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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걸어다니는 쓰레기배출기
    수필/신작 2016. 2. 12. 02:03

     

       

     

     

                         

                                      걸어다니는 쓰레기배출기(-排出器)

     

                                                                                     윤요셉(수필가/문장치료사/수필평론가)

     

    보는 각도에 따라, 자기 직업에 따라 사물이 사뭇 달리 보이는 법이다. 설 명절 연휴기간 내내 혼자 생각한 것이기도 하지만, 인간이 더 이상 인간으로 보이지 않는다. 얼굴이 반지르르하든 말든, 평소 내가 좋아했던 삼단 같은 머리를 하였든 말든, 하나같이 인간이 아닌 쓰레기배출기로 만 보이니 참말로 이를 어쩌랴! 앞으로 이 일을 계속하다가 자칫 혐인증(嫌人症)까지 생겨날라 두렵기까지 하다.

    아낙네들은 치장을 하고 출근을 하는지 외출을 하는지, 한 손에는 핸드백을 들고 또 한 손에는 묵직한 비닐봉지를 들고 내가 작업하는 곳 쓰레기 분리수거장 앞으로 온다. 그들은 들고 있던 그 비닐봉지의 꽁무니를 들고 음식물쓰레기통에다 탈탈 털어 넣고는 그 빈 비닐봉지를, 작은 고무다라 뚜껑을 열고 던져 넣는다. 그리고는 종종걸음으로 나한테서 멀어져 간다. 사실 그들이 신은 빼딱구두의 도드라진 뒤축이 아파트 포장도로에 찍혀똑똑똑!’소리를 일으키지만, 내 가슴팍을 똑똑똑!’찍고 가는 듯하다. 그들은 손을 더럽힐세라, 꼈던 일회용 비닐장갑까지도 아주 재치롭게 뒤집어 그 고무통에다 집어넣는 예가 있다. 내가 느끼기에, 그들은 너무도 숙달이 잘 된 듯하다. 오히려 거의 기계적 손놀림이다. 공동주택 일상생활에 그처럼 사전약속이 아주 잘 되어있는 듯도 하고.

    대부분의 입주민들은 아파트 준칙을 잘 따르는 듯싶다. 그러나 청소 중심인 이 경비할배가 그곳, 쓰레기배출장소에 얼쩡대지 않을 때에는 문제를 일으켜대기 십상이다. 분명 문맹자(文盲者)도 아닐 터인데,‘캔류표시된 마대에다 유리병을 던져 넣는 예가 잦다. ‘비닐류표시된 마대에다 종이박스 또는 P.E.T. 를 던져 넣는 예도 많다. 어디 그뿐인가. 소각해야 마땅할 쓰레기도 종량제 쓰레기봉지가 아닌, 종이박스에 담아 슬그머니 파지함에다 넣고 사라지는 일도 있다. 한마디로, 그런 이들은 왕싹아지이며 얌체족이다.

    엊그제부터 시작된 설 연휴. 대체휴일까지 포함해서 공무원을 비롯한 월급쟁이들 대부분이 내리 5일간을 놀고, 먹고, 마시고, 싸고, 버려댈 텐데, 나를 포함한 이 아파트 경비들 다섯은 번갈아가며 혼쭐날 판이다. 진종일 아파트 입주민들이 남녀노소 불문하고, 배우고 못 배우고 상관없이, 가지고 못 가지고를 불문하고 무절제하게 내다버린 쓰레기들. 우리는 손수레로 실어내느라, 시쳇말로 쌔()빠질 지경이다. 이 대한민국의 상품은 왜 이리도 다양하기만 한지? 상품 포장재료는 왜 이리도 다양한지? 종이박스의 규격은 또 왜 이리도 제각각인지? 입주민들은 아파트 출입구를 통해 바리바리 들고 들어가는데, 그것들은 여지없이 쓰레기로 되나오게 된다. 나는 그 광경을 바라보며 동료 경비원들한테 곧잘 말하곤 한다.

    형님들, 1011번 통로에 또 어떤 부인이 쓰레기 한 박스 들고 들어가네요.”

    어떠한 점에서 상품 생산자들은 쓰레기 제조업자들인 셈이다. 그들 상품 생산자들은 아파트 경비나 아파트 미화요원들 골탕 멕이는 이들이기도 하다. 크기와 모양이 제각각인데다가, 최종 소비자인 입주민들은 알속만 쏙 빼내고 곧바로 그 포장재료를 내다버리니! 더군다나 그 포장재료를 완전해체치도 않고 냅다 버려대니, 아파트 경비 노고가 오죽하겠는가?

    이번 설 연휴기간 동안에 가장 나를 골탕먹인 게 종이박스다. 손수레로 실어내어도 실어내어도 끝이 없었다. 다들 생각이, 의식이 조금씩만 깨어있어도 수거하는 우리들이 쉬울 텐데, 막상 그러하지 못하다. 집집이, 사각지고 크고 튼튼한 종이박스 하나를 선발하고, 거기다가 각종 폐지를 차례차례 해체하여 꼭꼭 다져 넣은 다음 배출해주면 얼마나 좋으랴! 그러면 우리는 그 사각지고 원형으로 되돌아간 종이박스를 차곡차곡 손수레에 싣고 창고로 가면 될 것이다. 하지만, 유치원부터 대학 졸업 때까지 우리의 교육과정 그 어느 교재에도 폐지처리요령이나 종이컵 재활용법은 소개되어 있지 않을 듯하니... . 사실 가장 중요하고 가장 기본적인 사항이 우리네 교과서에서 죄다 빠져 있다. 공중화장실에서 대변 용변 뒷처리를 위해 두루마리 화장지를 몇 센티 길이로 잘라 쓰라는 규정은 왜 없느냐 말이다. 그리고 용변 후 뒷처리를 위해 화장지 잡은 손을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해서 뒤를 닦는 게 가장 이상적이라는 등의 가르침은 교재에 왜 없는 거냐고? 이 글을 읽는 독자들 대개가 나더러 그러겠지.

    그런 것조차도 일일이 어떻게 가르쳐? 다들 척척 너무도 잘 알아서 할 텐데... .”

    알기는 개뿔? 선물이 든 종이박스 해체는 너무도 잘 하면서, 그 알속은 용케도 꺼내면서, 다시 종이박스를 원상으로 접는 걸 모르더라는 거 아닌가. 마치 내과의가 환자의 배를 갈라 수술은 잘 하면서도 다시 그 환자의 배를 봉합하지 못하는 꼴과 다를 바 없다. 내가 아파트 경비를 달포 하는 동안 경험해본즉, 입주민들 가운데 그나마도 의식 있는 이들이 1할대도 되지 않았다.

    이젠 쓰레기 분리배출로만 만족해 할 수가 없다. 거기다 더해, 그 많고 이쁘게 도안된 종이박스 등을 각 가정마다 어떻게 재활용할 것인가에까지 생각이 미쳐야 할 줄로 안다. 정말로, 단 일회용으로만 쓰고 버리기에는 너무도 아까운 종이박스류가 흔하더라는 거. 과대포장도 문제이지만, 과소비도 참말로 문제다.

    그렇게 내버려지는 과일박스를 볼 적마다, 농부인 나는 아쉬움이 크다. 나는 해마다 감박스, 복숭아박스, 포도박스 따위를 꽤나 사게 되는데, 10킬로그램들이가 개당 1200원가량 든다. 거기 담긴 과일 값의 1할에 해당하는 일이 잦다. 감박스의 경우를 예로 들어본다. 이곳 경산의 반시(盤柿;씨없는 쟁반감)의 브랜드명은 깔찬반시. 사실 이곳 경산과 청도는 남성현(南省峴)’이란 재 하나를 사이에 둔 터라, 환경조건이 비슷해서인지 씨없는 반시가 잘 되는 편이다. 이쪽 분들은 청도반시보다 오히려 당도(糖度) 따위에서 우수하다고 믿는 편이지만, 워낙 청도반시가 일반인들한테 널리 알려진 터라, 잔꾀 아닌 잔꾀를 부렸음을 그 깔찬반시종이박스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경산청도반시라고 인쇄되어있다. 청도 감 농가들로부터 브랜드명 도용 내지 표절의 시비를 막고자 궁여지책으로 그리 하였을 것이다. 나쁘게 말하자면, 소비자들한테 눈속임수일 수도 있다. 분명 경산시청도군은 각각 다른 곳이지만... . 아무튼, 나와 아내도 이웃들처럼, 해마다 도안도 잘 된 그 깔찬반시박스만으로도 부족하여 그 박스 안에다 얇은 스티로폼난좌(-卵座; 계란 받침)’까지 사서 깐 후에 홍시를 담곤 한다. 과일은 입이 아닌 눈[]으로 먹게 된다는 농협공판장 경매인들의 말을 허투루 듣지 않았기에 늘 그리 한다. 우리의 속담 가운데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말이 공연한 게 아니다. 이런저런 사정을 아는 나.

    어쨌든, 농부들은 위와 같은 이유로 거듭거듭 고급스런 포장을 해야만 한다. 차별화, 고급화된 박스를 사다 써야 하고, 보다 정성스레 담아야 하기에 인건비가 만만찮다. 한편, 최종 소비자들은 알속값보다 웃도는 포장재료값을 부담해야 하는, 어처구니없고 실속 없는 소비행태를 좇아야만 한다. 끝 모를 엘리베이션(elevation)' 내지 '끝모를 에스컬레이션(escalation)'이 어느덧 우리 모두를 실속 없는인간으로 만들게 되었으며, 내가 첫 단락에서 나직 탄식한 대로 우리 모두를 어느새쓰레기 배출기로 만들어 버렸다.

    자원은 무궁무진한 게 결코 아닐 터. 그런 이유에서라도 더 늦기 전에 우리는 보다 적게 먹고 대충대충 입고 대충대충 꾸미고 ... 그렇게 살아가야 할 듯하다. 한 켤레의 검정고무신과 한 벌의 가사(袈裟)로 한평생 지냈다는 성철(性徹)스님의 검소를 새삼 떠올려본다. 내가 아파트경비로 취직을 참 잘 한 거 같다, 이러한 것을 깨닫게 되었으니까. 사실 농부이기도 한 나는 이미 부수입을 짭짤하게 챙기고 있다. 입주민들이 내다버린 고급종이박스 등을 승용차 트렁크에 포개 실어 농장으로 가고 있으니까. 이러다가는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꼴이 될는지도 모른다. 이 무슨 이야기냐고? 종이박스를 비롯하여 선풍기·의자· 진공청소기·프라이팬·전기밥솥·오디오시스템 등을 퇴근 때마다 주워 싣고 가고 있으니, 급여보다 더 짭짤한 수입이 될 것 같다는 말이다. 아예 이참에 내 농장에 보물창고를 지을까 싶다. 사실 나는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다.

    끝으로, 내 신실한 애독자들께 자못 충격적인 사실 하나를 알려드리고 이 두서없는 글을 맺을까 한다.

    진딧물을 구제하는 아주 특별한 방법이다. 애지중지하는 화초에 진딧물이 들끓으면, 마시다가 유통기한 끝난 우유제품 그 화초에 분사하라고 한다. 그러면 진딧물이 죽는다는데, 그 이유는 아주 명쾌하다. 진딧물은 그렇게 마신 우유제품을 배설 못해 똥구멍 막혀 뒈진다고 한다. 참으로 흥미롭지 아니한가? 시사하는 바 크지 않은가.

    참참, 이 이야기도 하나 덧붙여야겠다. 경비 모자를 쓰고 어두컴컴한 쓰레기 분리장(?)에서 일을 하다니까, 어느 젊은 부인이 덕담을 하였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런데 그 인사말이 이렇게 들렸지 뭐냐.

    경비 아저씨, 새해 벽두에(우리가 함부로 버린) 쓰레기 많이 받으세요.”

     

    * 이 글은 본인의 블로그, 이슬아지 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한국디지털도서관 본인의 서재,

    한국디지털도서관 윤근택 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본인의 카페 이슬아지 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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