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무우' 이야기
    수필/신작 2017. 9. 23. 14:50

     

     

                                            무우이야기

     

     

                                                                                        윤근택(수필가)

     

     

     

    김장무, 김장배추가 어우러진 밭에 나서 있다. 다소 갈증을 느끼는 듯하여 스프링클러로 그것들 정수리에 물을 뿌려주고 있다. 가을 햇볕에 분수(噴水)는 허공에 무지개를 만들어 내고, 빨간 고추잠자리들은 낮게 날고, 흰 배추나비들은 쌍을 이뤄 김장무, 김장배추를 기웃대고... . 이 농부는 모처럼 가을날 하오를, 평소와 달리 장화가 아닌 고무신을 신은 채 이렇게 한가롭게 즐기고 있다.

    몰라보게 쑥쑥 자라는 것들. 이쁘기 한량없다. 하고많은 계절 다 두고, 서늘한 계절을 택해 자라나는 것들. 생각해보니, 가을무와 가을배추는 내 만돌이농원의 밭뙈기를 크게 욕심내지도 않는다. 참깨를 쪄낸 그루터기를 피해, 비닐피복(비닐멀칭)을 걷지도 않고, 군데군데 조붓한 호미로 홈을 파서 무는 씨로 뿌리고 배추는 어린모를 이종(移種)하였기 때문이다. 이모작인 관계로, 토지를 아주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작물이란 뜻이다. 대체로, 농부들은 나처럼 참깨와 김장무, 김장배추를 이처럼 이모작하게 된다. 시기적으로도 아귀가 맞아떨어진다. 참깨 수확기인 처서(處暑) 전후가 파종적기이기에 그렇다. 하여간, 새로 밭을 장만하는 등 수고를 덜어주는, 이른바 생력작물(省力作物)임에는 틀림없다.

    내 신실한 애독자들께, 여기서 잠시 일러바칠(?) 게 하나 있다. 내가 위 제목에 라 하지 않고 무우라고 적은 이유에 관한 사항이다. 언어도 생명체인 관계로, ‘생성소멸이 따른다는 걸 나도 인정한다. 그렇더라도 멀쩡하게 잘 쓰고 있던 무우로 표준어를 삼은 의도를 모르겠다. 당시 ‘88년 구 문교부고시 88-1’에 학자 들은 그런 짓을(?) 감행했다. ‘일찌기일찍이, ‘미류(美柳)’미루로 바꾼 것도 그때부터다. 참말로, 우리는 무우또는 무꾸또는 무시라는 이름에 더 익숙해 있었고, 애환이 거기 서려 있었거늘... .

    이제부터 무우에 이야기를 슬슬 해보아야겠다. 지금은 작고(作故)한 내 고종사촌형님은 살아생전 이야기를 자잘궂게(?) 하는 분이었다. 그 가운데에는 이런 말도 있었다.

    무꾸(무우) 먹고 트림 하지 않으면, 인삼 먹은 것보다 효과가 크다고 해.”

    사실 무우를, 특히 생무우를 먹고 트림 아니 할 수는 없음에도... . 일교차가 심해지고 서리가 내리는 등으로 무우는 달착지근하기만 하였다. 하굣길의 우리는 신작로가 남의 집 무우밭에다 조약돌로 돌팔매질을 하곤 했다.

    다람쥐 XX 딸딸. 저 눔의 다람쥐.”

    짐짓, 주인한테 들키지 않으려 그렇듯 쇼를 해댔던 것이다.

    그러고는 얼른 달려가서 탐스런 무우를 몇 개 뽑되, 무우청을 분질러 숲속에다 버렸다. 우리는 그 무우를 간식 대용으로 잘도 먹어댔다. 금세 배가 불러오곤 했다. 때로는 잘못 골라, 맵싸하여 코를 톡 쏘던 아릿한 추억. 이 글을 적기 위해 자료를 챙기다가 오늘에야 안 일이지만, 우리가 그렇게 날걸로 먹던 무우에는 몸에 유용한 성분이 많이 들어 있다. ‘티오글루코사이드라는 성분이 씹거나 썰게 되면 글루코사이다아제라는 효소가 되고, 이는 다시티오시아네이트이소티오시아네트가 되어 독특한 향과 맛을 준다는 거. 그리고 우리가 씹던 그 무우즙에는 디아스타아제라는 효소가 있어 소화를 촉진한다는 거. 사실 하굣길에서 그렇게 먹던 남의 집 무우가 당장은 포만감을 주었지만, 그 소화효소로 말미암아 금세 배가 꺼지도록 도와주었으며, 내 고종사촌형님이 말했듯, 트림을 유발했다는 거.

    앞으로 생무우를 먹을 때면, 내 고종사촌형임이 일러준 대로, 어디 한 번 트림을 꾹꾹 참아봐? 그러면 진짜로 인삼 먹은 효과를?’

    무우는 중학교 입학시험이 사라지게 한 작물이라는 사실을 잊을 수가 없다. 대신, 나는 그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마지막 중학교 입학시험 세대이지만... . 그 유명한 말,‘엿먹어라.’, ‘(장관님) 엿먹어보세요.’가 생겨나게도 한 작물이다. 때는 1964.12.7. 서울지역 전기(前期) 중학교 입학시험. 자연과목 18번에는 이런 문제가 나왔다.

    엿을 만드는 순서는 ~~하다. 다음 중 엿기름 대신에 넣어도 될 것은? 1) 디아스타아제 2)무우즙 3)X 4)Y’

    물론, ‘디아스타아제를 정답으로 채점하게 되었다. 그런데 고관대작 자제들 가운데에는 무우즙을 정답으로 적어, 그 한 문제로 명문 경기중학교(?)에 낙방한 사태가 벌어졌다. 우리네 어머니들 어디 보통 극성인가? 그들 어머니들은 진짜로 무우를 재료로 엿을 기어이 만들게 되고, 소송을 하게 된다. 그때 판결에, 그 유명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도 도움(?) 주었단다. 분명 브리태니커백과사전에도 무우로도 엿을 만들 수 있다고 적혀 있으니... . 하여간, 그 어머니들은 당시 문교부장관한테 자신들이 무우로 만든 엿을 들고 가서, “장관님, 우리가 무우로 만든 엿을 한번 먹어보세요.” 했다는 거 아닌가. 당시 문교부장관은 등쌀에 사표를 썼고, 그 한 문제로 낙방했던 수험생들은 전원 구제되고... . 아마도, 그 일로 멀쩡하게 쓰던 무우를 버리고 를 표준어로 삼은 것은 아닐 테지!

    내가 무우의 맛을 한껏 느끼는 요리는 따로 있다. 바로 무우조림이다. 살아생전 내 어머니한테서 배운 바다. 무우를 동테처럼 원기둥처럼 제법 두껍게 썬다. 그리고 따로 청양고추를 세로로 길게 썬다. 한편, 쇠고기다시다와 청양고춧가루와 양조간장과 다진마늘을 양재기에 골고루 섞는다. 냄비에다 그렇게 썬 무우 한 층, 섞은 양념 한 층, 썬 청양고추 한 층... 차곡차곡 쌓아올린 다음, 졸이면 그 어느 요리보다 맛있더라는 거. 사실 그 방법을 아내한테도 전수해주어 이따금씩 그 무우조림을 밥반찬으로 삼곤 한다. 사실 이 요리는 고등어조림, 갈치조림, 꽁치조림 등의 변형이다. 그러한 생선조림에서 무우에 고스란히 배어든 생선맛을 나처럼 대개가 좋아하리라. 역시 생선조림은 무우맛이다.

    가난한 농부의 열 남매 가운데 아홉 번째이고,양친처럼 다시 농부로 돌아온 나. 나는 무우가 겨울철 비타민 주요공급원임을 너무도 잘 안다. 아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해마다 욕심부려 무우를 많이 재배한다. 하다못해 무우청이라도 많이 만들 요량으로. 사실 그렇게 기른 무우를 해마다 감당하기도 어렵다. 구덩이에다 묻어두고 겨울 내내 꺼내 먹으면 좋기는 하겠으나, 내 어린날과 달리, 식구도 적으니... .

    무우 재배에도 특별한 요령이 필요하다. 씨를 갈되, 너무 성기게 갈면, 초기생장이 그리 좋지 않은 편이다. 어릴 적에는 동기간(同氣間)에 서로 경쟁하고 부대끼고 해야 잘 자라기 때문이다. 농업 전문용어로, ‘근계경합(根系競合)’을 부추기는 것이다. 여러 남매 가운데에서 자란 아이들이 외동으로 자란 아이들보다 아무래도 협동적이고 양보적이며 경쟁적이라는 걸 아는 터라... . 씨를 갈되, 너무 배게 갈면, 씨앗값도 만만찮다. 가을무의 경우, 봉지당 1만원 내외인 점을 생각해보더라도 그렇다. 또 금세 자라나기에 솎아주는 데 따르는 인력도 감안해야 한다. 그리고 생육초기에 는 반드시 살충제를 살포하여야 한다는 거. 무농약이니 유기농이니 하는 말은 한낱 이상(理想)에 지나지 않는다. 무우나 배추의 떡잎이 배추나비 날개만할 적에는 배추나비며 귀뚜라미며 곤충들의 습격이 필연코 따른다. 농부한테는 배추나방이든 귀뚜라미든 결코 익충(益蟲)이 못 된다는 거. 사실 나는 배추나방이 얼씬 되면 또 여린 배추속잎에 알을 알아 애벌레가 생기려니 걱정하는 편이다.

    내 신실한 애독자들께, 기왕지사 내친걸음에, 무우에 관해 가급적 많은 이야기를 들려드리고자 한다. 무우가 자라는 습성은 특이하다. 토양 속으로 내린 뿌리는 거의 잔뿌리가 없다. 잔뿌리가 생기면 상품가치가 떨어진다. 그런가 하면, 토양 거죽으로도 뿌리 일부가 드러난다는 거. 여느 식물들은 자신의 뿌리가 그처럼 겉으로 드러나면, “나 죽었소.”하건만... . 그렇게 토양 거죽으로 드러난 뿌리 부위가 푸른빛을 띠어, 토양 속 흰 부위와 또 다른 맛, 또 다른 영양소를 갖게 되리란 생각. , 배추는 어린모를 이식하여도 잘만 살지만, 무우는 이식하면 상품성이 현격히 떨어지고 만다. 잔뿌리가 생겨 마치 여러 개 다리가 달린 듯한 꼴이 되어버리기에 그렇다. 대신, 어린 무우도 이식할 수는 있는데, 원뿌리가 접히지 않을 만치 깊이 꽃삽 등으로 파서 옮겨 심으면 된다. 내 신실한 애독자들께 무우 저장법마저 알려드려야겠다. 크게 땅에다 구덩이를 파고 저장하는 게 이상적이다. 이 때에는 바로 세우지 않고 물구나무꼴로 차곡차곡 세워야 한다는 거. 그래야 무우청이 덜 돋아난다. , 무우청을 돋게 하는 데 영양분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그렇게 하는 게 좋다. 무우 구덩이를 못 팔 형편이면, 신문지로 낱낱 돌돌 말아 항아리에 넣어두는 게 좋다. 왜 그리 해야 하냐고? 내 애독자들께서는 너무도 잘 아시지 않느냐?

    여자와 무우의 공통점 둘 가운데 하나인, 바람이 들면 못 쓴다.’

    나의 무우 이야기는 얼추 다 한 셈이다. 이미 위에서도 슬쩍슬쩍 이야기하였지만, 올 가을에도 아내 몰래 밭뙈기 100여 평에다 가을무우를 갈았다. 참으로 많이 간 셈이다. 어찌 다 감당하려고 이렇게 일을 벌였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다 속셈이 있다. 그 무우 가운데에는 우리나라종자명장이 육종(育種)해내었다는 시래기전용 무우도 많다는 사실. 나는 내 사랑하는 애독자 몇몇 분한테 시래기를 만들어 바리바리 택배로 부쳐드릴 요량이다.

    참말로, 풍성한 가을. 가을무우가 한창인 채소밭에서... .

     

     

    작가의 말)

    시래기 예약주문 받습니다. e메일이나 블로그나 카페에 주문 기록 남겨두세요.

     

     

        * 이 글은 본인의 블로그,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한국디지털도서관 본인의 서재,

            한국디지털도서관 윤근택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본인의 카페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수필 > 신작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삭줍기  (0) 2017.09.28
    '앤 블루(Anne blue)'  (0) 2017.09.25
    고태미(古態美)를 생각함  (0) 2017.09.21
    현대판 두레박  (0) 2017.09.19
    버릇  (0) 2017.09.18
Designed by Tistory.