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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작가 윤근택이가 신작 및 기발표작 모아두는 곳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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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수필가,마태오복음을 듣다
    수필/신작 2014. 4. 15. 08:21

     

                    윤 수필가, 마태오복음을 듣다

     

                                                                                      윤근택 (수필가/수필평론가)
       

    이른 아침, 교대자 장ㅇㅇ 사감(舍監)한테 업무 인수인계를 하였다. 그러고는 곧바로 승용차를 몰아 농장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휴대전화가 삐리삐리  울었다. 또 어느 싱거운(?) 이가 스팸메일을 보냈거니 여겼다.

    하루가 지난 오늘 아침. 사무실에 출근한 나는 이제서야 그 문자메시지를 읽어본다. 장문(長文)의 글이다. 몇 차례 거듭 읽었을 뿐만 아니라 A4용지에다 그대로 옮기기까지 한다. 사신(私信)이기는 하지만, 그 내용에 관해서는 잠시 후에 한 자, 한 획 가감(加減)없이 그대로 전하기로 하겠다. 우선, 그 문자메시지 내용은 위 제목이 시사하듯, 마태오복음 가운데 제5장에 해당하는 말이었음을 '맛뵈기로 독자님들께 알려드리겠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산상수훈(山上垂訓)의 두 번째 말씀을 이어가고 계셨다.

    너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다. 그러나 소금이 제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할 수 있겠느냐?  아무 쓸모가 없으니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힐 따름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자리잡은 고을은 감추어질 수 없다. 등불은 켜서 함지 속이 아니라 등경 위에 올려 놓는다. 그렇게 하여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비춘다. 이와 같이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

    사실 그 문자메시지는 위 예수님의 말씀을 다시 떠올리도록 하기에 족했다. 지난 연말, 내가 스물 일곱살짜리 작은딸한테 노트북을 압수당한(?) 이유도 그 문자메시지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 위 복음 내용과도 무관치 않다. 굳이, 그렇게까지 남의 충고를 듣지 않아도 내 꼴을 내가 너무도 잘 알고 지내고 있다. 특히, 산 위에 자리잡은 고을은 감추어질 수 없다.는 예수님의 비유 말씀을 너무도 잘 알면서도 이를 제대로 실천하지 못할 따름이다. 그러한 점에서도 나는 넘치기보다 오히려 모자라는 사람이다.

    이제 미루어두었던 그 문자메시지를, 원문(原文) 그대로 옮겨본다.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엊그제 웹사이트에선가 블로그에선가 윤선생님의 푸념 섞인 글을 봤어요. 그에 대한 어떤 팬의 격려의 글도 . 주제넘은 소리가 될는지 몰라도 한마디만 할 게요. 부디 잠잠하세요. ? 사람들은 자기보다 잘난 이를 좋아하지 않거든요. 윤선생님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최고의 글쟁이에요. 그런데도 많은 이들이 드러나게 칭찬을 하거나 반가워하지 않는 것은, 경쟁자로 보아 얄미워하기 때문 아닐까요? 말하자면 너무 설친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일 거에요. 진짜 진주는 가만히 있어도 고귀한 법. 굳이 스스로 빛내려 하지 마세요. 윤선생님은 아니라고 하고 싶겠지만, 상대방은 자기를 올라타려 하는 적수로 볼 수도 있어요. 저는 윤선생님이 참으로 안타깝고 안타까워요. 아무리 영양가 있는 음식도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데 일방적으로 주면 식상해요. 아끼세요. 더 먹고 싶어 껄떡대도록. 그리고 독자들의 냉담한 반응에 초연하세요. 징징거리지 마세요.

    문득 이런 생각이 드네요. 제가 느낀 것이 맞다면, 윤선생님은 사후에나 큰 평가를 받겠다고. 평소에는 공기의 소중함을 모르다가 비상시에 절실함을 알게 되는 것처럼. 저는 윤선생님이 생전에도 한국문단에서 높은 평가를 받으시기 원합니다. 이 땅의 수필가들 중 윤선생님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겁니다. 자기를 알리는 것도 좋지만 상대방을 질리게 하지는 마세요. 개발에 편자를 채우지도, 돼지목에 진주를 걸어주려고도 하지 마세요.

    좋은 계절 맞으세요.

    -     윤선생님의 진가를 잘 알고 있는 20년지기로부터

     

      일반 독자님들께 양념조로(?), 그 문자메시지를 보내신 분을 소개함이 좋겠다. 그분은 내가 문단에 데뷔한 1989년 이후에, 내가 데뷔한 잡지가 아닌 다른 잡지로 데뷔한 여류수필가다. 나보다 나이가 열 살 가량 더 많은 분이다. 당시 나는 그분의 모지(母誌)인 수필잡지에 수평선 너머로 띄우는 편지를 연재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나는 제법 잘 나가던 수필가였다. 당시 나는 그분의 데뷔작품부터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잘못된 문장 등에 관해 날카롭게 지적했던 것이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그분은 피나는 문장수련을 하였다. 그분은 나의 첫수필집 <<독도로 가는 길>>을 첫 페이지부터 끝 페이지까지 그대로 베껴씀으로써 문체(文體) 공부를 새롭게 하신 분으로도 유명하다. 독자 여러분께서는, 내가 그분 성함만 되면, 금세 아실 수 있는 그러한 분이다. 여러 종류의 문학상도 탄 분이다. 나는, 나의 첫 수필집 출판기념회에 오신 하객(賀客) 일행들 가운데 한 분이었던 그분을 단 한번 뵈었을 뿐이다. 물론, 그 이후 서로 연락도 취하지 않고 지내 왔다.

      , 뒤죽박죽 되어버린 이 글을 가다듬을 때가 된 듯하다. 남들 눈에 비친 나의 모습, 그것이 진짜 모습일는지 모르겠다. 내가 아무리 아니라고 손사래를 쳐도 아니 될 일. 나는 너무 잘난 척 했던 게 맞다. 내 작은딸도 나더러 더 이상 교만하지 말라며, 그렇게 노트북컴퓨터까지 빼앗아 갔다. 더 이상 오프라인 상태로든 온라인 상태로든 글을 적지 말라고 경고까지 했다. 이제 서울 그 먼 곳에서도 어느 분까지 위와 같은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도대체, 내가 앞으로 어떻게 하기를 바란다는 말인가. 그렇다고 하여, 이렇듯 끓어오르는 창작열을 식힐 수도 없고 . 니이체가 말하지 않았던가. 곱사등이한테서 혹을 떼는 것은 그를 죽이는 일이다.하고서. 다작(多作) 내지 다산(多産)이 나의 치명적 약점이긴 하지만, 그것이 곱사등이의 혹에 해당하긴 하지만, 멈출 수 없는 이 열정을 정말 어떡하란 말인가. 정말 나더러 어떻게 하라는 말이냐고? 예수님께서는, 산 위에 자리잡은 고을은 감춰질 수 없다.고 하셨다. 결코, 나는 산 위에 자리잡은 고을도 아니다. 다만, 끊임없이 글을 적고자 하는 사람에 불과하거늘, 그것조차도 말린다면, 그거야말로 나더러 죽으란 말과 크게 다르지 않으니 .  그 충고 너무 감사하지만,반문하고 싶다.

    내가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너무도 잘 알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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