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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벨리우스씨 벌목장에서
    수필/신작 2015. 9. 15. 22:43

     

     

     

     

    시벨리우스씨 벌목장에서

     

                                                                윤근택(수필가/문장치료사/수필평론가)

     

    사랑하는 당신,

    당신께서 이메일로 보내신 답신(答信)을 잘 읽었어요. 참으로 고마워요. 그 가운데 고국의 정치판에 관한 이야기는 당신 말이 옳은 듯도 해요. 그러니 좀 더 머리 식히고 돌아가도록 할 게요.

    사랑하는 당신,

    나는 지금 시벨리우스씨(Sibelius) 벌목장(伐木場)에 닿았습니다. 당신께서는,아마도 내가 스웨덴 어느 곳에 당도했으려니 여길 것입니다. 내가 지난 번 블라디보스톡항에서란 편지의 말미에다 이렇게 적었으니까요.

        ‘삼림강국(森林强國), 노르웨이의 피오르(fjord) 계곡으로나 가볼까 해요. 또 쓸 게요.’

    하지만, 그것은 오류였어요. 나는 지금 블라디보스톡에서 출발하여 라트비아,에스토니아를 경유하여 핀란드로 온 데다가 노르웨이가 아닌, 이곳 핀란드가 삼림강국이니까요. 아무튼, 당신을 헷갈리게 해서 미안해요. 본디 내가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란 거 당신 잘 아시잖아요.

    그건 그렇고요. 대체 이곳이 어디며 무엇 하러 왔는지 궁금할 거에요. 이곳은요, 핀란드 북부에 자리한 이나리 호수(Lake Inari)’ 근방이에요. 당신께서는,지난 날 지리과목을 잘 익힌 당신께서는, 이 나라 핀란드에는 3,000여 크고 작은 빙하호(氷河湖)가 있다는 것을 잘 아실 거에요. 게다가 전국토의 7할 이상이 침엽수 원시림이라는 것도 잘 아실 거에요. 당신께서는,임학도(林學徒)였던 내가 늘 가서 살고프다고 노래하던 나라가 바로 이 나라였다는 것도 아실 거에요. 해서, 때늦은 이 나이에 이곳 벌목장에 온 거에요. 좀 더 젊은 나이에 이곳으로 이주(移住)해서 정착했더라면… . 아마 당신께서는 이 맘 충분히 이해하실 거에요.

      사랑하는 당신, 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풍부한 이들의 삼림자원이 부러워서에요.이미 위에서 이야기하였지만요, 국토의 7할대가 원시림인데다가 경제수종(經濟樹種)인 소나무와 전나무가 대부분이에요. 이들의 총수출액 50% 이상이 임업생산물이라는 거 부럽지 않으세요? 판지(板紙)며 제재목이며 펄프며 온갖 가공품이 저 발트해의 여러 항구를 통해 세계 각국으로 팔려나간대요. 내 고국도 국토의 7할 이상이 산이기는 하지만,’삼림(森林)’이 아닌 산림(山林)’에 지나지 않잖아요.게다가,고국엔 농업을 경시하는 풍조가 있어서… . 사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고 했는데 말이에요. 아무튼, 이곳 핀란드는요,임목(林木)에서 절반 이상의 이들 복지(福祉)’가 나온다고 봐야 해요. 온 세계가 부러워하는 그 복지천국이 임업에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에요. 그러니 내 살아생전 이 나라에 한번은 와 봐야 하지 않겠어요? 사랑하는 당신, 내가 이곳에 온 이유가, 단지 풍부한 임산자원을 보러 온 것만은 아닙니다. 이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나름대로 고난의 역사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지요. 아니, 그러한 역사를 지녔음에도 슬기롭게 극복하고 복지천국으로 만들었다는 점 때문이지요. 당신께서도 지도책을 펴보시면 알겠지만, 이 나라는 러시아와 스웨덴에 꼽사리 끼어 있어요. 그러다 보니, 스웨덴으로부터 통치를 당한 적도 있고, 러시아로부터 압제를 당한 적도 있어요. 강대국 러시아한테 대항하여 독립을 쟁취하려고 두 차례나 싸운 적도 있대요. 그로 인해 자원의 1할대를 잃고, 40만여 명이 집과 토지를 잃었대요. 자연, 과부(寡婦)와 고아가 많이 생겨났겠죠? 이것이 바로 복지천국을 이끌게 되는 원동력이 되었다니,놀랍지 않으세요? 이들은 이미 1937년에 국민연금법’, ‘모성급여법’, ‘근로산업재해보상보험법을 제정하였대요. 당신도 아시겠지만, 이들은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무상교육인데다가 전국민을 대상으로 무료의료까지 한대요. 그 많은 세금부담에도 불평하는 이가 없대요. 이 지구상에서 가장 복지가 잘 되어 있는 나라라고들 해요. 사랑하는 당신, 위와 같은 일들이 이곳 사람들의 국민성만으로만 된 게 아니라는 점에 나는 더 놀라워 해요. 이들한테는 정말 훌륭한 리더가 있었대요. 내가 그 많은 벌목장을 두고서도, 하필이면 이 댁 시벨리우스씨 벌목장으로 온 이유를 이젠 눈치챘을 거에요. 이 댁 문패에 ‘Jean Sibelius’라고 적혀 있었기 때문이지요. 내가 평소 알고 지냈던 그 시벨리우스와 동명이인이라는 사실. 내가 아는 그는 작곡가에요.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가 이들 민족의 자유를 박탈하고 있었어요. 1899년 그는 핍박 아래 있는 국민을 생각해서 <<핀란디아(Finlandia)>>를 적었어요. 민족적 색채가 짙은 애국찬가에요. 대서사시에요. 그는 민족혼을 그렇게 일깨웠어요.그리고 그는 내가 태어나던 해 1957년에 작고했대요. 하기야 내 고국의 안익태도 <<코리아 환상곡>>과 <<애국가>>를 적긴 했지만, 그의 행적은… . 당신께서도 잘 아시잖아요? 이들 지도자 가운데는 만네르 하임도 있었어요. 그는 구소련과 전쟁시 최고사령관이었어요. 또 한 분의 위인이 이들한테는 있었어요. 바로 뢴토트라는 이에요. 그는 1935년 민족주의 정신의 구심(求心)이 되는 <<칼레발라>>를 복원, 편집했어요. 50편의 시가(詩歌), 22,795행의 민족서사시를 이르는 말이에요. <<칼레발라>>영웅의 나라란 뜻이래요. 이들은 지리한 흑야(黑夜)의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축제를 열게 되는데, 그때도 꼭 이 <<칼레발라>>를 노래한대요. 지리한 백야(白夜)의 여름이 끝날 때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하고요.

    사랑하는 당신,

    이미 위에서 이야기했지만, 3,000여 개의 크고 작은 호소(湖沼)가 있는 등 이곳 나라가 아름답긴 해요. 이들 스스로는 이를 자랑하여수오미(Suomi ; 호수의 나라)’라고도 해요. 하지만, 사실은 내 고국보다 좋은 환경이 아닌 듯해요. 북위 60~70도에 위치해 있어, 여름에는 백야,겨울에는 흑야에요. 여름엔 11가 되어야 해가 진다는군요. 이 겨울날씨가, 두고 온 그곳 고국보다 더 추운 걸요. 그러한 까닭에, 도시는 저 아랫녘 발트해 연안에만 밀집해 있대요. 해안은 내륙보다 따뜻하니까요.

    사랑하는 당신,

    이 댁 주인 시벨리우스씨가 나더러 이나리 호수로 얼음낚시나 가쟤요. 그곳에는 연어가 참으로 많대요. 연어구이 맛이 일품이라는군요. 나는 사양합니다. 대신, 그와 동명이인인 작곡가 시벨리우스의 <<핀란디아>>나 한번 틀어달라고 부탁합니다. 내 고국의 애국가와는 사뭇 달라요. 안개속에 잠긴 신비로운 호수와 깊은 숲의 정경이 눈앞에 선해요. 그런가 하면 포효하는 애국의 열정이 가득해요. 사실 이런 이야기하면 애국가모독죄(이런 것도 있긴 있나요?)에 저촉되는지는 모르겠어요. 그 눔의 애국가가 그게 뭐에요? 장송곡도 아니고. 나는 군대생활 하는 동안에도, 새벽에 일어나서 국기게양식을 할 적마다 어쩔 수 없이 부르곤 했어요. 그저 음울할 따름이었어요. 맥이 하나도 없는… . 차라리 이선희우리는 이 땅 위에 우리는 태어났고…’가 경쾌하고 생명력 넘치더라고요. 정말로 그 노래야말로 애국심을 고취하는 노래였단 말이에요. 더욱이, 이제 고국마저 다문화 사회로 급격히 바뀐 마당에, ‘백의민족내지 단일민족임을 강조하는 애국가의 노랫말은 시대에 전혀 맞지 않는다는 거. 그런 거 하나 두고서도 그곳 고국에서는 고쳐볼 요량은 않고,정치야바위꾼들이 한바탕 입씨름한 적 있지 않아요? 아무튼, 이 <<핀란디아>>는 이들의 혼이 살아있는 대사사시에요.

    사랑하는 당신,

    나는 이곳도 곧 떠날 것입니다. 이번엔 어디로 가야할지 미리 정해두지 않았어요. ‘실야라인(Silja-Line ;’Silja’물개란 뜻임.)’ 은 인접국 스웨덴으로 직항로라는데, 왠지 그곳엔 가기가 싫군요. 그 족속들도 이 핀란드를 침탈한 전력(前歷)이 있다니… . 또 연락할 게요. 내 사랑, 다음까지 안녕.

     

     

     

    * 이 글은 지금으로부터 3년 전인 2012년도에 적은 것으로, 가지도 않은 핀란드에서, 있지도 않은 연인한테 서간문 형식으로 썼으니… .

    * 이 글은 본인의 블로그, 이슬아지 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 습니다.

    * 이 글은 한국디지털도서관 본인의 서재, 한국디지털도서관 윤근택 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본인의 카페, 이슬아지 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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