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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작가 윤근택이가 신작 및 기발표작 모아두는 곳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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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농부 수필가, '몸뻬'를 입고 지내다
    수필/신작 2015. 5. 30. 23:00

              

                          농부 수필가,‘몸뻬를 입고 지내다

                                                                                  

                                                                                      윤요셉 (수필가/수필평론가)

     

           여름날 일바지로서는 이만한 게 없다. 나는 들일을 하는 동안 몸뻬를 즐겨 입는다. 사실 몸뻬는 중년 여성들이 여름날 즐겨 입는 일바지이지만, 농부들 가운데 제법 많은 이들은 이 몸뻬를 군복(軍服) 다음으로 즐겨 입는다. 내가 몸뻬를 입기 시작한 지는 그리 오래 되지 않는다.

           몇 해 전이었다. 이웃동네에 사는 객지 친구 OO’가 내 농막에 농주(農酒)를 마시고자 들어섰다. 50대 중반인 그의 복장이 가관이었다. 참말로 몸뻬차림이 우스꽝스러웠다. 해서, 나는 농을 건넸다.

           여보게, 아주 아지매 같군.”     

          그랬더니, 그가 질실되이 일러주었다. 이 바지, 저 바지 다 입어보았으나, 통풍도 아니 되고 몸에 달라붙곤 했지만, 몸뻬를 입어보니 최고더라는 거 아닌가.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던 터라, 그의 권고에 따라 아내더러 몸뻬 몇 장을 사다달라고 했다. 그 길로부터 여름이면 몸뻬 착용을 생활화한다. 심지어 아가씨 점원이 앉은 양조장에 막걸리를 사러 갈 적이나 여성 창구요원이 앉은 농협에 갈 적에도 몸뻬차림 그대로다.

           오늘 밤 내가 즐겨 입는 몸뻬가 생광(生光)스럽다는 걸 새삼 느낀다. 마침 글감도 달리는 터에, 몸뻬의 출현에 관한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보기로 하였다. 세상에 모르는 거라고는 거의 없는 네이버박사. ‘위키백과에 다음과 같이 전한다. 편의상 꼴라주(collage)’하기로 한다.

     

           <<일바지는 흔히 몸뻬(‘바지를 일컫는 일본어, もんぺ)라고도 부르는데, 여성이 일할 때 입는 헐렁한 바지다. 우리말 순화집에서 권장하는 이름은 일바지 또는 왜바지이다. 원래는 일본 도호쿠 지방에서 전통적으로 쓰였으나 제2차 세계 대전 즈음에 일본 각지로 퍼졌으며, 당시 일제에 의해 일본조선의 부녀자들에게 강제적으로 보급된 바지의 한 종류이다.

           일반적으로 허리와 허벅지까지 통이 아주 크며, 발목으로 내려갈수록 통이 좁아지는 모양을 하고 있으며, 큰 허리를 잡아주기 위하여 고무줄이나 끈으로 동여맬 수 있게 되어있다. 주로 여성들의 작업복으로 즐겨 사용되고 있으며, 아직도 중장년층 여성들에겐 흔히 볼 수 있는 옷이다.

           일본에서는 제2차 세계 대전 중인 1940, 남성에게는 자원과 경비를 절약하기 위해 국민복이라는 국방색의 복장을, 1942년에는 전시 여성복으로 부인 표준복을 제정했다. 모두 7종류의 표준복이 있었으나, 활동복으로 지정된 몸뻬만이 거의 모든 일본 여성에게 확산됐다.

           한국에 들어와서, 일제는 국가총동원법(1938)과 비상시 국민생활개선기준(1939)을 제정하고 전국민의 의식주에까지 간섭을 하였고, 식민지 조선뿐 아니라 자국민들 상대로도 사회통제와 군수품조달의 목적의 하나로 몸뻬 착용을 강요하였다. 1944년에는, 왜바지를 입지 않은 여성은 버스, 전차 등을 타거나 관공서, 극장에 가는 것을 금지했다. 처음엔 보기 흉한 모습으로 반발이 심하였으나, 국가의 강압과 여성의 활동성 확보의 장점으로 널리 보급되어, 지금에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 (이상 위키백과내용 꼴라주.)>>

          

           내가 즐겨 입는 몸뻬는 위와 같은 역사적 배경을 지닌 바지임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그것이 일본에서 들어왔든 말든, 여성용 바지이든 말든 내 알 바 없다. 농부인 나한테는 여름날 그만한 바지가 없으니까. 통풍도 잘 되고, 몸이 가벼워지고, 입고 벗고 하기에 편하기만 하다. 몸뻬는 대개가 면(綿)으로 짜여 있다. 다들 잘 아시다시피, 목화실[]로 짠 옷은 땀을 잘 받아들임으로써 몸에 감기지 않는 특장점이 있다. 손수 사지 않아 그 값을 잘 알지는 못하겠으나, 비교적 값쌀 것이다. 허리와 발목에 고무줄이 들어있고, 호주머니가 양 엉덩이에 달려 있을 뿐 비교적 단조로운 형태, 즉 포대자루 같이 생겨먹었기에 그럴 것이다.

           요즘 나는 몸뻬를 위와 같은 장점으로 입고 지내지만, 예전 나의 선친(先親)은 몸뻬가 아닌 잠방이를 즐겨 입었다. 잠방이란, 이러한 모양의 바지였다. 가랑이가 짧은 한복 홑 고의(袴衣)이며, 여름철에 농군이 바지 대신 입었다. (곤의(褌衣단고(單袴)도 잠방이를 말하는 것이며, 쇠코잠방이[犢鼻褌]도 이에 속한다. 요즈음의 반바지와 비슷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아버지 당신은 삼베로 지은 잠방이를 입고 지냈으되, 그 잠방이는 땀과 흙에 늘 절여져 있었다. 그 잠방이는 온갖 풀물이 배였으되, 그 어느 훌륭한 한국화(韓國畵) 화가도 흉내 낼 수 없으리만치 아름다운 채색이었다.

           그런가 하면, 우리네 어머니들은 잠방이가 아닌 고쟁이를 입고 지냈다. 고쟁이란, 한복에 입는 여자 속옷의 하나. 속속곳 위, 단속곳 밑에 입는 아래 속곳으로, 통이 넓지만 발목 부분으로 내려가면서 좁아지고 밑을 여미도록되어 있다. 여름에 많이 입으며 무명, , 모시 따위를 홑으로 박아 짓는다. 앞앞의 문장에서 밑을 여미도록이란 표현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그저 흥미롭게만 여길 게 못된다. 그 고쟁이를 통해, 우리네 어머니들이 참으로 불쌍했다는 거.진종일 디딜방아를 찧거나 길쌈을 하거나 김을 맸던 분들. 그분들은 연로한 시아버지, 시어머니를 모시고 초가삼간에 살았다. 만족스러운 성생활(性生活)을 했을 리 만무하다. 남편이 원하면, 옷을 입은 채 그 여며진 고쟁이를 통해 남편을 받아들이고... . 그러다가 으흠으흠... 아기야, 사랑방에 냉수 한 대접 떠오렴.” 하면, 얼른 하던 일(?) 중단해야만 했던... . 고쟁이는 그러한 성생활을 위해 고안되었다지 않던가. 다행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고쟁이는 요즘 들어 여성 복장에서 사라졌다고 한다. 다만, 저승에 갈 적에 즉, 수의(壽衣)에만 쓰인다고 하니! 고쟁이는 개구멍바지의 구조와 비슷한 게 사실이다. 개구멍바지란, 오줌·똥을 누기에 편하도록 밑을 터서 만든 아가들의 바지를 일컫지 아니 하던가.

           여름철 나 같은 농부한테 아주 유용한 몸뻬를 이 밤 다시 생각하자니, 이처럼 오만(五萬)가지 생각이 일어난다. 아무튼, 몸뻬를 입고 지내는 나의 생활을 참으로 사랑한다. 생업(生業)은 종교만치나 숭엄(崇嚴)하기에.

           끝으로, 내 신실한 독자님들께 권하노니, 남성일지라도 일바지를 택하되, 몸뻬를 한번 입어보시길... .

     

         * 이 글은 본인의 블로그, 이슬아지 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한국디지털도서관 본인의 서재,

    한국디지털도서관 윤근택 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본인의 카페, 이슬아지 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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