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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농부, 쓰레받기를 만들다수필/신작 2015. 12. 3. 01:51
윤 농부, 쓰레받기를 만들다
윤요셉(수필가/문장치료사/수필평론가)
우리네 인류가 여타 동물들보다 빼어난 게 몇 있다고 한다. 불을 사용한다, 문자를 가졌다, 도구를 사용한다, 그리고 손가락이 양쪽 다 각각 다섯 개로 갈라져 자유자재 사용할 수 있다 등. 해서,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한다.
위 빼어난 것들 가운데에서 ‘도구를 사용한다’를 내가 색다르게 실천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자 한다. 나는 오늘 낮 대형 쓰레받기를 만들었다. ‘ □’꼴로 생긴, 사각진 대형 플라스틱통을 ‘/’형태로 자르기만 하면 될 성싶었다. 즉, 잘라서 ‘△’꼴이 두개 나오도록 하면 될 것 같았다. 플라스틱 통 손잡이를 살려 쓰레받기 손잡이로 삼으면 되겠다고도 생각했다. 해서, 쇠톱으로 플라스틱통을 자르기 시작했다. 영 시원찮았다. 이번엔 나무 자르는 톱으로 썰어보았다. 그 또한 신통찮았다. 다시 전정가위로 잘라보기로 했다. 그랬더니, 신통하게 마음먹은 모양대로 잘려, 손잡이까지 달린 대형 쓰레받기가 되었다. 곁에 그 누구도 없이, 혼자서 행복한 웃음을 지었다. 심지어, 희열로 말미암아 농막 안 냉장고에서 막걸리까지 꺼내 한 대포 따라 마시기까지 하였다.
내가 그처럼 대형 쓰레받기가 꼭 필요했던 일이 있었다. 올해 가을비는 오줄없이 여름장마처럼 잦아, 400여 평 논에다 베 눕혀 놓았던 볏단을 덜 마른 상태에서 걷어 낟가리를 쌓고, 가빠 [kappa<capa]를 씌웠다가 벗겼다가를 꽤나 여러 차례 하여야만 했다. 그러다가 더는 하늘을 믿을 수 없다며, 타작을 해서 콤바인 자루에 담아야만 했다. 그 콤바인 자루가 40여 개. 내 농막으로 건너는 콘크리트 다리 위에다 굄돌을 하고 그것들 벼 자루를 야적(野積)해두고 있었다. 물론, 그 동안 하늘의 사정에 따라 가빠를 벗겼다가 덮었다가를 얼마나 거듭했겠나. 그러함에도 그 동안 가을하늘은 나를 쉽게 도와주지 않았다. 서양속담에 있는, ‘볕이 좋은 때에 건초(乾草)를 말려라.’를 내 모를 리 없었건만... .
오늘 아침, 모처럼 햇볕이 좋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부랴부랴 콘크리트 농로(農路) 위에다 가빠를 무려 여섯 장이나 펴고 그 많은 벼를 쏟아부었다. 눅눅한 벼에 바람이라도 쐬어야 한다며 그리 하였다. 그리고는 장화를 신은 채 두 발을 교대로 진행해서 벼가 이랑과 고랑이 지도록 했다. 다들 아실는지 모르겠는데, 그렇게 너는 벼나 보리를 ‘우케’라고 한다. 그 우케에 이랑과 고랑을 만드는 이유는, 햇볕을 받는 표면적을 최대화하는 행위이고, 틈만 나면 하루 가운데에서도 자주 우케를 뒤집어 주어야 한다. 한편, 천방지축 내달리는 내 어린 것들, 강아지 여덟이 또 무슨 일을 저지를세라, 가빠 가장자리를 말아두어야만 했다. 즉 ‘단(端) 처리’를 했다는 뜻이다. 막상 일을 그렇게 벌였지만, 짧기 그지없는 동짓달‘해딴에(낮시간에)’그 벼를 도로 콤바인 자루에 담을 일이 한걱정이었다.
궁하면 통한다고 하지 않던가. 처음에는 큰 바가지도 생각해 보았고,양동이도 생각해 보았으나, 그것들은 비효율적인 도구라고 이내 생각을 고쳐먹었다. 해서, 궁리 끝에 만들어낸 쓰레받기가 바로 위에서 소개한 플라스틱 쓰레받기다. 그것은 안성맞춤을 외려 능가하였다. 오른손으로 그 플라스틱 쓰레받기의 손잡이를 잡을 수 있어, 벼를 퍼 담는 일에 만판이었다. 그 손잡이가 본디는 플라스틱 통의 손잡이였으니, 재활용이 따로 없는 셈. 그렇게 한 쓰레받기씩 쓸어 담으니, 반 말[斗] 넘게 담겼다는 거 아닌가.
지금은 우케 말리기의 모든 과정을 끝내고 농막으로 돌아와 전등을 켠 저녁시간. 내가 생각해도 내 자신이 이렇게 기특할 수가 없다. 나중에, 이 농장의 단골손님인 넷째누님 내외분이 오면, 내가 생광(生光)스레 썼으며, 크게 힘들이지도 않고 손수 제작한 대형 쓰레받기를 자랑 아니 할 수가 없다. 그 대형 쓰레받기 덕분으로, 나는 덤으로 ‘쓰레받기’라는 물건에 대한 추억 따위를 한바탕 쓸어 담게 되었으니... .
요즘 초등학교 오, 육 학년짜리들한테도 그러한 교과목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우리가 국민학교 오학년 때에는 <실과>라는 과목이 있었다. 그 책 어느 단원에 이르면,‘쓰레받기 만들기’가 아주 상세하게, 도해까지 되어 기술되어 있었다. 함석으로 어떻게 어떻게 접고 또 어떻게 어떻게 함석가위로 잘라야 하며 또 어찌어찌 납땜 인두로 때워야 하는지 등등. 내남없이 과제물로 함석 쓰레받기를 만들었으되, 손위 형들의 도움으로 만들어 제출했던 기억. 오늘밤 그 일을 다시 생각하자니, 쓰레받기는 생활용품 가운데에서 빠져서는 아니 될 것이고 손수 만들어 써 버릇해야 한다는 걸 일깨워주기 위해 그러한 단원이 있었지 않았겠나 싶다. 또, 학동(學童)들한테 언제든지 주변을 말끔하게 쓸도록 일러주고자 쓰레받기 만들기가 있었을 성싶다.
쓰레받기,‘쓰레기를 쓸어 담는 기구’란 뜻을 지닌다. 그 어원은 ‘쓸[擦] +에( 접사) +받[受] +기(접사)’라고 하는데, 과연 우리가 쓰는 그 쓰레받기가 오로지 쓰레기만 쓸어 담는 기구이더냐고? 그 기구로 쓰레기를 쓸어 담게 되면 곧바로 그 내용물이 버려지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저녁 무렵 행했듯 그 기구로 꽤나 소중한 알곡 따위를 쓸어 담지도 않느냐고? 후자(後者)처럼 쓰일 때에는 ‘쓰레받기’보다도 더 멋진 기구명을 붙일 만도 한데... . 잠시 엉뚱한 생각을 해 본 것이다.
쓰레받기는 빗자루와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관계다, 마치 바늘과 실의 관계 같이. 쓰레받기는 빗자루와 더불어 생활주변을 언제고 말끔하게 해주는 존재다. 정작 자신은 온갖 생활쓰레기 등으로 온몸이 먼지범벅이 되는 쓰레받기. 정말로 온갖 지저분한 걸 다 감내(堪耐)하는 게 쓰레받기와 빗자루다. 이 밤 그 공로를 새삼 기리고 싶다. 쓰레받기가 생명 끝날 때까지 지녀야 할 품성 가운데는 ‘입술 얇음(?)’이 으뜸이 아닐까 싶다. 길바닥, 마룻바닥, 마당바닥 등과 언제고 밀착되는 조동이여야 한다는 뜻이다. 그 입술은 얇고 유연해야 한다는 걸. 대개 시중에서 파는 쓰레받기의 그 입술 부위는 말랑말랑한 고무재질로 덧대 있는 편이다. 참말로 쓰레받기의 운명은, 마당바닥 따위에 밀착되어 저인망식(底引網式)으로 쓰레기든 알곡이든 쓸어 담기에 용이하냐 여부에 달려 있다. 그 닿는 부위가 입안의 혀 구실을 해야 한다는 것을. 굳이 말하자면, 쓰레받기는 비천(卑賤)한 곳에서 자기 사명을 다한다는 거. 오늘밤 나는 쓰레받기가 평소 보여주는 가변성(可變性)과 유연성을 다시 한 번 기린다. 육십을 바라보는 나이인 나, 게다가 수필작가인 나. 쓰레받기를 통해 ‘사고(思考)의 유연성’까지 깨닫게 된다. ‘말랑말랑한 사고’를 지니지 않은 채 마냥‘벽창우(碧昌牛)’처럼 ‘닫힌 사고’를 지니고 살아갈 수야 없지! 어쨌든, 나는 낮에 대형 플라스틱 쓰레받기를 만들어 썼다. 경우에 따라서는, 필요에 따라서는 자신이 쓰기에 편리한 도구를 스스로 만들어 써 버릇하는 것도 유연한 사고에서 비롯되었음을 힘써 말하고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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