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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일 동안의 '여우와 신 포도'
    수필/신작 2016. 1. 12. 09:50

     

       

                                   11일 동안의 여우와 신 포도

     

     

                                                                                     윤요셉(수필가/문장치료사/수필평론가)

     

    요즘 우리 사회 여러 곳에서 문제가 되어, 많은 이들로 하여금 분노케는 갑질[]. 내가 1년 하고 10여 개월 사감(舍監)으로, 혹은 경비로 근무하였던 어느 연수원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곳은 경비, 청소, 보일러, 전기 등 분야를 값싼(?) 용역회사에 위탁하고 있었는데, 나는 그 용역회사 직원으로 1년씩 계약을 하고 있었다. 엄밀히 따지면, 그 용역회사가 ()’이었고, 나는 ()’이었다. 한편, 크게는 그 연수원은 이었고, 내가 소속되었던 그 용역회사는 이었다. 자연 나는 시어머니를 한 분도 아닌, 두 분을 모신 셈이다. 그 눔의 자슥들! 사흘돌이로 자르겠다는 말을 뇌까리곤 하였다. 결국, “경비실 개판이야! 새해엔 모조리 물갈이 해!”하고 이 갑질을 했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다 아는 사실. 그리 해 놓고선, “우린 간여치 않았어요.” 오리발을 내밀었다. 해서, 나는 덤터기로 해고를 당했다. 아니, 재계약 관문을 통과하지 못했다. 하나 뿐인 모가지이거늘, 그 눔의 자슥들은 왜 함부로 “(남의 목) 자르라. 마라.” 씨부렁댔을까?

    201611일부터 나는 흔히 하는 말로, ‘편한 백성이 되었고, 약간의 농사거리가 있으나, 돈이 아니 되는 등 우울증에 시달리게 되었다. 무슨 일이든 일을 저질러야만 서글픔이 사라질 듯해서, 자학(自虐)에 가까운 행동을 하게 되었다. 인터넷 구인광고 이를테면, ‘워크넷’,‘벼룩시장’,‘잡 코리아등을 하루에도 여러 차례씩 검색하고, 인터넷 이력서를 이리저리 제출하는 등 그야말로생발광을 다했다. 한편, 종이 이력서를 무려 30장 샀고, 그 이력서에 붙일 명함판 사진을 무려 30장이나 현상했다.

    이 즈음에서 내 신실한 독자님들께 흥미를 더해드리고자, 이솝의 우화(寓話) 가운데 <여우와 신 포도> 이야기로 쉬어가기 하자. 내가 11일 동안 이곳저곳 일자리를 찾아다니다가 퇴짜를 당하는 등으로 돌아설 적에 자주자주 떠올렸던 우화이기도 해서.

    <<배가 고픈 여우가 먹을 것을 찾아 숲속을 헤매고 있었습니다. 먹을 것을 찾지 못하자, 여우는 사람들이 사는 동네로 내려왔습니다. 마을의 과수원에는 먹음직스런 포도가 주렁주렁 달려 있었습니다. 여우는 포도를 따먹고 싶었지만, 포도는 너무 높이 달려 있어 따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여우가 몸을 일으켜도 보고 길길이 뛰어도 보았지만, 어림도 없었습니다. 여우가 온 힘을 다해 뛰어 보았지만, 끝내 포도를 따 먹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너무도 포도가 맛있어 보여, 쉬이 포기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기를 반복하다 보니, 여우는 더욱 지치고 배가 고파왔습니다.

    여우는 포도를 뒤로 하고 쓸쓸히 숲속으로 향해야만 했습니다. 포도밭을 나서며 여우는 혼잣말을 했습니다.

    저 포도는 설익었을 거야! 아직 다 익지 않았단 말이야! 난 신 것은 좋아하지 않아. 신 것은 맛이 없으니까. 나는 저 신 포도 따위는 먹지 않아.’>>

    내가 정말로 그 여우였다. 영천의 어느 대학병원 경비(안내원) 모집이 있다기에, 미리 관리소장이라는 양반한테 전화를 드리고, 이력서와 주민등록등본을 들고 나섰다. 내 농막으로부터 승용차로 자그마치 1시간여 걸리는 그곳. 하지만, 써 주기만 한다면, 교통비든 이동거리든 상관않고 입사하려고 다짐했거늘... . 그 양반, 관리소장이라는 이는 거만하기 이를 데 없었다. 자기야말로 왕싹아지였다. 사람을 면전에 앉혀놓고 하는 말이 걸작이었다.

    병원의 일이 매우 빡센 거 아시기나 해요? 그리고 군대는 다녀왔어요? 이력서에 소상히 적혀 있지 않잖아요? ... 제가 점수를 매기라면, ‘윤 선생님(하기야 병원측에서는 간호사든 간호보조사든 상호간에 선생님이라고 호칭할 테니... .)50점 안팎이에요. 이곳은 어린 간호사들도 있고 해서, 나발나발 말이 많으면 곤란해요.”

    사실 나는 전력(前歷) 비교적 화려하지만, 그러한 걸 시시콜콜 이력서에 적으면 오히려 경비로 뽑히는 데 감점 유발할세라, 부러 뺐다. 대신, 말로써 때웠거늘, 그는 자기 입에다 자기 손을 갖다대고 나발나발하는 시늉을 해보이며 그 딴 소리를 해댔다. 우리가 늘 하던 말 대로,자기도 용역인 주제에!

    물론, 그는 그 흔해빠진 커피 한 잔도 내놓지 않았다.

    한번은 전주(電柱)에 생산직 구인광고가 붙었기에, 무턱대고 그 닭 가공 공장에 찾아갔다. 주차를 하자니, 경비실에서 경비 아저씨가 대단히 고압적으로 제지했다. 나는 초행이라 경비실이 있는지 여부도 몰랐다.

    용무를 끝내고 돌아나올 적에 나는 경비실로 갔다.

    선생님, 아까는 죄송했어요. 경비실이 있는지 몰라서, 결례를 했습니다. 저도 현재 어느 직장 경비를 서고 있어서,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러자, 그는 대뜸 퉁명스럽게 말했다.

    됐어요. 이 경비실 기웃거리지 말고 빨리 가시오.”

    그 눔의 공장, 경비실이 간판이고 얼굴이건만... .

    11일간의 엄마 찾아 삼만 리가 아닌, ‘일자리 찾아 삼만 리는 계속 이어졌다. 누룽지 공장, 합판 공장, 자동차 부품 공장, 온천 남자 사우나 카운터 등등. 다들 내가 나이가 많다는 등 그럴싸한 핑계로 퇴짜를 놓았다. 나중에 연락드릴 테니, 이력서만 두고 가라는 말도 마치 서로 약속이나 한 듯 잘도 말했다.

    돌아설 적마다 위에서 소개한 여우의 마음이었다. 그 많은 일자리는 나한테 신 포도였다는 거. ‘신 포도가 아니라 씁쓰레한 포도였다는 사실.

    그러기를 반복한 나. 나는 드디어 달콤한 포도를 찾았다. 해서. 바로 내일 ‘2016113일 오전 630내 가족들이 사는 아파트에서 승용차로 20여분 거리에 있는 선화 청구 아파트경비실로 첫 출근한다. 인연이라면 인연이다. 한 때 이곳 경산에 인접한 대구에서 그리도 잘 나갔던 청구 주택’. 지금은 도산되어 그 이름조차 사라졌지만, 나는 그 청구주택이 펼쳤던 청구문화제에 수필 한 편을 투고하여 입상한 적도 있다. 보다는, 내가 동일 이름인 청구(靑丘)’라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였으니... .

    하여간, 의관을 정제하고 시간 맞춰 첫 출근할 것이다. 11일간은 나한테 너무도 길었던 터널이었으니, 성심성의껏 그곳 주민들께 봉사할 거이다. 나를 뽑아준 그 곳 여성 관리소장한테 결코 누를 끼칠 수야 없지!

    참말로, 두루두루 감사할 따름이다.

     

    * 이 글은 본인의 블로그, 이슬아지 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한국디지털도서관 본인의 서재,

    한국디지털도서관 윤근택 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본인의 카페 이슬아지 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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