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무소뿔처럼(2012년도에 쓴 글)
    수필/신작 2017. 8. 13. 06:16

    신기루 (蜃氣樓, mirage)였습니다.

    참말로, 실체가 없는 신기루였습니다.

    열병이었습니다.

    아니, 미열이었습니다.

    또 그 증세가 도지는 듯.

    아래 '졸링'의 '열대로 가는 티켓'에도 '무소뿔처럼' 과 비슷한 내용이 담겼더군요.

    무소뿔처럼



    윤근택(수필가/문장치료사/수필평론가)



    이 적요(寂寥)한 산 속. 일주일에 한번, 주일미사를 드리러 성당에 갈 때 외에는 타인과 직접 접촉할 기회가 거의 없다. 나도 인간인지라, 이따금씩 적적하다는 생각 떨치지 못한다. 인간의 목소리를 들으려고, 밭일을 하면서도 라디오를 왕왕 틀어놓기도 했다. 그러했는데, 그조차도 심드렁해져, 요 며칠 동안은 라디오도 아예 켜지 않고 그저 일에만 몰두한다. 고행이 별 거랴. 그렇듯 땀을 흘리며 일을 함으로써 온갖 근심 떨치게 된 것도 작게 보아 고행일 테니.


    오늘은 문득, 무소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명구(名句)를 떠올린다. 무대는 인도이고, 비유의 대상물은 야생 코뿔소이고, 출처는 불교 경전이다. 이른바, 경전의 모음이라는 수타니파타(sutta nipata)에 나오는 말이다.무소는 무리를 짓지 않고 혼자서 살아가는 데서 비롯된 말인 듯하다.



    如獅子聲不驚(여사자성불경) 如風不繫於網(여풍불계어망)


    如蓮花不染塵(여연화불염진) 如犀角獨步行(여서각독불행)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사실 이 무소뿔처럼은 자주, 그리고 여러 곳에서 널리 쓰이는 말이다. 나의 첫수필집, <독도로 가는 길> 육필교정 재판본을 찍을 때 다시 책머리에에서도 넌지시 밝힌 사항이다. 독도, 울릉도 부속도서의 이름이기도 하지만, 수필의 길을 홀로 가겠다는 뜻이기도 하다고. 그러했던 나는 내 외로움을 견디기 힘들어 외도(外道)를 걸은 적도 있다. 오히려 글은 아니 쓰고, 외간 여성과 사랑놀음이나 하였던 것이다. 그러기를, 줄잡아 10년은 된다. 뒤끝은 상처투성이였다. 본인은 물론이고 상대와 내 가족 모두가 크고 작은 상처를 겪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제금 성모 마리아님만 흠모하기로 작정을 했는데 .


    얼른, 다른 이야기로 넘겨야겠다. 지난날 그 까다롭고 흥미 없던 과목, 목재이용학을 다시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민 아무개는 정말 피곤한 교수였다.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올 듯한, 인간미라고는 살점을 찍어 뜯어보아도 없을 듯한 분이었다. 우리는 그분의 성()과 대머리와 성품을 동시에 산입하여(?) 민대가리라는 별명으로 부르곤 했다. 세월이 30여 년 흘렀으니, 그분은 작고(作故)하셨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땡땡이를 치고, 집단 결강 즉,수업을 짼 후 다음 강의시간에 들려주던 그 한 마디만은 여태 잊을 길 없다.


    자네들 말이여, 호랑이나 사자는 절대로 떼를 짓지 않는다는 거 알아야 혀. 실속이 적기 때문이지. 떼짓는 일은 산토끼 등 약자(弱者)들만 하는 짓이여.


    그분은 무소뿔처럼을 이처럼 달리 말했음에 분명하다.


    후일, 내가 직장(職場)에서 복에도 없는 총무과장을 하면서, 떼짓기에 관해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직장 부하들이 떼를 지어, 소위 춘투(春鬪)를 하겠다고 여의도광자이며 명동성당이며 온데 달아나버렸던 기억. 사측과 달리, 약자인 노조원 개개인은 그렇듯 힘을 합쳐 자기네 요구사항을 관철코자 하였다. 하지만, 강자인 사측은 호락호락 그들의 요구사항을 다 들어주지는 않았다. 그 틈바구니에 끼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던 나. 결국은 그것이 빌미가 되어 유배 아닌 유배를, 보직발탁의 수모를 겪으면서 떠나긴 했지만 . 사실 아무리 쪽수가 많아도 장교 한 명을 못 당하는 게 사병사회였다. 동서고금을 통해, 병장 출신의 모임에서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았다는 사례를 본 적은 없으니까. 이런저런 경험을 통해서도,코뿔소의 외뿔 위력을 느낄밖에.


    그런가 하면, 무소의 외뿔은 선구자(先驅者), 선각자(先覺者), 선지자(先知者) 등과도 의미가 통한다. 모두 외롭게 홀로 길을 나선 이들이다. 특히, 선구자(先驅者), 어휘 자체가 여타 병사들이나 무리들 앞에서 말을 타고[] 가는 이를 나타낸다는 걸 유의하게 된다. 여담이다. 우리의 가곡 선구자에는 말 달리던 선구자라는 노랫말이 들어있는데, 말 달리던이란 관형어는 선구자를 풀이한 것에 불과하다. 아무튼, 위에 열거한 이들은 외롭기 한량 없었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들을 일컬어 위인(偉人)이라고 한다. 위인들은 하나같이 자기의 고향에서, 자기가 살던 시절에는 제대로 대접을 못 받은 공통점이 있다. 예수님은 당신의 고향에서만은 기적을 행하시지도 않았다고 한다. 석가께서는 당신의 고국 인도에서만은 그렇게 불교를 흥하게 만들지 못하였다. 최근에 작고한 문선명 목사도 자신의 고국, 한국에서만은 통일교를 그렇게 흥하게 하진 못하였다.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분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신념을 꺾지 않았다.


    이제금 나의 생활로 이야기의 고삐를 다시 당겨온다. 나는 제법 흔들려 왔던 게 사실이다. 허허로움과 우울함을 달래려고 술 사발을 늘 끼고 지내왔다. 그것은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깨고 나면 더욱 허전한 . 아니 될 일이다. 낮 동안 땀을 쫙쫙 흘리고, 갈증과 허기를 달래려고 마시는 농주(農酒) 한 사발은 모르겠으되, 습관성 음주는 더 이상 곤란하다. 무소뿔처럼 그렇게 혼자서 가야 한다. 물론, 내 수필의 길도 마찬가지다. 끝없이 혼자서 걸어가야겠다. 참말로,또다시 길을 나서야겠다. 그 길이 다시금 독도(獨島)로 가는 길임을 알기에.

     

     

     

    '수필 > 신작 ' 카테고리의 다른 글

    Wanted(구인광고)  (0) 2017.08.15
    여기에 적힌 먹빛이  (0) 2017.08.15
    존경하는 나의 글 스승께  (0) 2017.08.12
    옴니버스 수필 - 전설  (0) 2017.08.08
    약속  (0) 2017.08.05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