여태껏 그 구절을 접할 적마다 고개를 갸우뚱대곤 하였다. 당시 예수님 당신을 따르던 제자들도 지금의 나와 마찬가지 반응을 보였다. 그들은 볼멘소리를 하였다. 그 많은 군중을 다 먹이려고 빵떡을 사오자면, 적어도 200명의 장정 하루 품삯에 해당하는 돈이 필요할 거라면서. 그런데 그런데1년여 황 수녀님의 강의를 주욱 들어오다가 오늘에야 뭔가 깨우침이 왔다는 사실. 실은, 성경 구절을 자의적(恣意的)으로 독단적(獨斷的)으로 해석하려 드는 것은 위험천만이라고 들어왔다. 그 안에 들어있는 메시지를 헤아려야 한다는 것을. 참말로, 성경을 읽되, 전체 스토리로 읽어야 한다는 걸 황 수녀님을 통해 새롭게 깨닫게 되었다. 성경 속 모든 이야기가 철저히 인과관계(因果關係)로 엮여 있더라는 거. 예수님 당신께서는 따르는 제자들이 당신의 말을 못 알아듣자 또 다른 말로, 또 다른 행동으로 보여주시곤 하더라는 거. 예수님 당신께서는 이 지구상에서 비유와 상징에 가장 빼어난 분이셨음을 오늘에야 새삼 알게 되었다. 사실 내가 더 이상 에둘러 말할 필요도 없다. 예수님 당신은 그 복음을 통해 몽매한 우리한테 덧셈, 뺄셈, 나눗셈, 곱셈 등의 4연산 가운데나눗셈을 제대로 가르쳐 주신다. 당시 당신의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아니 나는, 그 빵떡 ‘5’와 물고기 ‘2’를 군중 ‘5,000’으로 나누면 간단히 문제가 해결된다는 걸 여태껏 감히 생각하지 못했다는 거 아닌가. 수식으로 표현해 ‘5/5,000’이면 되고, ‘2/5,000’이면 된다는 것을. 사실 우리네 어르신들도 일찍이 한 개의 콩도 이웃과 나누어 먹으라.”는 귀중한 가르침을 주셨거늘... . 사실 우리네 천주교인들은 곧잘 나눔이란 말을 쓰곤 한다. 어쩌면 그 나눔의 원형(元型)이야말로 오병이어였다는 것을.

    이제 내 이야기는 한 걸음 성큼 더 나아간다. ‘나눔내지 나누기는 곧잘분수(分數)’로 표현되곤 한다. ‘1/49백만(2014년 대한민국 전체 인구 가운데 나)’, ‘1/71(2014년 세계 전체 인구 가운데 나)’ 등으로. 分數는 단순한 수의 개념을 훌쩍 뛰어넘는다는 사실. ‘자신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한도를 뜻할 적에도 한자로는 동일하게 分數로 쓴다는 점. 참으로 의미롭고 상징성이 강한 어휘 아닌가. ‘나눔내지 나누기베풂과도 통하는 말이다. 베풂, 어렵사리 손수 짜서 도투마리에 감긴 []’풀어서남한테 썩뚝 잘라 아낌없이 내어주는 일이 연상되지 않느냐고? 아울러, ‘베풂은 어떤 VIP가 비행기 트랩에서 내려 환영객의 환호를 받으며 걸어갈 적에 밟으라고 바닥에다 베[융단]를 푸는 일을 연상하기에도 딱 좋은 말이다. 어디 그뿐인가. 예식장이나 호텔 복도에도 밟고 가라고 베[카펫]를 풀어 놓지 않더냐고?

    하여간, 나는 지금 대파와 쪽파를 다듬고 있다. 애초에 심을 적엔 한 쪽[조각] 뿌리에 지나지 않았던 이것들은 분얼하여 꽤나 많은 쪽으로 늘어났음을 본다. 나는 이것들 쪽을 낱낱이 나누어 다듬고 있다. 곧 까나리액젓과 고춧가루와 다진 마늘과 버무리게 될 테고, 그러면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아 맛깔스런 파김치 농주(農酒) 안주가 될 테지. 앞으로나는 파김치를 안주로 삼을 적마다 나눔의 참 맛이 어떤 것인지를 거듭거듭 새겨볼 것이다.

     

     

    (다음 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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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글은 한국디지털도서관 본인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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